장화홍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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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한국 소설문학 연구회
    출판사: 문학과 현실사
    장화홍련전
    화설 해동 조선국 세종대왕 시절에 평안도 철산군에 한 사람이 있었으니, 성은 배요 이름
    은 무용이니 본디 향반으로 좌수를 지냈었음에 성품이 순후하고 가산이 유여하여 그릴 것이
    없으되, 다만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음으로 부부 매양 슬퍼하더니, 하루는 부인 장씨 몸이
    곤하여 침석을 의지하여 조을 새, 문득 한 선관이 하늘에서 내려와 한 꽃송이를 주거늘 부
    인이 받으려 할 때 홀연 광풍이 일어나며, 그 꽃이 변하여 한 선녀가 되어 완연히 부인의
    품으로 들어오는지라, 부인이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이라. 부인이 좌수를 청하여 몽사를 이
    야기하고 괴이하게 여기거늘, 좌수 이 말을 듣고 가로되, “우리의 무자함을 하늘이 불쌍히
    여기사 귀자를 점지하심이라.” 하며 서로 기뻐하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십삭이 차
    매, 하루는 밤중에 향기 진동하여 순산하여 옥녀를 낳으니, 용모와 기질이 특이하여 좌수 부
    부 크게 사랑하여 이름을 장화라 하고 장중 보옥 같이 여기더라. 장화 두어 살이 되매, 장씨
    또한 태기 있어 십삭이 되어 가니, 좌수 부부는 주야로 아들 낳기를 바라다가 역시 딸을 낳
    으매, 마음에 서운하나 할 일 없어 이름을 홍련이라 하였더니, 장화의 형제 점점 자라매 얼
    굴이 화려하고 기질이 기묘할뿐더러 효행이 특출하니, 좌수 부처 형제의 자람을 보고 사랑
    함이 비할 데 없는 중 너무 성숙함을 염려하더니, 시운이 불행을 다하여 장씨 홀연히 병을
    얻어 자리에 누우니, 좌수와 장화 정성을 다하여 주야로 약을 쓰되, 증세 날로 위중할 뿐이
    요, 조금도 효험이 없는지라. 장화 초조하여 하늘에 축수하여 모친의 회춘하기를 바라더니,
    이 때 장씨 자기의 병이 회춘치 못할 줄을 짐작하고 여아 형제의 손을 잡고 좌수를 청하여
    슬퍼하여 가로되, “첩이 전생에 죄가 많아 아마 이 세상에 오래지 못하리니, 죽기는 설지 아
    니하나 장화 형제를 기를 사람이 없사오니, 지하에 갈지라도 눈을 감지 못할지라, 슬프다 이
    제 골수에 맺힌 한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거니와 외로운 혼백이라도 바라는 바는 다름이 아
    니라 첩이 죽은 후 다시 취처하실진대 낭군의 마음이 자연 변하기 쉬운 것이매, 그를 두리
    는 지라, 낭군은 첩의 유언을 저버리지 말으사, 전일의 정을 생각하시고 이 두 딸을 어여삐
    여겨 장성한 후 같은 가문에 배필을 얻어 봉황의 짝을 지어 주신다 하면, 첩이 비록 명명한
    가운데라도 낭군의 은택을 감축하여 걸초보은 하리이다.” 하고, 길이 탄식한 후 인하여 명이
    진하거늘, 장화 동생을 안고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니, 그 가련한 정경은 칠석 간장이라도 슬
    퍼하리라. 그럭저럭 장일이 다달아 선산에 안장하고 장화 효심을 다하여 조석으로 상식을
    받들어 주야 과상하더니, 세월이 여류하여 홀홀히 삼상이 지나매, 장화 형제의 망극함은 더
    욱 새롭더라. 이 때 좌수 비록 망처의 유언을 생각하나, 후사를 아니 돌아볼 수 없는지라.
    이에 혼처를 두루 구하되, 원하는 자 없음에 부득이 하여 허씨로 장가드니, 그 용모를 의논
    할진대 두 볼은 한 자가 넘고 눈은 퉁방울 같고, 키는 장승만 하고, 소리는 이리 소리 같고,
    허리는 두 아름이나 되는 것이, 게다가 곰배팔이요, 수중다리에 쌍언청이를 겸하였고, 그
    주둥이를 썰어내면 열 사발은 되고 얽기는 콩멍석 같으니, 그 형용은 차마 바로 보기 어려
    운 중에 그 심사가 더욱 불량하여 남의 못할 노릇을 골라 가며 행하니, 집에 두기 일시가
    난감하되, 그래도 그것이 계집이라고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연하여 아들 삼형제를 낳으매, 좌
    수 그로 말미암아 저으기 부지하나, 매양 여아로 더불어 장부인을 생각하며, 일시라도 두 딸
    을 못보면 삼추 같이 여기고, 들어오면 먼저 딸의 침소로 들어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너의 형제 깊이 규중에 있어 어미 그리워함을 노부도 매양 슬퍼하노라.” 하며 애연
    히 여기는 지라, 허씨 이러하므로 시기는 마음이 대발하여 장화 홍련을 모해하고자 꾀를 생
    각하더니, 좌수 허씨의 시기함을 짐작하고 허씨를 불러 크게 꾸짖어 가로되, “우리 본디 빈
    곤히 지내더니, 전처의 재물이 많으므로 지금 풍부히 살매, 그대의 먹는 것이 다 전처의 재
    물이라. 그 은혜를 생각하면 크게 감동할 바이거늘, 저 여아들을 심히 괴롭게 하니 무슨 도
    리뇨. 다시 그리 말라.”하고 조용히 개유하나, 시랑같은 그 마음이 어찌 회과함이 있으리오.
    그 후로는 더욱 불칙하여 장화 형제 죽일 뜻을 주야로 생각하더라.
    하루는 좌수 외당으로 들어와 딸의 방에 앉으며, 두 딸을 살펴보니, 딸의 형제 손을 서로
    잡고 슬픔을 머금고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시거늘, 좌수 이것을 보고 매우 잔잉히 여겨 탄
    식하요 가로되, “이는 반드시 너희들 죽은 모친을 생각하고 슬퍼함이로다.” 하고, 역시 눈물
    을 흘리며 위로하여 이르되, “너희 이렇듯 장성하였으니, 너희 모친이 있었던들 오죽 기쁘랴
    마는 팔자 기구하여 허씨를 만나 구박이 자심하니, 너희들의 슬퍼함을 짐작하리라. 이후에
    이런 연고 또 있으면 내 처치하여 너의 마음을 편케 하리라.” 하고 나왔더니, 이때 흉녀 창
    틈으로 이 광경을 엿보고 더욱 분노하여 흉계를 생각하다가 문득 깨닫고, 제 자식 장쇠를
    시켜 큰 쥐를 한 마리 잡아 오라 하여, 가만히 튀하여 피를 바르고 낙태한 모양으로 만들어
    장화 자는 반에 들어가 이불 밑에 넣고 나와 좌수 들어오기를 기다려 이것을 보이려 하더
    니, 마침 좌수가 외당에서 들어오거늘, 허씨 좌수를 보고 정색하며 혀를 차는지라, 좌수 괴
    이하게 여겨 그 연고를 묻는데, 허씨 가로되, “가중 불측한 변이 있으나, 낭군은 반드시 첩
    의 모해라 하실듯하기로 처음에는 감히 발설치 못하였거니와, 낭군은 친어버이라면 이르고
    들면 반기는 정을 자식들은 전혀 모르고 부정한 일이 많으나, 내 또한 친 어미 아닌고로 짐
    작만 하고 잠잠하더니, 오늘은 늦도록 기동치 아니하고로 몸이 불편한가하여 들어가 본즉
    과연 낙태하고 누웠다가 첩을 보고 미처 수습치 못하여 황망하기로 첩의 마음에 놀라움이
    크나 저와 나만 알고 있거니와 우리는 대대 양반이라 이런 일이 누설되면 무슨 면목으로 세
    상에 서리오.” 하고 가장 분분한지라, 좌수 크게 놀라 이에 부인의 손을 이끌고 여아의 방으
    로 들어가 이불을 들치고 보니, 이때 장화 형제는 잠이 깊이 들었는지라. 허씨 그 피 묻은
    쥐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비양하거늘, 용렬한 좌수는 그 흉계를 모르고 가장 놀라며 이르되,
    “이 일을 장차 어찌하리오.” 하며 애를 쓰거늘, 이 때 흉녀 가로되, “이 일이 가장 중난하니,
    이 일을 남이 모르게 죽여 흔적을 없이 하면 남은 이런 줄을 모르고 첩이 심하여 애매한 전
    실 자식을 죽였다 할 것이오, 남이 알면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리니, 차라리 첩이 먼저 죽어
    모름이 나을까 하나이다.” 하고 거짓 자결하는 체하고 저 미련한 좌수는 그 흉계를 모르고
    곧 대들어 급히 붙잡고 빌어 가로되, “그대의 진중한 덕은 내 이미 아는 법이니, 빨리 방법
    을 가르치면 저를 처치하리라.” 하며 울거늘, 흉녀 이 말을 듣고, ‘이제는 원을 이룰 때가 왔
    다.’ 하고, 마음에 기꺼하여 겉으로 탄식하여 가로되, “내 죽어 모르고자 하였더니, 낭군이
    이다지 과렵하시매 부득이 참거니와, 저를 죽이지 아니하면 문호에 화를 면치 못하리니, 기
    세 양난이오니 빨리 처치하여 이 일이 탄로치 않게하소서.” 한데, 좌수 망처의 유언을 생각
    하고 망극하나 일변 분노하여 처치할 묘책을 의논하니, 흉녀 기뻐하여 가로되, “장화를 불러
    거짓말로 속여 저의 외삼촌 집에 다녀오라 하고, 장쇠를 시켜 같이 가다가 뒤 연못에 밀처
    넣어 죽이는 것이 상책일까 하나이다.” 좌수 듣고 옳게 여겨 장쇠를 불러 이리이리 하라 하
    고 계교를 가르티더라. 이 때 두 소저는 망모를 생각하고 슬픔을 금치 못하다가 잠을 깊이
    들었으니, 어찌 훙녀의 이런 불측함을 알았으리오. 장화 잠을 깨어 심신이 울울하므로 십분
    괴이하게 여겨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 앉았더니 부친이 부르시거늘, 장화 놀라서 즉
    시 나아가니, 좌수 가로되, “너의 외삼촌 집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잠깐 다녀오라.” 하거늘,
    장화 너무나도 의외의 영을 들으매, 일변 놀라우며 일변 슬퍼 눈물을 머금고 대답하여 가로
    되, “소녀 오늘까지 지게를 나지 아니하여 외인을 대한 일이 없삽거늘, 부친은 어찌하여 이
    심야에 아지 못하는 길을 가라 하시나잇가?” 좌수 대노하여 가로되, “네 오라비 장쇠를 데
    리고 가라 하였거늘, 무슨 잔말을 하여 아비의 영을 거역하느냐.”하거늘, 장화 이 말을 듣고
    방성 대곡하여 가로되, “부친께서 죽으라 하신들 어찌 영을 거역하릿까마는 야심하였기로
    어린 생각에 사정을 고함이요, 분부 이러하시니 황송하오나 다만 바라옵기는 밤이나 새거든
    가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좌수 비록 용렬하나, 자식의 정을 생각하고 망설이거늘, 흉녀 이
    렇듯 수작함을 듣고 문득 문을 발길로 박차고 꾸짖어 가로되, “너는 아비의 영을 순히 쫓을
    것이어늘, 무슨 말을 하여 부명을 어기느냐.” 호령하거늘, 장화 이를 보매 더욱 서러우나 하
    릴없어 울며 가로되, “아버님 분부 이러하시니, 다시 여쭐 말씀이 없사오며 분부대로 하오리
    다.” 하고 침방으로 들어와 홍련을 불러 손을 잡고 울며 가로되, “부친의 의향을 아지 못하
    거니와 이 길의 아무리 하여도 불길하니, 시급하여 사정을 못다하거니와 가장 망극한지라.
    다만 슬픈 것은 우리 형제 모친을 여의고 서로 의지하여 세월을 보내되 일각이라도 떨어짐
    이 없었거늘, 천만 의외에 이 일을 당하여너를 적적한 빈 방에 혼자 두고 갈일을 생각하면,
    흉격이 터지고 간장이 타는 심사는 청천일장지로도 다 기록치 못할지라. 아무튼 잘 있으라.
    내 길이 좋지 못할 듯하나 만일 순하면 속히 돌아오리니. 그 사이 그리운 생각이 있을 지라
    도 참고 기다리라. 옷이나 갈아입고 가리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형제 다시 손을 잡고
    울며 아우를 경계하여 가로되, “너는 부친과 계모를 만나 극진히 섬겨 득죄함이 없게 하고
    나의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내 가서 오래 있지 않고 수삼일에 곧 오려니와, 그 동안 그리
    워 어찌하여 너를 두고 가는 형의 마음 측량 없나니, 너는 슬퍼 말고 부디 잘 있거라.” 말을
    마치매 대성 통곡하여, 다만 손을 붙잡고 서로 나누지 못하니, 슬프다. 생시에 그지없이 사
    랑하던 그 모친은 어찌 이런 때를 당하여 저 형제의 형상을 굽어 살피지 못하는고. 홍련이
    무망중에 형의 일장 설화를 들으매, 간담 미어지는 듯하여 서로 붙잡고 통곡하니, 그 가련한
    정상은 일필난기러라.
    이에 흉녀 밖에서 장화의 이렇듯 함을 듣고 들어와 시랑 같은 고리를 지르며 꾸짖어 가로
    되, “내 어찌 이렇듯 요란히 구느뇨?” 하고, 장쇠를 불러 이르되, “네 누이를 데리고 속히
    외가에 다녀오라.” 하거늘, 개돼지 같은 장쇠는 염라왕의 분부나 메인 듯이 소리를 벼락같이
    질러 어깨춤을 추며 삼간 마루를 떼구르며 가로되, “누님은 바삐 나오소서.” 부명을 거역하
    여 공연히 나를 꾸지람 들리니 아니 원통한가.” 하며 재촉이 성화같은지라, 장화 하릴없이
    홍련의 손을 떨치고 나오려 한즉, 홍련이 형의 옷자락을 잡고 울며 가로되, “우리 형제 일시
    에 떠남이 없더니, 갑자기 오늘은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려 하시뇨?” 하며 좇아 나오니. 장
    화 홍련의 잔잉한 형상을 보매. 촌촌히 끊어지는 듯하나 할 일 없이 홍련을 달래여 가로되,
    “내 잠깐 다녀오리니, 울지 말고 잘 있으라.” 하는 소리 설음에 잠겨 이루지 못하니, 노복들
    도 이 정상을 보고 눈물을 머금더라. 홍련이 형의 이마를 굳이 잡고 놓지 아니하거늘, 흉녀
    들이닥쳐 홍련의 손을 뿌리치며 가로되, “네 형이 외가에 가거늘, 네 어찌 이처럼 요괴로이
    구느냐.” 하며 꾸짖으매, 홍련이 하릴없이 물러서니, 흉녀 장쇠에게 넌지시 눈주며 장쇠의
    재촉이 성화 같으니, 장화 마지못하여 홍련을 이별하고 부친께 하직하고 말에 올라 통곡하
    여 가니라. 장쇠 말을 급히 몰아 산곡 중으로 들어가 한 곳에 다다르니, 산은 첩첩산봉이요,
    물은 잔잔 백곡이라. 초목이 무성하고 송백이 욱하여 인적이 적막한데, 달빛이 회양청 밝아
    있고, 구슬픈 두견 소리 일흔 간장을 다 끊는다. 장화 굽어보니 송림 중에 한 못이 있으되,
    크기가 사십여 리요, 그 깊이는 아지 못할레라. 한번 보매 정신이 아득한 중 물소리가 처량
    한지라 장쇠 말을 잡고 내리라 하거늘, 장화 크게 놀라 가로되, “이 곳에 내리라 함은 어쩐
    말이냐.” 허나, 장쇠 대답하여 가로되, “누이의 죄를 알 것이니, 어찌 묻느뇨? 그대를 외가에
    보내라 함이 정말이 아니라 그대 실행함이 많으되, 계모 착하신 고로 모르는 체하시더니 이
    미 낙태한 일이 나타난고로 나로 하여금 남이 모르게 이 못에 넣고 오라 하기로 이에 왔으
    니 속히 물에 들라.” 하며, 잡아 내리는지라. 장화 이 말을 들으매 청천 백일에 벼락이 나리
    는 듯 넋을 잃고 소리를 외오 가로되, “하늘도 야속하오. 이 일이 웬일이오. 무슨 일로 장화
    를 내시고, 또 천고에 없는 누명을 싣고 이 깊은 못에 빠져 죽어 속절없이 원혼이 되게 하
    시는고. 하늘은 굽어살피소서. 장화는 세상에 난 후로 문 밖을 모르거늘, 오늘 날 애매한 누
    명을 얻사오니, 전생 죄악이 이같이 중하든지, 우리 모친은 어찌 세상을 보리시고 슬픈 인생
    을 끼쳤다는 간악한 사람의 모해를 입어 단불에 나비 죽듯 죽는 것은 설지 않거니와 원통한
    누명은 언제나 서러워하며 외로운 저 동생은 장차 어찌할꼬.” 하며 원통하여 기절하니, 그
    정상은 목석 간장이라도 서러워하련마는 저 불측하고 무정한 장쇠놈은 서서 다만 재촉하여
    가로되, “이 적막한 산중에 밤이 이미 깊었는데, 아무래도 죽을 인생 발악하나 무익하니, 바
    삐 물에 들라.” 하거늘 장화 정신을 진정하고 가로되, “나의 망극한 정지를 들으라. 우리 비
    록 이복이나 아비 골육은 한가지라. 전에 우리 우애하던 정을 생각하여 영영 황천으로 돌아
    가는 인명을 가련히 여겨, 일시 말미를 주면 삼촌 집에 가 망모의 묘하에 하직이나 하고 외
    로운 홍련을 부탁하여 위로코자 하나니, 이는 결탄코 목숨을 보존코자 함이 아니라 발명한
    즉 계모의 시기가 있었을 것이요, 살고자 한 즉 부명을 거역함이니, 일정한 명대로 하러니
    와, 바라건대 잠깐 말미를 얻어 다녀와 죽음을 청하노라.” 하며, 비는 소리 애원 측은하건마
    는 목석 같은 장쇠놈은 조금도 측은한 빛이 없어, 마침내 듣지 않고 재촉이 성화 같으니, 장
    화 더욱 망극하여 양천 통곡하여 가로되, “명천은 이 지원한 사정을 살피소서. 장화의 팔자
    기박하여 칠세로 모친을 여의옵고, 형제 서로 의지하여 서산에 지는 해와, 동령에 돋는 달을
    대할 제면 간장이 슬퍼지고, 후원에 피는 꽃과 옥계에 나는 풀을 볼 적이면 비감하여 눈물
    이 비오듯 지내옵더니, 삼 년 후 계모를 얻음에 성품이 불측하여 구박이 자감하온지라 서른
    간장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오니, 낮이면 부친을 바라고 밤이면 망모를 생각하며, 형제 서
    로 손을 잡고 장장 하일과 긴긴추야를 장우장탄으로 보내옵더니, 궁흉거악한 계모의 독수를
    벗어나지 못하옵고 오늘날 물에 빠져 죽사오니, 이 장화의 천만 애매함을 천지 일원성신을
    질정하소서. 홍련의 잔잉한 인생을 어여삐 여기사 나 같은 인생을 본받게 마옵소서.” 하고
    장소를 돌아보아 가로되, “나는 이미 누명을 쓰고 죽거니와 저 외로운 홍련을 어여삐 여겨
    잘 인도하여 부모에 득죄함이 없게하고 부모를 모셔 백세 무량함을 바라노라.” 하며 좌수로
    홍상을 잡고 우수로 월귀탄을 벗어들어 신발을 못가에 놓고, 발을 구르며 눈물을 비오듯 흘
    리며 오던 길을 향하여 실성 통곡하는 말이, “어여뿔사 홍련아, 적막한 깊은 규중에 너 훌로
    남았으니, 잔잉한 네 인생이 누를 의지하여 살아간단 말인가. 너를 두고 죽는 나는 쓰라린
    이 간장이 구비구비 다 녹는다.” 말을 마치고 만경청파 나는 듯이 뛰어드니 가련하다. 문득
    물결이 하늘에 닿으며 찬바람이 일고 일광이 무색하여 산중으로 대호 내달아 꾸짖어 가로
    되, “네 어이 무도하여 애매한 자식을 모해하여 죽이니, 어찌 천도 무심하시랴.” 이에 달려
    들어 장쇠놈의 두 귀와 한 팔, 한 다리를 떼어먹고 간데 없거늘, 장쇠 기절하여 땅에 거꾸러
    지나 장화가 탔던 말이 크게 놀라 집으로 돌아오는 지라.
    흉녀 장쇠를 보내고 밤이 깊도록 아니 오매, 가장 괴이하게 여기더니, 문득 장화가 탔던
    말이 소리를 지르고 달아나오거늘, 흉녀 생각하기를 장화를 죽게 한 줄 알고 내달아본즉, 그
    말이 온 몸에 땀을 흘리고 들어오되 사람은 없는지라. 흉녀 크게 놀라, 이에 노복을 불러
    불을 밝히고, 말 오던 자취를 찾아가 보니, 한 곳에 장쇠가 거꾸러졌거늘, 놀라 자세히 보니
    한 팔, 한 다리와 두 귀가 없고, 피를 흘리고 불성이사 되었음에 모두 놀라 어찌할 줄을
    모르더니, 문득 향내 진동하여 냉풍이 소슬하매 괴이하게 여겨 살펴보니, 향내 못 가운데서
    나는지라, 노복등이 장쇠를 구하여 오니, 그 어미 놀라 즉시 약을 먹이고 상한 곳을 동여
    주니, 장쇠 비로소 정신을 차리는 지라. 흉녀 크게 기꺼하여 그 연고를 물으니, 장쇠 전후
    사연을 다 말하거늘, 흉녀 더욱 원망하여 홍련을 마저 죽이려고 주야로 생각하더라. 장화
    형제의 애연한 한이 구천에 사무쳐 매양 설원코자 하매, 철산 부사 아문에 들어가
    지극원통한 원정을 아뢰려 하면 부사들이 놀라 기절하여 죽는지라. 이렇듯 이 철산부사로
    오는 사람은 도임한 이튿날이면 죽으므로, 그 후로는 부사로 오는 사람이 없어 철산군은
    자연 폐읍이 되었으며, 연년이 흉년이 들어 사람이 아사지경에 이르니, 백성들이 사망으로
    헤어져 한 고을이 텅 비게 된지라, 이러한 사연으로 여러 번 징계를 울리니, 상이 크게
    근감하사 조정에서 의논이 분분하더니, 하루는 정동호라 하는 사람이 부사로 가기를
    자원하니, 이는 성품이 간직하고 체모 정중한 사람이라 상이 들으시고 인견하여 가로되,
    철산읍에 이상한 변이 있어 폐읍이 되었다 하매 가장 염려하더니, 경이 이제 자원하니 감히
    다행이고 아름다우나 또한 근심이 되며 십분 조심하여 인민을 잘 안돈하라. 하시고
    철산부사를 제수하시니, 부사 사은하고 물러나와 즉시 발행하여 고을에 도임하고 이방을
    불러 물어 가로되, 내 들으니, 네 고을에 관장이 도임한 후면 즉시 죽는다 하니, 과연
    옳으냐.이방이 여쭈오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오륙 년 이래로 동네마다 범이면
    비몽사몽간에 꿈을 깨닫지 못하옵시고 죽사오니, 그 연고를 아옵지 못하나이다. 하거늘 부사
    듣기를 다하고 분부하여 가로되, 너희들은 밤에 불을 끄고 자지 말며, 고요히 동정을
    살피라. 하니 이방이 청령하고 나아가거늘, 부사 객사에 등촉을 밝히고 주역을 읽더니, 밤이
    깊은 후에 홀연히 찬바람이 일어나며 정신이 아득하여 아무런 줄 모르더니, 난데없는 한
    미인이 녹의 홍상으로 완전히 들어와 절하거늘, 부사 정신을 가다듬어 물어 가로되, 너는
    어떠한 여자인데 이 깊은 밤에 와 무슨 사정을 말하려 하는가? 그 미인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일어 다시 절하며 가로되, 소녀는 이 고을에 사는 배좌수의 딸 홍련이옵니다. 소녀의
    형 장화는 칠 세 이옵고, 소녀가 삼 세 되는 해에 어미를 여의옵고, 아비를 의지하여 세상을
    보내옵더니, 아비 후처를 얻으니, 후처의 성품이 사나옵고 시기 지극하온 중 공교히 연하여
    삼자를 낳으니, 아비 혹하여 계모의 참소를 신청하고 소녀의 형제를 박대 자심하오나, 소녀
    형제는 그래도 어미라 계모 섬기기를 극진히 하오되, 박대와 시기는 날로 심하오니, 이는
    다름 아니오라 본대 소녀의 어미 재물이 많사와 노비 수천 구요, 전답이 천여 석이니, 보화
    거재 두량이라, 소녀 형제 출가하오면 재물을 다 가질까 하여 시기를 품고, 소녀 형제를
    죽여 재물을 빼앗아 제 자식을 주고자 하와, 이 바르고 낙태한 형상을 만들어 형의 이불
    밑에 넣고, 아비를 속여 죄를 이룬 후에 거짓 외삼촌집으로 보낸다하고, 불시에 말을 태워
    그 아들 장쇠놈으로 하여금 데려다가 못 가운데 넣어 죽였삽기로 소녀 이 일을 아옵고,
    지원 극통하와 스스로 생각하온즉 소녀 구차히 살았다가 또 흉계에 빠질까 두려워 마침내
    형이 빠져 죽은 곳에 빠져 죽었사오니, 죽음은 설지 않사오나 이 불측한 누명을 설원할
    길이 없삽기로 더욱 원통하와, 동네마다 사정을 아뢰고자 하온즉 모두 놀라 죽사오매, 뼈에
    맺힌 원한을 이루지 못하옵더니, 이제 천행으로 밝으신 사도를 맞자와 감히 원통한 원정을
    아뢰오.
    배좌수 나라의 처분으로 흉녀를 능지하여 두 딸의 원혼을 위로하였으니 오히려 마음에
    쾌함이 없고 오직 두 딸이 애매하게 죽음을 주야로 슬퍼하여 그 형용이 보이는 듯, 음성이
    들리는 듯, 거의 미칠듯하여 다시 이 세상에서 부녀지의를 남은 한을 풀고자 매양 축원하는
    중 더욱 집안에 조석공양할 사람조차 없어 마음둘 곳이 없으므로 부득이 혼처를 구할 새,
    행속 윤광호의 딸로 장가드니 나이 십팔 세요, 용모 재질이 비상하고 성정 또한 운순하여
    자못 숙녀의 풍도가 있는 지라 좌수 크게 기꺼워 금실이 자별하더니, 하루는 좌수 외당에
    있어 두 딸의 생각이 간절하여 능히 잠을 이루지 못해 전전반측할 새, 홀연 장화 형제
    단장을 황홀히 차리고 완연히 들어와 절하며 가로되, 소녀 팔자 기구하여 모친을 일찍
    여의옵고, 전생 업원으로 모진 계모 만나 마침내 애매한 누명을 쓰고 부친 슬하를
    이별하오매, 지원극통하옴을 이기지 못하여, 이 원정을 옥황상제께 아뢰었더니, 상제
    통곡하여 가라사대, ‘너희 정상이 가긍하나 이 역시 너희 팔자라나를 원망하리오. 그러나
    너의 아비와 세상 인연이 미진하였으니, 다시 세상에 나가 부녀지의를 맺어 서로 원한을
    풀라.’ 하시고 물러가라 하시니 그 의향을 아지 못하나이다.”하거늘, 좌수 붙잡고 반길
    지음에 닭소리에 놀라 깨달으니, 무엇을 잃은 듯 여광하여 심신을 능히 진정치 못하니라.
    후취 윤씨 또한 일몽을 얻으니, 선녀 구름으로 내려와 연꽃 두 송이를 주며 가로되, “이는
    장화와 홍련이니, 그 애매하게 죽으매 옥제 불쌍히 여기사 부인께 점지하나니, 귀히 길러
    영화를 보라.” 하고, 간데 없거늘 윤씨 깨어 보니 꽃송이 손에 쥐어 있고, 향기 방안에
    가득하거늘, 크게 괴이하게 여겨 좌수를 청하여 몽사를 전하며, “장화 홍련이 어찌 된
    사람이니이까.” 물으니 좌수 이 말을 듣고 꽃을 본즉, 꽃이 넘돌며 반기는 듯 하는지라 두
    딸을 다시 만난 듯하여 눈물을 흘리고, 딸의 전후 사연을 이른 후에, “내 전일에 그러한
    몽사가 있더니, 오늘 부인이 도 그런 몽사를 얻었으매 이는 반드시 두 딸이 부인께 태어날
    징조인가 하나이다.” 하며, 서로 기꺼하여 꽃을 옥병에 꽃아 장 속에 넣고 두고 시시로
    상대하여 사랑하니, 슬픈 마음이 자연 사라지더라. 윤씨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십삭이 되어
    가매 배부르기 유명하니, 상태가 분명한지라 달이 차매 몸이 피곤하여 참상에 의지하였더니,
    이윽고 순산하여 쌍태에 두 딸을 낳으니, 좌수 밖에 있다가 급히 들어와 부인을 위로하여
    산아를 본즉 용모와 기질이 옥으로 새긴 듯 꽃으로 모은 듯 짝이 없이 아름다와 그 연꽃과
    같은지라 좌수 부부 기꺼하여 그 꽃을 돌아보니, 벌써 간데 없는지라 가장 기이하게 여겨
    꽃이 반드시 화하여 여아가 되었도다 하여 이름을 다시 장화 홍련이라하고 장중보옥으로
    기르더라. 세월 여류하여 사오 세에 이르매, 두 소저 골격이 비상하고 부모를 효성으로
    받들더니, 점점 자라 십오 세에 이르매 덕이 구비하고 재질이 또한 출중하므로 좌수부부
    사랑함이 비할 데 없어, 그와 같은 배필을 구하고자 매파를 널리 놓았으되, 마침내 합당한
    곳이 없어 가장 근심하던 등, 이 때 평양에 이연호라 하는 사람이 있으되, 가산이 누거만이
    있으나 다만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어 슬퍼하다가 늦게야 선령이 현몽을 얻고 쌍태에 아들
    형제를 두었으니, 이름은 윤필 윤석이라. 이제 나이 십륙 세요 용모 화려하고 문필이
    출중하여 도내의 딸 둔 사람들이 모두 탐하여 매파를 보내어 청혼하매, 그 부모도 또한
    자부를 선택하는 데 심상치 않던 중, 배좌수의 딸 쌍동 형제가 비상히 특이함을 듣고 크게
    기하여 혼인을 청하였더니, 양자가 서로 합의하여 즉시 허락하고 택일하니, 때는 구추월
    망간이더라. 이때 천하 태평하고 나라에 경사 있어 과거를 보일 새, 윤필의 형제 방에
    참석하여 장원급제를 한지라, 상이 그 인재를 기특히 여기사 즉시 한림 학사를 재수하시니,
    한림 형제 사은하고 인하여 말미를 청하였더니 상이 허락하시매, 한림 형제 바로 떠나
    집으로 내려오니, 이공이 잔치를 배설하고 친척과 고구들을 청하여 즐길 제, 본관 수령이
    각각 풍악과 포진을 보내고, 감사와 서윤이 신래를 불리며 잔을 나눠 치하하니, 가문의
    영화는 고금에 드물더라. 이러구러 혼인을 당하매, 한림 형제 위의를 갖추고 풍악을 우리며
    혼가에 이르러 예를 마치고 신부를 맞아 돌아와 고구께 현신하니, 그 아름다운 태도는 가위
    한 싸의 명주요, 두 낱의 박옥이라 부모의 기꺼움을 측량치 못하더니, 신부 형제 구고를
    효성으로 받들고 군자를 승순하여 장화는 이남일녀를 낳으니, 장자는 문관으로 공경 재상이
    되고, 차자는 문관으로 대장으로 대장이 되었으며, 홍련은 이남을 두어 장자는 벼슬이
    정남에 이르고, 차자는 학행이 높아 산림에 숨어 풍월에 벗을 삼고 금서를 즐기더라.
    이러하므로 배좌수는 구십이 되매, 나라에서 특별히 좌찬성을 제수하시매, 이것으로 여년을
    마치고, 윤씨 또한 세상을 버리매 장화형제 슬퍼하는지라. 한림형제도 부모가 돌아가고,
    형제 한 집에 동거하여 자손을 거느리고 지내더니, 장화 형제는 칠십 삼 세에 한가지로
    죽고, 한림형제는 칠십 오세에 죽으매, 그 자손이 유자하여 생녀하여 복록을 누리며 자손이
    창성하더라. 계축일기
    임자년 겨울에 유자신의 아내 정씨가 대궐 안으로 들어와 딸과 사위 셋이서 머리를 맞대
    고 사흘 동안을 자정이 넘도록 의논을 하더니 마침내 계축년 정월 초사흗날부터 흉악한 무
    옥의 계략은 시작되었다. 유자신, 이이첨, 박승종 등 심복과 꾀하여 대비의 아버지이시오, 대
    군의 외조부이신 김제남이 광해군을 내치고 대군을 왕위에 세우려고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
    고 사형수 박응서를 달래서 이렇게 억측으로 온통 시킨 대로 김제남과 함께 대군을 왕위로
    세우기 위해 역적모의를 했다는 사실로써 거짓 자백을 했다. 이렇게 하여 김제남과 그 아들,
    그리고 많은 나인들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마침내 대군을 끌어내려고 하여 이르기를, “조
    정에서 대군을 속히 내러 놓으라고 날마다 보챘지만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느냐 하여 들은
    체를 않고 있었는데, 서양갑, 박응서 따위의 도둑들을 사귀어 역모를 하는 등 대란이 일어났
    으니 이제 와서 뉘 탓으로 졸리려 하는고?”하고는 다시, “대군을 하도 내놓으라고 보채니
    듣지 않으려고 고집하였지만 이제 와서는 조정이 노하고 있으니, 그 노여움을 좀 풀어 주도
    록 잔치에 참석케 하려 하니 잠깐 문 밖에만 내보내서 노여움을 풀게 하여 주소서.”하니, 말
    이 하도 흉측스러워 윗전께서는 차마 바로 듣질 못하시고, 모시는 이들도 마음이 산란하여
    가슴이 미어지는 듯함을 금치 못했다. 그 말에 대답을 아니할 수 없어 말씀하시기를, “이 세
    상에서 저지르지도 않은 큰 변을 만나 아버님과 동생을 죽였으니, 내 자식의 일로 인해 어
    버이께 큰 불효가 되어 세상에 용납되지 못할 줄 알지만, 대군이 나이가 들어 철이라도 났
    다면 모르되 이제 동서도 분간치 못하는 여덟 살 철부지 어린애니 당초에 대군을 데려다가
    종으로 삼아 제 명이나 다하게 하시고 아버님과 동생을 살려 줍시사 하며 내 머리털을 친히
    베어 친필로 글월을 써서 보냈건만 받지 않고 이제 와서 어찌 이런 말을 하시나이까? 어린
    아이가 알기나 한 노릇이며 어른의 죄가 아이한테 당하기나 한 일입니까?”하시니 광해군의
    대답이, “선왕께서 불쌍히 여기라고 하신 유교도 계신 터이니 대군에 대해선 아무 염려 마
    옵소서. 머리털은 두지 못할 것이니 도로 드리는 겁니다.”하더라. 대비께서, “아버지께서 돌
    아가시게 된 일을 생각하면 간장이 메어지는 것 같으되 나라의 법이 중하여 내 마음대로 살
    려드리질 못했으나, 이 아이는 선왕의 유자니 그래도 좀 생각을 하여 주실까 했는데 새삼스
    레 그런 말을 하시니 말의 앞뒤가 맞지 않음을 생각할 때 서러워질 따름입니다. 어린아이를
    어디다 감추어 두겠습니까? 내가 품에 안고 죽을지언정 내어 보낸다는 건 차마 못할 노릇입
    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니 떠 글을 보내되, ‘아무려면 아이보고 아는 노릇이냐고 족치겠으며,
    옛부터 문밖으로 피접을 나는 일도 있는 일이니, 그 정도로 여기시고 좀 내어 보내 주소서.
    조정에서 하도 보채어 그들의 마음을 풀어 주려 하는 노릇이니 대군에게 해로운 일이 있을
    까 하는 건 저금도 근심하지 마옵소서.’하니, 대답하시기를 “내 낯을 보아서가 아니라, 대전
    의 선왕의 아드님이시고 대군 또한 아들이니 정을 생각해서 차마 해할 리야 있으리까마는
    대군이 나이 열 살도 못되었고 대전도 아시다시피 한 번도 대궐 밖을 나간 일도 어디다 숨
    겨두겠습니까? 대전께서 압력을 가하실 탓이니 선왕을 생각하셔서 인정을 베풀어주소서.”하
    시니 또 말하되, “문 밖에 내어 주십사 해 넣고 설마하니 먼 곳으로 떠나 보낼리야 있겠습
    니까? 이 서소문 밖 궐내에 벌써 가까운 곳에 벌써 거처할 집을 정해 놓았으니, 궐내에 두
    어 두면 조정에서 번번이 보채기를 없애버리라고 날이면 날마다 서너 달 동안이나 보채지
    않는 날이 없으니, 내 비록 듣지 않으려고 하나 조정에서 시끄럽게 구니 오히려 문 밖으로
    내어 보내 그들의 마음이나 시원케 해주는 게 대군에게도 좋은 일이니 어련히 알아서 잘 보
    살피지 않으리까? 진실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을 철석같이 믿으시고 부디 내
    보내 주십시오. 다 좋을 대로 하리이다.” 하거늘 대답하시기를, “여러 번 그렇게 말씀하시니
    서러운 중에도 더욱 망극하고, 선왕을 생각하고 옛날에 국모라 하시던 일을 생각하신 다니
    감격하거니와, 대전께서는 다시 한번 고쳐 생각해 보소서. 어미 치고 어린것을 혼자 내어보
    내고 차마 어찌 나만 살 수 있으리까? 차라리 나와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시
    나 막무가내니 이제는 더 버텨도 소용이 없을 줄 아시고, “이 설움을 어디다 견주리요마는
    대군을 곱게 있게 해주마고 벌써 여러 날 말씀하신 터요. 내전에서도 속이지 않겠노라고 극
    진한 투로 글월에 적었으니 이 말을 믿고 대군을 내 보내겠습니다마는 살아 남은 둘째 동생
    과 어린 동생만이라도 살려 주시어 제사나 잇게 하여 주소서.” 하시니 그제서야 기꺼이 대
    답하되, “두 동생일랑 고이 살게 하겠습니다. 대군을 빨리 내어 보내주십시오. 피접을 나가
    는 것이니 오히려 편안하시고 좋으실 것입니다. 날마다 안부 전하는 사람도 드나들게 할 것
    이며 하시고자 하는 일도 다 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날, 장정 여관 여 남은 명이 몰려와 사이문을 여니 우리 전 나인들은 두려워 구석구석에 웅
    크리고 있었더니 그 년 들이 와서 침실에 올라앉으며 말하기를,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이
    마땅치 않아 이런 일을 저지르시는고? 대군 곁에 돈이 없던가, 명례궁에 돈이 없던가? 대비
    의 치호라도 받으시고 대군을 살리려 하실 망정 어찌하여 이런 역모를 하실꼬?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까마는 일을 저질렀으니 뉘 탓으로 돌릴꼬? 어서 대군을 내어 보내소서.” 하니, 말
    이 하도 흉악 망측하여 차마 들을 수가 없더라. 말 같질 않아 잠자코 있으니 저들이 또 꾸
    짖으며 이르기를, “다 옳은 말을 하였으니 입이 있다 한들 무슨 할 말이 있어 대답을 하겠
    는가? 너희 나인들이 대군을 빨리 납시게 해야지 만약 그렇지 않고 지체하여 더디 내보내시
    게 한다면 너희 나인들은 모조리 죽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하더라.
    위께서 까무러쳐 계시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시고 저 집 나인 우두머리 너덧 사람을 들어
    오라 하셔서 이르시되, “너희도 사람의 탈을 썼으면 너의 애매함과 서러움을 모를 리야 있
    겠느냐? 내 무신년에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이 대전이 선왕의 아드님이시기에 두 아이를 의탁
    하여 편안히 살게 해줄까 함이었는데 여러 해를 두고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이 백 가지
    로 근심만 하녀 살아오다 흉적을 만나 용납할 수 없는 대역의 죄명을 내게 뒤집어씌우니 하
    늘이 무심하여 이토록 애매한 처지를 말해주지 아니하니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이냐?
    이제 밖으로는 아버님과 동생을 죽이셨고, 안으로는 나를 기꺼이 받들던 나인들을 모두 죽
    였으니, 이 어린것의 몸에는 죄가 미칠 까닭이 없으련만 또 대군을 내놓으라 하니 차라리
    내가 저희 앞에 바로 죽어서 이런 망극하고 서러운 말을 아니 듣고 싶으되, 대전의 말과 내
    전의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히 남아 있고 나인들이 중인이 되었으니 임금이 설마 국모를
    죽이겠으며, 범인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여러 번 은근히 일러 왔으니 그 말들을 철석같이
    믿고 내어 보내겠거니와 두 어린 동생만은 놓아 주셔서 어머님을 모시게 하고 조상의 제사
    나 받들게 하여 주신다면 대군을 내어 보내려 하노라, 이 말대로 대전과 내전에 전하도록
    하여라.” 하고 애통해 하시니 사람으로서 눈물 없이 어찌 들을 수 있으리요마는 그 년들은
    모진 말을 거리낌없이 하되, “이토록 않으시더라도 대전께서 어련히 알라서 처리하시겠습니
    까? 속히 내어 보내 주십시오.” 차마 내어보내시지를 못하시고 한없이 통곡하시니 두 아기
    들도 겉에서 함’께 우시매 위께서 더욱 통곡하시며, “하느님이시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
    고 이토록 섧게 하시나이까?” 하시고 하도 섧게 우시니 비록 철석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은 어찌 눈물이 나지 않으리요마는 장정 나인들은 틈틈히 앉아서, “너희들 울음소리가 들리
    면 대군을 아니 내어 주실 것이니, 좋은 낯으로 어서 빨리 들어가 여쭤야지 행여 서러운 빛
    을 보이기나 하면 죽여버리리라.”하고 얼르니 제각기 눈물을 감추고 들어가 여쭙는 것이었
    다. “벌써 법의 입을 면치 못하게 되었사오니 병드신 부부인께서 지금 살라 계심은 오직 위
    를 믿고 의지하심이요, 미처 부원군 뼈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신 형편이니 두 오라버님이
    나 살려 주시거든 제사나 받들게 하시고, 설움을 잠시 참으시고 대군을 내어 보내십시오.”
    날은 저물어 가고 어서 내라는 재촉은 성화 같고 또 안에서는 나인마저 나와 재촉하니 하늘
    을 꿰뚫은 힘이 있다 한들 어w 그 때 이길 수 있으리오. 점점 더 늦어가니 우리 시위 인들
    을 각각 꾸짖으며, “너희들이 이래서야 할 수 없으니 우리가 들어가서 대군을 빼앗아 데리
    고 오리라. 너희들 한 사람이라도 살 수 있나 어디 두고 보자.” 하고 들이닥치려 하는데 나
    이 많은 변상궁이 들어가 여쭙기를, “안팎 장정들을 보냈으며 밖에는 금부 하인들이 쇠사
    슬을 들고 둘러섰고, 나인들을 데려 가려고 저리 대령하고 있으니 우리 죽는 건 서럽지 않
    지만 위께서 오직 이 늙은 것을 믿고 계시며 소인도 살아 있다가 아기를 저토록 내어 주지
    않으시니 이제야 죽을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께서 말씀하시되, “너희들은 나인인 까닭으
    로 자식에 대한 어미의 정을 모르는도다. 인정상 차마 내어 주지를 못하겠다.” 한편으로 대
    군을 모시고 있는 나인들이 대군 아기씨를 달래며, “사나흘만 피접 갔다가 올 것이니 버선
    신고 웃옷입고 나를 따라 나갑시다.”하니 이르시되, “죄인이라 하고 죄인들이 드나드는 문으
    로 내려가려 하니 죄인이 어찌 버선 신고 웃옷 입어 무엇할까.” “누가 그렇게 말합디까?”
    “남이 일러 줘야만 아나, 내 다 알았네. 서소문은 죄인이 드나드는 문이니 나도 죄인이라 하
    여 그 문 밖에다 가두려 하는 것 아닌가? 누님과 함께 간다면 가려니와 나 혼자는 못가겠노
    라.” 하시니 위께서는 더욱 섧게 우시는데 어서 내라고 재촉하며, “내어 주지 않거든 나인
    들을 다 잡아내라.” 날이 늦어지고 재촉은 성화와 같아 윗전은 정상궁이 업고 공주 아기씨
    는 주상궁이 엄 대군 아기씨는 김상궁이 업사왔으니 대군 아기씨가 이르시기를, “윗전과 누
    님께서 먼저 나가시고 나는 그 뒤를 따르게 하라.”하시기에, “어찌 그리하라 하시나요?”하
    니, “내가 먼저 나가면 나만 나가게 하시고 다른 두 분들은 아니 나오실 것이니 나 보는 데
    서 가압사이다.” 하시는 것이었다. 윗전께서는 생 무명의 상복을 입으시고 생 무명 보 덮삽
    고 두 아기씨는 남빛 보를 덮고서 상궁들에게 엎히어 자비문에 다다랐더니 내관이 십여 명
    이나 엎디어, “어서 나오십시오.”하고 아뢰니 윗전께서 이르시기를, “너희들도 선왕의 녹을
    먹고 살았으니 어찌 측은한 마음이 없겠느냐? 십여 년을 위에 있으면서도 자식을 얻지 못해
    늘 근심하던 끝에 병오년에 처음으로 대군을 얻으시어 기뻐하시고 사랑하심이 비할 데 없으
    셨으나, 그 당시에는 강보에 싸인 어린것이기에 무슨 뜻을 두셨겠는가? 한갖 자라는 모양만
    대견해 하시다가 귀천하시오니, 내 그때에 재궁을 좇아 죽었던들 오늘 날 이 서러운 일을
    겪지 않으련만 모두 내가 죽지 못하고 살았든 죄라, 어린 아이 아직 동서도 구분하지 못하
    는 철없는 것을 마저 잡아내니, 조정이나 대간이나 선왕을 생각한다면 어찌 이런 서러운 일
    을 할까보냐?” 하시고 너무도 애통해 하시니 내관들도 눈물을 씻으며 입을 열어 여러 말을
    하지 못하고 오직, “어서 납시옵소서. 우리가 어찌 그 사정을 모르리까마는 이길 일이 아닙
    니다.”하더라. 저 집 나인 연갑이는 윗전 업은 나인의 다리를 붙들고 은덕이는 공주 업은 주
    상궁의 다리를 붙들어 걸음을 옮겨 딛지 못하게 하고 대군 업은 사람을 앞으로 끌어내고 뒤
    에서 떠밀어서 문 밖으로 내고 우우는 안으로 밀어들이고 자비문을 닫아 버리니, 그 망극함
    이 어떠하였으리오. 대군 아기씨만 문밖으로 업혀 나가서 등에 머리를 부딪쳐 우시면서, “어
    마마마 좀 보게 해 주.”하다 못하여 다시, “누님이라도 보게 해 주.”하시며 하도 애타 서러
    워하니 곡성이 내외에 진동을 하고 눈물이 땅위에 가득 차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 길을 찾지
    못하였다. 문 밖으로 나간 뒤 그 주위를 환도와 화살을 찬 군인이 삥 둘러싸고 가니 그제서
    야 울기를 그치고 머리를 숙이고 자는 듯이 업혀가더라. 산성일기
    병자년12월 17일서부터 26일까지의 일기를 현대 맞춤법으로 바꾸어 보이면 다음과 같다.
    병자 12월 17일에 상이 남문에 전좌하시고 애통교를 나리오시니, 뜰에 가득한 제신이 아니
    울 이 없더라. 18일에 북문 대장 원두표가 비로소 자모 받아 나가 싸워 도둑 여섯을 죽이니
    라. 성중 창고에 쌀과 잡곡 합하여 겨우 일만 육천여 석이 있으니, 군병 만인의 한달 양식은
    되더라. 소금, 장, 종이, 면화, 병장기, 잡물이 다 이 서가 장만하여 둔 것을 쓰니, 이 서의
    재주를 칭찬하더라. 19일에 남문 대강 구 굉이 발군하여 싸워 도둑 20여명을 죽이다, 이날,
    대풍이 불고 비가 오려 하더니, 김청음을 명하여 성황신에 지하니, 바람이 즉시 그치고 비
    아니 오더라. 20일에 마장이 통사 정명수를 보내어 화친하기를 언약할 새, 성문을 열지 않고
    성위에서 말을 전하게 하다. 21일에 어영별장 이기축이 군을 거느려 도둑 여남은을 죽이고,
    동문 대장 신경진이 또 발군하여 도둑을 죽이다. 22일에 마 부대 또 통사를 보내어 이르되,
    “만일 황연히 깨달아 왕자, 대신을 보내면 정하여 화친하자.”하자, 상이 오히려 허락치 아니
    하시다. 북문 어영군이 도둑 여남은을 죽이고 신경진이 또 삼십여 명을 죽이다. 상이 내정에
    서 호군하시다. 23일에 동서남문의 영문에서 군사를 내고, 상이 북문에서 싸움을 독촉하시
    다, 24일에 큰 비 오시매 성첨 지킨 군대 얼어죽은 자가 많으니 상이 세자로 더불어 뜰 가
    운데 서서 하늘께 빌어 왈, “금일 이에 이르기를 우리 부자가 득죄함이니, 일성 군민이 무슨
    죄이리꼬. 천도가 우리부자에게 회를 나리오시고, 원컨대 만민을 살리소서.” 군신들이 안으
    로 들으시기를 정하되 허락지 아니 하시더니 미구에 그치고 임기 온화하거늘, 성중 인민이
    감읍지 않을 이 없더라. 25일에 국한하다. 묘당이 적진에 사신을 보내기를 청하오니 상이 가
    라사대, “아국이 매양 화친으로써 적에게 속으니, 이제 또 사신을 보내어 욕될 줄 알되, 모
    든 의논이 여차하니, 이때는 세시라 술과 고기를 보내고 은합에 실과를 담아서 후정을 뵌
    후, 인하여 접담하여 기색을 살피리라.”하시다. 26일에 이경직, 김신국이 술과 고기를 은합에
    넣어 가지고 적진에 가니 적장이 기로되, “궁중에 날마다 소를 잡고 보물이 산같이 쌓였으
    니 이것을 무엇에 쓰리오. 네 나라 군신이 필시 굶었으리, 가히 스스로 씀직하도다.” 하고
    드디어 받지 아니하리라.

    강도몽류록
    적멸사에는 청허라 하는 한 이름높은 선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천성이 어질었고 마음 또
    한 착했다. 추운 사람을 만나면 입었던 옷을 벗어 주었다. 배고픈 사람을 보면 먹던 밥도 몽
    땅 주어버렸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추운 겨울의 봄바람’이라거나 ‘어두운 밤의 태
    양’이라거나 하고 우러러 받들었다. 그런데 국운은 나날이 쇠퇴하였고, 호적이 침입하여 팔
    도강산을 짓밟았다. 상감은 난을 피하여 고성에 갇혔고, 불쌍한 백성들은 태반이 적의 칼에
    원혼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저 강도의 침상은 더욱 처절했다. 시혈은 냇물처럼 흘렀고,
    백골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까마귀가 사정없이 달려들어 시신을 파먹었으나 장사 지낼 사람
    이 없었다. 오직 청허선사만이 이를 슬프게 여겼다. 선사는 몸소 시신을 거두어 묻어 주려고
    했다. 그는 손으로 버들가지를 잡아 도술을 부렸다. 넓은 강물을 날아 건넜다. 강 건너 인가
    가 황폐하여 어디 몸을 의탁할 곳이 없었다. 이에 선사는 연미정 남쪽기슭에다 풀을 베어
    움막을 엮었다. 그는 움막에서 침식하며 법사를 베풀었다. 어느 날이었다. 달이 휘영청 밝았
    다. 그는 어렴풋이 한 꿈을 꾸었다. 티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물빛같이 푸르렀고, 음산한
    밤 공기가 주위를 휩쌌다. 이따금 찬바람이 엄습했고, 처량한 밤 기운이 감돌아 심상치 않았
    다. 청허선사는 손에 석장을 들고 달밤을 소요하고 있었다. 밤중이 되어 바람에 소리가 들려
    오는데, 노래 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 노래와 웃음소리, 울음소리는 다
    부녀들의 것으로서 한곳에서 들려왔다. 선사는 매우 이상히 여기고 가만가만 다가가 엿보았
    다. 그 곳에 수많은 부녀자들이 열을 지어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얼굴이 쭈글쭈글했고
    백발이 성성했다. 또 젊은 여인도 있었는데 삼단 같은 머리하며 황홀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그들은 한데 있었는데, 비통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청허선사는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다. 좀
    더 나아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떤 사람은 두어 발이 넘는 노끈으로 머리를 묶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자가 넘는 시퍼런 칼날이, 시뻘건 선지피가 엉긴 채 뼈에 박혀 있었다. 또 머
    리통이 박살났는가 하면, 물을 잔뜩 들이키어 배가 불룩한 사람도 숱했다. 이 끔찍스런 침상
    은 두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었고, 날카로운 붓으로도 낱낱이 기록할 수 없는 생지옥이었
    다. 한 여자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종묘사직이 전란을 입어 그 침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
    습니다. 슬프외다! 하늘이 무심탄 말인가요. 아니면 요괴의 장난인가요. 구태여 그 이유를
    따지고 든다면 바로 우리 낭군의 죄이겠지요. 태보의 높은 지위며 체부의 중책을 진 사람이
    공론을 무시한 소치입니다. 사정에 이끌려 편벽 되게도 강도의 중책을 제 자식에게 맡겼지
    요. 자식놈은 중책을 잊고 밤낮 술과 계집 속에 파묻혀 마음껏 향락에 빠졌습니다. 장차 닥
    쳐올 외적의 침입을 까맣게 잊어버렸으니 어찌 군무에 힘쓸 일을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깊
    은 강, 높은 성 천험의 요새를 갖고도 이처럼 대사를 그르쳤으니, 죽어 마땅하지요. 슬프외
    다, 이 내 죽음이여! 나는 떳떳이 자결했다고 자부합니다. 다만 제 자식놈이 살아 나라를 구
    하지 못했고 죽어 또한 큰 죄를 지었으니, 천우의 오명을 어떻게 다 씻어 버리겠어요. 쌓이
    고 쌓인 원한이 가슴 속속들이 박혀 한때라도 잊을 날이 없군요.”
    이 말을 끝나기도 전이었다. 한 부인이 몸을 글어 당겨 단정히 앉으며 말을 가로챘다. “낭
    군은 자기 재주가 감당하지도 못할 중책을 맡아 오직 천험 한 지리만 굳게 믿어 군무를 소
    홀히 했습니다. 이에 밀어닥친 적군을 막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이지입니다. 강을 휩쓰는 비바
    람에 사직이 무너졌고 삼군이 박살났습니다. 상감마마가 성에서 내려오시어 무릎꿇고 항복
    을 했으니, 슬프외다, 만사를 다 그르쳤습니다. 이것이 모두 강도를 지키지 못한 데서 연유
    한 것입니다. 낭군은 군부에 회부되어 도끼로 목이 잘려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민구는 저
    의 낭군과 같은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무슨 충의가 있었다고 의젓이 성명을 보전하여 제 명
    대로 살았습니까? 또한 도원수 김자점은 해내에 웅거하였는 데다 병권을 장악하였으면서도
    한 번도 나아가 싸우지 않았습니다. 적에게 지레 겁을 집어먹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도
    망쳐 바위 틈에 숨어 구차한 목숨을 보전했고요. 더욱이 어두운 밤에 상감마마를 만나서는
    행인처럼 대했답니다. 그래도 왕법을 행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은총이 더했으니, 정말 가소로
    운 노릇이지요. 심기원은 그 기량이 보잘것없고 생각이 깊지 못한데도 도성을 사수할 중임
    을 맡은즉, 군신의 의리를 망각하고 몰래 제 몸만 빠져나와 환난을 피했습니다. 이처럼 나라
    의 은혜를 저버렸으며 군율을 몸소 행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은총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낭군님만이 홀로 죽임을 당했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오까. 슬프도다! 내 이 한목숨
    도 애석하지 않사오나, 불쌍한 늙은 시아버님이 백발인생에 아들을 잃어 대가 끊어지게 되
    었으니, 이 원통한 정상이야 산 자나 죽은 자나 어찌 다르오리까.” 이 말이 끝나자마자 또
    부인이 나섰다. 그 부인은 나이가 새파란 젊은 나이였다. 날렵한 몸매에 초승달 같은 눈썹을
    하고 있었다. 앵도알 같은 붉은 입술을 살짝 벌렸다. 그 얼굴에는 두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자태는 서왕모가 요지연에 내려선 모습이었고, 삼원 봄바람에 방긋 웃는 복
    사꽃이었다. 월궁항아가 이슬을 가득 머금은 그대로 옥안을 나직이 숙이고 슬픈 회포를 하
    소연했다. “나는 본래 왕후의 조카딸로 비단 속에서 곱게 자랐습니다. 나이 들어 김씨의 아
    내가 되었지요. 원앙 금침에 파묻혀 향락인들 오죽했겠어요. 부귀영화를 영원토록 누리려고
    했더니 뜻밖의 전란을 당하여 참혹한 가화를 입었느니, 나와 같이 박복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요. 이 몸 한번 죽어지면 인세와는 영원히 이별이니, 하늘이여! 어찌하오리까? 더구나
    낭군은 풍진 속에 홀로 남아있고 눈마저 멀었다오. 부모 잃은 망극한 슬픔과 간고한 그 형
    상은 죽은 넋인들 차마 못 잊을 거예요.”
    그 부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부인이 앉은자리에서 뛰쳐나왔다. 그 부인도 품은
    뜻을 토하는데, 그 얼굴은 이미 철 지난 꽃처럼 시들었고 바싹 말라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
    도록 탄식을 하며 말을 했다. “나는 왕비의 언니이며 또한 대신의 아내가 되어 부귀 영화가
    극에 달해, 내 평생에 오늘과 같은 참혹한 일이 있을까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러나 사람의
    알이 한 번 이같이 되니, 내 슬픔 이 죽음도 남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정렬로 표창하여
    죽은 넋을 빛내 줄뿐이니, 이것은 불량한 내 자식의 그릇된 처사입니다. 적군이 아직 밀려오
    기도 전이었지요. 강권에 못 이겨 칼을 들어 죽였으니 어찌 여론이 없었겠습니까. 억지 정절
    을 만들어 정문을 세웠으니 모두가 더 세상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오.” 또 한 부인이
    내달아 양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얼굴을 다소곳이 숙여 개연히 탄식하며 말했다. “천분이 정
    해 있으니 박명함은 피하지 못할 것인가 봅니다. 저는 남의 후처가 되어 청운을 헛되이 보
    냈지요. 살아 생전에 무슨 낙인들 보았겠어요. 성이 무너져 어지러운 풍우 속에 꽃잎이 흩어
    지고 옥이 부서진 것은 조금도 애석하지 않습니다. 단지 낭군이 상감마마를 가까이 모셔 천
    은 알 입었으니, 당대의 총신을 말한다면 제 낭군이 아니고 그 누가 알겠어요. 상감마마께옵
    서 굳게 믿으시고 원손과 비빈을 부탁하셨지요. 낭군은 한 번 크게 충성을 발하여 큰일을
    하려고 나가긴 했습니다. 다만 한이 된 것은 낭군이 한 번 싸워 보지도 않고 성문을 활짝
    열어놓아 되놈들을 받아들여 무릎을 꿇고 항복하여 구차한 죽음을 면했다는 겁니다. 이것은
    슬픈 노릇입니다. 저승의 염라대왕은 인간의 선과 악을 두루 살피신 답니다. 지옥에 들어올
    때 사자에게 이렇게 명령을 전했답니다. “너는 큰 화를 입기 전에 칼을 들어 자결했으니 고
    왕금래 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너의 남편이 임금의 은혜를 잊고 성을 버리고 구차히 생
    명을 도매했으니 그 죄는 진실로 중하 도다. 그래도 지옥에 던져 버려 영영 인세에는 태어
    나지 못할 것이다. “하였으니, 내 이 슬픈 회포가 어떻겠어요.” 한 부인은 앞섶이 붉은 피로
    낭자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 부인은 뜨거운 눈물을 한없이 쏟으며 머리를 살며시 숙여 조용
    조용히 말했다. 시아버님의 죄과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이 슬픔을
    어찌 억제할 수 있겠어요. 특별한 천은을 입어 강도유수가 되었습니다. 강도는 중한 땅이라
    마땅히 굳게 지킬 것이거늘, 천험만 허황하게 믿는 데다 호병의 날카로운 찬 검을 우습게
    여겼답니다. 그래서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단잠에서 헤어나질 못했지요. 또한 매일 크게 취
    해 강루에 누워 수욕만 채웠답니다. 이러니 국가의 전망을 꿈엔들 생각했겠어요. 그는 원래
    제수하는 법을 알지 못했고 또한 험한 풍랑에 키를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자연히 주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적막한 강성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어요. 전선만이 잔물
    결에 흔들릴 뿐이었습니다. 날랜 군사며 험한 지리를 가지고서도 인사를 그르쳤으니 어찌하
    겠습니까. 강개남아라고는 오직 강후 한 사람에 그쳐 그 만이 일전을 했을 따름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시아버지시여,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허물 하겠어요. 제 비록 한낱 아
    녀자일망정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또 한 부인은 옷깃을 여미면서 나섰다. 귀밑 털이 희끗
    희끗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홍안은 이니 간 곳이 없었다. 훌쩍거리며 말했다. “낭군님 살
    아 생전에 이 몸 먼저 죽지를 못하고 모짐 목숨이 살아 이 난을 당했지요. 아들이 처사를
    크게 그르친 까닭으로 하여 백발이 남은 목숨을 눈 깜짝 사이에 끊어버리고, 꽃다운 아이들
    이 적의 칼에 죽었습니다. 인사가 이지경이 되었으니, 감히 목숨을 논할 수 있겠어요. 육지
    에서의 피난도 면할 수 있었거든, 뒤늦게 강도에 들어온 것은 수비하는 군사들의 훈련을 알
    지 못하고 그러했던가요? 군무를 잘못 검찰해서 그랬던가요? 군사를 훈련시키는 사람은 장
    신이었고 군무를 검찰 하는 사람은 김경징이었지요. 그렇다면 국가를 호위하는 충심이 없고
    호사한 생활에만 정신을 팔다 천하의 요새를 잃었으니 말입니다. 무슨 관계 있어 이 강도에
    들어왔다가 내 몸으로 하여금 천명을 누리지도 못하게 하였으니, 오호 낭군이여! 다행히 죽
    음을 지켜 주지 않는다면 늙은 이 몸의 목숨은 온전할 것입니다.” 슬픈 회포를 미처 다 말
    하기도 전에 또 한사람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빼어난 풍채는 여자중의 장부였다. 강개하
    여 말했다.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몇 번이고 살겠다고 그 야단인지요, 조만 간에 어차피
    한 번은 죽을 것이어늘, 조용히 죽어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오리까. 슬프외다! 자결만이 부
    인의 정절로서 길이 청사에 빛날 것입니다. 혼은 천당에 들어갈 것이며, 또 속의 인간만이
    오직 광채를 발할 것입니다. 상감마마가 내리신 옷을 입고 삼감 마마의 녹을 먹으며 살아
    생전에 국운이 막중했지요. 그러나 몸이 창황한 즈음에 처해서 인사를 생각지 않고 오직 실
    기만을 좋아하고 죽기를 두려워해서 기꺼이 적의 종이 되었지요, 이러하니 풍채는 매몰이
    되었고 체신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상투를 잘라내 버렸으니, 그 꼬락
    서니가 오죽했겠습니까. 살려고 한 짓이 이토록 추잡해졌을 뿐이옵니다. 정묘년의 호란 때,
    강화를 주장하여 고국으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에는 진실로 까닭이 있었습니다. 선인의
    유골을 팔아 사함을 받고서 집으로 돌아왔으니, 일세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에 살아도
    산 보람이 없습니다. 슬프외다! 구차하게 살아 남는 것이 어찌 비명에 죽어 버린 나와 같으
    리오.” 꽃 같은 얼굴, 삼단 같은 마리의 또 한 부인이 다음을 받았다. 앵도 같은 붉은 입술
    로 조용히 발을 이어 갔다. “원래 우리 나라는 산천이 아주 험합니다. 적병을 맞아 싸우기에
    유리한 지역이 어찌 한두 군데 뿐이겠읍니까. 낭군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적입니다. 서울
    에서 큰 난리를 맞으니 주인 없는 아녀자로서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갈 바를 몰라 허둥거
    리다가 군중을 따라 성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천생의 약질이라서 걷자니 엎어지고 넘
    어지고 했지요. 그 고생스러움을 어찌 한 입으로 다 말할 수 있겠어요. 홀몸으로 울며 울며
    사정을 해서 배에 간신히 올라 강도에 들어왔습니다. 와서 보니 푸른 바다와 높은 산이며,
    상첩이 구름에 닿아 나는 새도 못 지나갈 것만 같았습니다. 어찌 호병들인들 별수 있으랴
    하였지요. 그래서 적이 안심했는데 뜻밖에도 흉도들이 여기까지 밀어닥쳤습니다. 드디어 대
    낮인데도 강도 성안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위나라 산천이 견고치 않음이 아니었고, 진나
    라 군신의 지략이 모자랐습니다. 그 시운에 있어서 그 무엇을 탓하겠습니까. 사납고 약한 사
    람들이 서로 잡아먹는가 하면, 착한 사람 악한 사람 할 것 없이 함께 망하는 난장판이었습
    니다. 그래, 정절의 마음은 이미 드러났고, 흉적의 창탈은 무수히 박혔으니, 해외의 외로운
    넋은 그 누굴 의지하겠습니까. 수국에 풍진이 자욱히 일어나니 망극한 슬픈 회포가 바다처
    럼 굽었습니다. 비단 저고리를 입고 푸른 띠를 두른, 머리털이 서리처럼 하얀 늙은이가 좌우
    를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두 여자를 가르키는데 한 여자는 며느리요, 또 한 여자는 딸입니
    다. 살아서는 혼백이 외롭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할까요. 어찌 원망인들 없겠습니까. 며느
    리와 딸은 꽃같이 젊은 나이였습니다. 비록 내 나이 늙었으나 이제 겨우 쉰입니다. 만약 병
    화가 없었다면 어찌 이처럼 인간 세계를 하직하겠습니까.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낭군이 지휘
    관의 몸으로 강도에 들어왔습니다. 강도란 땅은 능히 적을 막을 만한데 죽게 된 것은 낭군
    이 처사를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우거진 풀잎을 붉은 피로 물들였고, 혼백은 구천에 들어갔
    으니 인세의 가는 곳마다 비단 장막이 쓸쓸하고, 천년을 묵은 회표수에는 외로운 학이 돌아
    오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오직 우리 세사람은 다 같이 정절을 지켜 죽었으니, 우러러 하늘을
    보고 굽어 땅을 본들 하나도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인간세계에 살아 남아 영영 빛을 앓
    은 자는 가엾은 내 동생이옵니다. 명관의 아내가 되어 정절을 지켜 죽지 못했으니 참으로
    한이 되옵니다. 늘그막에 무슨 추문인지 비단옷을 차려 입고 나귀등에 높이 앉아 채찍을 휘
    두르며 봄바람 살랑거리는 낙조 비낀 언덕을 질주하니, 사람마다 쑥덕쑥덕 온 세상이 들썩
    였지요. 이러니 살았어도 죽음만 같지 못합니다. 나 떠한 무인 하여 몸둘 바가 없습니다.”
    좌중에서 또 한 여자가 나섰다. 얼굴은 뭉개지고 해골을 깨어져 온 몸에 피가 낭자하였다.
    그 참혹한 모습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이나 끔찍했다.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말했다. “
    나는 그때 마니산 바위 속에 숨었었지요. 사람이 위를 버리고 살기에만 급급함은 차라리 한
    번 죽느니만 못합니다. 절벽에 투신하여 백골이 진토가 되었으니, 이것은 마음 이로나마 만
    족스런 처사였습니다. 조금도 한이 되는 바가 없습니다. 하오나 애닯도다. 어찌하여 낭군은
    난세에 처하여 시세를 살피지 못했을까? 헛되이 서울에만 머물다가 전쟁이 터지니 강도에
    들어왔지요. 높은 자리에 앉은 분들과 함께 불에 뛰어든 부나비처럼 되었으니 이것이 슬프
    옵니다. 젊은 청운에 올라 오래도록 부귀를 누린 자는 사직이 망할 때 절사함이 마땅한 일
    이오나, 불쌍한 우리 낭군은 벼슬 하나 얻지 못해 아무런 국은도 입음이 없이 해외의 위경
    에서 그 귀중한 목숨을 잃었으니 슬프고 애닯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몰아쉬
    었다.
    한숨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이 나왔다. 빼어난 자태는 천하의 일색이었다. 비단 옥
    은 함빡 적시고 뱃속 가득히 물을 머금었다. 이는 다름 아닌 창해에 빠져 죽은 사신이었다.
    구슬 같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향기로운 이슬이 흘러내렸고, 맑
    은 소리는 이어졌다 끊어졌다 했다. “저의 낭군은 선비였습니다. 달밝은 연못가에서 서로 만
    난지 두어 달만에 큰 환란을 당했습니다. 의리로써 살 수가 없어 푸른 바다에 몸을 던져 지
    금 시체가 떠다니고 있습니다. 저의 이 애석한 정절은 그 증거가 없어서 하늘이나 알고, 해
    가 비칠 따름입니다. 이 한 조각 곧은 마음을 낭군이 몰라 주시고, 혹 호지에 끌려가 있는
    지. 혹은 길바닥에 죽어 누워 있는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외로운 혼으로 하여금 낭군
    의 꿈속에나 찾아들어 원통한 회포를 풀고 싶습니다. 그러나 구천이 아득하여 천 리나 되니
    저와 낭군은 꿈속에서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니 설음이 북받쳐 가슴이 찢
    어지는 듯합니다.” 이런 중에 또한 부인이 끼어들었다. 비단 같은 고운 얼굴, 꽃다운 매무새,
    송죽 같은 절개는 추상처럼 싸늘했다. 세 치 혀끝으로 토해내는 말마다 의리에 사무쳐 지금
    까지 말 한 중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나라에 어진 장수가 없는 데다가 인심까지 험악했습
    니다. 그러고야 어찌 패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산천이 험하기론 파촉 보다 더 합니
    다. 그러나 장수가 장수답지 못하고 병졸도 형편없으니, 등 애가 한 번 일어나매, 척의 후주
    유선이 눈물을 뿌렸습니다. 성 높고 물 깊기로는 백제의 웅도와 같았습니다. 지세는 이러했
    으나, 가무만 일삼고 군무를 살피지 않다가 나라가 무너졌습니다. 백마강의 슬픈 역사 천 년
    토록 깁사옵니다. 이러니 망하는 건 천운이요, 빛나는 건 낭군이요, 패하는 건 사람입니다.
    사람이 변변치 못하면 금성도 견고치 못하며 탕지도 험할 것이 못 되는데, 하물며 저 강도
    는 해외의 조그만 땅입니다. 파촉에 비한다면 산도 산이라 할 것이 없고, 강도 강이라 할 것
    이 못됩니다. 이 산과 강을 험하다고 믿고 적의 무서운 군사를 하찮게 여겼으니 환난이 닥
    쳐와도 그 누가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루 아침의 비바람에 모든 꽃이 산산이 흩어지니
    이 연약한 몸으로 어찌 목숨을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미련없이 자결하여 혼백을 구천에 들
    었으나, 그 향기로온 이름은 세상에 떨쳤습니다. 이 때 염라대왕이 나를 불러 말했습니다.
    ‘아름답고도 아름답도다! 청풍처럼 쇄락하고, 추상처럼 늠름하도다, 뇌성벽력을 하지 않았으
    며, 도기도 두려워하지 않았도다. 갑자년의 변고에는 원혼들의 목을 벨 것을 주장했고, 정묘
    년의 난리에는 화의를 배척하여 강도를 불태우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을 술책을 일렀고,
    대의명분을 세워 형제의 맹약을 헌신짝처럼 하니 지극히 충성이요, 선견지명이로다. 주운 같
    은 곧은 절개여 급암 같은 바른 말은 이 사람 이외에 그 누가 또 있단 말인고. 이는 바로
    너의 아비로다. 너 또한 그 뜻 그 절개를 본받아 절의로 죽었으니 가히 포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극락세계에서 편안히 지내게 하겠노라.’ 했습니다. 이윽고 선동이 명부에 다다
    라 염왕께 아뢰기를, ‘전쟁의 사나운 풍파 속에서도 절의로 죽은 사람이 많사옵니다.’ 옥황상
    제께서 측은히 여기시어 전교하시기를, ‘절부의 기록대장을 짐이 한 번 보고자 하니 너는 어
    김없이 명대로 하라.’ 하셨습니다. 하니, 염왕이 친히 옥접을 봉하여 촌부에 올리니 상제께서
    다 보시고 명부에서 조서를 내리시기를, ‘짐이 가장 중하게 여기는 것은 의이며, 또한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은 절개로다. 이 의와 절개를 능히 지키고 행한 사람은 모두 천당에 들어오
    게 하여 그 여생을 편안하게 하리라. 더구나 그대와 시아버지의 덕망과 절의는 짐이 가장
    아끼는 바로다. 장차 포상하리니 명부에 두지 말고 옥허청궁 소계전에 보내어 월궁항아로
    더불어 달밤을 즐기며, 직녀와 더불어 은하를 거닐게 하고, 떠한 염왕이 정절을 창명하면 짐
    의 의열을 존숭함이 나타나지 않겠는고’ 하였습니다. 염왕은 그 명령에 절하여 사례하고 저
    를 학의 등에 태우니 구만리 창공을 지척같이 날아갔습니다. 정말 시아버지의 덕이 아니었
    다면 어찌 천부에서 생활할 것을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또 한부인이 나섰다. 난초같은 그윽한 기품과 고요한 자태가 눈 속의 송죽 같았다. 양미간
    을 찌푸리고 붉은 입슬을 열어 말했다. “저는 본래 선비의 아내로 낭군을 섬겨온 지 겨우
    반 년이나 될까요. 강도로 피난을 나왔다가 낭군이 덜컥 역질에 걸렸습니다. 아무리 위험이
    닥쳐온들 잠시도 병상 옆을 떠날 수 없어 곁에서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수같은 되놈
    들이 어찌 가만둘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소 혼백이 구천에 떨어졌습니다. 이 때 염왕이 말하
    기를, ‘광해군의 말년에는 조정이 혼탁하여 임금과 신하가 제 신분을 망각하고 광분하였도
    다. 또한 강도의 풍우 속에서 모두들 절개를 버리고 삶을 도모하였거늘, 너는 여자의 몸으로
    그 욕봄을 부끄럽게 여겨 죽음을 달게 받았도다. 전후 할아비와 손녀의 절개가 어찌 다르리
    요. 그 할아비에 그 손녀로다. 참으로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이러므로 너는 천당에 들어가서
    만세토록 길이 행복을 누리라.’ 했습니다. 그러니 비록 젊을 나이에 죽었다고 한들 어찌 한
    이 되겠습니까. 다만 한스런 것은 백발의 양친과 나이 어린 낭군이 풍진 속에 간신히 살아
    남은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슬프게 우는소리며 꽃 지는 봄바람 오동나무에 내리는 이슬에
    애타게 흐느끼며 눈물 마를 날이 없으니, 이별의 슬픔을 더욱 북돋는군요. 그러니 부모를 여
    의고 죽은 것은 이른바 불효요, 남편보다 먼저 죽은 것은 현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의 지
    은 죄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흐느낀다. 모든 부인들은 제각기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깊이 탄식하기도 했고,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으며, 대성통곡하기도 했다. 글로는
    그것을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조금 시간이 흘렀다. 한 여자가 일어나 사람 속을 왔다갔다 했
    다. 그녀는 두 눈동자가 샛별같이 유난히 빛나고 초승달 같은 눈썹이며 삼단 같은 머리는
    가히 선녀라 할 만했다. 선사는 매우 이상히 여기며 속으로 생각했다. ‘직녀가 은하에서 내
    려왔나, 월궁에서 항아가 내려왔나. 만일 직녀라 한다면 견우 낭군을 이별한 뒤에 만나지 못
    했으니 당연히 슬픔에 싸여 눈물을 흘릴 것이다. 또한 월궁의 항아라면 긴긴 밤 독수공방에
    서 애타게 그리워한다고 홍안은 늙어 가고 백발이 성성할 터인데, 도무지 이 여자는 복사꽃
    아롱진 뺨에 근심어린 빛이 전혀 없으니 알지 못할 일이로다. 이 또한 괴이한 일이구나.’ 혼
    자 온갖 궁리를 했으니 알 수 없었다. 이 때 그 여자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첩은 기생이
    라. 노래와 춤이 널리 아름답습니다. 못 사내들의 경쟁 속에 밤마다 운우지정을 즐겨 인생
    환락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은 정절입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마음을 가다듬고, 깊은 규중에 들어가 오래도록 한 남편을 섬겨 다시는
    두 마음을 먹지 않으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날 리가 일어나 꽃 같은 청춘
    이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오늘밤 이 높은 회합에 제가 낀다는 것은 너무나 과분합니
    다. 외람되게 숭렬하신 여러분들의 곁에 끼어 다행히도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 절
    의의 높으심과 정렬의 아름다움은 하늘도 감동하고 사람마다 탄복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습
    니다. 몸은 비록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닙니다. 강도가 함락되고 남한성이 위태로와 상감마
    마의 욕되됨과 국치가 임박하였지만, 충신 절사는 만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부녀자만의
    정절이 늠름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영광스런 죽음이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설워하십니까?”
    이 말이 끝나자마자, 좌중의 여러 부인들이 일시에 통곡했다. 그 소리는 참담하기 그지없었
    고 차마 들을 수 없었다. 선사는 혹시나 알아차릴까 두려워 숲 속에 숨어서 몸둘 바를 모르
    고 있었다. 날 새기를 기다려 물러나오다 별안간 깨어 보니 한 꿈이었다. 홍길동전
    화설 조선국 세종조 시절에 한 재상이 있으니, 성은 홍이요, 명은 뫼이라. 대대 명문거족
    으로 소년 등과하여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매 물망이 조야의 으뜸이요, 충효겸비하기로 이
    름이 일국에 진동하더라. 일즉 두 아들을 두었으니 일 자는 이름이 인형이니, 정실 유씨 소
    생이요, 일자는 이름이 길동이니 시비 춘섬의 소생이라. 선시에 공이 길동을 나을 때의 일몽
    을 얻으니, 문득 뇌정벽력이 진동하여 청룡이 수염을 거스르고 공에게 달려들거늘 놀라 개
    다르니 일장춘몽이라, 심중에 대희하여 생각하되, 내 이제 용몽을 얻었으니, 반드시 귀한 자
    식을 나으리라 하고 즉시 내당으로 들어가니, 부인 유씨 일어나거늘 공이 혼연히 그 옥수를
    이끌어 정히 친압코자 하거늘, 부인 정색왈, 상공이 체위 존중코자 하거늘 연소경박자의 비
    루함을 행코자 하시니 첩은 봉행치 아니하리소이다 하고 언파의 손을 떨치고 나가거늘 공이
    가장 무색하여 분함을 참지 못하고 외당으로나가 부인의 지식이 없음을 한탄하러니 마침 시
    비 춘섬이 차를 오리거늘, 그 고요함을 인하여 춘섬을 이끌고 협실에 들어가 친압하니, 이
    때 춘섬의 나이 십팔이라 한 번 몸을 허한 후로 문외에 나지 아니하고 타인을 취할 뜻이 없
    으니 공이 기특히 여겨 인하여 잉첩을 삼았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가 있어 십삭 만에 일
    개 옥동을 생하니, 비범하여 짐짓 영웅호걸의 기상이라 공이 일변 기뻐하나 부인에게서 나
    지 못함을 한하더라. 길동이 점점 자라 팔 세 되매 총명이 과인하여 하나를 들으면 백을 통
    하니 공이 더욱 의중하나, 근본 천생이라 길동이 매양 호부 호형하면 문득 꾸짖어 못하게
    하니, 길동이 십 세 넘도록 감히 부형을 부르지 못하고 비복 등이 천대함도 각골통한하여
    심사를 정치 못하니 추구월 망간을 당하매 명월은 조요하고 청풍은 소슬하여 사람의 심회를
    돕는지라, 길동이 서당에서 글을 읽다가 문득 서안을 밀치고 탄왈, “대장부 세상에 나매 공
    명을 받지 못하면 차라리 병법을 외어 대장인을 요하에 빗기 차고 동정서벌하여 국사의 대
    공을 세우고 이름을 만대에 빛남이 장부의 쾌사라. 나는 어찌하여 일신이 적막하고 부형이
    있으되 호부호형을 못하니, 심장이 터질지라 어찌 통한치 아니라오.” 하고 말을 마치며 뜰에
    서 내려 검술을 공부하더니, 마침 공이 또한 월색을 구경하다가 길동의 배회함을 보고 즉시
    불러 문왈, “네 무슨 흥이 있어 야심토록 잠을 자지 아니하는다?” 길동이 공경 대왈, “소인
    이 마침 월색을 사랑함이여니와, 대개 하늘이 만물을 나심이 오즉 사람이 귀하오나 소인에
    게 이르러는 귀한옴이 없사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잇가.” 공이 그 말을 짐작하나 짐짓 책
    왈, “네 무슨 말고?” 길동이 재배고왈, “서인이 평생 서룬바는 대감 정기로 당당한 남자 되
    었사오매, 부생모육지은이 깁삽거늘, 그 부친이라 부친이라 못하옵고, 그 형을 형이라 못하
    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잇가?” 하고 눈물을 흘려 단삼을 적시거늘, 공이 청파에 비록 측은
    하나 만일 그 뜻을 위로하면 마음이 방자할까 두려워 크게 꾸짖어 왈, “재상가 천비소생이
    비단 너 뿐이 아니어든 네 어찌 방자함이 이 같느뇨? 차후 다시 이런 말이 있으면 안전에
    용납지 못하리라.” 하니 길동이 감히 일언을 고치 모샇고 다만 복지유체 뿐리아. 공이 명하
    여 물러가라 하거늘 길동이 침소로 돌아와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더라. 길동이 본디 재기 과
    인하고 도량이 활달한지라 마음을 진정치 못하여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일일은 길동
    이 어미 침소로 가 울며 고왈, “소자, 모친 은덕으로 더불어 전생연분이 중하여 금새의 모자
    되오니, 은혜 망극하온지라. 그러나 소자의 팔자 기박하여 천한 몸이 되오니 품은 한이 깁사
    온지라, 장부가 세상에 남의 천대받음이 부가능하온지라 소자 자연 기운을 억제치 모샇여
    모친 슬하를 떠나려 하오니 복망 모친은 소자를 염려하시고 귀체를 보중하소서.” “재상가
    천비소생이 너 뿌이 아니어든 어찌 협한 마음을 발하여 어미 간장을 사으나뇨?” 길동이 대
    왈, “엣날 장충의 아들 길산은 천생이로되 심 팔 세에 그 어미를 이별하고 운봉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유전하였으니, 소자 그를 효즉하여 세상을 벗어나려 하
    오니 모친은 안심하사 후일을 기다리소서. 근간 곡산모의 행색을 보니 상공의 총을 잃을가
    하여 여러 모자를 원수같이 아는지라 큰 화를 입을가 하옵니다. 모친은 소자 나감을 염려치
    말으소서.” 하니 어미 또한 슬퍼하더라. 원래 곡산모는 보디 곡산 기생으로 상공의 총첩이
    되었으니, 이름은 초란이라. 가장 교만 방자하여 제심경에 불합하면 공에게 참소하니, 이러
    므로 가중폐단이 무수한 중 저는 아들이 없고 춘섬은 길동을 나아 성공이 매앙 생각하매 무
    녀를 청하여 왈, “나의 일신을 평안케함은 이 곳 길동은 없애기에 있는지라. 만일 나의 소원
    을 이루면 그 은혜를 갚으리라.” 하니 무녀 듣고 기거 대왈, “지금 흥인문 밖에 일등 관상녀
    가 있으니, 사람을 상을 한 번 보면 전후 길흉을 판단하나니, 이 사람을 청하여 소원을 자세
    히 이르고 상공께 천거하야 전후사를 본 듯이 고해면 상공이 필연 대혹하여 그 화를 없애고
    자 하시리니, 그 때를 타 어차여차 하면 어찌 묘계 아니리이꼬.” 조란이 대희하여 먼저 은자
    오십 냥을 주며 상자를 청하여 오라 하니 무녀 하직하고 가니라. 이튿날 공이 내당에 들어
    와 부인으로 더불어 길동의 비범함을 일컬으며 다만 천비소생임을 한탄하고 정히 말씀하더
    니, 문득 한 여자가 들어와 당하에 문안하거늘, 공이 괴이 여겨 문왈, “그대는 어떠한 여자
    완대 무삼 일로 왔느뇨?” 그 여자 왈, “소인은 관상하기로 일삼더니, 마침 상공 문하에 이르
    렀나이다.” 공이 차언을 듣고 길동의 내사를 알고자 하여 즉시 물러 뵈니, 상녀가 이윽고 모
    다가 졸라 왈, “기 공자의 상을 보니, 천고영웅이요, 일대호걸이로되, 다만 지체 부족하오니
    다른 염려는 없을까 하나이다.” 하고 말을 내고자 하다가 주저하거늘, 공과 부인이 가장 괴
    이 여겨 왈, “무삼 망을 바른 대로 이르라.” 상녀 마지못해 좌우를 물리치고 왈, “공자의 상
    을 보온즉, 흉중의 조화가 무궁하고 미간의 산천정기 영롱하오니, 짐짓 왕후의 기상이라, 장
    성하면 장차 멸문지화를 당하오리니 상공을 살피소서.” 공이 청파에 경아 하야 묵묵 반향의
    마음을 정하고 왈, “사람의 팔자는 도망키 어렵거니와 너는 이런 말을 누설치 말라.” 당부하
    고 약간의 은자를 주어 보내니라. 차후로 공이 길동을 산정에 머물게 하고 일동 일정을 엄
    숙히 살피니, 길동이 이 일을 당하매 더욱 설움을 이기지 못하나 하릴없어 육도삼략과 천문
    지리를 공부하더니 공이 이 일을 알고 크게 근심하여 왈, “이놈이 본대 재주 있으매 만일
    범람한 의사를 두게 되면 성녀의 말과 같으리니 이를 장차 어찌 하리요.”하더라. 이 때 초란
    이 무녀와 상자를 교통하여 공의 마음을 놀랍게 하고 길동을 없애고저 하여 천금을 버려 자
    객을 구하니 이름이 특재라. 전후사를 자세히 이르고 초란이 공께 고왈, “일전 상녀가 아는
    일이 귀신같으매, 길동의 내사를 어찌 처치하시니잇가? 천첩도 놀라고 두렵워하옵나니, 일찍
    저를 없이 함만 같지 못하리로소이다.” 공이 이 말을 듣고 눈썹을 찡그려 왈, “이 일은 내
    장중에 있으니, 너는 번거이 굳이 말라.”하고 물리치나 심사가 자연 산란하여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인하여 병이 된지라. 부인과 좌랑 인형이 크게 근심하여 아무리 할 줄 모르
    더니 초란이 곁에 모셨다가 고왈, “상공 환후가 위중하심은 길동을 두심이라. 천한 소견은
    길동을 죽여 없이 하면 상공의 병환도 쾌차하실 뿐 아니라 문호를 보전하오리니 어찌 이를
    생각지 아니시나잇고?” 부인 왈, “아무리 그러나 천륜이 지중하니 차마 어찌 행하리요.” 초
    란 왈, “듣자오니 특재라 하는 자객이 있어 사람 죽임을 낭중 취물같이 한다하오니, 천금을
    주어 밤에 들어가 해 하오면 상공이 알으시나 할 길 없사오리니, 부인은 재삼 생각하소서.”
    부인과 좌랑이 눈물을 흘려 왈, “이는 차마 못할 바로되, 첫째는 나라를 위함이요, 둘째는
    상공을 위함이요, 셋째는 홍문을 보존함이라, 너의 계교대로 행하라.” 초란이 대희하여 다시
    특재를 불러 이 말을 자세히 이르고, “금야에 급히 행하라.”하니 특재 응낙코 받들기를 기다
    리더라. 차설 길동이 그 원통한 일을 생각하매 사각을 머무지 못할 일이로되, 상공의 엄령이
    지중하므로 하릴없이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차야에 촉을 밝히고 문득 들으니, 가마
    귀 세 번 울고 가거늘 길동이 괴이 여겨 혼잣말로 이르되, “이 짐승은 본래 밤을 꺼리거늘,
    이제 울고 가니 불길하도다.” 하고 잠깐 팔괘를 벌려 보고 대경하여 서안을 물리치고 둔갑
    법을 행하여 그 동정을 살피더니 사경을 하여 한 사람이 비수를 들고 완완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지라. 길동 몸을 감추고 진언을 염하니, 홀연 일진 음풍 일어나며 집은 간데 없고
    첩첩한 산중의 풍경이 거룩한지라, 특재 대경하여 길동의 조화가 신기함을 알고 비수를 감
    추어 피하고자 하더니, 문득 길이 끊어지고 충암 절벽이 가리웠으니, 진퇴 유곡이라. 사면으
    로 방황하더니 문득 저 불기를 그치고 꾸짖어 왈, “네 무삼일로 나를 죽이려 하는가? 무죄
    한 사람을 불하면 어찌 천앙이 없으리요.” 하고 진언을 염하더니, 홀연 일진 흑운이 일어나
    며 큰비 붓듯이 오고 서석이 날리거늘 특재 정신을 수습하여 살펴보니 길동이라. 비록 그
    재주를 신기히 여기나, “어찌 나를 대적하리요.”하고 달려들며 대호 왈, “너는 죽어도 원망치
    를 말라. 초란이 무녀와 상자로 하여금 상공과 의논하고서 너를 죽이려 함이니 어찌 나를
    원망하리요.”하고 칼을 들고 달라들거늘 길동이 분기를 참지 못하여 요술로 특재의 칼을 아
    서 들고 대매 왈, “네 재물을 탐하여 사람 죽임을 좋이 여기니, 너 같은 못된 놈을 죽여 후
    환을 없이 하리라.”하고 한 번 칼을 드니, 특재의 머리 방중에 나려지는지라. 길동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이 밤에 바로 상녀를 잡아 특재 죽은 방에 들이치고 꾸짖어 왈, “네 날로 더
    불어 무삼 원수 있관데 초란과 한가지로 날 죽이려 하더냐?”하고 베이니 어찌 가련치 아니
    하리요. 이 때 길동이 양인을 죽이고, 건상을 살펴보니 은하수는 서로 기울어지고 월색은 희
    미하여 수회를 돕는지라. 분기를 참지 못하여 또 초란을 죽이고자 하다가 상공이 사랑하심
    을 깨닫고 칼을 던지며 망명도생의 생각하고 바로 상공 침소에 나아가 하직을 고코자 하더
    니, 이 때 공의 창외가 언적 있음을 괴이히 여겨 창을 열고 보니 이 곧 길동이라. 인견 욀,
    “밤이 깊었거늘, 네 어찌 자지 아니하고 이리 방황하느뇨?” 길동이 복지대왈, “소인이 일찍
    부생모육지은을 만분지일이나 갚을가 하였더니 가내의 불의지인이 있사와 상공께 참소하고
    소인을 죽이려 하오매, 겨우 목숨은 보전하였사오나 상공을 뫼실 길 없삽기로 금일 상공께
    하직을 고하나이다.”하거늘 공이 대경 왈,”네 무삼 변고가 있건대 어린 아회 집을 버리고 가
    려 하는다?” 길동이 대 왈, “날이 밝으면 자연 알으시려니와 소인의 신세는 부운과 같사오
    니 상공의 버린 자식이 어찌 방소를 두리잇고.” 하며 쌍루가 종횡 하여 말을 이루지 못하거
    늘 공이 그 형상을 보고 측은히 여겨 개유 왈, “네 너의 품은 한은 짐작하나 금일로부터 호
    부호형함을 허하노라.” 길동이 재배 왈, “소자의 일편지한을 여야께서 풀어 주옵시니 죽어도
    한이 없소이다.. 복망 야야는 만수무강하옵소서.” 하고 재배 하직하니, 공이 붙들지 못하고
    다만 무사함을 당부하더라. 길동이 또 어미 침소에 가 이별을 고하여 왈, “소자가 지금 떠나
    오매 다시 뫼실 날이 있사오리니, 모친은 그 사이 귀체를 보증하소서.” 춘섬이 이 말을 듣고
    는 무슨 변괴 있음을 짐작하나 아자의 하직함을 보고 집수통곡왈, “네 어데로 향코자 하는
    다? 한 집의 이사도 처소가 처간 하야 매양 모자 상봉함을 바라노라.” 길동이 지배 하직하
    고 문을 나매, 문산이 첩첩하여 지향없이 행하니, 어찌 가련치 아니리요. 차설 초란이 특재
    의 소식 없음을 의아하여 사기를 탐지하니, 길동은 간 데 없고 특재의 주검과 계집의 시신
    이 방 중에 있다 하거늘 초란이 혼비백산하여 급히 부인께 고하니, 부인 또한 대경하여 좌
    랑을 불러 이 일을 이르며, 상공께 고하니 공이 대경실색왈, “길동이 밤에 슬피 하직함을 괴
    이 여겼더니, 이 일이 있도다.” 좌랑이 금히 은휘치 못하여 초란이 실사를 고하매 공이 분노
    하여 일변 초란을 내치고 가만히 그 시체를 없이 하며 노복을 몰러 이런 말을 내지 말라 당
    부하더라. 각설 길동이 부모를 이별하고 문을 내매 일신의 표박하여 정처 없이 행하더니, 한
    곳에 다다르니 경개 절승한지라. 인가를 찾아 점점 들어가, 큰 바위 밑에 석문이 닫혔거늘,
    가만히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평원광야에 수백 호 인가가 즐비하고 여려 사람이 모두 잔치
    하며 즐기니, 이 곳은 도적의 굴혈이라. 문득 길동을 보고 그 위인이 괴수를 정치 못하였으
    니, 그대 만일 용력이 있어 참여코저 할진대 저 돌을 들어보아라. 길동이 이 말을 듣고 다행
    하여 재배 왈, “나는 경성 홍 판서의 천첩 소생 길동이러니, 가중 천대를 받지 아니하려 사
    해 팔방으로 정처 없이 다니다가 우연히 이 곳에 들어와 모든 호걸의 동료 됨을 이르시니,
    불승감사하거니와 장부가 어찌 저만한 돌 들기를 근심하리요.” 하고 그 돌을 들어 수십 보
    를 행하다가 던지니, 그 돌의 무게 천 근이라, 제적이 일시에 칭찬 왈, “과연 장사로다. 우리
    수천 명중에 이 돌을 들 자 없더니, 오날날 하늘이 도우사 장군을 주심이로다.” 하고 길동을
    상좌에 앉히고, 술을 차례로 권하고 백마 잡아 명세하며 언약을 굳게 하니, 중인이 일시에
    응낙하고 종일 즐기더라. 이 후로 길동이 제인으로 더불어 무예를 연습하여 수월 지내에 군
    법이 정제한지라, 일일은 제인이 이르되, “아등이 벌써 합천 해인사를 쳐 그 재물을 탈취코
    자 하나 지략이 부족하여 거조를 발치 못하였더니 이제 장군의 의향이 어쩌하시니잇고?” 길
    동이 소왈, “내 장차 발군하리니, 그대 등은 지휘대로 하라.”하고 청포 흑대의 나귀를 타고
    종자수인을 달리고 나가며 왈, “내 그 절에 가 동정을 보고 오리라.” 하고 가니, 완연한 재
    상가 자재라. 그 절에 들어가 먼저 소승을 불러 이르되, “나는 경성 홍판서의 자제라. 이 절
    에 와 글공부하러 왔거니와 명일의 백미 이십 석을 보낼 것이니 음식을 정히 차리면 너희들
    도 한가지로 먹으리라.” 하고 사중을 두루 살펴보며 후일을 기약하고 동구를 나오니 제성이
    기꺼하더라. 길동이 돌아와 백미 수십 석을 보내고 중인을 불러 왈,”내 아모 날은 그 절에
    가 이리하리라.”하고 그 날을 기다려 종자 수십 인을 데리고 해인사에 이르니, 제승이 맞아
    들어가니, 길동이 노승을 불러 문 왈, “내 보낸 쌀로 음식이 부족치 아니하더뇨?” 노승 왈, “
    어찌 부족하리잇가, 너무 황감하여이다.” 길동이 상좌에 앉고 제상을 일제히 청하여 각기 상
    을 받게 하고, 먼저 술을 마시며 차례로 권하더니, 모든 중이 황감하여하더라. 길동이 상을
    받고 먹더니, 문득 모래를 가만히 입에 넣고 깨무니 그 소리 큰지라, 제승이 듣고 놀라 사죄
    하거늘 길동이 거짓대로 꾸짖어 왈, “너희 음식을 이다지 부정케 하뇨? 이는 반다시 능멸함
    이라.” 하고 존자에게 분부하여 제승을 다 한 줄에 결박하여 앉히니, 사중이 황겁하여 아무
    리 할 줄 모른지라. 이윽고 수백 여 명이 일시에 달려들며 모든 재물을 다 제것 가져가 듯
    하니 제승이 보고 다만 입으로 소리만 지를 따름이다. 이 때 불복한이 마침 나갔다가 이런
    일을 보고 즉시 관가에 고하니, 합천 원이 듣고 관군을 조발하여 그 도적을 잡으라 하니, 수
    백 장교 도적의 뒤를 쫓을 사 문득 돌아보니 한 중이 소라를 쓰고 또 장삼을 입고 뫼에 오
    라 외쳐 왈, “도적이 저 북편 소로로 가니 빨리 가 잡으소서.”하거늘, 관군이 그 절 중이 가
    르키는 줄 알고 풍우 같이 북쪽 소로로 찾아가다가 날이 저문 후 잡지를 못하고 돌아가니
    라. 길동이 제적을 남편 대로로 보내고 저 홀로 중의 복색으로 관군을 속여 무사히 굴혈로
    돌아오니, 모든 사람이 벌서 제물을 수탐하여 왔는지라, 일시에 나와 사례하거늘, 길동이 소
    왈, “장부 이만 재주 없으면 어찌 중인의 괴수가 되리요.”하더라. 이 후로 길동이 자호를 활
    빈당이라 하여 조선팔도로 다니며, 각 읍 수령의 불의로 재물 있으면 탈취하고 혹 자빈 무
    의 한자 있으면 구제하여 백성을 침범치 아니하고 나라에 속한 재물은 추호도 범치 아나하
    니, 그러므로 제적이 그의 취를 항복하더라. 일일은 길동이 제인을 모으고 의논 왈, “이제
    함경 감사가 탐관오리로 준민고택하여 백성이 다 견디지 못하는지라, 우리 등이 그저 두지
    못하리니, 그대 등은 나의 지휘대로 하라.”하고 하나씩 흘러 들어가 아모 날 밤에 기약을 정
    하고 남문밖에 불을 지르니, 감사 대경하여 그 불을 구하라 하니, 관속이며 백성들이 일시에
    내달아 그 불을 구할 사, 길동의 수백 적당히 일시에 성중에 달려들며 창고를 열고 정곡과
    군기를 탐하여 북문으로 달아나니 성정이 요란하여 물끓듯하는지라, 감사 불의지변을 당하
    여 아모리 할 둘 모르더니 날이 밝은 후 살펴보니, 창고의 군기와 전곡이 비었거늘 감사 대
    경실색하여 그 도적 잡기를 힘쓰더니 홀연 북문에 방을 붙였으되 아모날 전곡 도적한 자는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라 하였거든, 감사 발군하여 그 도적을 잡으려 하더라. 차설 길동이 제
    적과 한가지로 전곡을 많이 도적 하였으나 행여 노중에서 잡힐가 염려하여 둔갑법과 축지법
    을 행하여 처소에 돌아오니 날이 새고자 하였더라. 일일이 길동이 제인을 모으고 의논 왈, “
    이제 우리는 합천 해인사에 가 재물을 탈취하고, 또 함경감영에 가 전곡을 도적 하여 소문
    이 파다하려니와, 나의 성명을 써 감영에 붙였는지 오래지 아니하여 잡히기 쉬울지라. 그대
    등은 나의 재주를 보라.” 하고 즉시 초인 일곱을 만들어 진언을 염하고 혼백을 붙이니, 일곱
    길동이 일시에 팔을 뽐내며 크게 소래 하고 한 곳에 모다 난만히 수작하니, 어느 것이 길동
    인지 아지 못하는지라. 팔도에 하나씩 흩어지되 각각 사람 수백 여 명씩 거느리고 다니니,
    그 중에서 정 길동이 팔도에 다니며, 호풍환우하는 술법을 행하니 각 읍 창곡이 일야간에
    종적 없이 가져가며 서울 오는 봉물을 의심 없이 탈취하니, 팔도 각 읍이 소요하여 밤에 능
    히 잠을 자지 못하고 도로에 행인이 끊겼으니, 이러므로 팔도가 요란한지라 감사가 이 일로
    장계하니 대강하였으되, “난데없이 홍길동이란 대적이 있어 능히 풍운을 짓고 올라가지 못
    하여 작란이 무수하오니 그 도적을 잡지 못하오면 장차 어느 지경에 이를 줄 아지 못하오리
    니, 복망 성상은 좌우 포청으로 잡게 하소서.”하였더라.
    상이 보시고 대경하사 포장을 명초에 하실사 연하여 팔도 징계를 올리는 지라 연하여 때에
    보니 도적의 이름이다 홍길동이라 하였고 전곡 잃은 일자를 보시니 한 날 한시라, 상이 크
    게 놀라사 가라사대, “이 도적의 용맹과 술법은 옛날 치위라도 당치 못하리로다. 아모리 신
    귀한 놈인들 어찌 한 몸이 팔도에 있어 한날 한시에 도적하리오. 이는 심상한 도적이 아니
    라 잡기 어려우리니 좌우 포장이 발군하여 그 도적을 잡아라.” 하시니, 이 때 우포장 이 흡
    이 주 왈, “신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그 도적을 잡아오리니, 전하는 근심 마르소서. 이제 좌
    우 포장이 어찌 병출하오리잇가.” 상아 옳히 여기사 급히 발행을 재촉하시니, 이 흡이 하직
    하고 허다 관졸을 거리고 발행할 시 각각 흩어져 아모날 문경으로 모임을 약속하고 이 흡이
    약간 포졸 수삼 인을 다리고 변복하고 다니더니, 일일은 날이 저물매 주점을 찾아 쉬더니,
    문득 일위 소년이 나귀를 타고 들어와 뵈거늘 포장이 답례하되, 한숨 지며 왈, “보천지하에
    막비왕토요, 솔토지민이 막비왕신이라 하니 소생이 비록 향곡에 있으나 국가를 위하여 근심
    이로소이나.” 포장이 거짓 놀라며 왈, “이 어찌 이름이뇨?” 소년 왈, “이제 홍길동이란 도적
    이 팔도로 다니며 작란하매 인심이 소동하오니 이놈을 잡아 없애지 못하오니 어찌 분한치
    아니리오.” 포장이 이 말 듣고 왈, “그대 기골이 장대하고, 언어가 충직하니 나와 한가지로
    그 도적을 잡음이 어떠하뇨?” 소년 완, “내 벅써 잡고자 하나 용력이 있는 사람을 얻지 못
    하였더니 이제 그대를 만났으니 어찌 만행이 아니리오마는 그대의 재주를 아지 못하니 그윽
    한 곳에 가 시험하자.” 하고, 한가지로 행하더니 한곳에 이르러 높은 바위 위에 올라 앉으며
    이르되, “그대 힘을 다하여 두 발로 나를 차 내리치라.” 하고, 양 끝에 나와 앉거늘 포장이
    생각하되, “제 아무리 용력이 있은들 한 번 차면 제 어찌 아니 떨어지리오.” 하고 편생 힘을
    다하여 두 발로 매우 차니, 그 소년이 문득 돌아앉으며 왈, “그대 진짓 장사로다. 내 여러사
    람을 시험하되 나를 요동하는 자 없더니 그대에게 차이여 오장이 울린 듯하도다. 그대 나를
    따라오면 길동을 잡으리라.” 하고 첩첩 산곡으로 들어가거늘, 포장이 생각하되, “나도 힘을
    자랑함만 하더니 오날 저 소년의 함을 보니 어찌 놀랍지 아니리오. 그러나 이 곳까지 왔으
    니 설마 저 소년 혼자도 길동 잡기를 근심하리오.” 하고 따라가더니 그 소년이 문득 돌아서
    며 왈, “이 곳이 길동의 굴혈이라. 먼저 들어가 탐지할 것이니 그대는 여기 있어 기다리라.”
    포장이 마음이 의심되나 빨리 잡아옴을 당부하고 앉았더니 이윽고 홀연 산곡으로 쫓아 수십
    군졸이 요란히 소리를 지르며 내려오는지라. 포장이 대경하여 피코자 하더니, 점점 가까이
    와 포장을 결박하여 꾸짖어 왈, “네 포도대장이 이 흡인다? 우리들이 지부왕명을 받아 너를
    잡으러 왔다.” 하고 철삭으로 목을 옭아 풍우 같이 몰아가니 포장 혼불부테하여 아모란 줄
    몰르는지라. 한곳에 다다라 소래 지르며 꿇어앉히거늘, 포장이 정신을 가다듬어 쳐다보니,
    궁궐리 광대한데 무수한 황건 역사가 좌우에 나열하고, 전상을 일위 군왕이 좌탑에 앉아 여
    성 왈, “소인은 인간의 한미한 사람이라. 무죄이 잡혀왔으니 살려 보냄을 바라나이다.”하고
    심히 애걸하거늘, 정상에서 웃음소리 나며 꾸짖어 왈, “이 사람아 나를 자시 보라. 나는 활
    빈당 행수 홍길동이라. 그대 나를 잡으려 하매 그 용역과 뜻을 알고자 하여 작일에 내 청포
    소년으로 그대를 인도하여 이곳에 와 나의 위엄을 뵙게 함이라.” 하고 언파를 좌우를 명하
    여 맨 것을 끌러 당에 앉히고 술을 권하며 왈, “그대는 부지없이 다니지 말고 빨리 돌라가
    되 나를 보았다 하면 죄책이 있을 것이니 부대 이런 말을 내지 말라.” 하고 다시 술을 부어
    권하며 좌우로 명하여 내어 보내라 하니, 포장이 생각하되 내가 이것 꿈인가, 상시인가 어찌
    하여 이리 왔으며, 길동의 조화를 신기히 여겨 일어나고자 하더니 홀연 사지를 요동치 못하
    는지라 괴이 여겨 정신을 살펴보니, 가죽 부대 속에 들었거늘 간신히 나와 본즉 부대 셋이
    나무에 걸렸거늘, 차례로 끌러 내어 보니 처음 떠날 제 데리고 왔던 하인이라. 서로 이르되,
    “이것이 어쩐 일인고. 우리 떠날 제 문경으로 모이자 하였더니 어찌 이 곳에 왔느뇨?” 삼인
    이 고 왈, “소인 등은 주점에서 자옵더니 홀연 풍운에 쌓이여 이리 왔사오니 무슨 연고를
    아지 못함이로서이다. ” 포장 왈, “이 일이 가장 허무 맹란하니 남에게 전설치 말라. 그러나
    길동의 재주 불측하니 어찌 인력으로 잡으리오. 우리등이 이제 저기 들어가면 필경 죄를 면
    치 못하리니 아직 수월을 기다려 가자.” 하고 내려오더라. 차시 상이 팔도를 행관하사 길동
    을 잡으라 하시되 그 변화가 불측하여 장안 대로로 혹 초헌도 타고 왕래하며 혹 어사의 모
    양을 하여 각 읍 수령 중 탐관오리하는 자를 문둑 선참후계하되 가어사 홍길동의 계문이라
    하니 상이 진노하사 왈, “이 놈이 각 도에 다니며 이런 작란을 하되 아모도 잡지 못하니, 이
    를 장차 어찌하리오.” 하시고 삼공 육공을 모아 의논하시더니, 연하여 장계오르니 다 팔도의
    홍길동이 작란하는 징계라. 상이 차례로 보시고 크게 근심하사 좌우를 돌아뵈시며 문왈, “이
    놈이 아마도 사람은 아니요, 귀신의 작폐니 조신 중 뉘 그 근본을 짐작하리오?” 일인이 출
    반주 왈, “홍기롣ㅇ이 전임이조판서 홍모의 서자요, 병조 죄랑 홍인형의 서제오나 이제 그
    부자를 나래하여 진문하시면 자연 아르실까 하나이다.” 상이 익노 왈, “이런 말을 어찌 이제
    야 하는다?” 하시고, 즉시 홍모는 금부로 나수하고 먼저 인형을 잡아들여 친국 하실사 천위
    진노하샤 서안을 쳐 가라사대, “길동이란 도적이 너의 서제라 하니, 어찌 금단치 아니하고
    그저 두어 국가의 대환이 되게 하나뇨? 만일 접아들이지 아니하면 너의 부자의 충효를 돌아
    보지 아니리라. 빨리 잡아들여 조선 대변을 없게하라.” 하시면 신이 죽기로서 길동을 잡아
    신의 부자의 죄를 속하올가 하나이다.” 상이 문라의 천심이 감동하사 길동을 잡지 못할 것
    이요, 일 년한을 정하나니, 수이 잡아들이라.” 하시니 인형이 백배사은하고, 인하여 하직하며
    즉일하여 감영에 도입하고 각 읍에 방을 붙이니, 이는 길동을 달래는 방이다. 기사의 왈,
    “사람이 세상에 나매, 오륜이 으뜸이요, 오륜이 있으매 인의례지 분명하거늘, 이를 알지 못
    하고 군부의 명을 거역하여 불충 불효하모면 어찌 세상이 용납하리오. 우리 부친이 널로 말
    미암아 병입골수하시고, 성상이 크게 근심하시니, 네 죄악이 관영한지라. 이러므로 나를 특
    별히 도백을 제수하사 너를 잡아들이라 하시니, 만일 잡지 못하면 우리 홍문의 누대청덕이
    일조에 명하리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바라나니, 아오 길동은 이를 생각하여 일칙 자현
    하면 너의 죄도 덜릴 것이요, 일문을 보존하리니, 아지못게라. 너는 만번 생각하여 자현하
    라.” 하였더라. 감사 아 방을 각 읍에 붙이고 공사를 전폐하여 길동이 자현하기만 기다리더
    니, 일일은 한 소년이 나귀를 타고 하인 수십을 거느리고, 원문 밖에 와 뵈옵기를 청한다 하
    거늘, 감사 눈을 들어 자세히 보니, 때로 기다리던 길동이라, 대경대희하여 좌우를 물리치고
    손을 잡아 오열 유체 왈, “길동아, 네 한 번 문을 나매, 사생존망을 아지 못하여 부친께서
    벙입고황하시건늘, 너는 가지록 불효를 끼칠 뿐 아니라, 국가의 큰 근심이 되게 하니, 네 무
    삼 마암으로 불중불효를 행하며, 또한 도적이 되어 나로 하여금 너를 잡아들이라하시니, 이
    는 피치 못할 죄라. 너는 일찍 경사의 나아가 천명을 순수하라.” 하고 말을 마치매 눈물이
    비오듯 하거늘, 길동이 머리를 숙이고 왈, “전생이 이에 이름을 부형의 위태함을 구코자 함
    이니 어찌 다른 말이 있으리오. 대저 대감께서 당초의 천한 길동을 위하여 부친을 부친이라
    하고, 형을 형이라 하였던들 어찌 이에 이르리잇가? 왕사는 일러 쓸데없거니와, 이제 소제를
    결박하여 경사로 올려 모재소서.” 하고 다시 말이 없거늘, 감사 이 말을 듣고 일변 슬퍼하며
    일변장계를 써 길동을 항쇄족쇄하고 함거에 실어 건장한 장교 십여인을 뽑아 압령하게 하
    고, 주야 배도하여 올려보내니, 각 읍 백성들이 길동의 재주를 들었는지라 잡아옴을 듣고 길
    이 메어 구경하더라. 차시 팔도에서 길동을 잡아리니 제가 서로 다투어 이르되 제가 정길동
    이라 나는 아니라 하며 서로 싸우니, 어느 사람이 정 길동인지 분간치 못할러라. 상이 고이
    히 여기사 즉시 홍모를 명초하사 왈, “자자막여부라 하니, 저 여덟 중 경의 아들을 찾아내
    라.” 홍공이 황공하여 돈수청죄 왈, “신의 천생 길동은 좌편 다리에 붉은 점이 있사오니 일
    로 조차 알리소서이다.” 하고 여덟 길동을 꾸짖어 왈, “네 지척에 임금이 계시고 아래로 네
    아비 있거늘 이렇듯 천고에 없는 죄를 지었으니, 다 죽기를 아끼지 말라.” 하고 피를 토하여
    엎어져 기절하니, 상이 대경하사 약원으로 구하라 하시되 차도가 없는 지라, 여덟 길동이 이
    경상을 보고 일시의 눈물을 흘리면, 낭중으로 좇아 혼약 한 개씩 내어 입에 드리오니 홍공
    이 반향후 정신을 차리니라. 길동 등이 상께 주 왈, “신의 아비 국은을 입었사오니, 신이 어
    찌 감히 불측한 행사를 하리오까마는, 신은 천비소생이라 그 아비를 아비라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못하오니, 평생 한이 맺혔삽기로 집을 버리고 적당의 참례하였사오니, 백성은 추호불
    범하옵고, 각 읍 수령의 준민고택하는 재물을 탈취하였사오나, 니제 십 년능 지내면 조선을
    떠나 가올 곳이 있사오니, 복걸성상은 근심치 마시고 신을 잡는 관자를 거두옵소서.”하고 말
    을 마치매 여덟 길동이 일시에 넘어지니, 자세 본즉 다 초인이라. 상이 더욱 놀라시며 정 길
    동을 잡기를 다시 행관하여 팔도에 나리시니라. 차설 길동이 초인을 없이하고 두르 다니더
    니, 사대문의 방을 붙였으되, “요신 홍길동은 아모리 하여도 잡지 못하리니, 병조판서 교지
    를 나리시면 잡히리다.” 하였거늘 상이 그 방문을 보시고 조신을 모아 의논하시니, 제신 왈,
    “이제 그 도적을 잡으려 하다가 잡지 못하옵고, 도리어 변조판서 제수하심은 불가사문어인
    국이로소이다.” 상이 옳히 여기사 다만 경상감사에게 길동 잡기를 재촉하시더라. 이 때 경상
    감사 엄지를 보고 황공송률하여 어찌할 줄 모르더니, 일일은 길동이 공중으로 내려와 절하
    고 왈, “소제 지금은 정작 길동이오니, 형장은 아모 염려 마시고, 소제를 결박하여 경사로
    보내소서.” 감사 이 말을 듣고 집수유체 왈, ” 이 무거한 아희야 너무 동기어늘, 부형의 교
    훈을 듣지 아니하고 일국이 소동케 하니, 어찌 애닯지 아니리오. 네 이제 정작 몸이 와 나와
    보고 접혀가기를 자원하니, 도리어 기특한 아희로다.” 하고 급히 길동의 좌편 다리를 보니
    과연 홍점이 있거늘, 즉시 사지를 각별 결박하고 함거에 넣어 건장한 장교 수십을 가리어
    철통같이 싸고 풍우 같이 몰아가되, 길동의 안색이 조금도 변치 아니하더라. 여러날 만에 경
    성에 다다르니 길동이 한 번 요동하매 철삭이 끊어지고, 함거 깨어져 마치 매암이 허물 벗
    듯 공중으로 오르매, 표연이 운무의 묻혀가니, 장교와 제군이 어이없어 공중만 바라보고 다
    만 넋을 잃을 따름이다. 할 수 없이 이 연유로 상달하온대, 상이 들으시고 왈, “천고에 이런
    일이 어데 있으리오.”하시고 크게 근심하시니 제신 중 일인이 주 왈, “그 길동의 원이 병조
    판서를 한 번 지내면 조선을 떠나리라 하오니, 한 번 제 원을 풀면 제 스스로 사은하오리니,
    이때를 타 잡음이 조을가 하나이다.” 상이 옳히 여기사 즉시 홍길동으로 병조판서를 제수하
    시고, 사문의 방을 붙이니라. 이때 길동이 이 말을 듣고 즉시 사모 관대데 서대 띠고 높은
    초헌을 한가롭게 높이 타고 대로상의 완연이 들어오며 이르되, 어제 홍 판서 사은하러 온다
    하니, 병조 하속이 마자 호위하여 궐내에 들어갈 새 백관이 의논하되, “길동이 오늘 사은하
    고 나올 것이니, 도부수를 매복하였다가 나오거던 일시에 쳐 죽이라.” 하고 약속을 정하였더
    니, 길동이 궐내에 들어가 숙배하고 주 왈, “소신이 죄악이 지중하옵거늘, 도리어 천은을 입
    아솨 평생 한을 푸옵고 돌아가오나 영결전하하오니, 복망성상은 만수무강을 하소서.” 하고
    말을 마치매. 몸을 공중에 솟아 구름에 싸이어 가니, 그 가는 바를 아지 못할러라. 상이 보
    시고 도리어 차탄 왈, “길동의 신기한 재주는 고금에 희한하도다. 제 지금 조선을 떠나노라
    하였으니, 다시는 작폐할 길이 없을 것이오. 비록 수상하나 일달장부의 쾌한 마음이 있는지
    라 족히 염려없으렷다.” 하시고 팔도에 사문을 내리사 길동 잡은 공사를 거두시니라. 각설
    길동이 제 곳에 돌아와 제적에게 분부하되, “내 다녀올 곳이 있으니, 여등은 아모데 출입 말
    고 내 돌아오기를 기다려라.” 하고 즉시 몸을 솟아 남경으로 향하여 가다가 한 곳에 다다르
    니 이는 소위 율도국이라. 사면을 살펴보니, 산천이 천수하고 임물이 번성하여 가히 안신할
    곳이라 하고, 남경에 들어가 구경하며 또 제도라 하는 섬 중에 들어가 두루 다니며 산천도
    구경하고 인심도 살피며 다니더니, 오봉산에 이르러는 짐짓 제일 강산이라. 주회 칠백리요
    옥야답이 가득하여 살기가 정히 의합한지라, 내심에 헤아리되, 내 이미 조선을 하직하였으
    니, 이 곳에 와 아직은 거하였다가 대사를 도모하리라 하고, 표현히 본 곳에 돌아와 제인에
    게 일러 왈, “그대 아모날 양천 강변에 가 배를 많이 만들어 모일에 경성 한강에 대령하라.
    내 임금께 청하여 정조 일천 석을 구득하여 올 석이니, 기약을 어기지 말라.” 하더라. 각설
    홍공이 길동이 작란이 없으므로 신병이 쾌차하고 상이 또한 근심없이 지내더니, 차시 추구
    월 망간의 상이 월색을 따라 후원에 배회하실 새, 문득 일진 청풍이 일어나며, 공중으로서
    옥저소리 청아한 가운데 한 소년이 내려와 상께 복지하거늘 상이 경문 왈, “선동이 어찌 인
    간에게 강굴하여 무슨 일을 이르고자 하나뇨?” 소년이 보지주 왈,” 신은 전임 병조판서 홍
    길동이로서이다.” 상이 경문 왈,” 내 어찌 심야에 온다?” 길동이 대 왈, “신이 전하를 받들어
    만세를 뫼시올가 하오나, 천비소생이라 문으로 옥당에 막히옵고 무로 선천에 막힌지라, 그러
    므로 사방에 오유하와 관부가 작폐하고, 조정의 득죄하옴은 전하가 알으시게 하옴이러니, 신
    의 소원을 풀어 주옵시니, 전하를 하직하고 조선을 떠나가오나 복망 전하는 만수무강아소
    서.” 하고 공중에 올라 표연히 날거늘, 상이 그 재주를 못내 칭찬하시더라. 이후로는 길동의
    폐단이 없으매, 사람이 태평하더라. 각설 길동이 조선을 하직하고 남경 땅 제도섬으로 들오
    가 수천 호 집을 짓고 농업에 힘쓰며 재주를 배워 무고를 지으매 군법을 연습하니 병정양족
    하더라. 일일은 길동이 살촉에 바를 약을 얻으러 망탄산으로 향하더니 낙천 땅에 이르러는
    그 곳의 부자 백룡이란 사람이 있으니, 일찍 한 딸을 두었으되 재질이 비상하매, 부모 애중
    하더니, 일일은 광풍이 대작하여 딸이 간데 없는지라 백룡 부부가 슬퍼하며 천금을 흩어 사
    방으로 찾되 종적이 없는지라, 부부 슬퍼하며 말을 펴 왈, “아모라도 내 딸을 찾아주면 가산
    을 반분하고 사위를 삼으리라.” 하거늘 길동이 그 말을 듣고 심중에 측은하나 하릴없이 망
    탄산에가 약을 캐며 들어가더니 날이 저문지라, 주저하더니 문득 사람의 소래 나며 등촉이
    조요하거늘 그곳을 찾아가니 사람은 아니요, 요괴들이 앉아 지저귀거늘, 원래 이 짐승은
    ‘율곧’이란 짐승이라, 여러해를 묵어 변화가 무궁하더라. 길동이 몸을 감추고 활로 쏘니 그
    중 괴수가 맞은지라 모두 소래지르고 달아나거늘, 길동이 나무에 의지하여 밤을 지내고 도
    로 약을 캐더니 문득 괴물 수삼 명이 길동을 보고 문 왈, “그대는 무삼 일로 이 깊은 곳에
    이르뇨?” 길동이 답 왈, “내 의술을 알매 이 산에 들어와 약을 캐더니, 그대들을 마나 다행
    하도다.” 그것이 대희 왈, “나는 이 곳에서 산 지 오래더니, 우리 대왕이 부인을 새로 정하
    고 작야에 잔치하더니, 천살을 맞아 위중한지라. 그대 명의라 하니 선약으로 왕의 병을 고치
    면 중상을 얻으리라.” 하거늘 길동이 생각하되, ‘이 놈이 작야에 상한 놈이로다.’하고 허락하
    되, 그것이 길동을 인도하여 밖에 세우고 들어가더니, 이윽고 청하거늘 길동이 들어가보니,
    화각이 광려한 가운데 흉악한 것이 누워 신음하다가 길동을 보고 몸을 기동하여 왈,”보이
    우연히 천살을 맞아 위태하더니, 시자의 말을 듣고 그대를 청하였으니, 이는 하늘의 살림이
    라. 그대는 재주를 아끼지 말라.” 길동이 사사하고 왈, “먼저 내치할 약을 쓰고 비거 외치할
    약을 씀이 좋을가 하노라.” 그것이 응낙하거늘, 길동이 약낭의 독약을 내어 급히 온수에 화
    하여 먹으니 식경은 하여 한 소리 지르고 죽는지라. 모든 요괴 일시에 다려들거늘 길동이
    신통을 내어 모든 요괴를 몰아치더니 문득 두 소년 여자가 애걸 왈, “첩 등은 요괴 아니라
    인조 사람으로서 잡히어 왔아오니 잔명을 구하여 세상으로 나가게 하소서.” 길동이 백룡의
    일을 생각하고 거주를 물으니, 하나는 백룡의 딸이요, 하나는 조철의 딸이라. 길동이 요괴를
    소청하고 두 여자를 각각 제 부모를 찾아주니 그 부모 대희하여 즉일에 홍생을 맞아 사위를
    삼으니, 제일 백 소저라, 길동이 일조에 양처를 얻고 두 집 가권을 거느려 제도섬으로 가니
    모든 사람이 반기며 치하하더라. 일일은 길동이 천문을 보다가 놀라 눈물을 흘리거늘 제인
    이 문 왈, “무삼 연고로 슬퍼하느뇨?” 길동이 탄 왈, “내 부모를 천상 성진으로 안부를 짐작
    하더니, 건상을 본즉, 부친 병세 위중하신지라 내 몸이 원처에 있어 및지 못할까 하노라.”
    하니 제인이 비감하여 하더라. 이튿날 길동이 월봉산에 들어가 일장 대지를 얻고 산역을 시
    작하되 석물을 국릉과 같이하고, 일척 대선을 준비하여 조선국 서강 강변으로 대후하라 하
    고 즉시 삭발위승하여 일엽소선을 타고 조선으로 향하니라. 각설 홍 판서 홀연 득병하여 위
    중한지라, 부인과 인형을 불러 왈, “내 죽으나 무한이로되, 길동의 사생을 아지 못하니 유한
    이라. 제 생존하였으면 찾아올 것이니, 적서를 분별치 말고 제 어미를 대접하라.” 하고 명이
    진하니, 일가가 망극하여 치상할 새 산지를 구하지 못하면 만망하더니, 일일은 문례 고하되,
    ” 어떤 중이 찾아와 영위의 조문하려 하나이다.” 하거늘 괴이 여겨 들어오라 하니, 그 중이
    들어와 방성대곡 중인 상인에게 일장통곡한 후 가로되, “형장이 어찌 소재를 몰라 보시잇
    가?” 하거늘 상인이 자세히 보니 이 곧 길동이라, 붙들고 통곡 왈, “현재야, 그 사이 어대
    갔더뇨? 부공이 생시의 유언이 간절하시매 어찌 인자의 도리오.” 하고 손을 끌고 내당에 들
    어와 모부인께 뵈옵고, 춘랑을 상면할 새, 일장통곡 후 문 왈, “네 어찌 중이 되어 다니느
    뇨?” 길동이 대 왈, “소자 조선을 떠나 삭발위승하여 지술을 배웠더니, 이제 부친을 위하여
    대지를 얻었으니, 모친은 물려하소서.” 인형이 대회 왈,”네 재주 기이한지라 길지곳 얻었으
    면 무삼 염려 있으리오.” 하고 명일 운구하여 제 모친을 데리고 서강 강변에 이르니 길동의
    지휘한 바 선척이 대후 한지라. 배에 올라 살같이 저어 한 곳에 다다르니, 중인 수십 선척을
    선상에 다다르니 인형이 자세히 본 즉 산세 웅장한지라 길동의 지식을 못내 탄복하더라. 산
    역을 마치매 한가지로 길동의 처소로 돌아오니, 백씨와 조씨 존고와 숙숙을 맞아 뵈온 후,
    인형, 춘랑이 못내 길동의 지식을 탄복하더라. 여러 날이 되매 인형이 길동과 춘랑을 이별하
    고 산소를 극진히 뫼심을 당부한 후 산소에 하직하고 발항하여 본국에 이르러 모부인을 뵈
    온 후 전후 수말을 고한대 부인이 신기한 여기더라.” 각설 길동이 제전을 극진히 받들어 삼
    상을 마치매 모든 영웅을 모아 무예를 익히며 농업을 힘쓰니 병정양족하니라. 남해중의 율
    도국이라 길동이 매양 유의하던 배라 제인을 불러 왈, “내 이제 율도국을 치고자 하나니 그
    대 등은 진심하라.” 하고 즉일 진군할 새, 길동이 스스로 선두가 되고 마 숙으로 후군장을
    삼아 정병 오만을 거느려 율도국 철봉산에 다다라 싸움을 도드니, 태수 김현충이 난데없는
    군마가 이름을 보고 대경하여 일변 왕에게 고하여 일지군을 거느려 내달아 싸우거늘, 길동
    이 맞아 싸와 일합에 김현충을 베이고, 철봉을 얻어 백성을 안무하고 정철로 철봉을 지켜오
    고 대군을 휘동하여 바로 도성을 칠 새, 격서를 율도국에 보내니, 하였으되, ‘의병장 홍길동
    은 글월을 율도왕에게 부치나니, 대저 임군은 한 사림의 임군이 아니요, 천한 사람의 임군
    이라. 내 천명을 받아 기병하매 먼저 철봉을 피하고 물밀듯 들어오니, 왕은 싸우고자 하거든
    싸우고 불연측일즉 항복하여 살기를 도모하라’ 하였더라. 왕이 남필의 대경 왈, “아국이 전
    혀 철봉을 믿거늘 이제 잃었으니 어찌 저당하리오.” 하고 제신을 거느려 항복하니, 길동이
    성중에 들어가 백성을 안무하고 왕위에 즉위한 후 율도왕으로 의령군을 봉하고, 마 숙, 최
    철로 좌우상을 삼고, 기여 제장은 다 각각 봉작한 후 만조백관이 천세를 불러 하례하더라.
    왕이 치국 삼 년에 산무도적하고 도불습유하니 가위 태평성세더라. 왕이 백룡을 불러 왈, “
    내 조선 성산께 표문을 올리려 하니, 경은 수고를 아끼지 말라.” 하고 표문과 서찰을 홍부에
    부치니라. 백룡이 조서에 득달하여 먼저 표문을 올린대, 상이 표문을 보시고 찬 왈, “홍길동
    은 짐짓 기재로다.” 하시고, 홍인형으로 위유사를 하이샤 유서를 나리시오니, 인형이 사은
    한 후 돌아와 모부인께 연중설화를 고한대 부인이 또한 가자 하거늘, 인형이 마지못하여 부
    인을 뫼시고 발행하여 여러 날 만에 율도국에 이르니, 왕이 맞아와 향안을 배설하고 유서를
    받자온 후 모부인과 인형으로 받기며, 산소에 소분한 후 대연을 배설하여 즐기더라. 여러 날
    이 되매 유씨 홀연 득병하여 졸하니, 선능에 상장하고, 인형이 왕을 하직하고 본국에 돌아와
    복명하온대, 상이 그 모상 당함을 위유하시더라. 파선 율도왕이 삼상을 마치매 대비이어 기
    세하매 선능에 안장한 후 삼상을 마치매 왕이 삼자, 이녀를 생하니, 장자, 차자는 백씨소생
    이요, 삼자, 차녀는 조씨 소생이라. 장자 현으로 세자를 보아고, 기여는 다 봉군하니라. 왕이
    치국 삼십년에 홀연 득병하여 붕하니, 수가 칠십 세라. 왕비 이어 붕하매 선능에 안장한 후
    세자 즉위하여 대대로 계계승승허여 태평을 누리더라. 상이 그 모상 당함을 위유하시더라.
    파선 율도왕이 삼상을 마치매 대비이어 기세하매 선능에 안장한 후 삼상을 마치매 왕이 삼
    자, 이녀를 생하니, 장자, 차자는 백씨 소생이요, 삼자, 차녀는 조씨 소생이라. 장자 현으로
    세자를 보아고, 기여는 다 봉군하니라. 왕이 치국 삼십년에 홀연 득병하여 붕하니, 수가 칠
    십 세라. 왕비 이어 붕하매 선능에 안장한 후 세자 즉위하여 대대로 계계승승하여 태평을
    누리더라. 윤씨행장
    참판공이 다른 자제 없고, 정혜옹주 다른 자제 없고, 오직 대부인 하나뿐인 고로, 옹주
    친히 기르시니 입으로 외워 소학을 가르치니, 대부인이 총명하고 숙성하여 한번 가르치매
    입을 올리니, 옹주 매양 그 여잔 줄을 한하더라. 및 자라매 의복과 음식을 사치치 아니케
    하여 가로되 다른 날 가난한 선비의 아내 되면 어찌 장 이같이 하리요 하더니, 및 우리
    선군께 들어오매, 옹주 경계하여 가로되, “너희 부가는 예법하는 집이라, 혹 부도를
    어기어서 나를 부끄럽게 말라.” 하여 가르치기를 아 같이 하는 지라. 대 부인이 나이
    바야흐로 열 넷이로되 심히 기림을 받더라. 정축년 난리에 선군이 강도에서 사절하시니, 대
    부인이 바야흐로 잉태하여 홍부인 계신 데 있더니, 배를 얻어 화를 면하니, 이때 선형은
    바야흐로 다섯 살이요, 불초 만중은 배 속을 떠나지 못하였더라. 난 이 정한 후에, 두
    아이를 데리고 돌라와 부모 슬하에 의지하여, 안으로는 홍 부인을 도와 가사를 보살피고,
    밖으로는 참판공을 섬겨 능히 받기를 옛 효자같이 하고, 틈을 얻으면 서사를 보아서 스스로
    심사를 위로하니 날로 답게 됨이 너르더라. 이에 참판공이 아들 없음을 잊고 일찍 탄하여
    가로되, “매양 손녀로 더불어 말하매 마음이 문득 시원하니, 만일 사나이면 우리 집 한
    대제학이니리리오.” 하더라. ‘중략’ 이로부터 집안이 더욱 가난하여 몸소 띠를 짜고 수놓아
    조석을 잇되 늘 태연하여 일찍 근심하는 빛 없고, 또한 불초 형제로 하여금 알게 아니 하니,
    대게 일찍이 가사에 골몰하여 서적 공부에 방해로울까 염려함이러라. 불초 형제 아이 적에
    비길 스승이 없으니, 소학, 사략, 당시 같은 유는 대부인이 다 손수 가르치시니, 비록
    사랑하기를 과히 하나, 그 글 전하시기는 심히 엄히 하사 늘 이르되, “너희 무지 다른
    사람에 비길 바가 아니라, 반드시 재주가 남보다 한층 뛰어나야 반드시 가로되, ‘과부의
    자식이로다’하는 지라. 이 말은 너희 마땅히 뼈에 새기라.” 하시고 불초 형제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몸소 회초리로 종아리를 치시며 울며 말씀하시되, “네 부친이 네 형제로써 나에게
    의탁하고 죽었으니, 네 이제 이렇듯 한지라, 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 가 너의 부친을
    보리오. 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한지라.” 하니, 그 말의 통절함이
    이렇듯 하더라. 선형이 글 잘하기는 비록 천성이나, 그 재주 숙성함은 또한 대부인의 힘이
    많고, 만일 만중의 흐리고 어두워 스스로 바람은 가르치기를 아니기 아닐러라. 때에 난리
    지난지 오래지 않은지라, 서적을 얻기 어려우니, 맹자, 중용 같은 유를 부인이 다 곡식을
    주고 사고, 좌씨전 파는 사림이 있으되 권수가 많은지라, 권수 많음을 보고 감히 값을 묻지
    못하니, 대부인이 베틀 가운데 명주를 끊어 값을 주니, 이 밖은 옷할 것이 남은 것이
    없더라. 이웃 사람이 옥당 서리를 인연하여 홍문관에 있는 사서와 시경언해를 빌어내어
    손수 벗기시되, 자획이 정세하여 구슬을 꿴 듯하여 한 곳도 구참함이 없더라. ‘중략’
    대부인이 일찍 근대 비명을 보시다가 여자의 덕 일컫기를 너무 과히 함을 병같이 여겨
    가라사되, “규문안 일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바라. 붓 잡는 자가 다만 그 집 사림이 이르는
    대로 의지하려 하는 고로 그 말을 족히 믿지 못하니, 그렇지 아니하면 어찌 동방에 계집이
    많으뇨.” 이 말씀이 오히려 낭낭하여 귀에 있는지라, 이제 덕을 기록하는 글에 감히 한 자도
    꾸미지 못하여 너무 간략하게 함은, 대개 대부인의 평생 뜻을 생각함이니라. 경오 팔월 일에
    불초 고애남 만중은 읍혈하고 삼가 기록하노라.

    인현왕후전
    ‘인현왕후전’중, 왕후의 즉위로 파란곡절을 겪은 뒤 승하하는 대목까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후께서 즉위하신 뒤 두 분 전 대비마마를 효양하심에 하늘에 빼어난 효성과 상감을
    받들어 궁안을 다스리심에 덕으로써 인도하여 유순하시고 정정하시며, 비빈 궁녀를
    거느리시는 데 있어서도 은애가 병행하시어 선악과 친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사람을 아기고
    사랑하는 화기가 봄동산 같으시어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니 대궐 안이 모두 성덕을
    흠선하고 두 분 대비께서 극진히 애중하시어 국가의 복이라 축수하시고 상감께서도 공경
    중대하시며 조야가 모두 흠복하더라. 이 때 궁인 장씨가 비로소 후궁에 참예하여 희빈을
    봉하시니, 간교하고 민첩하여 임금 뜻을 잘 영합하니, 상감께서 극히 총애하시더니 무진년
    정월에 상감 춘추가 삼십이 거의 되었건만 아직 왕자 없음은 근심하시는지라, 후 깊이
    염려하사 조용히 상감께 아뢰어 어진 후궁을 뽑으시어 자손을 보심을 원하시나, 상감이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으시더니 후가 날마다 힘서 권하여, 한 여자의 출산을 기다리노라고
    막주한 종사를 가벼이 못할 것으로 간절히 아뢴, 정정한 덕과 유화한 말씀이 진정에서
    우러나온 것임이 분명하였다. 상감께서 감탄하시고 드디어 숙의 김씨를 뽑아 후궁에 두시니
    후께서 예로 대접하시고 은혜로 거느리시니 덕학이 그 전날과 하나도 다르지 아니하였다.
    무진년 시월에 희빈 장씨 처음으로 왕자를 낳으니, 상감이 지나치게 사랑하심은 이를 것도
    없고, 후도 크게 기뻐하시어 어루만져 사랑하심을 당신이 낳으신 친자식과 같이 하시니,
    장씨 자기 분수를 지키고 있었더라면 영화가 가득할 것이로되 문득 참람한 뜻과 방자한
    마음이 불 일어나듯 하니, 중궁의 성덕과 아름다운 자태가 일국에 솟아나고 인망이 다
    돌아가고 있음을 시기하여, 가만히 남 몰래 제거하고 대위를 엄습하고자 하더니, 그
    참소하기를, 새로 태어난 왕자를 숨을 막아 죽이려 한다느니, 희빈을 저주한다느니 하여
    국모를 헐뜯고 모함하지 아니함이 없어, 간악한 후빈들을 힘을 합하게 하여 소문을
    퍼뜨리고 자취를 드러내어 상감이 보시고 들으시게 하니, 예로부터 악인이 의롭지 않으나
    돕는 자가 있다더니 과연 그러한가 보더라. 중궁을 간해하는 말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
    상감이 점점 의심하시게 되어 중궁을 아주 박대하시고, 장씨는 악한 교태로 천심을
    영합하여 왕자를 방패삼아 권세가 대단하니 상감이 점점 장씨의 사랑에 빠지시어 능히
    흑백을 분별하지 못하시니, 전날에 엄숙하고 광명하시던 성심이 아주 변하시어 어진 신하는
    모두 물리치시고 간신을 반겨 쓰시니, 조정이 그윽히 의심하고 후께서는 깊이 근심하시어
    장씨의 사람됨이 반드시 변괴를 낼 줄 아시나, 왕자의 당당한 상이 있는 고로 깊이
    생각하시고 만행이 여기시어 사색을 나타내지 아니하시고 갈수록 현숙한 덕과 정성스러운
    마음씨를 드러내시되 상감의 마음은 더욱 멀어지시니 기사년 사월 이십 삼일 드디어 폐비의
    전교가 나리니라. 좌승지 이이만이 불가함을 간하니, 상감께서 크게 노하시어 승지 이이만은
    파직하시고, 수찬 이만원이 또 간하니 상감께선 더욱 노하시어 멀리 귀양 보내라 하시니,
    이렇듯 대신 중신 사십여 인을 먼 고을로 정배하시고 또 비망기를 나리시니 간신의 간사한
    말이 상감의 뜻을 영합하고 후궁의 간사한 기운이 상감의 총명을 가리우니, 양과 같이
    선량한 충신의 간언이 무슨 효험이 있으리오. 이 때 응교 벼슬에 잇는 박태보 여러
    동지들과 합소하여 상소문을 올리고 폐비의 불가함을 간했다가 잡혀 들어가니 상감이
    어좌에 앉으시어 소리지르사 응교더러 말씀하시기를, “내, 네놈을 자식처럼 어여삐 여긴 지
    오래거든 이제 나를 배반하고 간악한 부인을 위하여 무슨 뜻을 받아 간특 흉악한 노릇을
    하는고?” 응교 엎드려 아뢰기를, “전하, 어이 이런 말씀을 차마 하시나이까? 군신 부자
    일체라 하오니 아비 성품이 과하여 애매한 어미를 내치고자 하면 자식이 어이 살고 싶은
    뜻이 있사오리까? 이제 전하께서 연고 없이 무고한 처사를 하오셔 곤위 장차 편안하지
    못하게 되오니 의신이 망극하와 오늘날 죽사옴을 정하와 상소를 드리오니 어찌 전하를
    반대하올 뜻이 있사오리까? 중궁을 위하온 일이 정히 전하를 위하온 일이오니 전하를
    모셔온 중궁이 아니시니이까?” 상감께서 더욱 노하시어 이르시기를, “급히 결박하라.
    이놈아, 네 갈수록 나를 욕하는도다. 내 너를 형문 치려니와 압슬과 화형기구를 차리어라.”
    하시고 되게 매질하시니, 대궐 안에서 매질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여 향교동까지
    들리었다. 피가 낭자하게 튀기고 살이 헤지되 응교는 앓는 소리 한 번도 아니하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낯도 변하지 않으니 마치 헛것을 치는 것 같았다. 부동한 자를 대라
    거듭거듭 이르시되 끝내 대지 아니하고 홀로 맡아 충절로써 간하니, 상감께서는 더욱
    노하시어 압슬 기구를 차려 압슬을 하고, 큰 나무에 거구로 매달고 온 몸을 지지니 살이 다
    녹아 온전한 데가 없고 검기가 숯덩이 같고 힘줄이 오그라져 보기에도 참혹했으니 어찌
    살기를 바랄소냐.
    이와 같이 하여 많은 충신들의 충간도 무릅쓰고 기어니 중궁을 내치게 되니 온 백성 차탄
    않는 이가 없었다. 이 때 후께서 부원군 장례 후 지나치게 애통하시어 옥체 불편하시더니,
    좌우에 모시는 상궁이 이 말씀을 듣고 대성통곡하며 바삐 들어와 후께 아뢰니 후께서는
    안색도 변하지 않으신 채 트게 탄식하여 이르시기를, ” 이 도한 하늘이 주시는 재앙이로다.
    누구를 원망하리요. 그대들은 모두 명을 받들어 거행하도록 하라.” 하시고 조금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으셨다. 명안 공주 이 변을 들으시고 크게 놀라 후께 비옵고 오열비탄하여 옷을
    잡고 흐느껴 우시며 능히 말씀을 이루지 못하니, 후께서 탄식하고 위로하여 말씀하시되,
    “화와 복이 하늘의 뜻에 달려 있으니, 나의 복이 없고 천한 탓인즉 다만 어명대로 받들어
    모실 따름이라. 누구를 원망하리요마는 공주 이렇듯 동정하시니 은혜 잊을 길이 없소이다.”
    공주 그 덕망을 새삼 탄복하며, 차마 놓지 못하여 후를 붙들고 눈물이 비오듯 하니 무수한
    궁녀가 다 울고 차마 떠나지 못하더니, 이튿날 감찰 상궁이 상명을 받자와 침전에 이르러
    궁중께 내리신 전굘르 아뢰니, 후 천연히 일어나서 예복을 벗고 관잠을 끄르시고 중계를
    내려오셔 전교를 듣잡고 즉시 대내를 떠나 본가로 나오실 새 궁중이 통곡하여 곡성이
    낭자하더라. 이 때 선비 오십여 명이 요금문 앞에 대령하였고, 백여 명은 구파문 앞에
    엎디어 상소를 드리고 소리쳐 울더니, 후의 출궁하심을 보고 깜짝 놀라 미쳐 신도 신지
    못한 채 버선발로 따라와 모여 일시에 크게 소리내 우니, 천지가 진동하고 백성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을 막고 통곡하여 각종 상인들은 저자를 파하고 서러워하니 수심 띤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고 하늘의 해도 빛을 잃은 것 같았다. 후 본가로 나오시니 부부인이
    마주 나오시어 붙들고 통곡하시니, 후도 부원군 옛자취를 느끼사 애원 통곡하시고 이윽고
    부부인께 고하여 이르시되, “죄인의 몸으로 친족을 보는 것이 옳지 못할 것이니 나가소서.”
    전하시니 부인과 다른 이들도 통곡하여 마지못해 나가신 후, 당일로 명하사 안팎 문들을
    모두 봉쇄하고 본가 비복들은 한 사람도 두지 않으시고 다만 궁녀만 두시며 정당은
    폐하시고 아래채에서 거처하시었다. 집은 크고 사람은 적어 각 방이 다 비어 휘휘 고적한데
    찬과 벽을 바르지 않으시고 넓은 동산과 집에 풀을 매지 않으니, 키 한 길만큼 자라 인적이
    끊겼으니 귀신과 8족 ?날고, 저물면 예사 사람과 같이 다니니 궁인이 움직이지 못하고
    두려워하더니, 하루는 난데없는 큰 개 한 마리가 들어오니 거동이 추한지라 궁인들이
    쫓으되 또 들어오고 다시 쫓으되 또 들어오니 후께서 이르시기를, “그 개 출처 없이 들어와
    쫓아도 가지 않으니 고이한지라. 내버려 두어 그 하는 양을 보라.” 하시니, 궁인들이 밥을
    먹이며 두었더니 십여 일 뒤 새끼 셋을 낳으니 가장 크고 모진지라. 이 후는 날이 저물어
    망령의 도깨비의 자취 있으면 네 마리의 개가 함께 짖으니 잡귀 급히 물러나가 종적을
    감추니 그로 이하여 집안이 편안한지라, 무지한 짐승도 도움이 있거든 하물며 신민이
    잊으랴만 후 폐출하신 뒤로 조정에선 기뻐하는 소인이 많으니 도리어 금수만 못하리로다.
    이 때에 상감께서 민후를 폐출하시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책봉하여 궁중의 조하를 받게
    하니, 궁내의 모든 사람들이 서러워하고 장씨의 처사를 분하게 생각하되 조정에 어진
    사람이 없으니 누가 감히 말을 할 것인가. 그윽히 원분과 눈물을 머금고 조하를 마치니
    희빈의 아비를 옥산 부원군으로 봉하고, 빈의 오라비 장희재를 훈련 대장을 시키시니
    백성들이 모두 한심하게 여기고 기강이 흩어져 팔도의 인심이 산란하여 별의별 소문이
    다도니, 대개 예로부터 어진 임금이라도 한 번은 참소의 말을 귀담아 듣기 쉬운 법이거니와,
    숙종 대왕과 같은 문무를 겸전하신 어진 임금으로도 장씨에게 이대도록 하사 국가의 체면을
    손상하심은 실로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듬해 경오년에 장씨의 생자로서 왕세자를
    책봉하시니 장씨 양양하여 병약무인한, 이러므로 발악을 일삼아 비빈을 절제하며 궁녀를
    엄형하고 포악한 말과 교만한 행실은 말로 할 수 없었다. 한편, 궁중에 기강이 없어지고
    원망은 하늘을 찌르고 장희재 욕심이 많고 포악하여 팔도에서 재물을 긁어들이나 아무도
    말할이가 없었다. 이렇듯 삼사 년이 지나니 천운이 순환하여 홍진비래에 고진감래라, 구름이
    점점 걷힘에 태양이 다시 밝아오니 성총이 깨달음이 계셔 민후의 억울하심을 알고 정씨의
    간악함을 깨치시어 의심이 가득하시니 대하시는 기색이 전과 다르시고, 서인들이 후의 삼촌
    숙질을 다 처벌하시라고 날마다 아뢰기를 수년에 이르렀으되, 상감께서 끝내 허락치
    않으시니 이럼으로 민씨 일문이 보존이 되었던 것이다. 장씨 상의를 스치고 크게 두려워,
    오라비 희재로 더불어 꾀하여 갑술년 무옥을 다시 일으켜 무술이를 죽이0?폐비에게 사약을
    하려고 하니 상감께서 짐짓 그 하는 양을 보시고 궁중 기색을 살피사 망연히 간사한 장씨의
    흉모를 깨달으시어 즉일로 조정을 살피시어, 비위만 맞추는 신하들을 다 물리치시고 예
    신하를 불러 쓰실 새 갑술년 사월 초구일에 비망기를 나리시어 폐하신 중궁의 무죄하심을
    밝히시고, 별궁으로 모시게 하라 하시어 어찰을 나리사 상궁 별감과 중사를 보내시매
    후께서 이르시기를, “죄인이 어찌 외인을 인접하여 감히 어찰을 받으리오.” 하시고 문을
    열지 않으시더니, 연 삼일을 갖가지로 청하니 후 다시 이르시기를, “죄인이 천은을 입어
    일명이 살았은즉 이 집이 죄인의 뼈를 감출 곳이라, 어찌 국명을 받자오며 번화히 사람을
    인접하리오. 사명이 여러 번 나리시니 더욱 불안하여이다,” 굳게 사양하시고 예물을 받지
    않으시니 상감께서 엄지를 민부에게 내리시고, 대신이며 중신들이 문 밖에 청대하고 어찰을
    하루에도 사오 차례씩 내리시니 후께서 마지못해 예복을 입으시고 입대하실 새 사람들이
    대로를 덮어 칠보단장한 궁녀 벌여 섰고, 각국문 대장이 어림군 수천을 거느려 호위하고
    대신과 백관이 시위하여 천기 화창하여 입궐하시니 예의 규모 존중하여 향취 웅비하고 광채
    찬란하여 혜풍이 일고 상운이 피어나니 장안 백성이 영락하여 굿보는 이 길을 메워 한편
    즐기고 한편 옛일을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니 도리어 가례하실 때보다 더 하고, 가마에 흰
    보 덮고 나오실 때 궁인과 선비 통곡하고 따라가던 일을 생각하고 어찌 오늘날이 있을 줄
    알았으리오. 이는 전혀 민후의 원려와 덕망으로 본디 덕을 깊이 쓰시고 고초 중 자신의
    처신을 아름답게 하사 하늘이 감동하심이라, 여러 부인네들 기쁘고 한편 슬퍼 혹 울고 혹
    웃더란다. 상감께서 몹시 반기시나 옛일을 생각하시고 감창하심을 이기자 못하사 용안에
    눈물이 떨어져 용포 소매를 적시니, 좌우 일시에 눈물을 흘려 감히 우러러 뵈옵지 못하였다.
    이 때 희빈이 오래 위를 차지하여 천만 세나 누릴 줄로 알았다가 홀연히 상감께서 뜻밖에
    변하여 폐후를 모셔들이고 복위하심을 듣고, 청천벽력이 일신을 분쇄하는 듯 놀랍고 앙앙
    분통함이 흉즁에 일천 잔나비 뛰노니, 스스로 분을 이기지 못하여 시녀에게 전하여 말하되,
    “내 오히려 곧 위에 있거늘 폐비 민씨 어찌 문안을 아니하리오. 크게 실례하여 방자함이
    심하도다.” 궁녀 이 말을 아뢰니 후께서 어이없어 못 들으신 듯 사기 태연하시고 안색이
    정정하사 답언이 없으시더니, 이 때 상감 후로 더불어 나란히 앉아 계시다가 후의 기색을
    살피시고 지난날이 다 맹랑하여 스스로 혼임함을 부끄럽게 여기시고 장씨의 방자함을
    통한하사, 즉시 외전에 나오사 그 날로 전지하셔 여양 부원군을 복관작하시고, 후의 삼촌
    좌의정 벽동 귀양지에서 죽은 고로 벼슬을 추정하시고, 그 자손에 옛 벼슬을 조시고 새
    벼슬을 높이시며, 장씨 아비는 삭탈 관직하시고 빈의 옥책을 깨치시고, 장휘재를 제주도로
    귀양 보내라 하시고, 내시에게 전교하사 빈을 작은 집으로 내려오게 하시고 바삐 나리라
    하니, 장씨 대오하여 크게 꾸짖어 말하되, “내 만민이 어미요, 세자 있거늘 어찌 너희가
    무례히 굴리오. 내 기어이 폐비의 절을 받고 말리라.” 악득을 이기지 못해 세자를 난타하니,
    상감께서 들으시고 친히 납시니, 바야흐로 장씨의 밥상을 받았다가 상감을 뵈옵고 독약이
    표동하여 얼굴이 푸르락붉으락 하여 말하기를, “하루라도 내 위에 있거늘 폐비 문안을 아니
    하며, 내 무슨 죄로 하당에 나리라 하시나이까?” 상감께서 진노하사 이르시기를, “어찌 감히
    문안을 받으며 또 어찌 이 자리를 길게 주리리오.” 장씨 문득 밥상을 박차고 발악하여
    말하되, “세자가 있으니 내 어찌 이 자리를 못 가지리오. 나려도 부디 민씨의 절을 받고
    나리리다.” 수라상이 산산이 헤쳐 방안에 흩어지니 상감께서 대노하시어, “빨리 장씨를
    끌어내리라.” 하시니, 궁중이 다 상감의 뜻을 알고 황황히 달려들어 장씨를 끌어 업고
    총총히 단에 내려 소당으로 가니 장씨 발악하여 중궁전을 욕함을 마지않으니, 상감께서
    즉시 내치시고 싶으되, 세자의 낯을 보아 내버려두시니라. 장시 외람히 곤위에 있어 일국의
    존경을 받고 상감의 총애를 받다가 졸지에 폐출하여 희빈으로 나리니 앙앙 분노하고 중궁을
    원망하니 불순한 언사 포악하고 화를 이기지 못하여 세자를 볼 적마다 무수히 난타하여
    마침내 골병이 드니, 상감께서 대노하사 세자를 영숙궁에 가지 못하게 하시고 정전에 놀게
    하시나 후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고로 희빈을 생각지 않으시었다. 장씨 오매로 교아
    절치하여 원수를 갚으리라 하고 요사스런 무녀와 흉악한 술사를 얻어 주야로 모의하여
    영숙궁 서편에 신당을 배설하고 각색 비단으로 흉악한 귀신을 만들어 앉히고 후의 성씨
    생월 생시를 써서 축사를 만들어 걸고 궁녀에게 화살을 주어 하루에 세 번식 쏘아 종이가
    헤지면 비단으로 염습하여 중전 신체라 하고 못 가에 묻고, 또 다시 화상을 걸고 쏘아 이리
    한 지 삼 년이 되나, 후의 신상이 반석 같으시니 더욱 앙앙하더니, 희재의 첩 숙정과
    의논하여 흉한 해골을 얻어들여 오색 비단으로 귀신을 만들어 밤중에 정궁 북쪽 섬돌 아래
    가만히 묻고 채단으로 중전의 옷을 일습을 지어서 해골을 가루로 만들어 솜을 뿌려 가지고
    거짓 공손한 체하고 중전께 드리며, 날마다 신당 축원과 요술 방정이 천만가지로 그칠 적이
    없었으니, 예로부터 사불 범정이요, 요불승덕이라 하였으되 액운 불행한 때를 당하여 요얼이
    침노하니 중전께서는 경진년 중추부터 홀연히 옥체 편찮으시어 각별히 극중 하심도 없고,
    때로 한열이 왕래하고 밤중이면 골절을 진통하시다가는 명석 같은 때도 있고 진퇴무상하신
    것이었다.
    궁중이 크게 근심하시고 상감께서 깊이 염려하사 치료하심을 극진히 하시되, 조금도
    효험이 없고 겨울을 지내고 다음해 봄이 되니 후의 백설 같은 기상이 많이 손색 되시니,
    상감께서 전일에 마음 상한 것이 고질이 되심인가 하시어 더욱 뉘우치시고 슬퍼하시며,
    한편 후의 기상이 너무 맑고 빼어나시니 행여 단명하실까 염려하사 마음이 편하지 못하시니
    후께서 불안하시어 매양 아픈 것을 굳이 감추시고 나타내지를 않으시더라. 후께서 장씨가
    드린 옷을 입지는 않으시나 집안에 두고 있는 지라, 요얼이 밖으로 침노하고 또 방안에
    살기가 성하니, 이 해 오월부터 병환이 중하게 되시어 옥체를 가누지 못하시니 상감께서
    크게 근심하사 약청을 배설하고 지성으로 치료하되 추호도 효험이 없고 점점 더하시니 이는
    신상으로 솟아나신 병환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낮이면 맑은 정신으로 들으셨다가도 밤마다
    더욱 중하시어 헛소리를 무수히 하시니 증세 고이하나 그 연유를 알지 못하더니 칠월에
    병중 더하여 명이 조석에 달려 있는지라, 궁중이 진동하고 슬프기 그지없어 천신께 빌며
    사찰에서 재를 올리되 세자께서 친히 임하시니 이토록 정성이 아니 미친 곳이 없으나
    병환은 더욱 중해질 뿐이었다. 상감께서는 침식을 폐하시고 근심하사 용안이 초췌하시니, 후
    미령하신 경황 중에도 몹시 염려하사 도리어 상감을 위로하시더라. 후 스스로 회춘하지
    못할 둘 아시고 의원을 물리치고 좌우 호탕하던 시녀를 돌아보아 이르시기를, “내 이제
    살지 못하리니 너희 지성을 무엇으로 갚으리오. 너희들은 내 삼년상 후 각각 돌아가 부모
    동생을 보고 인륜을 갖추어 살다가 타일에 지하에서 만나기를 기약하자.” 좌우 천만 뜻밖의
    하교를 듣고 망극하여 일시에 낯을 가리고 체읍하니 눈물이 쏟아지고 목이 메어 능히
    대답을 못하더라. 후께서 명하사, 전각을 소세하며 향을 피우고 궁인에게 붙들려 세수를
    정히 하시고, 양치질을 하시고 새 옷과 새 금침을 갈아입으시고 궁녀를 시켜 상감을
    청하시니, 상감께서 들어오시며 후께서 의상을 정돈하시고 좌우로 붙들려 앉아 계시매
    궁인들이 다 망극하여 슬퍼 마지않더라. 상감께서 당황하사 후 곁에 가까이 다가앉으시며
    이르시기를, 후께서 문득 눈물을 흘리며 아뢰기를, “신이 곤 위에 있어 성상 은혜로 영복이
    극진하오니 한하올 바 없사오나, 다만 슬하에 혈육이 없이 그림자 외롭고 성상의 큰 은혜를
    만분지일도 갚지 못하고 오히려 천심을 손상케 하고 오늘날 영결을 짓사오니,
    구천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오니,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박명한 신을 생각지 마시고
    길이 평안하소서.” 상감께서 크게 설위하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르시기를, “후께서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시느뇨.” 말씀을 이루지 못하사 용포 소매를 적시니, 후께서 눈물을 흘리시고
    길게 한숨지며 말씀하시기를, “성상은 옥체는 보중하사 돌아가는 첩심을 평안하게 하시고
    만민의 폐를 덜으소서.” 세자와 왕자를 어루만지시고 후궁과 비빈을 나오라 하사 가로되,
    “내 명운이 불행하여 육 년 고초를 겪고 다시 성은이 망극하사 곤 위에 올라 세자 왕자와
    더불어 조용히 여생을 마칠까 하였더니 오늘날 돌아가니 어찌 박명하지 않으리오. 그대들은
    나의 박명함을 본받지 말고 성상을 모셔 만수무강하라.” 하시며 겨우 팔 세 되신 연잉군의
    손을 잡고 이르시기를, “이 애 영특하여 내 극히 사랑하였더니 장성함을 보지 못하니
    한이로다.”하시고 비빈을 물러가게 하시고, 오라버님 내외와 조카 내 사촌을 안견하사 오열
    비창하심을 금하지 못하시니, 민공 등이 엎드려 슬피 물며 말을 못하는지라. 삼감께서 이
    거동을 보시고 가슴이 미어지고 꺾어지는 듯 차마 보지 못하시더라. 좌우 미음을 올리니
    상감께서 친히 받아 눈물을 머금고 권하시니 후께서 크게 탄식하며 두어 번 받아 마시고,
    상감께서 친히 부축하여 베개를 바로 우이시니, 이윽고 창경궁 경춘전에서 엄연 승하하시니
    때는 팔월 십사일 사시요, 복위하신 지 팔 년이요, 춘추 삼십 오 세이셨다. 궁중에 곡성이
    진동하여 귀신이 우는 듯, 궁녀 서로 머리를 맞대어 망망히 따르고자 하니, 하물며
    상감께서랴. 손으로 난간을 두드리시며 하늘을 우러러 방성통곡하시니 용안에 두 줄기
    눈물이 비오듯 하사 용포가 물을 부은 것 같이 젖었으니 궁중이 차마 우러러 뵈옵지
    못하더라. 한중록
    앞 부분을 생략하고, 사도세자(경모궁)의 출생에서부터 화를 당할 때까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신년 (영조 4년)후로 왕세자가 오래 비었으매 영조께서 주야로 초조하게
    극심하시다가 을묘년 영조 11년 정월, 선희궁께서 경모궁 사도세자 을 탄생하시니
    영조께서와 인원, 정성 두 성모께서 종사의 큰 경사를 기뻐하심이 비할 데 없고, 나라의
    신민이 또한 기뻐서 춤을 추었다. 경모궁께서 태어나시니 천성과 용모가 비범하게
    특이하셨으니 궁중에 기록하여 전하는 바를 보면, 나신 지 백일 안에 기이한 일이 많으시고,
    넉 달만에 걸으시고 여섯 달 만에 영조께서 부르시는 데 대답하시고, 일곱 달만에
    동서남북을 알아서 가르키고, 두 살에 글자를 배워서 육십여 자를 쓰시고 세 살에 과자를
    드리매 수자 복자 박은 것을 골라 잡수시고 팔괘 박은 것은 따로 골라 놓고 잡숫지
    않으므로 어떤 신하가, “잡수소서.” 하고 권하였더니, “싫다. 팔괘는 먹지 않겠다.” 하고
    잡숫지 않았다. 그 후에 태호 복희씨가 그려진 책을 높이 들라 하고 절하시고 천자문을
    배우시다가, 사치할 치와 부할 부자에 이르러서 치자를 짚으시고 입으신 옷을 가르켜서
    이것을 사치라 하시고 영조 어리실 때 쓰시던 감투에 칠보 얽힌 것이 있어서 쓰시게 했으나
    이것도 사치라 하고 쓰지 않으셨다. 돌 때에 새 옷을 입으시게 하매 “사치스러워서 남
    부끄러워 싫다.” 하고 입지 않으셨다. 세 살 때 어느 신하가 명주와 무명을 놓고, “어느
    것이 사치요, 어느 것이 사치 아니오니까?” 하고 물었다. 대답하시기를, “명주는 사치하고
    무명은 사치하지 않다.” “어느 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싶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무명을
    가르키시며, “이것이 좋을 것이다.”하셨다. 이것으로 보더라도 그 어른께서 탁월하시던 성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체구가 커서 웅장하시고 천것이 효우 총명하셨으매, 만일 부모님 옆을
    떠나지 말게 하고 모든 일을 교도하여 자애와 교육을 명행하여 드렸더라면 덕기의 성취가
    놀라웠을 것을, 그렇지 못하여 일찍이 각각 멀리 떠나 계신 일로 인연하여 사태가 역전하여
    작은 일이 크게 되어, 필경은 말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이 천수의 불행과
    국운의 망극함이니 인력으로는 어찌하지 못할 일이려니와 나의 지극히 원통함이야 어찌
    측량하리오. 영조께서 처하시는 데와 선희궁 처소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두 분께서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으시고 날마다 오셔서 머무셨다 하나, 어찌 한 집 속에서 조석으로
    양육하시며 끊임없이 교훈하심과 같으리오. 어찌하신 생각에서인지 귀중하신 종사를
    의탁하실 아드님을 겨우 얻으셨으니 부모측에서 양육하며 성취하시게 하지 않고, 처소가
    멀리 떨어져서 인사 아실 즈음부터 자연 떠나심이 많고 모이심이 적으니 조석에 대하시는
    사람은 환신, 궁첩이요, 들으시는 것이 항간의 잡담뿐이니, 이것이 벌써 잘 되지 못한
    장본이며, 어찌 슬프고 원통하지 않으리오. 어렸을 때에 이미 덕기가 이상하시고 행동에
    법도가 있어서 상도에 벗어남이 없으시고, 기상이 엄중하시고 말이 없고 침착하셔서 뵈옵는
    사람이 어른 임금을 모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게 여겼다. 이러하신 천품과 자질로써 부모
    옆을 떠나지 않으시고 부왕께서 정사의 여가에 글 읽고 일 배우심을 옆에서 몸으로 가르쳐
    주시고, 모빈께서도 이 아드님 성취하시는 것이 당신의 으뜸가는 소원이시니, 손 밖에
    내보내지 마시고 매사를 가르치셔서 흔연히 사이가 없었더라면 어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리오. 처음 당하는 참변이라 슬프고 애닲은 것이, 하나는 어리신 아기를 저승전에
    멀리 두심이요, 둘은 괴이한 나인들을 들이신 연고이매 이는 여편네의 잔소리가 아니라
    사실의 시초를 대략 기록한다. 처음엔 영조께서 지극하신 자애가 비할 데 없으셔서 서오
    세까지도 저승전에 오셔서 주무시고 계시기를 자주하셔서 자야하심이 틈이 없으시더니,
    국운이 그릇되려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에도 성심이 불언중 격노하시고, 하루 이틀 어찌
    된 줄 모르게 동궁에 머무시는 일이 차차 줄어들게 되었다. 막 자라시는 아기네라 한때만
    가르치지 않고 잘못을 금하지 않으면 달라지기 쉬운 시절에 자연 안 보실 때가 많으니 어찌
    탈이 나지 않으리오. 점점 자라심에 따라 놀기에 열중하게 되었는데 이는 아기네의
    성정이라. 그 때 한 상궁이라 하는 것이 나무와 종이로 큰 탈도 만들고 활과 화살도
    만들어드리며 부채질을 하였으니, 놀기에 팔려서 글은 아니 하시고 놀기만 하다가 부왕께
    꾸중을 들을까, 모친이 아실까 염려하게 되니 자연 부모님 만남을 두려워하게 되고 사이가
    뜨게 된 것이다. 더구나 부자 성품이 다르셔서 영조께서는 영명인효하시며 자세하고
    민첩하신 성품이시고, 경모궁께서는 말이 없이 침중하셔도 행동이 날래지 못하고 민첩치
    못하시니 덕기는 거룩하시나 범사에 부왕의 성품과는 다르셨다. 성시에 물으시는
    말씀이라도 곧 응대하지 못하셔 머뭇머뭇 대답하시고 무엇을 물으실 때에도 당신 소견이
    없는 것이 아니로되,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곧 대답지 못하여 영조께서 매양 갑히
    여기셨는데 이런 일도 또한 큰 화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대저 아이 가르치는 것이 비록
    지존한 터에 나셨더라도 당신 부모를 모시고 가르침을 받자와 부모 스스로가 허물이 없어야
    할 때에 그렇지 못하고, 포대기 시절부터 부모를 떠나고 나인들이 아기 네 스스로 할
    일까지 전부 시중들어서, 심지어 옷고름, 대님 매는 것까지 다하여 드리니 매사를 남에게
    맡기고 너무 편하시기만 하였다. 강연에서 학만을 인접하실 때 글 외는 소리도 엄숙하며
    맑고 크시고 글 뜻도 그릇됨이 없으시니, 뵈옵는 이가 거룩하다 하여 영명이 많이
    나타나시되 갑갑하고 애닲을손, 부왕을 모시고는 어려워서 응대를 민첩하게 못하시는
    일이다. 영조께서 한 번 갑갑하시고 두 번 갑갑하시다가 결국 격분도 하시고 조심도 하시나,
    이럴수록 가깝게 두어서 친히 가르치셔야 지정이 무간하게 될 도리는 생각지 않으시고,
    항상 멀리 떼어 두고서 스스로 잘 되어서 성의에 맞으시기를 기다리시니 어찌 탈이 생기지
    않으리오. 그리하여 점점 서먹서먹하게 지내시다가 서로 보실 때에는 부왕께서는 책망이
    자애에 앞서시고, 아드님께서는 한 번 뵈옵는 것도 조심스럽고 두려우심이 무슨 큰 일이나
    지내는 것 같아서 불언중 부자분 사이가 막히게 되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가깝게 두실
    적은 책문도 힘쓰시고 부자분 사이도 무간하시고 유희도 안하시더니, 멀리 계신 후는
    유희도 도로 하시고 강학도 전일치 못하시니 부자간의 서먹서먹 하신 것도 더 심해졌으니,
    만일 부모님 손 밖에서 내시지만 않았다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으리오. 이 한 가지 일로
    생각하여도 서러운데, 어찌하신 성의인지 아드님을 조용한 때 친근히 앉히시고 진정
    교훈하시는 일이 없으시던가? 모두 남에게만 맡겨 버리고 아는 체하지 않으시다가 항상
    남들 모인 때면 흉보시듯이 말씀하시니 얼마나 답답하리오. 한 번은 인원 왕후도
    내려오시고 여러 옹주와 월성, 금성 두 부하도 들어오고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나인을
    명하셔서, “세자 가지고 노는 것을 가져오라.” 하시고 여러 사람이 보게 하여 무안하게
    하시고, 강학에 대해서도 여러 신하가 많이 모인 때에 굳이 부르셔서 글 뜻을 물으시되,
    아기네 자세히 대답하지 못할 대목을 각박히 물으시곤 하셨다. 본대 부왕 면전에서는
    분명히 아시는 것도 쭈볏쭈볏하시는 데 여러 사람 앞에서 어려운 것을 일부러 하시듯이
    물으시니 경모궁께서는 더욱 두렵고 겁이 나서 못하면 남이 보는 좌 중에서 꾸중하시고
    흉도 보셨다. 경모궁께서는 그런 일이 한두 번 만이면 감히 원망하실 것이 아니로되, 당신은
    진정 교훈을 하시지 않는 것을 노엽고 어렵게 여겨서 필경 천성을 잃기에 이르도록 하시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으리오. 본디 경모궁께서는 천질이 넓고 크시며 도량이
    활달하시고, 부왕을 무서워는 하시나 잘못한 일이라도 사실대로 정직하게 아뢰고 일호도
    기망하시는 일이 없으므로 영조께서도 속이지 않는 것은 알고 계셨다.
    기사년 경모궁이 십오 세 되시니 관례하시고 합례를 정하니 그저 기뻐하시고 조용히
    재미를 보시면 좋으실 텐데, 어찌하신 성의이신지 홀연히 대리하실 영을 내리시니, 억만사
    대리 후에 탈이니 어찌 서럽지 않으리오. 영조께서는 공사 중 금부, 형조, 살육 등의 일은
    친히 보시지 않고 동궁께 맡기셨다. 대리를 맡으신 후의 공사는 한 달에 여섯 번 있는
    차대에 보름전 세 번은 대조께서 하시는데 동궁이 시좌하시고, 보름 후 세 번은 소조께서
    혼자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순편하지 못하고 편론이나 하는 상소는 소조께서 혼자 결단하지
    못하여 대조께 묻자오면, 상서가 아랫사람의 일이지 소조께서는 아실 바 아니로되
    격노하셨는데 그것은 소조께서 신하를 잘 조화시키지 못한 탓으로 그런 상소가 나왔다고
    책하셨다. 그리고 그런 상소에 대한 비답도, “그만 일을 결단하지 못한 탓으로 나를
    번거롭게 하니 대리시킨 보람이 없다.” 하시며 꾸중하셨다. 그러나 아뢰지 않으면 또, “그런
    일을 어찌 알리지 않고 왜 자탄할 수 있느냐?” 하고 꾸중하셨다. 이처럼 저리할 일을
    이리하지 않는다 꾸중하시고 이리할 일을 저리하지 않았다 꾸중하셔서 이 일 저 일 다
    격노하여 마땅하지 않게 여기셨다. 심지어는 백성이 추운데 입지 못하고 굶주리거나 날이
    가물거나 천재지변이 있어도 “소조에게 덕이 없어서 이렇다.” 하고 꾸중을 하셨다. 그러므로
    소조께서는 날이 흐리거나 겨울에 천둥을 하거나 하기만 해도 겁을 내게 되므로, 마침내
    사사망념으로 병환이 생기는 줄을 깨닫지 못하시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한 번 꾸중에
    놀라시고 두 번 격노에 겁내시면 아무리 웅위하시고 영장하신 기품이라 한들 한 가지
    일이라도 자유롭게 하실 수 있으리오. 경모궁이 십오 세 되시니 능행을 한 번도 못하시고
    성장하셨는데, 항상 교외 구경을 하고 싶으셨어도 매양 거절하고 못 가시게 하니, 처음에는
    서운하고 섬득하신 것이 점점 성화가 되어서 우실 적도 있었다. 당신이 부모님께 속으로
    본디 정성은 거룩하시건마는 민첩하지 못하신 행동이 정성의 백분지 일도 나타나지 못하니,
    부왕은 그 사정을 모르시고 미안하신 사색은 매양 한 번도 부왕의 관용을 입지 못하시니
    점점 두려운 것이 마침내 병환이 되어서 화가 나시면 푸실 데가 없었다. 그래서 내관과
    나인에게 푸시고, 심지어 내게까지 푸시는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영조께서는
    창의궁에 오래 머무르시고 환궁하지 않으실 때 경모궁께서는 시민당 손지각 뜰의 얼음 위에
    짚자리를 깔고 엎드려서 대죄하시다가 창의궁에 걸어가셔서 또 짚자리를 깔고 엎드려서
    대죄하시고 머리를 돌에 부딪쳐서 망건이 다 찢어지고 이마가 상하여 피가 나왔으니, 이런
    일이 천성의 효성과 본질이 중후하신 것이요, 억지로 꾸민 일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그리하실 즈음에 또 꾸중이 어떠하시리요마는 공손히 도리를 다하시니 변을 당하여 잘
    처리하시기로 영명을 많이 얻으셨다. 경모궁께서 매양 경문 잡설 등을 심하게 보시더니,
    “옥주경을 읽고 공부하면 귀신을 부린다하니 읽어보자.” 하시고 밤이면 읽고 공부하셨다.
    그러더니 과연 깊은 밤에 정신이 아득하셔서, “뇌성보화 천존이 보인다.” 하시고
    무서워하시며 병환이 깊게 드시니 원통하고 슬프다. 십여 세부터 병환이 생겨서 음식
    잡숫기와 몸을 움직이는 것까지 다 예사롭지 않으시더니 옥추경 이후로 자주 기질이
    변화하신 듯이 되어 무서워하시고 옥추 두 글자를 거들지 못한다. 단 오셨을 때는 옥추단도
    무서워서 차치 못하고, 그 확에는 하늘을 퍽 무서워하시고 우레뢰, 벽력벽, 그런 자를 보지
    못하시고 그 전에는 천둥을 싫어하시나 그리 심하지는 않으시더니 옥추경 이후는 천둥 때면
    귀를 막고 엎드려서 다 그친 후에야 일어나시니 이런 일을 부왕과 모친께서 아실까
    질겁하시는 것은 형용하지 못할 일이었다.
    을해년 이월에 역변이 나서 오월까지 영조께서 친히 심판하시니 그 때 역적을 정법하여
    모든 대신들이 늘어서는 때면 동궁을 불러내서 오게 하시고 날마다 전파하셔서
    심판하시다가 들어오시면 인정 후나 이 경이 되고 삼사 경이 될 적도 있었으니 하루도
    폐하지 않으시고, “동궁 불러라.” 하시어 가시면 “밥 먹었느냐?” 하고 물으신 후에
    대답하시면, 즉시 그 날 친국하신 일 물으시고 가시려는 것이매, 실은 좋고 길한 일엔
    참례치 못하게 하시고 상서롭지 못한 일에는 참석하게 하시고 잠깐 수작이나 하시면 그러도
    하련마는 날마다 다른 말씀은 한 마디 하시는 일없이 마치 대답시켜서 듣고 귀를 씻고
    가시기 위해서 하루도 폐하지 않고 밤중에 그러시니 아무리 지극한 효심이요, 병 없는
    사람이라도 어찌 싫지 아니하리오, 그 병환의 증세를 생각하면 짜증이 나셔서, “왜
    부르십니까.” 하실 듯 하되 그 병환을 능히 참으시고 날마다 방중이라도 부르시는 때를
    어기지 않으시고 대령하고 계시다가 그 대답을 어기지 않고 하시니 본연의 효성을 알 수
    있다. 그 병환이 이상스러운 것은 처자가 애쓰고 내관이나 나인이 주야에 두려워 지내나
    자모도 자세히 모르시니 부왕께서 어찌 자세히 아실 수 있으리오. 위에 뵈올 적과 신하에
    대하실 적은 보통과 다름없이 예사로우시니 그것이 더욱 답답하고 서러운 일이었다. 병자
    설날에 상으로부터 존호를 받자오시되 경모궁은 참례시키지도 않으셨다. 병화는 더욱
    깊어서 강연도 더듬으시고 취선당 바깥 소주방이 깊고 고요하다 하여 많이 머무르시더니
    오월에 영조께서 홀연 낙선당을 보러 나오시니 그 때 동궁이 세소도 잘 못하시고 의대
    모양이 모두 다정치 않으셨다. 마침 금주가 엄한 때라 술을 잡수셨나 의심하시고
    대노하셔서, “술 드린 이를 찾아내라.” 하시고 경모궁께서 누가 술을 드렸느냐고 엄중히
    물으셨으나 사실로 술 잡수신 일이 없었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이리오. 영조께서는
    아무일이든지 억측으로 생각하시어 엄히 꾸짖으시는 일이 많았다. 그날 경모궁을 뜰에
    세우시고 술 먹은 일을 엄문하시니 실지로 잡수신 일이 없건마는 감히 무서워서 변명을
    at하는 성품이시라 하도 강박히 물으시니 하는 수 없이, “먹었나이다.” 하시니 “누가
    주더나?” 델 데가 없어서 “밖의 소주방 큰 나인 희정이가 주옵더니다.” 하시니 영조께서
    두드리시며. “네 이 금주하는 때 술을 먹아 광패히 구느냐?” 하고 엄책하셨다. 이 때 보모
    최상궁이 원통하여 참을 수 없어서 아뢰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모궁께서는 최상궁을
    꾸짖으셨다. “먹고 아니 먹고 간에 내가 먹었다고 아뢰었으니 자네가 감히 말할 것이
    있는가. 물러가소.” 보통 때는 부왕 앞에서 주저하여 말씀을 못하시더니 그 날은 원통이
    꾸중을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잘하셨던가. 그 때 두려워서 벌벌 떠시던 중에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일이 다행하더니 영조께서 또 격노하셨다. “네 내 앞에서 상궁을
    꾸짖으니 어른 앞에서는 개도 꾸짖지 못하는데 그리하느냐?” “감히 와서 변명을 하기로
    그리 하였습니다.” 얼굴을 낯추어서 아래사람의 도리로 잘하신 일이었다. 그러나 금주령
    하래서 동궁께 술을 드렸다고 희정이를 멀리 귀양보내시고 대신 이하 인견하라 하시고
    춘방관을 먼저 들어가 면담하라 하오시니, 그 날 억울하고 슬퍼서 홧증을 참기 어렵다가
    춘방관이 들어오니 처음으로 호령하셨다. “너희놈들이 부자간에 화하게는 못하고 내가
    이렇게 억울한 말을 들어도 너희들은 말 하나 아뢰지 않고 감히 들어올까 보냐. 다
    나가라.” 춘방관 하나는 누구였는지 모르나 하나는 원인손이었다. 그는 무어라 아뢰고 썩
    나가지 않으니 경모궁께서 화를 내시고 “어서 나가라 ” 하고 쫓아내실 즈음에 촛대가
    거꾸러져서 낙성당 온돌 남창에 닿아 불이 붙었다. 불 잡을 사람은 없고 화세는 급하여
    순식간에 낙선당이 타니 영조께서는 아드님이 성결에 불을 지르신 것이 아닌가 하고 노염이
    십 밴타 더 하셔서 함인정에 제신을 모으시고 경모궁을 부르셔서, “네가 불한당이냐, 불을
    왜 지르느냐?” 하고 호령하셨다.
    그때의 설움이 가슴에 복받쳐서 또 거기서도 그 불이 촛대가 굴러서 난 불이라는 원인을
    여쭙지 않으시고 스스로 방화한 듯이 하시니 절절이 슬프고 갑갑하였다. 그날 그 일을
    지내시고 막히셔서 청심환을 잡수시고 울화를 내리시더닝, ” 아무래도 못살겠다.” 하고
    저승전 앞뜰의 우물로 가서 떨어지려 하시니 그 놀라운 경상과 끔찍한 형용을 어찌 말할 수
    있으리오. 가까스로 구하여 덕성합으로 나오시게 하였다.
    대저 부자분 사이가 좋지 못하신 곡절이 또 있으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신미 동짓달에
    현빈궁 상사나시니 영조께서 효부를 잃으시고 애통하시어 장례에 친히 임하시어 간곡하게
    돌보셨다. 그러는 중 그 곳 시녀 나인이 문녀였는데 상사 후 가까이 하셔서 잉태하고, 그
    오라비는 문성국이란 놈인데 그것을 별감으로 사랑하시고 문녀도 총애하여 계유 삼월에
    옹주를 낳았다. 문성국이 제 무슨 심장으로 동궁께 흉한 뜻을 먹었는지 요악 간흉한 놈이
    아니리오. 부자분 사이가 좋지 못하신 것을 그놈이 알고 그 틈을 타서 부왕의 성의만
    맞추어서 동궁 하시는 일을 전부 염탐해다가 고자질해 올렸다. 동궁 하시는 일을 누가
    사이에서 말할 이 있으리오마는, 성국이는 세력을 믿고 무서운 마음이 없어서 동궁
    액속들이 모두 제 동류이므로 동궁의 사소한 일까지 듣는 족족 대조께 여쭙고, 문녀는
    안으로 모든 소문인즉 다 여쭈니, 모르실 제도 의심하시던 터에 날로 동궁의 험만을
    들으시니 성심이 갈수록 갑갑하게 되실 수밖에 없었다. 국운이 불행하여 요녀와 간적이
    일어난 일이 슬프다.
    병자년 마마병으로 모친 상사를 당하시니 슬프시기도 하고 마음을 많이 쓰시니 병환은
    점점 더하시고 성국이는 듣는 일마다 아뢰어 두 분 사이가 더욱 망극하여다. 그 때 가뭄은
    들고 노염이 장하셔서 엄교가 많으시니 그 밤에 동궁이 덕성합 뜰에서 휘녕전 바라보시고
    슬피 울면서 죽고자 하시던 일을 어찌 다 적으리오.
    그 유월부터 홧증이 더 하셔서 사람 죽이기를 시작하시니 그때 당번 내관 김환채라는
    것을 먼저 죽여서 그 머리를 들고 들어오셔서 나인들에게 보이시니, 내가 그때 사람의
    머리를 벤 것을 처음 보았는데 그 흉하고 놀랍기 이를 것이 어이 있으리오. 사람을
    죽이고야 마음이 조금 풀리시는지 그 때 나인 여럿이 상하니 그 갑갑하기 측량없어 마지
    못하여 선희궁께, “병환이 점점 더하여 이러하시니 어찌 할꼬?” 하고 여쭈니 놀라서 음식을
    끊고 자리에 누워서 근심하시니 또한 망극하니 그저 죽어서 모르고 싶었다.
    정축년 동짓달 변 후에 관희합에서 머무르시더니 무인 삼십 사년 이월에 부왕께서 또
    무슨 일로 불평하시고 동궁 계신 데로 찾아가시니 동궁 하고 계신 것이 어찌 눈에
    거슬리지 않으시리오. 숭문당으로 오셔서 동궁을 부르시니 동짓달 후 처음 만나셨다. 여러
    조건을 많이 꾸중하시고 하신 일을 바로 아뢰라고 추궁하셨다. 경모궁께서는 아무리
    어른들이 아시면 큰 일이 날 줄 아시면서도 어전에서는 당신 하신 일을 바로 아뢰시는
    품이니 이는 천성이 숨김이 없어 그러신지 이상하였다. 그 날도 그 말씀에 대답하시기를,
    “심화가 나면 견디지 못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닭 짐승을 죽이거나 하여야 마음이
    풀립니다.” “어찌하여 그러하냐?” “마음이 상하여 그러합니다.” “어찌하여 마음이
    상하느냐?” “사랑하지 않으시므로 슬프고, 꾸중하시기로 무서워서 화가 되어 그러하오이다.”
    하고 사람 죽인 수를 하나도 감추지 않고 세세히 다 고하였다. 영조께서도 그 때 일시
    천륜이 정이 통하셨던지 마음에 측은하셨는지, “내 이제는 그리 않으마.” 하시고 노염이
    조금 감하시고 경춘전으로 오셔서 나더러 하시기를, “세자가 이러이러 하니 그리할시
    옳으냐?” 하시니 부자간에 그런 말씀이 처음이었다. 하도 뜻밖의 말씀이라 내가 창졸에
    듣잡고 놀라 기뻐하고 감읍하여 눈물을 드리워 아뢰었다.
    “그러옵다 뿐이오리까? 어려서부터 자애를 입삽지 못하와 한 번 놀라고 두 번 놀라서
    심병이 되어 그러하옵니다.” “마음이 상하였다 하는구나.” ” 상하기 이르오리까? 은혜를
    드리시면 그렇지 않으오리다.” 이렇게 여쭈며 서러워서 우니 안색과 말씀이 좋아지셨다.
    “그러면 내가 그리한다 하고, 잠은 어찌 자고 밥은 어찌 먹느냐? 내가 묻는다고 하여라.”
    하셨는데, 그 날이 무인(영조 34년) 이십 칠일이었다. 내가 대저께서 관희합에 가시는 양을
    보고 또 무슨 변이 날까 혼비백산하여 애를 쓰다가 의외의 하교를 받잡고 하도 감격하여
    울며 웃으며 “이리하와 그 마음을 잡게 하시면 오죽 좋겠습니까?” 하고 절하고 손을 비비며
    축수하매 내 거동이 가엾으시던지 온화하게, “그리 하여라.” 하고 가셨다. 이것이 어찌 되신
    성교이신지 희한한 꿈 같았다. 마침 경모궁께서 나를 오라하여 가 뵙고 “왜 묻지도 않으신
    사람 죽인 말씀을 하셨습니까? 스스로 그런 말씀을 하시고 나중에는 남의 탈을 삼으시니
    어찌 답답지 않습니까?” “알고 물으시니 다 말씀드릴 수밖에.” “무엇이라 하시옵더이까?”
    “그리 말라 하시더군.” “이렇게 듣자왔으니 이 후는 부자간이 다행히 좋아지겠습니다.”
    하였더니 홧증을 덜퍽 내시면서, “자네는 사랑하는 며느리라 그 말씀을 다 곧이 듣는가?
    부러 그러하시는 말씀이니 믿을 수 없소. 필경을 내가 죽고 마느니.”
    그러할 제는 병환 계신 이 같지 않고, 아까 부와께서 유연한 천륜으로 말씀하셨으니
    믿잡지 못하오나 한때 그 말씀이라도 감축하여 울었고, 경모궁께서 병환 중 능히 하시는
    밝은 소견을 들으니 어찌 흐뭇하지 않으리오. 대저 하늘이 부자 두 분 사이를 그토록
    하시게 하여 아버님께서는 말고자 하시다가도 누가 시키는 듯이 도로 미움이 생기시고,
    아드님은 속이는 일이 없이 당신 과실을 고하시니 이는 천질의 착함이라 좀 예사로우시면
    어찌 이같이 하시리오. 하늘 뜻이 어찌하여 이토록 만고에 없는 슬픔을 끼치셨는지 애통할
    뿐이다. 이때 의대병이 극심하시니 그 무슨 일인고. 의대병환의 말씀이야 더욱 형편없고
    이상한 괴질이신, 대저 옷을 한가지 입으려 하시면 열 벌이나 이삼십 벌이나 하여 놓으며
    귀신인지 무엇인지 위하여 놓고 혹 불사르기도 하고, 한 벌을 순하게 갈아입으시면 천만
    다행이요, 시종드는 이가 조금만 잘못하면 옷을 입지 못하여 당신이 애쓰시고 사람이 다
    상하니 아니 망극한 병이냐? 어떤 때는 하도 많이 하니 무명인들 동궁 세간에 무엇이
    많으리오. 미처 짓지도 못하고 옷감도 얻지 못하면 사람 죽기가 순식간에 일이니, 아무쪼록
    옷을 해대려도 마음이 쓰이는지라. 부친이 이 말을 들으시고 근심하는 탄식이 무궁하시고,
    내가 애쓰는 일과 사람 상할 일을 민망히 여기시고 그 옷을 이어 주셨다. 그 병환이 육칠
    년에 걸쳐서 극히 성한 때도 있고 좀 진정한 때도 있었다. 그 옷을 입지 못하여 애를
    쓰시다가 어찌하여 조금 증세가 나아서 천행으로 한 벌 입으시면 당신도 다행한 것같이
    여기고 더럽도록 입으셨으니 그 무슨 병이련고. 천백 가지 병 중 옷 입기 어려운 병은
    자고로 없는 병인데 어찌 지존하신 동궁이 이런 병을 들으셨는지 하늘을 불러 알 길이
    없었다. 정성 왕후와 인원 왕후 두 분의 소상을 차례로 무사히 지내고 두어 달은 극심한
    탈은 없이 지나가고 국상 후에 동궁께서 홍릉에 참배하지 못하였으므로 마지못하여
    따라가게 하셨다. 그 해 장마가 지지하다가 거동날 큰비가 쏟아지매 부왕께서 날씨가 이런
    것은 아드님을 데려온 탓이라 하시고 능에 미처 가지 못하여, “도로 들어가라.” 하고 동궁을
    쫓아 돌려보내고 부왕만 가셨다. 동궁께서는 능에 전알하려 하시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셨으니 어찌 섭섭하지 않으시리오. 거동이 잘 다녀오시기를 축수하다가 이 기별을 듣고
    나는 망연 실색하고 이제 들어오시면 짜증을 얼마나 내실까 하고 쩔쩔매고 있었더니
    동궁께서 큰비를 맞고 도로 들어오시니 그 마음이 어떠하시리오. 격기가 올라서 바로 오실
    수 없어 경영고에 들러서 기운을 진정하고 들어오셨다니 그 모양 얼마나 고통스럽고
    걱정스러웠을까? 그런 동굴을 생각하니 그 일은 병들지 않으시더라도 대순의 효도가
    아니고는 섧지 않으실 리 없을 것이다. 선희궁과 나는 서로 마주잡고 울뿐이었다. 당신도
    비관하신 어조로, “점점 살길이 없다.” 하시고 그 후에 옷을 잘못 입고 가서 그런 일이
    났는가 걱정으로 의대 증세가 더 하시니 안타까왔다. 이렇듯 신사년이 되니 동궁의 병환이
    더욱 심해지셨다. 대조께서 이어하신 후에는 후원에 나가서 말타기와 군기 붙이로 소일할까
    하시다가, 칠월 후에는 후원에도 늘 가시니 그것도 심심해서 뜻밖에 미행(몰래 나들이 하는
    일)을 시작하셨다. 처음의 일이라 어이없으니 어찌 다 그 근심을 형용하리오. 병환이 나서면
    사람을 상하고 마셨다. 그 옷시중을 현주의 어미가 들었는데, 신사년 정월에 미행하려고
    옷을 갈아입으시다가 의대증이 발작하여 당신이 총애하시던 것도 잊으시고 그것을 쳐죽이고
    나오셨다. 즉각에 대궐에서 이런 탈이 났으니 제 인생이 가련할 뿐 아니라 제 자녀가
    있으니 어린것들의 정상이 더 참혹하였다. 이렇게 하여 정월 이월 삼월을 미행으로 보내서
    궁 밖 출입이 잦으시니 그 때 내 마음이 얼마나 무섭고 조심스러웠으리오. 경진년 이후
    내관 나인이 동궁께 상한 것이 많으니 기억하지 못하되 뚜렷이 나타난 것은 서경달이니
    내수사 것 더디 거생한 일로 죽이고 출입한 내관도 여럿이 상하고, 선희궁 나인 하나도
    죽어서 점점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장님들도 불러 점을 치시다가 그것들이 말을 잘
    못하면 죽이고 의관이며 역관이며 액속 죽은 것들도 있어서 하루에도 대궐에서 사람 죽는
    것을 여럿 쳐내니 내외 인심이 황황하며 언제 죽을지 몰라서 벌벌 떨었다. 당신의 천질은
    진실로 거룩하시건만 그 착하신 본성을 잃으시고 아주 그릇되시니 이를 어찌 차마
    말하리오. 경진 오월 선희궁이 세손 가례 후 처음으로 세손빈도 보실 겸 아랫대궐에
    내려오셨다. 동궁께서 반갑게 대하심이 과중하셨는데 마음이 영하여 마지막 영결로
    그리하셨는지 모른다. 잡수시는 것과 잔치하는 진상이 거룩하여 과실을 놓게 고이고
    인삼과도 하여 놓고, 수연시를 지으시고 잔을 올리시고 남은 것 없이 받으셨다. 그리고
    후원에 모셔갈 제 가마를 대연 모양으로 하여 권하자, 선희궁께서 마다하시고 억지로
    태우시고 앞에 큰 기를 세우고 풍악을 합치며 모셨다. 그 모양이 당신으로는 극진히
    효행하기는 일이라 선희궁께서는 동궁의 그러시는 것이 병환인 것을 망극히 놀라시고
    거절하셨다.
    선희궁께서는 나를 대하시면 눈물을 흘리시고 두려워하셔 “어찌 할꼬?” 하는 탄식만 하셨
    다. 수일을 머무르시고 올라가시니 어머님도 우시고 아드님도 매우 슬퍼하시니 마지막 영결
    로 그리하셨던가? 갈수록 동궁의 하시는 일이 극도로 낭자하시니, 전후 일이 모두 본심으로
    하신 일이 아니건마는 인사 정신을 모르실 적은 화에 들떠서 하시는 말씀이 칼을 들고 가서
    죽이고 싶다 하시니, 조금이라도 본 정신이 계시면 어찌 이러하시리오. 당신의 팔자가 기구
    하여 천명을 다 못하시고 만고에 없는 참혹한 일을 당하려는 팔자니, 하늘이 아무쪼록 그
    흉악한 병을 지어 몸을 그토록 만들려 하신 것이다. 하늘아 하늘아, 차마 어찌 이리 만드는
    가. 선희궁께서 병으로 그러신 아드님을 아무리 책망하여도 믿을 것이 없으매, 자모되신 마
    음으로 다른 아들도 없이 이 아드님께만 몸을 의탁하고 계시더니 차마 어찌 이 일을 하고자
    하시리오. 처음은 자애를 받잡지 못하여 이같이 되신 것이 당신의 종신지통이 되어 계시나,
    이미 동궁의 병세가 이토록 극심하고 보모를 알지 못할 지경이니 사정으로 차마 못하여 미
    적미적하다가 마침내 증세가 위급하여 물불을 모르고 생각지 못할 일을 저지르게 되시면 사
    백 년의 종사를 어찌하리오. 당신의 도리가 옥체를 보호 하옵는 대의가 옳고, 이미 병이 할
    수 없으니 차라리 몸이 없는 것이 옳고, 삼종(효종, 현종, 숙종) 혈맥이 세손께 있으니 천만
    번 사랑하여도 나라를 보존하기가 이밖에 없다 하시고 십삼 일 내게 편지하시되, “어젯밤
    소문이 더욱 무서우니 일이 이리 된 후는 내가 죽어 모르거나, 살면 세손을 구해서 종사를
    붙드는 것이 옳으니 내가 살아서 빈궁을 다시 볼 것 같지 않소.” 하셨다. 내가 그 편지를 잡
    고 울었으나 그 날에 큰 변이 날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오. 그 날 아침에 대조께서 무슨 전
    좌 나오려 하시고 경현당 관광청에 계셨는데, 선희궁께서 가서 울면서 아뢰되, “큰 병이 점
    점 깊어서 바랄 것이 없사오니 소인이 모자의 정리에 차마 이 말씀을 못 하올 일이오나, 옥
    체를 보호 하옵고 세손을 건져서 종사를 평안히 하옵는 일이 옳사오니 대처분을 하옵소서.”
    하고, 또 이어서 말씀하시되, “부자지정으로 차마 이리하시나 병이니 병을 어찌 책망하오리
    까? 처분은 하시되 은혜는 끼치셔서 세손 모자를 평안하게 하옵소서.” 하시니, 차마 그 아내
    로 처하여 이것을 옳게 하신다고 못하나 일인즉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내가 따라 죽어서
    모르는 것이 옳되 세손을 위해 차마 결단하지 못하고 다만 망극한 운명을 서러워할 뿐이었
    다. 대조께서 들으시고 조금도 지체하시지 않고 창덕궁 거동령을 급히 내리셨다. 선희궁께서
    사정을 끊고 대의로 말씀을 아뢰시고 가슴을 치고 기절할 듯이 당신 계신 양덕당으로 가서
    음식을 끊고 누워 계시니 만고에 이런 정리가 어디 있으리오. 그 날이 임오년(영조 38년) 윤
    오월 열 이틀이었다. 그 날 아침 들보에서 부러지는 듯이 굉장한 소리가 나니 동궁이 들으
    시고, “내가 죽으려나 보다. 이게 왠일인고.” 하고 놀라셨다. 동궁은 부왕의 거동령을 듣고
    두려워서 아무 소리 없이 기계와 말을 다 감추어 흔적없이 하라 하시고 교자를 타고 경춘전
    뒤로 가시며 나를 오라고 하셨다. 근해에 동궁의 눈에 사람이 보이면 곧 일이 나기 때문에
    가마 뚜껑을 하고 사면에 휘장을 치고 다니셨는데, 그 날 나를 덕성합으로 오라 하셨다. 그
    때가 오정쯤이나 되었는데 홀연히 무수한 까치 떼가 경춘전을 에워싸고 울었다. 이것이 무
    슨 징조일까 괴이하였다. 세손이 환경전에 계셨으므로 내 마음이 황망중 세손의 몸이 어찌
    될지 걱정스러워서 그리 내려가서 세손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 천만 당부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거동이 웬일인지 늦어서 미시 후에나
    휘녕전으로 오신다는 말이 있었다. 그 때 동궁은 나를 덕성합으로 오라 재촉하시기에 가보
    니, 그 장하신 기운과 언짢은 말씀도 않으시고 고개를 숙여 깊이 생각하시는 양 벽에 기대
    어 앉으셨는데, 안색이 놀라서 핏기가 없이 나를 보셨다. 응당 홧증을 내고 오즉 하시랴. 내
    목숨이 그 날 마칠 것도 스스로 염려하여 세손을 경계 부탁하고 왔었는데 생각과 다르게 나
    더러 하시는 말씀이, “아무래도 이상하니, 자네는 잘 살게 하겠네. 그 뜻들이 무서워.” 하시
    기에 내가 눈물을 드리워 말없이 허황해서 손을 비비고 앉았었다. 이때 대조께서 휘녕전으
    로 오셔서 동궁을 부르신다는 전갈이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하자” 는 말도 “달아나자”
    는 말씀도 않고 좌우를 치지도 않으시고 조금도 홧증 내신 기색도 없이 썩 용포를 달라 하
    여 입으시더니, “내가 학질을 앓는다 하려 하니 세손의 휘항(남바위와 같은 방한모)을 가져
    오너라.” 하셨다. 내가 그 휘항은 작으니 당신 휘항을 쓰시라고 하였더니 뜻 밖에도 하시는
    말씀이, “자네가 참 무섭고 흉한 사람일세. 자네는 세손 데리고 오래 살려고 하기에 오늘 내
    가 나가서 죽을 것 같으니 그것을 꺼려서 세손 휘항을 안 주려고 하는 심술을 알겠네.” 하
    시지 않는가. 내 마음은 당신이 그 날 그 지경에 이르실 줄은 모르고 이 일이 어찌 될까 사
    람이 설마 죽을 일이요, 또 우리 모자가 어떠하랴 하였는데 천만 뜻밖의 말씀을 하시니 내
    가 더욱 서러워서 세자의 휘항을 갖다 드렸다. “그 말씀이 하도 마음에 없는 말씀이니 이
    휘항을 쓰소서.” “싫다. 꺼려하는 것을 써 무엇할꼬.” 하시니 이런 말씀이 어찌 병드신 이
    같으며, 어이 공순히 나가려 하시던가. 모두 하늘이 시키는 일이니 슬프고 원통하다. 그러할
    제 날이 늦고 재촉이 심하여 나가시니 대조께서 휘녕전에 앉으시어 칼을 안으시고 두드리시
    며 그 처분을 하시게 되니 차마 망극하여 이 경상을 내가 어찌 기록하리오. 섧고 섧도다. 동
    궁이 나가시며 대조께서 엄노하시는 음성이 들려 왔다. 휘녕전과 덕성합이 멀지 않아서 담
    밑으로 사람을 보내서 보니 벌써 용포를 덮고 엎드려 계시더라 하니, 대처분이신 줄 알고
    천지가 망극하여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였다. 거기 있는 것이 부지러워서 세손 계신 데로 와
    서 서로 붙잡고 어찌할 줄 몰랐더니, 신시(오후 4시 전후) 쯤 내관이 들어와서 밖 소주방에
    있는 쌀 담는 궤를 내라 한다. 이것이 어찌 된 말인지 황황하여 내지 못하고, 세손궁이 망극
    한 일이 있는 줄 알고 뜰 앞에 들어가서, “아비를 살려 주업소서.” 하니, 대조께서 “나가라.”
    하고 엄하게 호령하셨다. 세손은 할 수 없이 나와서 왕자재실에 앉아 있었는데, 그 때 정경
    이야 고금 천지간에 없으니 세손을 내어 보내고 천지가 개벽하고 일월이 어두웠으니 내 어
    찌 일시나 세상에 머무를 마음이 있으리오. 칼을 들고 목숨을 끊으려 하였으나 옆의 사람이
    빼앗아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죽고자 하되 칼이 없어서 못하였다. 숭문당에서 휘녕전
    나가는 건목문 밑으로 가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다만 대조께서 칼 두드리시는 소리와 동
    궁께서, “아버님 아버님, 잘못하였으니 이제는 하랍시는 대로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다 들
    을 것이니 이리 마소서.” 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소리를 들으니 내 간장이 마디마디 끊
    어지고 앞이 막히니 가슴을 아무리 두드린들 어찌하리오. 당신의 용력과 장기로 궤에 들어
    가라 하신들 아무쪼록 들어가지 마실 것이지 왜 필경 들어가셨는가? 처음엔 뛰어나오려 하
    시다가 이기지 못하여 그 지경에 이르시니, 하늘이 어찌 이토록 하였는가? 만고에 없는 설
    움뿐이며, 내 문 밑에서 통곡하여도 응하심이 없었다. 집으로 나와서 나는 건넌방에 눕고,
    세손은 내 중부와 오라버님이 모셔 나오고, 세손빈궁은 그 집에서 가마를 가져다가 청연과
    한데 들려 나오니 그 정상이 어떠하리오. 나는 자결하려다가 못하고 돌이켜 생각하니 십일
    세 세손에게 첩첩한 고통을 남긴 채 내가 없으면 세손이 어찌 성취하시리오. 참고 참아서
    모진 목숨을 보전하고 하늘만 부르짖으니 만고에 나 같은 모진 목숨이 어디 있으리오. 세손
    을 집에 와서 만나니 어린 나이에 놀랍고 망극한 경상을 보시고 그 서러운 마음이 어떠하리
    오. 놀라서 병날까, 내가 망극히 함을 이기지 못하고, “망극 망극하나 다 하늘이 하시는 노
    릇이니, 네가 몸을 평안히 하고 착하여야 나라가 태평하고 성은을 갚사올 것이니, 설움 중이
    나 네 마음을 상하지 말라.” 하고 위로하였다. 이십 일 신시쯤 폭우가 내리고 뇌성도 하니,
    뇌성을 두려워하시던 일이나 어찌 되신고 하는 생각 차마 형용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이 음
    식을 끊고 굶어 죽고 싶고 깊은 물에도 빠지고 싶고, 수건을 어루만지며 칼도 자주 들었으
    나 마음이 약하여 강한 결단을 못하였다. 그러나 먹을 수가 없어서 냉수도 미음도 먹은 일
    이 없으나 내 목숨 지탱한 것이 괴이하였다. 그 이십 일 밤에 비오던 때가 동궁께서 숨지신
    때던가 싶으니, 차마 어찌 견디어 이 지경이 되셨던가. 그저 온 몸이 원통하니 내 몸 살아난
    것이 모질고 흉하다.
    선희궁이 마지못하여 그렇게 아뢰어서 대처분은 하시려니와, 병환 때문에 마지못해서 하
    신 일이라 애통하여 은혜 더하시고 복제나 행하실까 바라왔더니, 성심이 그 처분으로도 성
    노를 풀지 못하시고 동궁께서 가깝게 하시던 기생과 내관 박필수 등과 별감이며 장인이며
    부녀들까지 모두 사형에 처하시니 이는 당연한 일이오시니 감히 무슨 말을 하리오. 슬프고
    슬프도다. 모년 모월 일을 내 어찌 차마 말을 하리오. 천지가 맞붙고 일월이 빛을 잃고 캄캄
    해지는 변을 만나 내 어찌 일시나 세상에 머무를 마음이 있으리오. 칼을 들어 목숨을 끊으
    려 하였더니 곁의 사람들이 칼을 빼앗음으로 인하여 뜻 같지 못하고, 돌이켜 생각하니 십
    일 세 세손에게 첨첩한 큰 고통을 끼치지 못하겠고 내가 없으면 세손의 성취를 어찌하리요.
    참고 참아서 모진 목숨을 보전하고 하늘만 부르짖었다. 그 때 부친이 나라의 엄중한 분부로
    동교에 물러나서 근신하고 계시다가 사건이 일단락 된 후에 다시 들어오시니 그 무궁한 고
    통이야 누가 감당하리오. 그날 실신하고 쓰러지니 당신이 어찌 세상에 살 마음 계시리요마
    는, 내 뜻과 같아서 오직 세손을 보호하실 정성만 계셔서 죽지 못하시니 이 뜨거운 정성이
    야 귀신이나 알지 누가 알리오. 그 날 밤에 내가 세손을 데리고 사저로 나오니 그 망극하고
    창황한 정경이야 천지도 응당 빛을 변할지니 어찌 말로 형용하리오. 선왕께서 부친께, “네가
    보전하여 세손을 보호하라.” 하고 분부하셨다. 이 성교 망극지중하나 세손을 위하여 감읍함
    이 측량없고 세손을 어루만지며, “착한 아들이 되어 선친께 효도하고 성은을 갚으라.” 하고
    경계하는 슬픈 마음이 또 어떠하리오. 그 후 성교로 인하여 새벽에 들어갈 때에 부친께서
    내 손을 잡으시고 중마당에서 실성 통곡하시며, “세손을 모셔 만년을 누리사 노경의 목록이
    양양하소서.” 하고 우셨으니, 그 때의 내 슬픔이야 만고에 또 있으리오. 인산전에 선희궁께
    서 나를 와 보시니 가없이 원통하신 설움이 또 어떠하시리오. 노친께서 슬퍼하심이 지나치
    시니 내가 도리어 큰 고통을 참고 우러러 위로하되, “세손을 위하여 몸을 버리지 말으소서.”
    하옵더니, 장례 후에 윗대궐로 올라가시니 나의 외로운 자취가 더욱 의지할 곳 없었다. 팔월
    에야 선대왕께 뵈오니 나의 슬픈 회포가 어떠하리오마는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고 다만, “모
    자 함께 목숨을 보전함이 모두 성은이로소이다.” 하고 울며 아뢰었다. 선대왕께서 내 손을
    잡고 우시면서, “네 그러한 줄 모르고 내 너 보기가 어렵더니 네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하니
    아름답다.” 하는 말씀을 듣자오니, 내 심장이 더욱 막히고 모질게 살아 남아야 한다는 생각
    이 더욱 강해졌다. 또 아뢰기를, “세손을 경희궁으로 데려다가 가르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네가 떠나기를 견딜까 싶으냐?” 하시기에, 내가 눈물을 흘리고 “떠나서 섭섭한 것은 작은
    일이요, 위를 모시고 배우는 것은 큰일이옵니다.” 하고 세손을 경희궁으로 올려 보내려 하니
    모자가 떠나는 정리 오죽하리오. 세손이 차마 나를 떨어지지 못하고 울고 가시니 내 마음이
    칼로 베는 듯 참고 지냈다. 선대왕께서 세손을 사랑하심이 지극하시고 선휘궁께서 아드님
    정을 세손에 옮기셔서 매사를 돌아보시고 한 방에 머무시면서 새벽이면 밝기 전에 깨워서
    “글 읽으라.”하고 내보내셨다. 칠 십 노인이 한가지로 일찍 일어나셔서 조반을 잘 보살펴 드
    리니, 세손이 이른 음식을 못 잡수시되 조모님 지성으로 억지로 자신다 하니 선희궁의 그때
    의 심정을 어찌 또 헤아리리오. 그해 구월에 천추절을 만나니 내가 몸을 움직일 기운이 없
    었으나 상교로 인하여 부득이 올라가니 이름 지으시고 현판을 친히 써 주시며, “네 효성을
    오늘날 갚아주노라.” 하셨다. 내가 눈물을 드리워 받잡고 감히 당치도 못하고 또 불안해 하
    더니 부친이 들으시고 감축하시오 집안 편지에 매양 그 당호를 써서 왕래하게 하시더라. 조침문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께 고하노니, 인간 부년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바이
    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 칠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오.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과 나의 회
    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하노라. 연전에 우리 시삼촌께옵서 동지상사 낙점을 무르와 북경을
    다녀오신 후에, 바늘 여러 쌈을 주시거늘, 친정과 원근 일가에게 보내고, 비복들도 쌈쌈이
    낱낱이 나눠 주고, 그 중에 너를 택하여 손에 익히고 익히어 지금까지 해포되었더니, 슬프
    다. 연분이 비상하여 너희를 무수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연구히 보전하니,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지 아니하리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
    다. 나의 신세 박명하여 슬하에 한 자녀 없고, 인명이 흉완하여 일찍 죽히 못하고, 가산이
    빈궁하여 침선에 마음을 붙여, 널로 하여 시름을 잊고 생애를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
    날 너를 영결하니, 오호 통재라, 이는 귀신이 시기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아깝다 바늘
    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의 명물이요, 철
    중의 쟁쟁이라. 민첩하고 날래기는 백대의 협객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의 충절을 듣는 듯
    한지라. 능라와 비단에 난봉과 공작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함은 귀신이 돕는 듯하
    니, 어찌 인력이 미칠 바리오. 오호 통제라, 자식이 귀하나 손에서 놓일 때도 있고, 비복이
    순하나 명을 거스를 때 있나니, 너의 미묘한 재질이 나의 전후에 수응함을 생각하면, 자식에
    게 지나고 비복에게 지나는지라. 천은으로 집을 하고, 오색으로 파란을 놓아 겉고름을 채였
    으니, 부녀의 노리개라. 밥먹을 적 만져 보고 잠잘 적 만져 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
    름 낮에 주렴이며, 겨울 밤에 등잔을 상대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 갈 적에, 수비가 상응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가 무궁하다. 이생에 백년 동거하렸더니,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 금년 시월 초십일 술시
    에, 희미한 등잔 아래서 관대 깃을 달다가 무심중간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바늘이여,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이 아득하고 혼백이 산란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 골을 깨쳐 내는 듯, 이윽도록 기색혼절 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편작의 신술로도 장생불사 못 하였네. 동네장인에게 때이런들 어찌 능히
    때일쏜가. 한 팔을 베어 낸 듯, 한 다리를 베어 낸 듯, 아깝다 바늘이여, 옷섶을 만져 보니,
    꽂혔던 자리 없네. 오호 통제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한 너를 마치니, 백인이 유아
    이사라, 누를 한하며 누를 원하리오. 능란한 성품과 공교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오. 절묘한 의형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는 심회가 삭막하다. 네 비록 물건
    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과 일시 생사
    를 한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

    의유당 관북 유람 일기
    행여 일출을 못 볼까 노심초사하여, 새도록 자지 못하고, 가끔 영재를 불러 사공더러 물
    으라 하니, “내일은 일출을 쾌히 보시리라 한다.”하되 마음에 미쁘지 아니하여 초조하더니,
    먼 데 닭이 울며 연하여 자초니, 기생과 비복을 혼동하여 어서 일어나라 하니, 밖에 급창이
    와, ” 관청 감관이 다 아직 너모 일찍 하니 못 떠나시리라 한다.”하되, 곧이 아니 듣고 발발
    이 재촉하여, 떡국을 쑤었으되 아니 먹고, 바삐 귀경대에 오르니 달빛이 사면에 조요하니,
    바다이어제 밤도곤 회기 더 하고, 광풍이 대작하여 사람의 뼈를 사못고, 물결치는 소래 산악
    이 움직이며, 별빛이 말곳말곳하여 동편에 차례로 있어 새기는 멀었고, 자는 아해를 급히 깨
    와 왔기 치워 날치며 기생과 비복이 다 이를 두드려 떠니, 사군이 소래하여 혼동 왈, “상없
    이 일찍이 와 아해와 실내다 큰 병이 나게하였다.”하고 소래하여 걱정하니, 내 마음이 불안
    하여 한 소래를 못 하고 김히 치월하는 눈치를 못하고 죽은 듯이 앉았으되, 날이 샐 감망이
    없으니 연하여 졍재를 불러, “동이 트느냐?” 물으니, 아직 멀기로 연하여 대답하고, 물 치는
    소래 천지 진동하여 한풍 끼치기 더욱 심하고, 좌우 신인이 고개를 기울여 입을 가슴에 박
    고 치워 하더니, 마이 익한 후, 동편의 성쉬 드물며, 월색이 차차 열워지며, 홍색이 분명하
    니, 소래하여 시월함을 부르고 가마 밖에 나서니, 좌우 비복과 기생들이 옹위하여 보기를 죄
    더니, 이윽고 날이 밝으며 붉은 기운이 동편 길게 뻗쳤으니, 진흥 대단 여러 필을 물 우희
    펼친 듯, 만경창파가 일시에 붉어 하늘에 자욱하고, 노하는 물결 소래 더욱 장하며, 홍전 같
    은 물빛이 황홀하여 수색이 조요하니 차마 끔찍하더라. 붉은빛이 더욱 붉으니, 마조 선 사람
    의 낯과 옷이 다 붉더라. 물이 굽이져 치치니, 밤에 물치는 굽이는 옥같이 희더니, 즉금 물
    굽이는 붉기 홍옥 같하야 하늘에 닿았으니, 장관을 이를 것이 없더라. 붉은 기운이 퍼져 하
    늘과 물이 다 조요하되 해 아니 나니, 기생들이 손을 두드려 소래하여 애달와 가로되, “이제
    는 해 다 돋아 저 속에 들었으니, 저 붉은 기운이 다 푸르러 그름이 되리라.” 흔공하니, 낙
    막하여 그저 돌아가려 하니, 사군과 숙씨셔, “그렇지 아냐, 이제 보리라.” 하시되, 이랑이, 차
    섬이 냉소하여 이르되, “소인 등이 이번뿐 아냐, 자로 보았사오니, 어찌 모르리이까. 마누하
    님, 큰 병환 나실 것이니, 어서 가압사이다.” 하거늘, 가마 속에 들어앉으니 봉의 어미 악써
    가로되, “하인들이 다 하되, 이제 해 일으려 하는데 어찌 가시리요. 기 생 아해들은 철 모르
    고 즈레 이렁 구는다.” 이랑이 박장 왈, “그것들은 바히 모르고 한 말이니 곧이듣지 말라.”
    하거늘, 돌아 사공드려 물으라 하니, “사공려 오늘 일출이 유명하리란다.” 하거늘, 내도로 나
    서니, 차섬이, 보배는 내 가마에 드는 상 보고 몬저 가고, 계집 종 셋 몬저 갔더라. 홍색이
    거룩하여 붉은 기운이 하늘을 뛰노더니, 이랑이 소래를 높이 하여 나를 불러, :저기 물 밑을
    보라.” 외거늘, 급히 눈을 들으 보니, 물 밑 홍운을 헤앗고 큰 실오리 같은 줄기 붉기 더욱
    기이하며, 기운이 진홍 같은 것이 차차 나 손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블 빛
    같더라. 차차 나오다니, 그 우흐로 적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 호박 구슬 같고, 맑고 통
    랑하기는 호박도곤 더 곱더라. 그 붉은 우흐로 훌훌 움직여 도는데, 처음 났던 붉은 기운이
    백지 반 장 넓이만치 반듯이 비치며, 밤 같던 기운이 해 되어 차차 커가며 큰 쟁반만 하여
    불긋불긋 번듯번듯 뛰놀며, 적색이 온 바다에 끼치며 몬저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해 흔
    들며, 뛰놀기 더욱 자로 하며, 항 같고 독같은 것이 좌유로 뛰놀며, 황홀히 번득여 양목이
    어즐하며, 붉은 기운이 명랑하여 첫 홍색을 헤앗고, 천중에 쟁반 강은 것이 수렛바퀴 같하여
    물 속으로서 치밀어 치듯이 올라붙으며, 항, 독 같은 기운이 스러지고, 처음 붉어 곁을 비추
    던 것은 모여 소혀처로 드리워 물속에 풍덩 빠지는 듯 싶으더라. 일색이 조요하며 물결에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일광이 청량`하니, 만고천하에 그런 장관은 대두할 데 없을 듯하
    더라. 짐작에 처음 백지 반 장만치 붉은 기운은 그 속에서 해 장차 나려고 우리어 그리 붉
    고, 그 회오리밤 같은 것은 진짓 일색을 빠혀 내니 우리온 기운이 차차 가새며, 독 같고 항
    같은 것은 일색이 모딜이 고온고로, 보는 사람의 안력이 황홀하여, 도모지 헛기운인 듯 싶은
    지라.(동명일기) 흥부전
    화설 경상 전라 양도 지경에서 사는 사람이 있느니, 놀부는 형이오, 흥부는 아우라. 놀부
    심새 무거하여 부모 생전 분재 전답을 호로 차치하고, 흥부 같은 어진 동생을 구박하여 건
    너 산 언덕 밑에 내 떠리고 나가며 조롱하고 들어가며 비양하니, 어찌 아니 무지하리. 놀부
    심사를 볼작시면 초상난 데 춤추기, 불붙는 데 부채질하기, 해산한 데 가닭작비, 장에 가면
    억매흥정하기, 집에서 못쓸 노릇핟기, 우는 아해 볼기치기, 갓난아해 똥먹이기, 무죄한 놈 뺨
    치기, 빚값에 계집뺏기, 늙은 영감 덜미집기, 아해밴 계집 배차기, 우물 밑에 똥누기, 오려논
    에 물터놓기, 자친 밥에 돌 퍼붓기, 패는 곡식 이삭자르기, 논두렁에 구멍뚫기, 호박에 말뚝
    박기, 곱사장이 엎어놓고 발꿈치로 탕탕치기, 심사가 모과 나무의 아들이라. 이놈의 심술은
    이러하되, 집은 부자라 호의호식 하는고나. 흥부는 집도 없이 집을 지으려고 집재목을 내려
    갈 양이면, 만첩청산 들어가서 소부등 대부등을 와드렁퉁탕 버혀다가 안방, 대청, 행라, 몸채
    내외 분합 물림퇴에 살미살창 가로닫이 입구자로 지은 것이 아니라, 이놈은 집재목을 녀려
    하고 수수밭 틈으로 들어거서, 수수대 한 뭇을 베어다가 안방, 대청, 행랑, 몸채 두루짚어 말
    집을 꽉 짓고 돌아보니 수수대 반 뭇이 그저 남았구나. 방 안이 넓던지 말던지, 양주 드러누
    워 기지개켜면 발은 마당으로 가고, 대고리는 뒷곁으로 맹자 아래 대문하고, 엉덩이는 울타
    리 밖으로 나가니, 동리 사람이 출입하다가 이 엉덩이 불러들이소하는 소리, 흥부 듣고 깜짝
    놀라 대성 통곡 우는 소리, “애고답답 설운지고 어떤 사람 팔자 좋아, 대광보국숭록대부 삼
    태육경 되어나서, 고대광실 좋은 집에 부귀공명 누리면서 호의호식 지내는고, 내 팔자 무슨
    일로 말만한 오막집에 성소광어공정하니, 지붕 말래 별이 뵈고, 청천한운세우시에 우대량이
    방중이라, 문 밖에 세우오면 방 안에 큰 비 오고 폐석 초갈 찬 방 안에, 헌 자리 벼룩 빈대
    등이 피를 빨아먹고 앞문에는 살만 남고, 뒷벽에는 외만 남아 동지섣달 한풍이 살쏘듯 들어
    오고, 어린 자식 젖 달라고 자란 자식 밥달라니, 차마 설워 못 살겠네.” 가난한중 우엔 자식
    은 풀마다 나하서 한 설흔나믄 되니, 입힐 길이 전혀 없어, 한 방 안에 몰아 넣고 명석으로
    쓰이고 대강이만 내여놓으니, 한 녀석이 똥이 마려우면 뭇 녀석이 시배로 따라간다. 그 중에
    값진 것을 다 찾는고나. 한 녀석이 나오면서, ” 애고 어머니 우리 열구자탕에 국수 말아 먹
    으면.” 또 한 년이 나앉으며 ” 애고 어머니 우리 벙거지를 먹으며.” 또 한 녀석 내달으며,
    “애고 어머니 우리 개장국에 흰 밥 조금 먹으면.” 또 한 녀석이 나오며, “애고 어머니 대추
    찰떡 먹으면.” “애고 이녀석들아 호박국도 못 얻어 먹는데 보채지나 말려무나.” 또 한 녀석
    나오며, “애고 어머니 우에 울부터 불두덩이 거려우니 날 장가 들여주오.” 이렇듯 보챈들 무
    엇 먹여 살려낼고. 집안에 먹을 것이 있던지 없던지, 소반이 네 발로 하늘게 축수하고 솥이
    목을 매여 달렸고, 조리가 탁걸이를 하고, 밥을 지억 머긍려면 책력을 보아 잡자일이면 한
    때씩 먹고 새앙쥐가 쌀알을 얻으려고 밤낮 보름을 다니다가 다리에 가래토시 서서 파종하고
    앓는 소리, 동리 사람이 잠을 못 자니 어찌 아니 설울손가. “아가 아가 우지 마라. 아모리
    젖 달란들 무엇 먹고 젖이 나며, 아모리 밥달란들 어디서 밥이 나랴.” 달래올 제 흥부 마음
    인후하여 청산유수와 곤륜옥결이라. 성덕을 본받고 악인을 저어하며 물욕에 탐이 없고 주색
    에 무심하니, 마음이 이러함에 부귀를 바랄소냐? 흥부 아내 하는 말이, “애고 여봅소. 부질
    없는 청렴 맙소. 안자 단표 주린 염치 삼십 조사하였고, 백이숙제 주린 염치 청루소년 우었
    으니, 부질없는 청렴 말고 저 자식들 굶겨 죽이겠으니, 아자번데 집에 가서 쌀이 되나 벼가
    되나 얻어옵소.” 흥부가 하는 말이, “낯을 쇠우에 슬훈고! 형님이 음식 끝을 보면 사촌을 몰
    라보고 똥싸도록 치옵나니, 그 매를 뉘 아들놈이 맞는단 말이오. 애고 동냥은 못준들 쪽박조
    차 깨칠손가. 맞으나 아니 맞으나 쏘아나 본다고 건너가 봅소.”
    흥부 이 말을 듣고 형의 집에 건너갈 제, 치장을 볼작시면 편자 없는 헌 망건에, 박쪼가리
    관자달고, 물레줄로 당끈 달아, 대고리 터지게 동이고, 짓만 남은 중치막, 동강이은 헌술띠를
    흉복통에 눌러띠고, 떨어진 헌 고의에 청올치로 다님매고, 헌 짚신 감발하고 세 살부채 손에
    쥐고, 서흡들이 오망자루 꽁무니에 비슥 차고, 바람맞은 병인같이 잘 쓰는 새수같이 어슥비
    슥 건너달아, 형의 집에 들어가서 전후좌우 바라보니, 앞노적, 뒷노적, 멍에노적 담불담불 쌓
    았으니, 흥부 마음 즐거우나 놀부 심사 무거하여 형제끼리 내외하여 구박이 태심하니, 흥부
    할 일 없이 뜰 아래서 문안하니, 놀보가 묻는 말이, “네가 뉜고.” ” 내가 흥부요.” ” 흥부가
    뉘 아들인가?” “애고 형님, 이것이 우엔 말이오. 비나이다. 형님전에 비나이다. 세 끼 굶어
    누운 자식 살려 낼 길 전혀 없으니 쌀이 되나 벼가 되나 양단간에 주시면 품을 판들 못 갚
    으며, 일을 한들 공할손가. 부디 옛일을 생각하여 사람을 살려 주오.” 애걸하니, 놀부놈의 거
    동보소. 성낸 눈을 부릅뜨고 볼을 올려 호령하되, “너도 염치 없다. 내 말 들어 보아라. 천불
    생무록 지인이요, 지불생무명지최라. 네 복을 누를 주고, 나를 이리 보채느뇨? 쌀이 많이 있
    달한들 너 주자고 노적 헐며, 벼가 많이 있다고 너 주자고 섬을 헐며, 가룻되나 주자한들 북
    고왕 염소독에 가득 넣은 것을 독을 열며, 의복이나 주자한들 집안이 고로 벗었거든 넌를
    어찌 주며, 찬밥이나 주자 한들 새끼 낳아 거먹암개 부엌에 누웠거든 너 주자고 개를 굶기
    며 지거미나 주자한들 구중방 우리 안에 새끼 낳은 돛이 누웠으니 너 주자고 돛을 굶기며,
    겻섬이나 주자 한들 큰 농우가 네 필이니 너 주자고 소를 굶기랴! 염치없다. 흥부놈아!” 하
    고 주미괴를 불끈 쥐어 뒷꼭지를 꽉 짚으며, 몽둥이를 지끈 꺽어 손재승의 매질하듯 원화상
    의 법고치듯, 아주 쾅광 두다리니, 흥부 울며 이른 말이, “애고 형님 이것이 우엔 일이오. 방
    약무인 도척이도이에서 성현이오. 무지불측 관숙이도 이에서 군재로다. 우리 형제 어찌하여
    이다지 극악한고.” 탄식하고 돌아오니 흥부 아내 거동보소. 흥부 오기를 기다리며, 우는 아
    기 달래올 제 물레질하며, ” 아가 아가 우지마라. 어제 저녁 김 동지집 용정방아 찧어 주고
    쌀 한되 얻어다가 너희들만 끓여주고, 우리 양주 어제 저녁 이때까지 그저 있다 윙윙윙 너
    아버지 저 건너 아자버니집에 가서 돈이 되나 쌀이 되나 양단간에 얻어 오면, 밥을 짓고 국
    을 끓여, 너도 먹고 나도 먹자. 우지 마라” 윙윙윙 아무리 달래어도 악치듯 보채는고나. 흥
    부 아내 할 일 없어 흥부 오기 기다릴 제, 의복치장 볼작시면 깃만 남은 저고리, 다 떨어진
    누비 바지, 몽동치마 떨쳐입고 목만 남은 헌 버선에, 뒷죽없는 짚신 신고 문 밖에 썩나서며,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다릴 제, 칠 년 대한 가문 날에 비오기 기다리듯, 구년지수 장마진
    데 볕나기 기다리듯, 제갈 양 칠성단에 동남풍 기다리듯, 강태공 위수상에 시절 기다리듯,
    만리 전장에 승전하기 기다리듯, 어린 아해 경풍에 의원 기다리듯, 독수공방에 낭군 기다리
    듯, 춘향이 죽게 되어 이도령 기다리듯, 과년한 노처녀 시집가기 기다리듯, 삼십 년은 노도
    령 장가가기 기다리듯, 장중에 들어가서 과거하기 기다리듯, 세끼 굶어 누운 자식 흥부 오기
    기다린다. “애고애고 설운지고.” 흥부 울며 건너오니 흥부 아내 내달아, 두 손목을 덥썩 잡
    고, “우지 마오. 어찌하여 울으시오. 형님 전에 말하다가 매를 맞고 건너옵나, 출문망 출문망
    허위 허위 오는 사람, 몇몇이 날 속인고. 어찌하여 이제 옵나.” 흥부는 어진 사람이라 하는
    말이, “형님이 서울 가고 아니 계시기에 그저 왔읍내.” “그러하면 저를 어찌하잔 말고. 짚신
    이나 삼아 팔아 자식들을 살려 내옵소. 짚이 있읍나 저 건너 장자 집에 가서 얻어 보옵소.”
    흥부 거동 보소. 장자 집에 가서, “장자님 계시오.” ” 계 누군고.” ” 흥부요.” ” 흥부 어찌 왔
    노.” ” 자네는 어찌나 지내노.” “지내노라니 오죽하오. 짚 한 못만 주시면 짚신을 삼아 팔아
    자식들을 살리겠소.” “그리하소.” 하고 종을 불러 좋은 짚으로 서너 뭇 갖다가 주니, 흥부
    짚을 가지고 건너와서 짚신을 삼아 한 죽에서 돈 받고 팔아 양식을 팔아 밥을 지어 처자식
    과 먹은 후에 이리하여도 살길 없어 흥부 아내 하는 말이, ” 우리 품이나 팔아 봅세.” 흥부
    아내 품을 팔 제 용정방아 키질하기, 매주가에 술거르기, 초상집에 제복짓기, 제사집에 그릇
    닦기, 신사집의 떡만들기, 언손 불고 오좀치기, 해빙하면 나물 뜯기, 춘보 갈아 보리놓기. 온
    갖으로 품을 팔고, 흥부는 정이월에 가래질하기, 이삼월에 붙임하기, 일등전답 못논 갈기, 입
    하전의 면화 갈기, 이집저집 이엉엮기, 더운 날에 보리치기, 비오는 날 멍석걷기, 원산근산
    시초베기, 무곡주인 역인지기, 각읍 주인 삯길가기, 술만 먹고 말짐실기, 오 푼 받고 마철박
    기, 두 푼 받고 똥재치기, 한 푼 받고 비매기, 식전에 마당쓸기, 저녁에 아해 만들기, 온 가
    지로 다 하여도 끼니가 간데없네.
    이 때 본읍 김 좌수가 흥부를 불러 하는말이, “돈 삼십 냥을 줄것이니, 내 대신으로 감영
    에 가 매를 맞고 오라.” 하니 흥부 생각하되, 삼십 냥을 받아 열 냥아치 양식팔고, 닷 냥아
    치 반찬사고, 다 냥아치 나무사고, 열 냥이 남거든, 매맞고 와서 몸 조섭을 하리라 하고, 감
    영으로 가려 할 제 흥부 아내 하는 말이, “가지 마오. 부모 혈육을 가지고 매 삯이란 말이
    우엔 말이오.” 하고, 아무리 만류하되 종시 듣지 아니하고, 감영으로 내려가더니 아니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마침 나라에서 사가내려 죄인을 방송하시니, 흥부 매품도 못
    팔고 그저 온다. ” 매를 맞고 왔읍나, 아니 맞고 왔읍네. 애고 좋쇠 부모유체로 매품이 무슨
    일고.” 흥부 울며 하는 말이, ” 애고 애고 설운지고. 매품 팔아 여차여차 하자 하였더니 이
    를 (어찌)하잔 말고.” 흥부 아내 하는 말이, ” 우지마오, 제발 덕분 우지 마오. 봉제사 자손
    되어나서, 금화금벌뉘라 하며, 가뫼 되어나서 낭군을 못 살리니 여자 행실 참혹하고, 유자
    유녀 못 차리니 어미 도리 없는지라. 이를 어찌 할고. 애고 애고 설운지고, 피눈물이 반죽되
    던 아황여영의 설움이요, 조작가 지어 내던 우마시의 설움이요, 반야산 바위 틈에 숙낭자의
    설움을 적자한들 어느 책에다 적으며, 만경창파 구곡수를 말말이 두량할 양ㅇ이면 어느 말
    로 다 되며, 구만 리 장천을 자자히 재이련들 어느 자로 다자힐고. 이런 설움 저런 설움 다
    후리쳐 버려두고, 이제 나만 죽고지고.” 하며 두주머리를 불끈 쥐어 가슴을 쾅쾅 두다리니,
    흥부 역시 비감하여 이른 말이, ” 우지 말소, 안연 같은 성인도 안빈낙도 하였고, 부암에 담
    쌓던 부열이도 무정을 만나 재상이 되었고, 신야에 밭갈던 이윤이도 은탕을 만나 귀히 되었
    고, 한신같은 영웅도 초년 궁곤하다가 한나라 원융이 되었으니, 어찌 아니 거룩하뇨. 우리도
    마음만 옳게 먹고 되는 때를 기다려 봅세.” 하여 그달 저달 다 지내고, 춘절이 돌아오니, 흥
    부가 이왕 식자는 있는지라 수수대로 지은 집에 입춘을 써 붙이되 글자를 새겨 붙였구나.
    겨울동자 갈거자, 천지간에 좋을시고, 봄춘자, 올래자 녹음방초 날비자, 우는 것은 짐승수자,
    나는 것은 새조자, 연비여천 소리개 연자, 오색의관 꿩치자, 월삼경파(화)지상에 슬피우는 두
    견성자, 쌍거 쌍내 제비 연자, 인간만물 찾을심자, 이 집으로 들입자, 일월도 박식하고, 음양
    도 소새커든, 하물며 인물이야 성식인들 없을소냐. 삼월 삼일 다달으니 소상강 떼기러기 나
    노라 하직하고, 강남서 나온 제비 왔노라 현신할 제, 오대양에 앉았다가 비래비거 넘놀면서,
    흥부를 보고 반겨라고 좋을호자, 짖어귀니 흥부가 제비를 보고 경계하는 말이, “고대광실 많
    건만은 수숫대 집에 와서 네 집을 지었다가 오뉴월 장망에 털석 무너지면 그 아이 낭패오
    냐.” 제비 듣지 아니하고 흙을 물어 집을 짓고 알을 안아 깨인 후에 날기 공부 힘쓸 때에
    의외에 대망이 들어와서 제비새끼를 몰수이 먹으니 흥부 깜짝 놀라 하는 말이, “흉악하다
    저 짐승아, 고량도 많건마는, 무죄한 저 새끼를 몰식하니 악착하다. 제비새끼 대성황제 나계
    시고, 불식 고량 살아나니 인간에 해가 없고, 옛 주인을 찾아오니, 세 뜻이 유정하되, 제 새
    끼를 이제 다 참척을 보니 어찌 아니 불쌍하리. 저 짐승아. 패공의 용천검이 적혈이 비등할
    제 백제의 영혼인가. 신장도 장할시고, 영주광야 너른 뜰에 숙낭자에 해를 입히던 풍사망의
    대망인가. 머리도 흉악하다.” 이렇듯 경계할 제, 이제 제비새끼 하나이 공중에서 뚝 떨어져
    대발 트메 발이 빠져 두 발이 자끈 부러져 피를 흘리고 발발 떨거늘, 흥부가 보고 펄쩍 뛰
    어 달려들어 제비새끼를 손에 들고 잔인히 여겨 하는 말이, ” 불쌍하다 이 제비야, 은왕 성
    탕 은혜 미쳐, 금수를 사랑하여 다 길러 내었더니, 이 지경이 되었으매, 어찌 아니 간련하리.
    여봅소 아기어미 무슨 당사실 있읍내.” “애고 굶기를 부자의 밥 먹듯 하며 무슨 당사실이
    있단 말이.” 하고, 친만 의외 실 한 닙 얻어 주거늘, 흥부가 칠산 조개 껍질을 벗겨 제비 다
    리를 싸고 실로 찬찬 동여 찬 이슬에 얹어두니 십여일이 지난 뒤 다리 완구하여 제 곳으로
    가려 하고 하직할 제, 흥부가 비감하여 하는 말이, “먼 길에 잘 들어가고 명년 삼월에 다시
    보지.”하니, 저 제비 거동보소, 양우 광풍 몸을 날려 백운을 냉소하고, 주야로 날아 강남을
    득달하니 제비황제 보고 물으되, ” 너는 어이 저나니.” 제비 여짜오되, “소신의 부모가 조선
    에 나가 흥부의 집에다가 득주하고 소신등 형제를 낳았삽더니, 의외 대망의 변을 만나 소신
    의 형제다 죽고 소신이 홀로 아니 죽으려 하여 바르작거리다가 뚝 떨어져, 두 발목이 자근
    부러져 피를 흘리고 발발 떠온즉, 흥부가 여차여차 하여 절각이 의구하와 이제 돌아왔사오
    니 그 은혜를 십분 일이라도 갚기를 바라나이다.” 제비황제 하교하되, ” 그런 은공을 모랄서
    는 행세치 못할 금수라, 네 박씨를 갖다 주어 은혜를 갚으라.” 하니, 제비 사은하고 박씨를
    물고 삼월 삼일이 다달으니, 제비 건공에 떠서 여러 날 만에 흥부집에 이르러 넘몰 적에, 북
    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에 넘노는 듯 단산 채봉이 죽실을 물로 오동상에 넘노는
    듯, 춘풍 황앵이 나비를 물고 세류 변에 넘노는 듯,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넘노는 것, 흥부
    잠깐 보고 낙낙하여 하는 말이, ” 여봅소 거년 가던 제비 무엇을 입에 물고 와서 넘노읍네.”
    이렇듯 말할 제 제비 박씨를 흥부 앞에 떨어뜨리니 흥부가 집어 보니 한 가운데 보은표라
    금자로 새겼거늘, 흥부 하는 말이, “수안의 배암이 구슬을 물어다가 살린 은혜를 갚았으니,
    저도 도한 생각하고 나를 갖다 주니, 이것이 또한 보배로다.” 흥부 아내 묻는 말이, ” 그 가
    운데 누르스름한 것이 아마 금인가 보외.” 흥부가 대답하되, ” 금은 이제 없나니, 초한적의
    진평이가 범아부를 쫓으려고, 화금 사만 근을 흩었으니 금은 이제 절종되었읍네.” “그러하면
    옥인가 보외.” ” 옥도 이제는 없나니, 곤륜산에 불이 붙어 옥석이 구분하였으니, 옥도 이제
    없읍네.” “그러하면 야광준가 보외.” ” 야광주도 이제는 없나니, 주 세종이 탐장할 제, 당나
    라 장갈이가 술잔 만드노라고 다 들였으니, 유리 호박도 이제 없읍네.” “그러하면 쇤가 보
    외.” 쇠도 이제는 없나니 진시황 위엄으로 구주의 쇠를 모아 금인 열둘을 만들었으니 쇠도
    없읍네.” “그러하면 대모산혼가 보외.” ” 대모산호도 없나니, 대모갑은 병풍이요, 산호수는
    난간이라 광리왕이 상문의 수궁 보물을 다 을였으니, 이제는 없읍네.” “그러하면 무엇인고.”
    제비가 내달아 하는 말이, “건지 연지 뇌지 조지 부지요.”흥부가 하는 말이, “옳다 이것이
    박씨로다.” 하고, 날을 보아 동편 처마 단장 아래 심어 두었더니, 삼사 일에 순이 나서 마디
    마디 잎이요, 줄기줄기 곷이 피어, 박 네 통이 열었으되, 고마수영 절설 같이, 대동강상의 당
    두리같이 덩그렇게 달렸구나. 흥부가 반기여겨, 문자로써 말하되, “유월에 화락하니, 칠월에
    성실이라, 대자는 여항하고, 소자는 여분이라. 어찌 아니 좋을소냐. 여봅소 비단이 한 기라
    하니, 한 통을 따서 속을라지지 먹고, 바가지는 팔아 살을 팔아다가 밥을 지어 먹어 봅세.”
    흥부 아내 하는 말이, “그 박이 유명하니, 한로를 아주마쳐, 견실커든 따봅세.” 그날 저달 다
    지나가고 팔구월이 다달아서, 아주 견실하였으니 박 한 통을 따놓고 양주 켠다. 슬근슬근 톱
    질이야, 당기어 주소 톱질이야, 북창한월성미파에 동자박도 가야로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
    하자손 만세평에, 세간박도 가야로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 놓으니 오운이 일어나며, 청
    의동자 한 쌍이 나오니, 저 동자 거동보소. 약비봉래 환학동이면, 필시천대채약동이라. 좌수
    에 유리반, 우수에 대모반을 눈 위에 높이 들어 재배라고 하는 말이, 천은병에 넣은 것은 죽
    은 사람을 살려 내는 환혼주요, 백옥병에 넣은 것은 소경 눈을 뜨이는 개안주요, 금잔지로
    봉한 것은 벙어리 말하게 하는 개언최요, 대모접시에는불로초요, 유리접시에는 불사약이니,
    값으로 의논하면 억만 냥이 넘사오니, 매매하여 쓰옵소서.” 하고 간데 없는지라. 흥부 거동
    보소, “얼시고 절시고 즐겁도다. 세상에 부자 많다한들, 사람 살리는 약이 있을 소냐!” 흥부
    아내 하는 말이, ” 우리 집 약계 배판 한 줄 알고 약 사라 올이 없고, 아직 효험 빠르기는
    밥만 못하외.” 흥부 말이 “그러하면 저 통에 밥이 들었나 타 봅세.” 하고, 또 한통을 탄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우리 가난하기 일읍에 유명하매 주야 설워하더니, 부지허명, 고대 천냥,
    일조에 얻었으니 어찌 아니 좋을소냐. 슬근슬근 톱질이야, 어서 타세 톱질이야. 툭 타 놓으
    니 온갖 세간이 들었으되, 자개함농, 반다지 용장, 봉장, 제두주, 쇄금들미, 삼층장계자다리,
    옷거리, 쌍룡 그린 빗접고비, 요두머리, 장복비, 놋촛대, 광명두리, 요강,타구, 벌여 놓고, 선
    달이불, 대단요며 원앙금침 잣벼개를 쌓아놓고 사랑기물 볼작시면, 용목래상 벼룻집, 화류책
    장, 각겨수리 용연벼루, 앵무연적 벌여 놓고, 천자, 유합, 동몽선습, 사략, 통감, 논어 맹자,
    시전, 서전, 소학 대학 등 책을 쌓았고, 그 곁에 안경, 석경, 화경, 육칠경, 각색 필묵 퇴침에
    들어 있고, 부엌 기물을 의논컨대, 노구새, 옹곱돌솥, 왜솥, 절솥, 통노구무쇠, 두멍 다리쇠
    받쳐 있고, 왜화기, 당화기, 동래반상, 안성유기 등 물찬장에 들어 있고, 함박, 쪽박이, 남박,
    항아리, 옹박이 동체, 깁체, 어럼이, 침채 독, 장독 가마, 승교 등 물이 꾸역꾸역 나오니, 어
    찌 아니 좋을손가. 또 한 통을 탄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우리 일을 생각하니, 엊그제가 꿈이
    로다. 부지허명 고대 천냥을 일조에 얻었으니, 어찌 아니 즐거우랴.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 놓으니, 집지위와 오곡이 나온다. 명당에 집터를 닦아, 안방 대처 행랑 몸채 내외분함 물
    림퇴, 살미살창 가로닫이, 입구자로 지어 놓고, 앞 뒤 장원 마구곡간 등속을 좌우에 벌여 짓
    고, 양지에 방아 걸고, 음지에 우물 파고, 울 안에 벌통 놓고, 울 밖에 원두 놓고, 온갖 곡식
    다 들었다. 동편 곡간에 벼 오천 석, 서편 곡간에 쌀 오천 석, 두태 잡곡오천석, 참깨 들깨
    각 삼천 석, 딴 노적하여 있고 돈이 십만 구천냥은 고 안에 쌓아두고, 일용전 오백 열 냥은
    벽장 안에 넣어두고 온갖 비단 다 들었다. 모단, 대단, 이광단, 궁초, 숙초, 쌍문초, 제갈선생
    와룡단, 조자룡의 상사단, 뭉게뭉게 운문대단, 또드락 꿉벅 말굽장단, 대천 바다 자개문장단,
    해 돋았다 일광단, 달 돋았다 월광단, 요지왕모 천도문, 구십 춘광 명주문, 엄동설한 육화문,
    대접문, 완자문, 한단 영초단, 각색 비단 한필이 들어 있고, 길주명천 좋은 베, 회령 종성 고
    운 베, 온갖 베와 한산 모시, 장성 모시, 계추리, 황저포 등 모든 모시와 고야 화전 이 생원
    의 맏딸이 보름만에 마쳐 내는 난대 하세목, 송도 야다리목, 강진 내이 황주목, 의성목 한편
    에 들어 있고, 말매니 같은 사나이 종과 열쇠 같은 아이 종과 앵무 같은 계집종이 나며 들
    며 사환하고 우걱부리, 잣박부리, 사족발이 고리 눈이, 우억지억 실어들여, 앞뜰에도 노적이
    요, 뒷뜰에도 노적이요, 안방에도 노적이요, 부엌에도 노적이요, 담불담불 노적이라, 어찌 아
    니 좋을소냐. 흥부 아내 좋아라고, “여봅소 이년이나 내나 옷이 없으니, 비단으로 온 몸을
    감아 봅세.” 덤불 밑에 조그만 박 한 통을 따서 켜려 하니 흥부 아내 하는 말이, “그 박을랑
    켜지 맙소.” 흥부가 대답하되, “내 복에 태인 것이니, 커졌옵네.” 하고, 손으로 켜내니, 어여
    쁜 계집이 나오며 흥부에게 절을 하니, 흥부 놀라 묻는 말이, “뉘라 하시오.” “내가 비요.” “
    비라 하니 무슨 비요.” “양귀비요.” ” 그러하면 어찌하여 왔소.” ” 강남 황제가 날더러 그대
    의 첩이 되라 하시기에 왔으니, 귀히 보소서.” 하니 흥부는 좋아하되 흥부 아내 내색하여 하
    는 말이, “애고 저 꼴을 뉘가 볼고, 내 언제부터 켜지 말자 하였지.” 하며 이렇듯 호의 호식
    태평히 지낼 제, 놀부놈이 흥부의 잘 산단 말을 듣고 생각하되, 건너가 이놈을 욱닥였으면,
    반은 나를 주리라 하고, 흥부집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문 밖에 서서, “이놈 흥부야!” 흥부 대
    답하고 나와 놀부의 손을 잡고 하는 말이, ” 형님 이것이 웬일이오. 형제끼리 내외 하단 말
    은 불가사문어인국이니, 어서 들어가사이다.” 하니, 놀부놈이 떨더리며 하는 말이, ” 네가 요
    사이 밤이슬을 맞는다 하는구나.” 흥부가 어이없어 하는 말이, “빔이슬이 무엇이오.” 놀부놈
    이 대답하되, ” 네 도적질한다는구나.” 흥부 이른 말이, “형님, 이것이 웬말이오.” 하고 전후
    사연을 일일이 설파하니 놀부 다 듣고, 그러하면 들어가 보자 하고 안으로 들이달아 보니,
    양귀비 나와 뵈거늘 흥부보고 하는 말이, “웬 부인이냐.” 흥부 곁에 있다가 대답하되, ” 내
    첩이오.” ” 어따 이놈 네게 웬 찹이 있으리오.날다고.” 화초장을 보고, “저것이 뭣이뇨?” “그
    게 화초장이오.” “날 다고.” “애고 사랑도 아니 떠혔소.” ” 이놈아. 네 것이 내 것이오, 내 것
    이 네 것이오, 내 계집이 네 계집이요, 네 계집이 내 계집이라.” “그러하면 종하여 보내오리
    다.” ” 어서 질방 걸어 다고, 내 지고 가마.” “그러하면 그러 하오.” 질방 걸어 주니 놀부 짊
    어지고 가며, 화초장을 생각하며 화초장 화초장 하며 가더니, 개천 건너 뛰다가 잊어버리고
    생각하되, 간장인가 초장인가 하며, 집으로 오니, 놀부 아내 묻는 말이 “그것이 무엇이온고.”
    “이것 모르옵나.” “분명 모르옵나.” “저 건너 양반의 집에서 화초장이라 하옵데.” “내 언제부
    터 화초장이라 하였지.” 놀부톰 거동보소, 동지 섣달부터 제비를 기다린다. 그물 막대 둘러
    메고, 제비를 몰로 갈 제, 한 곳 바라보니, 한 즘생이 떠 들어오니, 놀부놈이 보고 “제비 인
    제 온다.” 하고 보니, 태백산 갈가마귀 차돌도 돌도 바이 못 얻어먹고, 주려청천에 높이 떠,
    갈곡 길곡 울고 가니, 놀부 눈을 멀겋게 뜨고 보다가 할 일 없어 동릿집으로 다니면서 제비
    를 제 집으로 몰아들이되, 제비가 아니 온다. 그 달 저 달 다 지내고 삼월 삼일 다달으니,
    강남서 나온 제비 예집을 찾으려 하고, 오락가락 넘을 적에 놀부 사면에 제비 집을 지어 놓
    고 제비를 들이모니, 그 중 팔자 사나운 제비 하나가 놀부 집에 흙을 물어 집을 짓고 알을
    낳아 안으려 할 제, 놀부놈이 주야로 제비 집 앞에 대령하여 가끔 만져본즉, 알이 다 곯고
    다만 하나가 깨였는지라 날기 공부 힘쓸 제 구렁 배암 아니 오니 놀부 민망 답답하여, 제
    손으로 제비새끼를 잡아 내려 두 발목을 자끈 부러뜨리고, 제가 깜짝 놀라 이르는 말이, “가
    련하다. 이 제비야.”하고, 자개껍질을 얻어 찬찬 동여 뱃놈의 닻줄 감듯, 삼층얼레 연줄 감듯
    하여 제 집에 얹어 두었더니 십여 일 후 그 제비 구월 일을 당하여 두 날개를 펼쳐 강남으
    로 들어가니, 강남 황제 각처 제비를 점고할 제, 이 제비 다리 절고 들어와 복지한데, 황제
    제신으로 하여금 그 연고를 사실하여 아뢰라 하시니 제비 아뢰되, “상년에 웬 박씨를 내어
    보내어 흥부가 부자 되었다 하여 그 형 놀부놈이 나를 여차여차 하여 절뚝발이 되었사오니
    이 원수를 어찌하여 갚고저 하나이다.” 황제 이 말 들으시고, 대령하여 가라사대, “이놈 이
    제 전답 재물이 유여하되, 동기를 모르고 오륜에 벗어난 놈을 그저두지 못할 것이요, 도한
    네 원수를 갚아 주리라.” 하고, 박씨 하나를 보수표라 금자로 새겨주니, 제비 받아 가지고
    명년 삼월을 기다려 청천을 무릅쓰고 백운을 박차 날개를 부쳐 높히 떠 높은 봉 낮은 뫼를
    넘으며, 깊은 바다 너른 시내며, 개골창 잔돌바위를 훨훨 넘어 놀부 집을 바라보고, 너훌너
    훌 넘놀거들, 놀부놈이 제비를 보고 반겨할 제 제비 물었던 박씨를 툭 떨어뜨리니, 놀부놈이
    집어보고 낙낙하여 뒷담장 처마 밑에 거름놓고 심었더니, 사오닐 후에 순이 나서 덩굴이 뻗
    어 마디 마디 잎이요, 줄기줄기 꽃이 피어 박 십여 통이 열렸으니, 놀부 놈이 하는 말이,
    “흥부는 세 통을 가지고 부자 되었으니, 나는 장자 되리로다. 석숭을 행랑에 넣고, 예 황제
    를 부러워할 개아들 없다.” 하고, 굴지계일하여 팔구월을 기다린다. 때를 당하여 박을 켜라
    하고, 김 지위 이 지위 동리 머슴 이웃 총각 건넌집 쌍언청이를 다 청하여 삯을 주고 박을
    켤 제, 째보놈이 한 통의 삯을 정하고 켜자 하니 놀부 마음에 흐뭇하여 매통에 열 냥씩 정
    하고 박을 켠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힘써 켜고 보니, 한데 가얏고쟁이 나오며 하는 말이, “우리 놀부 인
    심 좋고 풍류를 좋아한다 하기에 놀고 가옵세.”둥덩둥덩 둥덩둥덩 하거늘, 놀부가 이를 보고
    째보를 원망하는 말이, 톱도 잘못 다리고 네 콧소리에 보화가 변하였는가 싶으니, 소리를 일
    병하지 말라.” 하니 째보 삯받기에 한 말도 못하고 그리하라 하니, 놀부 일변 돈백냥을 주어
    보내고, 또 한 통 타고 보니 무수한 노승이 목탁을 두드리며 하는 말이, “우리는 강남 황제
    원당시주승이라.” 하니, 놀부놈이 어이없어 돈 오백 냥을 주어 보내거늘 째보 하는 말이, “
    즉금도 내 탓이냐.” 하고 이주거니니, 놀부 이형상을 보고통분하여 성결에 또 한 통을 따오
    니 놀부 아내 말리는 말이, “제발 덕분에 켜지 마오. 그 박을 켜다가는 패가망신할 것이니
    덕분에 마오.” 놀부놈이 하는 말이, “소사한 계집년이 무슨 일을 아는 체하여 방정맞게 날뛰
    는가.” 하며 또 켜고 보니, 요령 소리나며 상제 하나가 나오며, “어이어이 이보시오. 벗님네
    야 통짜 운을 달아 박을 헤리라, 헌원씨 배를 무어 타고 가니 이게 불통코 대성현 칠십 제
    자가 육례를 능통하니, 높고 높은 도통이라. 제갈 양의 능통지략 천문을 상통지리를 달통하
    기는 한나라 방토이요, 당나라 굴돌통 글강의 순통이요, 호반의 전동통이요, 강릉 삼척 꿀벌
    통, 속이 답답 흉복통, 호란의 입식통, 도감 포수 화약통, 아기 어미 젖통 다 터진다. 놀부의
    애통이야. 어서 타라, 이놈 놀부야 네 상전이 죽었으니, 네 안방을 치우고 제물을 차려라.”하
    며 애고애고 하거늘, 놀부 할 일 없어 돈 오천 냥을 주어 보내고, 도 한 통을 타고 보니 팔
    도 무당이 나오며, 각색 소리 하고. 뭉게뭉게 나아오는데, “청유레리 황유리라. 화장청라 저
    계온대부진, 각시가 놀으소서, 밤은 다섯 낮은 일곱 유 리 여섯 사십 용왕 팔만 황제 놀으소
    서. 내 집 성주는 와가 성주요, 네 집 성주는 초가 성주, 가내마다 걸망성주, 오막성주, 집동
    성주가 철철이 놀으소서. 초년 성주 열 일곱, 중년 성주 스물 일곱, 마지막 성주 쉰 일곱. 성
    주 삼위가 놀으소서.” 하며, 또 한 무당 소리하되,
    “어찌 과히 하랴.오천 냥만 바치고 문서를 찾아가라.” 하거늘, 놀부 즉시 고문을 열고
    오천냥을 내어 주니라. 이때 놀부 계집이 이 말을 듣고 땅을 두드리며 울고 하는 말이,
    “애고 애고 원수의 박일네. 난데없는 상정이라고 곡절없는 속량은 무슨일고, 이만 냥 돈을
    이름 없이 줄 수 없으니 나의 못할 노릇 그만하오.”놀부 하는 말이, “에라 이년 물렀거라,
    또 일이 틀리겠다. 이번 돈 들인 것은 아깝지 아니하다. 사전을 두고야 살 수 있느냐.
    궁용한 판에 아는 듯 모르는 듯 잘되어 버렸다.”하며 또 동산에 올라가서 살펴보니,
    수통박이 아직도 무수한지라, 한 통을 따다 놓고 타려 할 새, 째보 하는 말이, “이번은
    선셈을 아니 하려나 일은 일대로 할 것이니, 삯을 내어오소.” 하니 놀부 이놈의 의수의 들어
    본 열 냥을 주며 하는 말이, “자네도 보거니와 공연히 매만 맞고 생돈을 들이니 그 아니
    원통한가. 이번부터는 두 통에 열 낭씩 정하세.” 하니, 째보 허락하고 박을 반만 타다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소고치는 소리가 들리는지라 놀부 하는 말이, “째보야 이를 또 어찌
    하잔 말고.” 째보 하는 말이, “이왕 시작한 것이니 어서 타고 구경하세,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놓고 보니, 만여 명 사당거사 뭉게뭉게 나오며, 소고를 치며 다각다각 소리한다.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 임 생각이 새로워라. 임도 나를 생각 하는가.” 혹 방아타령, 혹
    정주타령, 혹 유산가 달거리 동타령, 혹 춘면곡, 전주가 등 온갖 가사를 부르며, 거사놈은
    노방태 평양자, 길짐거사, 길을 인도하고 번개소로 번득이고, 긴염불, 짧은 염불하며
    나오면서, 일ㄹ변 놀부를 사족을 뜨며, 허영가래를 치니 놀부 오장이 나올 듯하여 살고지라
    애걸하니, 사당사들이 하는 말이, “내 명을 지탱하려 하거든 논문서와 밭문서를 죄죄
    내어오라.” 하거늘, 놀부 또 비위 동하여 박을ㄹ 따다가 타고 보니, 만여 명 왈자들이
    나오되, 누구누구 나오던고, 이죽이, 저죽이, 난죽이, 홧죽이, 모죽이, 바금이, 닥정이, 거저리,
    군평이, 털평이, 태평이, 이숙이, 무죽이, 팥껍질, 나돌모이, 쥐어 부디치기, 난정몽둥이,
    아귀소, 악착이, 모로기, 변통이, 구변이, 광면이, 잣박쇠 믿음이 섭섭이, 든든이, 우리,
    몽술이, 아들놈이, 휘몰아 나와 차례로 앉고, 놀부를 잡아내어 참바로 찬찬 동여 남게
    거꾸로 달고 집장질 하는 놈을로 팔갈아 가며 심심치 않게 족이며, 왈자들이 공논하되,
    “우리 통문 없이 이같이 모임이 쉽지 아니한 일이4? 놀부놈은 종차 발기질 양으로 실컷
    놀다가 헤어짐이 어떠하뇨.” 여러 왈자들이 좋다 하고 좌정한 후 털평이 대강장에 앉아
    말을 내되, “우리 잘하나 못하나 단가 하나씩 부딪혀 보세. 만일 개구 못하는 친구 있거든
    떡메질 하옵세.” 공론을 돌리고 털평이 비두로 소리를 내어 부르되, “새멱비 일갠 후에
    일와세라. 아이들아 뒷뫼에 고사리가 하마아니 자랐으랴. 오늘은 일찍 꺾어 오너라. 새술
    안주하여 보자.” 또 무숙이 하나 하되, “공변된 천하없을 힘으로 어이 얻을손가. 진궁실
    불지름도 오히려 무도하거든 하물며 의제를 죽이단 말가.” 또 군평이 뜨더귀 시조를 하되,
    “사랑인들 임마다 하며, 이별인들 다 설우랴. 임진강 대동수를 황능묘이 두견이 운다.
    동자야 네 선생이 오거든 조리박장사 못 얻으리오.” 또 말껍질이 풍자 운을 단다. “만국병전
    초목풍 취적가성 낙원풍, 일지홍도 낙만풍, 제갈 양의 동남풍, 어린아이 만경풍, 늙은 영감
    변두풍, 왜풍, 광풍, 청풍, 양풍, 허다한 풍자 어찌다 달리.” 또 보금이 사자 운을 단다.
    “적막강산금백년, 강남풍월한다년, 우락중분비백년, 인생부득항소년, 일장여소년 한진부지년,
    금년, 거년, 친년, 만년, 억만년이로다.” 또 나돌몽ㅇ이 인자 운을 다니, “양유청청 도수인,
    양화수쇄도강인, 편삽주유소이린, 강청월근인, 귀인, 철인, 만물지중 유인이 최귀로다.”
    아귀쇠 절자 운을 단다. “꽃피었다 춘절, 잎피었다 하절, 황국단풍 추절, 수락석출하니
    동절, 정절, 충절, 마디절 하니 절의로다.” 또 악착이 덕자 운을 다니, “세상에 사람이
    되어나서 덕이 없이 무엇하리. 영화롭다 자손의 덕, 충효전가 조상의”성황당 뻐꾸기 새야
    너는 어이 우짖나니, 속빈 고양 남게 새잎 나라 우짖노라, 새잎이 이울어지니 속잎날가
    하노라, 넋이야 넋이로다 녹양산 전세만일세, 영이별 세상하니 정수 없는 길이로다.
    이화제석, 소함제석, 제불제친대신, 몸주벼락대신.” 이렇듯 소리하며 도한 무당 소리하되, “
    바람아 월궁의 달월이로세. 일광의 일광 강신 마누라, 전물로 나리소서. 하루도 열 두시 한
    달 설흔달, 일년 열두달과 년 열 석달 백사를 도와주시옵는 안광당, 국수당, 마누라 개성부
    덕물산 최형 장군 마누라, 왕십리 이기시당 마누라, 고개고개 두좌하옵신 성황당 마누라,
    전물로 내리사이다.” 이렇듯 소리 하거늘, 놀부 이 형상을 보고 식혜먹은 고양이 같은지라.
    무당들이 장구토으로 놀부의 흉복을 치며 생난장을 치니, 놀부 울며 하는 말이, “이 어인
    곡절인지, 죄나 알고 죽어지라.” 한데, 무당들이 하는 말이, “다름이 아니라 우리 굿한 값을
    내되 일푼 여축 없이 오천 냥만 내라.” 하거늘, 놀부 할 일 없이 오천냥을 주 연후에 성즉성
    패즉패라 하고 또 한 통을 따놓고, 째보놈더러 당부하되, “전 것은 다 헛 것이 되었으니
    다시 시비할 개아들 없으니, 어서 톱질 시작하자.” 하니 째보 하는 말이, “또 중병 나면
    뉘게 떼를 써 보려느냐. 우습게 아들 소리 말고, 유복한 놈 다리고 타라.” 하거늘 놀부 하는
    말이, “이 용렬한 사람아, 내가 맹서를 하여도 이리하나. 만일 다시 군말 하거든 내 뺨을
    개뺨치듯 하소.” 하며 우선 선셈 열 냥을 채우거늘, 째보 그제야 비위 동하여 조랑이를 받아
    수세하고박을 탈새, 놀부 반만 타고 귀를 기울여 눈이 나오도록 들여다보니, 박 속에 금빛이
    비치거늘 놀부 가장 기뻐하는 체하고, “이 얘 째보야, 저것 뵈느냐? 이번은 완구한 금독이
    나온다. 어서 타고 보자.” 하며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 놓고 보니 만여 명 등짐꾼이
    빛좋은 누른 농을 지고 귀역뀌역 나오는지라, 놀부 놀라 묻는 말이, “그것이 무엇이니,”
    “경이오.” “경이라 하니 면경과 석경이냐! 천리경 만리경이냐 그 무슨 경이니.” “요지경이오.
    얼시고 절시고 요지연을 둘러보소. 이 선의 숙향 당명황의 양귀비요, 항우의 우미인, 여포의
    초선이 팔선녀를 둘러보소. 영양공주, 난양공주 진채봉, 가추눈, 심요연, 백능파, 계섬월,
    적경홍 다 둘러보소.” 하며 집을 떠 이니, 놀부 할 일 없어 돈 오백 냥을 주어 보내고, 또
    한 통을 타고 보니, 천여 명 초라니 일시에 내다라 오곡(온갖) 방정을 떨되, 바람아 바람아
    소소리 바람에 불렸는다. 동남풍에 불렸는다, 대자운을 달아 보자, 하걸의 경궁요대 달기로
    희롱하던 상주적 녹대 올라가니 멀고먼 봉황대 보기 좋은 고소대 만세무궁 춘당대,
    금군마병 오마대, 한무제 백양대, 조조의 동작대, 천대, 만대, 저대, 이대, 온갖 대라, 본대
    익은 면대로세. 대대야 일시에 내달으며, 달려들어 놀부를 덜미잡이하여 가로 떨어치니,
    놀부 거꾸로 떨어져, “애고애고 하라니 형님 이것이 어인 일이오. 생사람을 병신 만들지
    말고 분부하면 하라 하는 대로 하리이다.”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거늘, 초라니 하는
    말이, “이놈, 목숨이 귀하냐 돈이 귀하냐. 네 명을 보전하려거던 돈 오천냥만 내어라.” 놀부
    생각하되, 일이 도무지 틀렸으매 앙탈하여 쓸대없다 하고 또 오천 냥을 내어 주며, “압통
    속을 자세히 알거든, 일러달라.” 하니 초라니 대답하되, “우리는 각통이라 자세치
    못하거니와, 어느 통인지 분명히 생금독이 들었으니 도모지 타고 보라.” 하고 흔적없이
    가더라. 놀부 이 말을 듣고 허욕이 복받쳐 동산으로 치달아 박 한 통을 따다가 켜랴 하니
    째보 가장 위로하는 체하고 하는 말이, “이사람아 그만 켜소. 다 그러할가 하는 돈을 들이고
    자네 매 맞은 양을 보니, 내가 아니 타겠네. 그만 쉬어 사오 일 후에 또 타 보세.” 하니,
    놀부 하는 말이, 아무렴 오죽할까, 아직도 돈냥이 있으니 또 그럴 양으로 마자 타고 보자.”
    하고 타려 할 제, 째보가 하는 말이, “자네 마음이 그러하니 굳이 말리지 못하거니와, 이번
    박타는 삯도 먼저 내어오소.”하니, 놀부 또 열 냥을 선급하고 한참을 타다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사람의 숙덕거리는 소리 나거늘, 놀부 이 소리를 듣고 가슴이 끔찍하여 미어지는
    숨이 차 헐덕헐덕이다가 한 마디 소리 지르고 자빠지거늘 째보 하는 말이, 노부 하는 말이,
    “자네는 귀가 먹었는가. 이 소리를 못 듣는가. 또 자박이만 한 일이 벌어졌네! 이 박은 그만
    둘밖에 할 일 없네.” 하니 박 속에서 호령하는 말이, “이놈 놀부야, 그만두단 말이 무슨
    말인고, 바삐 타라.” 하거늘, 놀부 할 일 없어 마자 타니, 양반 천여 명이 말콩 망태를 쓰고
    우그럭 벙거지 쓴 놈을 다리고 나오면서 각각 풍월을 하되, 서남협구 무산벽하니 대강이
    번안 신예연을 추강이 적막어룡냉을 하니 인재서풍중선누라 혹 대학도 읽으며, 혹 맹자도
    읽으며, 혹 맹자도 읽으며, 이렇듯 집을 뒤집는지라, 놀부 이 형상을 보고 빼려하니, 양반이
    호령하되, “하인 없느냐, 저놈이 그치려 하니 바삐 움쳐라.” 하니, 여러 하인이 달려들어 열
    손가락을 벌려다가 팔매뺨을 눈에 불이 번쩍 나도록 치며, 덜미짚고 오듬(줌)이 진상하여
    깔리거늘, 양반이 분부하되, “네 그놈의 대고리를 빼 밑굼에 박으라, 네 다라나면 면할까
    바람갑이라 하늘로 오르며, 두더지라 당으로 들까. 상전을 모르고 거만하니, 저런 놈을
    사매로 쳐 죽이리라.” 놀부 비는 말이, “과연 몰랐사니 생원님 덕분에 살려지이다.” 양반이
    하인을 불러 농을 열고 문서를 주섬주섬 내어 놓고 하는 말이, “네 이 문서를 보라. 삼대가
    우리 종이로다. 오늘이야 너를 찾았으니, 네 속량을 허든지 연련이 공을 하든지 작정하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너를 잡아다가 부리리라.” 놀부 여짜오되, “소인이 과연 잔속을
    몰랐사오니, 속량을 할진대 얼마나 하리잇가.” 양반이 하는 말이, “어찌 과히 하랴. 오천
    냥만 바치고 문서를 찾아가라.” 하거늘, 놀부 즉시 고문을 열고 오천 냥을 내어 주니라.
    이때 놀부 계집이 이 말을 듣고 땅을 두드리며 울고 하는 말이, “애고 애고 원수의 박일네.
    난데없는 상전이라고 곡절없는 속량은 무슨 일고, 이만 냥 돈을 이름 없이 줄 수 없으니
    나의 못할 노릇 그만 하오.” 놀부 하는 말이, “애라 이년 물렀거라, 또 일이 틀리겠다. 이번
    돈 들인 것은 아깝지 아니하다. 상전을 두고야 살 수 있느냐. 궁용한 판에 아는 듯 모르는
    듯 잘되어 버렸다.” 하며 또 동산에 올라가서 살펴보니, 수통박이 아직도 무수한지라, 한
    통을 따다 놓고 타려 할 새, 째보 하는 말이,
    “이번은 선셈을 아니 하려나 일은 일대로 할 것이니, 삯을 내어오소.” 하니 놀부 이놈의
    의수의 들어 본 열 냥을 주며 하는 말이, “자네도 보거니와 공연히 매만 맞고 생돈을
    들이니 그 아니 원통한가. 이번부터는 두 통에 열 냥씩 정하세.” 하니, 째보 허락하고 박을
    반만 타다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소고 치는 소리가 들리는지라 놀부 하는 말이, “째보야
    이를 또 어찌 하잔 말고.” 째보 하는 말이, “이왕 시작한 것이니 어서 타고 구경하세,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놓고 보니, 만여 명 사당거사 뭉게뭉게 나오며, 소고를 치며
    다각다각 소리한다.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 임 생각이 새로워라. 임도 나를 생각 하는가.”
    혹 방아타령, 혹 정주타령, 혹 유산가 달거리 동타령, 혹 춘면곡, 전주가 등 온갖 가사를
    부르며, 거사놈은 노방태 평양자, 길짐거사, 길을 인도하고 번개소롤 번득이고, 긴 염불,
    짧은 염불하며 나오면서, 일변 놀부를 사족을 뜨며, 혀영 가래를 치니 놀부 오장이 나올
    듯하여 살고지라 애걸하니, 사당사들이 하는 말이, “내 명을 지탱하려 하거든 논문서와
    밭문서를 죄죄 내어오라.” 하거늘, 놀부 견딜 수 없이 전답문서를 주어 보내니라. 째보 하는
    말이, “나도 집에 볼 일 많으니 녹잡죄지 말고 어서 따오소. 종말에 설마 좋은 일이
    업슬가.” 하니, 놀부 또 비위 동하여 박을 따다가 타고 보니, 만여 명 왈자들이 나오되,
    누구누구 나오던고, 이죽이, 저죽이, 난죽이, 홧죽이, 모죽이, 바금이, 딱정이, 거저리, 군평이,
    털평이, 태평이, 이숙이, 무숙이, 팥껍질, 나돌모이, 쥐어 부디치기, 난정몽둥이, 아귀소,
    악착이, 모로기, 변통이, 구변이, 광면이, 잣박쇠 믿음이 섭섭이, 든든이, 우리, 몽술이,
    아들놈이, 휘몰아 나와 차례로 앉고, 놀부를 잡아내어 참바로 찬찬 동여 남게 거꾸로 달고
    집장질 하는 놈으로 팔갈아 가며 심심치 않게 족이며, 왈자들이 공논하되, “우리 통문 없이
    이같이 모임이 쉽지 아니한 일이니, 놀부놈은 종차 발길질 양으로 실컷 놀다가 헤어짐이
    어떠하뇨.” 여러 왈자들이 좋다 하고 좌정한 후 털평이 대강장에 앉아 말을 내되,
    “우리 잘하나 못하나 단가 하나씩 부딪쳐 보세. 만일 개구 못하는 친구 있거든 떡메질
    하옵세.” 공론을 돌리고 털평이 비두로 소리를 내어 부르되, “새벽비 일갠 후에 일와세라.
    아이들아 뒷뫼에 가사리가 하마 아니 자랐으랴. 오늘은 일찍 꺾어 오너라. 새술 안주하여
    보자.” 또 무숙이 하나 하되, “공변된 천하없을 힘으로 어이 얻을손가. 진궁실 불지름도
    오히려 무도하거든 하물며 의제를 죽이단 말가.” 또 군평이 뜨더귀 시조를 하되, “사랑인들
    임마다 하며 이별인들 다 설우랴. 임진강 대동수를 황능묘이 두견이 운다. 동자야 네 선생이
    오거든 조리박 장사 못 얻으리오.” 또 말껍질이 풍자 운을 단다. “만국병전초목풍 취적가성
    낙원풍, 일지홍도 낙만풍, 제갈 양의 동남풍, 어린아이 만경풍, 늙은 영감 변두풍, 왜풍,
    광풍, 청풍, 양풍, 허다한 풍자 어찌다 달리.” 또 보금이 사자 운을 단다. “한식동풍 어류사,
    원상한산석경사, 도연명의 귀거래사, 이태백의 죽지사, 그린 사사, 불사이자사, 이사, 저사,
    무수한 사자로다.” 또 주어 붙이기 년자 운을 단다. “적막강산금백년, 강남풍월한다년,
    우락중분비백년, 인생부득항소년, 일장여소년 한진부지년, 금년, 거년, 친년, 만년,
    억만년이로다.”
    또 나돌몽이 인자 운을 다니, “양유청청 도수인, 양화수쇄도강인, 편삽주유소일인,
    강청원근인, 귀인, 철인, 만물지중 유인이 최귀로다.” 아귀쇠 절자 운을 단다. “꽃피었다
    춘절, 잎피었다 하절, 황국단풍 추절, 수락석출하니 동절, 정절, 충절, 마디절 하니
    절의로다.” 또 악착이 덕자 운을 다니, “세상에 사람이 되어나서 덕이 없이 무엇하리.
    영화롭다 자손의 덕, 충효전가 조상의 덕, 교인화식 수인씨덕, 용병간과 헌원씨 덕, 상백제중
    신농씨 덕, 사획팔괘 복희씨 덕, 삼국성 주 유혀덕, 촉국명장 장익덕, 난세간옹 조맹덕, 위의
    명장 방덕, 울지경덕, 이덕, 저덕이 많건마는 큰 덕자가 덕이로다.” 또 떠중이 연자 운을
    단다. “황운새북의 무인연, 궁류저수삼월연, 장안성중의 월여인, 내연자가 이뿐인가.” 또
    변통이 질자 운을 모운다. “삼국풍진에 싸움질, 오월염친에 선자질, 세우강변 낚시질,
    만첩청산 도끼질, 낙목공산 갈퀴질, 술먹은 놈의 주정질, 마누라님 물레질, 며눌아기 바느질,
    좀영감은 잔말질, 사군영감 몽둥이질이라.” 또 구변은 기자운을 단다. “곱장이 복장차기,
    아이밴 계집의 뱃대기차기, 옹기장수의 작대기 차기, 불붙는데 키질하기, 해산하데 개잡기,
    역신하는데 울타리 밑에 말뚝박기, 서로 싸우는 데 그놈의 허리띠 끊고 달아나기,
    달음질하는 데 발내밀기라.”
    이렇듯 돌린 후에 차례로 거주를 물을 제, “저기 저분은 어디 계시오.” 하니 한 놈이
    대답하되, “내 집은 왕골이오.” 하거늘, 그 중 군평이 삭임질은 소 아래턱이 아니면 옴니
    자식이라 하는 말이, “게가 왕골 산다 하니 임금 왕자 골이니, 동관 대궐 앞 살으시오.” “또
    저 분은 어디 계시오.” 한 놈이 대답하되, “나는 하늘골 사오.” 군평이 하는 말이, “사직이란
    마음이 하늘을 위한 아믈이니, 사직골 살으시오.” “또 저분은 어디 계시오.” 한 놈이 하는
    말이, “나는 문안밖 사오.” 군평이 하는 말이, “문안 문밖 산다하니, 대문 안 중문 밖이니
    행랑어멈 자식이로다.” “또 저분은 어디 계시오.” 한 놈이 대답하되, “나는 문안 사오.”
    군평이 하는 말이, “그는 알지 못하겠소. 문안은 다 그대의 집인가.” 그놈이 하는 말이,
    “우리집 방문 안 산다는 말이오.” “또 저분은 어디 계시오.” 한 놈이 대답하되, “나는
    횟두루목골 사오.” 군평이 하는 말이, “내가 삭임질을 잘 하되 그 골 이름은 처음 듣는
    말이오.” 그놈이 하는 말이, “나는 집없이 되는 대로 횟두루 다니기에 할 말 없어 내 의사로
    한 말이오.” 군평이 하는 말이, “바닥 셋째 앉은 분은 성자를 뉘라 하시오.” 한 놈이
    대답하되, “나무 둘이 씨름하는 성이오.” 군평이 하는 말이, “목자 둘이 겹으로 붙이니,
    수풀림자 임 서방이오.” “또 저분은 뉘라 하시오.” 한 놈이 답하되, “내 성은 목독이에 갓
    쓰인 자이오.”군평이 하는 말이, “갓 머리에 안에 나무목 하였으니, 나라송자 송서방이오.”
    “또 저분은 뉘라하시오.” 한 놈이 답하되, “내 성은 계수남기란 목자 아래 만승천자란
    잣자를 받친 오얏이자 이서방이오.” “또 저분은 뉘라 하시오.” 한 놈이 원간 무식한 놈이라
    함부로 하는 말이, “내 성은 난장 몽둥이란 나무목자 아래 발 긴 역적의 아들, 누렁쇠아들
    검정개 아들이란 아들자 받침 복성화이자 이 서방이오.”
    “또 저분은 뉘라 하오.” 한 놈의 성은 배가라, 정신이 헐하기로 주머니에 배를 사넣고
    다니더니 성은 묻는 양을 보고, 우선 주머니를 열고 배를 찾되 배가 없는지라, 기가 막혀
    꼭찌를 치며 하는 말이, “나는 원수의 성으로 망하겠다. 이번도 뉘 아들놈이 남의 성을 내어
    먹었구나, 생후에 성을 잃어버린 것이 돈반 팔푼 열 여덟 푼어치나 되니, 갓득한 형세에
    성을 장만하기에 망하겠다.” 하고 부리나케 주머니를 뒤진다. 군평이 하는 말이, “게 성을
    물은즉, 팔결에 주머니를 왜 만지시오.” 그놈이 하는 말이, “남의 잔속을랑 모르고 답답한
    말 말으시오. 내 성은 먹는 성이올세.” 하며 구석구석 찾으매 배꼭지만 남았는지라 가장
    무안하고 위급하여 배꼭지를 내어 들고 하는 말이, “하면 그렇지 제 어디로 가리오.” “성
    나머지 보시오.” 하니 군평이 하는 말이, “친구의 성이 꼭지성방인가 보오.” “그놈의 말이
    옳소. 옳소 과연 아는 말이올세.” “또 저분은 뉘라 하시오.” 한 놈이 하는 말이, “내 성은
    안감이라는 안자에 부어터져 죽다는 부자의 난장몽동이란 동자를 합한 안부동이라 하오.”
    “또 저 분은 뉘시오.” 한 놈이 답하되, “내 성은 쇠금자를 열 대엿 쓰오.” 군평이 색여보고
    하는 말이, “쇠가 열이니 김자 하나를 떼어 성을 만들고, 나머지 쇠가 아홉이니 부딪치면
    덜렁덜렁 할 듯하니 합하면 김덜렁쇠요.” “또 저분은 뉘시오.” 한 놈이 손을 불끈 쥐고 하는
    말이, “내 성명은 이러하오.” 군평이 색여보고 하는 말이, “성은 주가요, 명은 머귄가 보오.”
    “또 저분은 뉘라 하오.” 한 놈이 손을 길길이 평어 보이거늘, 털펑이 색이는 말이 “손을 펴
    뵈니 성은 손이오, 명은 가락인가 보오.” “저분은 뉘라 하시오.” 한 놈이 답하되, “내 성명은
    한가지요.” 떠중이 하는 말이, “저기 저분 성명과 같단 말이오.” 그 놈이 하는 말이, “어찌
    알고 하는 말이오.” “내 성은 한이오.이름은 가지란 말이올세.” “또 친구의 성은 뉘라 하오.”
    한 놈이 답하되, “나는 난장몽동의 아들놈이오.” “또 저분은 뉘시오.” 한 놈이 하는 말이,
    “나도 기오.” 부딪치기 내달아 히히 웃고 하는 말이, “게도 난장몽동이가 같단 말인게오.”
    그놈이 하는 말이, “이 양반아 이것이 우스운 체요, 짖궂은 체요. 말 잘하는 체요. 누를
    욕하는 말이요, 성명을 바로 일러도 모르옵나. 각가 뜯어 일러야 알겠습니다. 성은 가나요,
    이름은 도기라 하옵네.” “또 저분은 뉘라 하오.” 한 놈이 하는 말이, “내 성명은 이털 저털,
    괴털쇠털, 말털, 시금털털하는 털자에, 보뵤 못자 합하면 털보란 사람이올세.”
    “또 저분은 뉘시오.” 한 놈이 답하되, “조치 아니하오.” 거절이 내달아 하는 말이, “성명을
    물은즉, 조치 아니하단 말이 어쩐 말이오.” 그 놈이 하는 말이, “내 성은 조요, 이름은
    치아니올세.”군집이 내달아 하는 말이, “저기 저분은 무슨 성이오.” 한 놈이 답하되, “나는
    헌 누더기 입고 덤불로 나오던 성이오.” 떠중이 색여 하는 말이, “헌 옷 입고 가시덤불 나올
    적에 오죽이 뭐여졌겠소 무인생인가.” “또 저 친구는 무슨 성이오.” 한 놈이 답하되, “나는
    대가리에 종기나던 해에 났소.” 군평이 하는 말이, “머리에 종기 났으면 병을 썼으니
    병인생인가.” 도 한 놈이 하는 말이, “나는 동창나던 해오.”군집이 삭이되, “병을 등에
    짊어졌으니 병진생인가 보오.” 또 한 놈이 대답하되, “나는 햅쌀머리에 난 놈이오.”
    나돌몽이 하는 말이, “햅쌀머리에 났으니 신미생인가.” 또 한놈이 말하되, “나는 장에 가서
    송아지 팔고 오던 날이오.” 숫쇠 내달아 단단히 웃고 하는 말이, “장에 가 소를 팔았으면
    값을 받아 지고 왔을 것이니 갑진생인가 보오.” 이렇듯 지껄이다가 그 중에 한 활자가
    내달아 하는 말이, “그렇지 아니하다. 놀부놈을 어서 내어 발기자.” 하니 여러 왈자
    대답하되, “우리가 수작하느라고 이때가지 두었지 벌써 짖을 놈이니라.” 하니 안착이 내달아
    하는 말이, “그 말이 옳다.” 하고 놀부를 잡아 들여 찢고, 차고 구울리며, 주무르고, 잡아
    뜯고, 사주리를 하며, 휘추리로 후리며, 다리사북을 도지계 틀며, 복숭아 뼈를 두드리며,
    용심지를 하여 발 살을 탄근질 하여, 여러 가지 형벌로 쉴 사이 없이 갈라트려 가며 죽이니,
    놀부 입으로 토혈하며 여러 해 묵은 똥을 싸고, 세치 네치를 부르며 애걸하니, 여러 왈자
    한번씩 두드리고 분부하되, “이놈 들으라. 우리가 금강산 구경가다가 노자가 필접하였으니,
    돈 오천 냥만 내어 와야 하지,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절명을 시키기라.” 하니 놀부 오천
    냥을 주니라. 놀부 사족을 쓰지 못하여 혼백이 떨어졌으되, 종시 박탈 마음이 있는지라.
    기염기염 동산에 올라가서 박 한 통을 따다가 힘을 다하여 타고 보니, 팔도 소경이 뭉치어
    여러 만동이 막대를 흩어 짚고 인물을 구긱이며 내달아 하는 말이, “놀부야 이놈 날까,
    길까, 네 어데로 갈다 너를 잡으려고 안남산, 밖남산, 무계동, 쌍계동으로 면면 촌촌 방방
    곡곡이 두루 편답하더니, 오늘날 이에서 만났도다.”하고 되는 대로 휘 두다리니, 놀부
    살고지라 애걸하거늘, 소경들이 북을 두드리며 소리하여 경을 읽되,
    “전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무애대비심, 신묘장구대다라니왈, 나무라다라다라야,
    남막일약바로기제사바라야아, 사토바야지리지리지지리도 도도로모자모자야,
    이시성조원시천조, 제옥청성경태상노군, 태청성경나후설군게도성군, 삼라만상이십팔수성군,
    동방목제성군, 남방화제성군, 서방금제성군, 북방수제성군, 삼십육등신선, 연즉, 월즉, 일즉,
    시즉, 사자태을성군, 놀부놈을 급살방양탕으로 갖초 점지하옵소서. 급급여율 영사파하.”
    이렇듯 경을 읽은 후에, 놀부더러 경 읽은 값을 내라하고 집안을 뒤집으니 놀부 할 일 없어
    오천 냥을 주고 생각하되 집안에 돈일푼이 없어 탕진하였는지라, 이를 어찌하지 하나니
    하면서도 동산으로 올라가서 또 왜골의 박 한 통을 따 가지고 내려와서 째보를 달래되,
    “이번 박은 겉으로 봐도 하 유명하니 바삐 타고 구경하세.” 하며 타다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우레 같은 소리 진동하며 비로다 비로다 하니 놀부 어찌할 줄 모르고 박타기를
    머무르니 박 속에서 또 불러 이르되, “무슨 거래를 이다지 하는가.” 놀부 더욱 겁을 내어
    하는 말이, “비라 하니 무슨 비온지 당명황의 양귀비오니잇가, 창오산 이비닛가. 위선
    존호를 알아지이다.” 박 속에서 하는 말이, “나는 유현덕의 아우 거기장군 장비로다.” 하니
    놀부 이 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아득하여 하는 말이, “째보야 이 일을 어찌하단 말이니.
    이번은 바칠 돈도 없고, 할 일 없고 네고 나고 죽는 수밖엔 없다.”하니 째보놈이 하는 말이,
    “이 사람아 그 어인 말인고. 나는 무슨 탓으로 죽는단 말인가. 다시 그런 말 하다가는 내
    손에 급살탕을 먹을 것이니, 그런 미친 놈의 소리는 말고 타던 박이나 타세. 장군이
    나오시거든 빌어나 보소.”
    놀부도 할 일 없으매 마지 못하여 마저 타고 보니 한 장수 나오되, 얼굴은 검고
    구레나룻을 거사리고, 고리눈을 부릅뜨고, 봉 그린 투구에 용린갑을 입고 장팔사모를 들고
    내달으며 “이놈 놀부야 네 세상에 나서, 부모에게 불효하고 형제 불화할 뿐더러, 여러 가지
    죄악이 많기로 천도가 무심치 아니하사, 날로 하여금 너를 죽여 없이하라 하시기로
    왔거니와, 너 같은 잔명을 죽여 쓸데 없으니 대저 견디어 보아라.” 하고 엄파 같은 손으로
    놀부를 훔쳐 잡아 끌을고 헛간으로 들어가 호령하되, 멍석을 펴라 하니 놀부 벌벌 떨며
    멍석을 펴니, 장비 벌거벗고 멍석에 엎드려 분부하되, “이놈 주먹괴를 쥐어 내 다리를
    치라.” 하니 놀부 진력하여 다리를 치다가 팔이 지쳐 애걸하니, 장비 호령하되, “이놈 잡말
    말고 기어올라 발길로 내 등을 찧어라.” 하거늘 놀부 그 등을 치어다 본즉, 천만장이나
    한지라 비는 말이, “등에 올라가다간 만일 미끄러져 낙상하면 이후에 빌어먹을 길도 없으니
    덕분에 살거지이다.” 하니 장비 호령하되, “정 올라가지 어렵거든, 사닥다리를 놓고 못
    올라갈다.” 놀부 마지 못하여 죽을 번 살 번 올라가서 발로 한참을 치더니, 또 다리가 지쳐
    꿈쩍할 길 없는지라. 또 애걸하니 장비 호령하되, “그러하면 잠깐 나려앉아 담배 한 대만
    먹고 올으라.” 하니 놀부 기어 내리다가 미끄러져 모저비로 떨어져, 뺨이 사태나고, 다리
    접질려 혀를 빠지우고, 엎드려 애걸하니, 장비 이를 보고 어이없어 일어 앉아 하는 말이,
    “너를 십분 용서하고 가노라.” 하더라. 놀부 생급살을 맞고도 동산으로 올라가서 박 한 통을
    따 가지고 내려와서 하는 말이, “째보야, 이 박을 타고 보자.” 하니 째보 생각하되, 낌새를
    본즉 탈 박도 없고 날찍이 없는지라, 소피하러 감을 핑계하고 밖으로 빼니라. 놀부 할 일
    없어 종을 다리고 박을 켜고 보니, 아무것도 없고 박속이 먹음직 한지라 죽을 끓여 맛을
    보고 하는 말이, “이런 국맛은 본 바 처음이로다.” 하며, 당동당동 하다가 미쳐서 또 집
    위에 올라가 보니, 박 한 통이 있으되 빛이 누르고 불빛 같은지라, 놀부 비위 동하여 따
    가지고 나려와 한참 타다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아무 소리 없고 전 동네가 물신 놀신
    만치이거늘, 놀부 하는 말이, “이 박은 농 익어 썩어진 박이로다.” 하고 십분의 칠팔 분을
    타니, 홀연 박 속으로서 광풍이 대작하며, 똥줄기 나오는 소리 산천이 진동하는지라 왼집이
    혼이 떠서 대문 밖으로 나와 문틈으로 엿보니, 되똥, 물지똥, 진똥, 마른똥 여러 가지 똥이
    합하 나와 집 위까지 쌓이는지라, 놀부 어이없어 가슴을 치며 하는 말이, “이런 일도 또
    있는가? 이러할 줄 알았으면 동냥할 바가지나 가지고 나오더면 좋을 번하다.” 하고 뻔뻔한
    놈이 처자를 이끌고 흥부를 찾아가니라. 박씨부인전
    화설 조선 인조 대왕시절에 한양 안국방에 한 명사가 있으니, 성은 이요, 이름은 득춘이요, 자
    는 문채니, 대대 명문 거족으로 일찍이 영문에 올라 벼슬이 이조참판 홍문관 부제학에 이르니, 공
    의 위인이 충효공겸하고 인후 활달하니, 명망이 일국에 진동하더라. 그 부인 강씨는 집금오 강창
    문의 딸이라. 소년 결발로 부부화락하여 금슬지락은 지극하나 성찬한 지 사십년에 일점 혈육이
    없음을 매양 근심하여 명산대척에 기도하나 종사 사속이 없으니, 공이 부인을 대하여 탄식하여
    가로되, ” 우리 팔자 기박하야 늦도록 후사를 이를 자식이 없으니, 일후 지하에 돌아가나 무슨 면
    목으로 선조를 뵈오리로. ” 말을 마치매, 눈물이 옷깃을 적시니, 부인이 사죄하여 가로되, ” 첩이
    존문에 들어와, 우흐로 구고의 총애하시니, 감사무석이오나, 다만 슬하 적막함은 첩의 죄오니, 군
    자는 첩의 불민함을 용서하시고, 명문거가에 요조 숙년를 재취하사 요행이 귀자를 얻으시면 첩의
    몸이 칠거지약을 면할까 하나이다. ” 공이 듣기를 다하고 위로하여 가로되, ” 이는 다 나의 박복
    함이라. 어찌 부인의 허물이라 하리오. ” 부인과 의논한 후, 공이 금강산 명월암에 들어가 칠일
    기도에 정성을 다하고 돌아왔더니, 하루는 공이 책사에 의지하여 조을새, 한 노인이 죽장망혜로
    점잖이 들어와 손을 잡아 예하고 가로되, ” 그대 전생에 죄 중하므로 세존이 밉게 여기사 무자이
    게 하였더니, 그대 기도가 정성이 지극함을 하늘이 감동하사 귀자를 점지 하시나니 귀히 길러 문
    호를 빛내라. ” 하고, 소매 안으로서 한 기이한 구슬을 내어 주거늘, 공이 받아들고 치하하고자
    하였더니, 문득 노인은 간데 없고, 그 구슬이 변하여 청의 동자가 되어 내당으로 들어가거늘, 공
    이 문득 깨니, 남가 일몽이라 마음에 기이히 여겨 내당으로 들어가니, 부인이 맞아 좌정하매, 공
    이 웃어 가로되, ” 내 오늘 일몽을 얻으니, 여차 여차하기로 신기히 여겨 부인께 전하노라. ” 부인
    이 또한 미소하며 가로되, ” 첩의 몽사와 일호도 다름이 없사오니, 신기하여이다. ” 공이 기꺼 가
    로되, ” 우리 양인의 몽사 이 같으니 , 이는 하늘이 우리의 무자함을 불상히 여기사 귀자를 점지
    하시도다. ” 하고, 서로 기꺼하더라. 과연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십삭이 차매, 일일은 부인이 피곤
    하여 자리에 누으니, 인하여 복통이 급하며 일개 옥동자를 낳으니, 이 떄 공이 부인의 산기가 급
    함을 보고 황망히 약을 준비하여 마루 위에 거닐더니, 홀연 서기 반공에 영롱하여, 한 선년 나려
    와 아기를 씻겨 누이고 부인께 고하여 가로되, ” 이 아기는 하늘의 태백성이 인간에 나려와, 부인
    슬하를 빛내거니와, 이 아깅의 배필은 금강산에 있으니, 부대 천정을 어기지 말으소소. ” 하고 문
    득 간데 없거늘, 공의 부부 기꺼하여, 아이를 보니 꿈에 보던 동자와 일호도 다름이 없는지라. 이
    때는 갑진 사월 삽칠일 진시라 공이 크게 기꺼, 이름을 시백이라 하고 자를 명선이라 하여 장중
    보옥같이 사랑하여 기르더니, 세월이 여류하여 시백의 나이 삼 세에 이르매, 총명이 뛰어나 온갖
    서책을 보고도 아니, 공이 그 너무 숙성함을 염려하더니, 그 이듬해 춘삼월에 부인이 또 태기 있
    어, 십이월 초순에 일개 옥녀를 낳으니, 공이 더욱 기꺼하여 여자를 자세히 보니, 요요작작 한 용
    모 세상에 짝이 없을레라. 이에 이름을 시화라 하고 자를 선옥이라 하여 금지옥엽같이 기르더니,
    점서에 모를 것이 없느지라, 이십 일 세에 이르매 옥안화용이 절승하고 숙덕이 겸비하니, 공이 거
    문거족에 어진 낭재를 널리 구하여, 슬하의 재미를 보고자 하더라. 세월이 여류하여 시백은 나이
    십육 세요, 시화 소저는 나이 십삼 세라. 이 때에 상이 공의 위인이 충후함을 아름다이 여기사,
    특히 강원감사를 재수하시니, 공이 천은을 숙사하고, 삼일 후 발정할 새, 다만 아들을 다리고 부
    인과 시화 소저를 작별 후, 수일 만에 감영에 도임하여, 정사를 밝게 다스리며 아들을 다리고 시
    서를 강론하더라. 차설 금강산 상상봉에 한 처사가 있으니, 성은 박이요, 이름은 현옥이요, 별호는
    유점대사라. 도학이 유명한 선비니, 그 부인 최씨로 동주한 지 삼십 년에 유점사 근처에 비취정을
    짓고 세월을 보낼 새, 세상 사람이 존칭하여 비취선생이라 하며, 혹은 유점처사라 일컫더라. 일찍
    두딸을 두었으니, 장녀는 십칠 세로되, 용모 박색인고로 출가하지 못하고, 아우는 일찍 출가한지
    라. 박 소저 용모는 비록 추악하나, 천성이 현숙하고 도학이 무량하여 불러 앞에 앉히고 고금지사
    를 의논하니, 소저의 대답이 대수 같아야 오히려 처사가 모를 일이라도 능히 해석하니, 처사 격절
    히 탄상하야 가로되, ” 이 아이는 세상에 기이한 재조라. 저와 같은 해석하니, 처사격절히 탄상하
    야 가로되, ” 이 아이는 세상에 기이한 재조라. 저와 같은 명헌 군자를 구하여 여아의 배필을 삼
    으리라.” 하더니, 마침 이공이 본도의 감사로 나려옴을 듣고 부이더러 가로되, ” 생이 감영에 나
    아가 이공을 보고 청혼하리이다.” 부인인 웃어 가로되. “이 감사는 조정에 유명한 재상이라, 어찌
    하여 촌부의 하염없이 딸과 연흔하고자 하리이까.” 처사 웃어 가로되. ” 부인은 염려말라. 이 두
    아이는 천정한 연분이니, 부인은 두고 보소서.” 부인이 처사의 신명함을 아는 고로 묵묵히 말이
    없더라. 처사 이에 의관을 정제하고, 한 필 청려를 채질하여 감영에 이르러 통인을 불러 명함을
    주며 가로되, “너의 사또께 드리라.” 통인이 명을 듣고 들어가 명함을 드리고 처사의 말씀을 고하
    니, 공이 의아하여 즉시 청하니, 처사 갈건포의로 천천히 들어오거늘, 공이 황망히 땅에 당나려
    맞아올려, 예를 마치고 좌정한 후, 처사 무릎을 도사리고 가로되, “비인은 금강산에 거하는 박현
    옥이라, 산야에 묻혀 있는 천한 몸으로 외람한 상공께 뵈옵은, 깊은 소회있어 감히 이르렀나이
    다.” 공이 눈을 들어 처사를 살펴보니, 선풍도골이 갈건아래 더욱 빛나니, 가히 범인이 아님을 알
    지라. 공이 공경하여 대답하되, “복은 용렬한 필부로 외람히 성은을 입사와 일도 방백의 중임을
    당하여 주야 누리더니, 이제 선생이 왕림하사 우매한 위인을 교훈하고자 하시니, 복이 알도 만민
    의 시비를 면할까 하나이다.” 처사 공경히 사례하여 가로되, “상공이 너무 포장하시니, 비인이 심
    히 황감하오나, 소생의 천견으로 천리를 궁구하온즉 영랑이 소녀와 천정 배필이오나, 다만 부끄러
    운 바는 용모 박색이 옵고 자질이 천한지라 감히 옥인군자의 배필됨이 외람하오나, 하늘이 정하
    신 배필을 어길 길이 없는 고로, 감히 상공께 이러한 사연을 고하나이다.” 공이 듣기를 마치매,
    처사의 거동을 보고 말을 들으니 범인은 필경 아니라, 저의 말이 맹랑하지 아님을 알고, 이에 흔
    연히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의 고명하신 지취와 영녀의 빼어난 자질로 용렬한 필부의 속된 자식
    의 배필을 삼고자 하시니, 이는 복의 얻지 못할 영광이라 어찌 사양하리이꼬, 바라건대 존명을 받
    드리이다.” 처사 기꺼 가로되, “상공의 존귀하심으로써 비인의 말씀을 더러이 여기지 아니하시고,
    한 말씀에 쾌히 허락하시니,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리로소이다.” 공은 또한 기꺼하여 아들을 부르
    니, 이윽고 한 소년이 청포흑건으로 앞에 나아오거늘, 공이 명하여 처사께 뵈오라 하매, 공자 부
    친의 명을 따라 처사를 향하여 공손히 재배하매, 처사 답례하고 눈을 들어 보니, 짐짓 만고영웅이
    요 일대 호걸이라, 후일에 출장입상하여, 명망이 일국에 떨칠 기상이 은은하거늘, 처사 크게 기꺼
    공을 대하여 기인한 아들 둠을 치하하니, 공이 너무 과도히 칭찬함을 사례하더라. 처사 이공을 향
    하여 가로되, “아조 길일을 정함이 어떠하니이꼬?” 공이 허락하되 크게 기꺼하여 즉시 길일을 택
    하니 명년 말월 이십 일이 대길한지라 그 날로 정하고, 주객이 기꺼하여, 술을 나아가 즐기다가
    날이 저물매, 처사 몸을 일어 하직하고, 공자의 손을 잡고 후일 다시 봄을 이르고, 표연히 당하에
    나려 돌아가니, 그 행보 경첩하야 진짓 신선이라. 이공이 아들로 더불어 그 간 곳을 바라보며 그
    신기함을 탄복하더라. 처사 공의 부자를 청하여 좌정하매, 이윽고 시녀 석반을 올리거늘, 처사 저
    를 들어 자시기를 권하니, 공이 흔연히 상을 나와 보매, 찬품이 정결하고 소탈하여 인간의 진수성
    찬에서 나옴이 있거늘, 공의 부자 식사를 마치매 상을 물치고, 처사로 더불어 고금을 의논하여 이
    윽고 담화하다가 밤이 깊으매, 처사는 내당으로 들어가고 공의 부자는 인하여 쉬니, 이튿날 공의
    부자와 한가지로 조반을 파하매, 처사 흔연히 웃어 가로되, “날이 늦었으니, 영랑은 길복을 갖추
    어 전안을 행하게 하소서.” 공이 얼굴에 기쁨을 무르녹아, 아들을 명하니 길복을 입히고 내실에
    들어가 행례함을 명하니, 처사 공자의 손을 이끌어 내당에 들어가, 교배석에 인도하니, 공자 천천
    히 걸어나가 옥상를 마치매 공자 몸을 돌이켜 외당으로 나오니, 공이 기쁨을 못 이겨 아들의 손
    을 잡고 처사를 향하여 사례하여 가로되, “선생의 고명하심으로, 자식의 용렬함을 불고하시고 천
    금옥녀로 하여금 기례를 이루니, 복의 부자는 복이 손할까 두려워하나이다.” 처사 사례하여 가로
    되, 영랑의 선풍도골로써 여아의 추한 자질을 대하니, 비인의 마음에는 몸둘 바를 아지 못하오니,
    다만 천정 연분이니 인력으로 면하지 못할 바를 아지 못하오니, 다만 천정 연분이니 인력으로 면
    하지 못할 바를 아는 고로, 오늘 길례를 치름이라. 바라건대 존공은 하해같은 은덕을 드리우사,
    여아의 추한 용모를 용서하시고 슬하에 양육하심을 바라나이다.” 공이 흔연히 웃어 가로되, “선생
    의 말씀이 너무 겸양하시는도다. 영녀의 용모 선생 말씀같아야 비록 불미한 곳이 있을지라도, 여
    자의 도는 현숙함이 으뜸이요, 용색이 미려하며 옥안박명이 쉬우니, 선생은 조금도 염려하지 말으
    소서.”
    그 후 수삭을 지내되, 공자 한 번도 소저의 숙소에 옴이 없으니, 공이 크게 성내어 공자를 불러
    꾸짖어 가로되, “옛날 제갈 무후의 부인 황씨는 인물이 박색이로되 공명의 대접이 후하고, 필경
    나와 별슬하며 유황숙을 도와 설계할 때에 황 부인이 팔문둔갑법과 호풍환우하는 술법을 무후에
    게 전수하여, 삼국에 이름이 진동하였으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리오. 그런고로 황 부인의 이름
    은 삼국에 떨쳐, 별호를 절홍부인이라 일컬었으니, 이는 천하의 뛰어난 부인이라, 네 옛 일을 미
    루어 나의 어진 며느리를 박대하지 말라.” 공자 부명을 거역치 못하고 박 소저 침소에 들어가되,
    한편 구석에 옷 입은 채 누었다가 밝기를 기다려 나가 뿐이요, 한말도 접어하지 아니하니, 어찌
    한심하지 아니하리오. 하루는 박 소저 아침 문안을 당하여 무슨 말을 하려다가 주저하거늘, 공이
    물어 가로되, “현부 무슨 소회 있느뇨?” 소저 부복하여 여짜오되, “소부용렬하고 누추한 자질로
    존문에 들어와, 모셔 구고께 불민한 일이 많사오니, 존전에 아뢰기 황송하오나, 소부의 본성이 정
    히 유벅함을 즐기고 번화한 곳이 심히 괴로운 고로, 천한 소회를 고하옵나니, 후원에 한 초당을
    이루어 거처함이 소원이오니, 대이은 허하심을 바라나이다.” 공이 듣기를 다하고, 그 정지를 가긍
    히 여겨 흔연히 허락하고, 즉시 가인을 명하여 후원에 십여 간 초옥을 이루고 기화요초를 많이
    심어 소저의 많은 지취를 도우니, 소저 공의 은혜를 감격하여 다만 사례하더라. 이 때 국가 태평
    하여 만민이 즐기니, 상이 성묘에 배알하시고 경사 과거를 배설하야 인재를 가리실새, 이시백이
    과거에 응하고자 제구를 갖추어 과장에 나아가려 하더라. 이날 밤에 박씨 일몽을 얻으니, 후원 연
    못 가운데 화초 만발한 중, 봉첩이 날아들고, 백옥연적이 홀연 변하여 청룡이 되어 노닐다가 여의
    주를 얻어 물고 채운을 타고 옥경으로 향하여 오르거늘, 놀라 깨달으니, 침상일몽이라. 심히 괴이
    히 여겨 밝기를 기다려 연못가에 나아가 보니 과연 연적이 놓였거늘, 자세히 보니 몽중에 보던
    연적이라. 갖다가 간수하고, 즉시 계화를 불러 이르되, “소서헌에 나아가 상공께 잠깐 들어오심을
    고하라.” 계화 즉시 소서현에 나아가 공자께 소저의 말씀을 고하니, 공자 좋지 않아 가로되, “무슨
    일이 있관대, 아녀자 장부의 과거길에 지체하게 하는다?” 계화 돌아가 그대로 고하니, 박씨 한참
    잠잠하다가 다시 계화를 보내어 가로되, “여자의 도리에 가부를 앉아서 청함이 당돌하오나, 잠깐
    들어오시면 장중제구에 드릴 것이 있으니, 한 번 수고를 아끼지 말으소서 하여라.” 계화 마지못하
    여 소저의 말씀을 자세히 고하되, 시백이 크게 노하여 큰 소리로 꾸짖어 가로되, “요망한 계집이
    장부의 과거길을 이렇듯 방자하니, 어찌 통분하지 아니하리오.” 말을 마치매, 분기 더욱 치밀어
    노복을 호령하여, 계화를 잡아 나리와 수죄하여 가로되, “너의 주인이 향곡에 생장하여 비록 사체
    를 모르나, 여자되어 장부의 거래를 마음대로 하니 어찌 해괴하지 아니하리오, 오늘에 너를 치죄
    함은 너의 주인을 대신함이니, 이대로 전하라.” 하고 말을 마치매, 매 삼십 도를 때려 물리치니,
    계화 울며 들어와 지낸 말을 고한다. 박씨 낙루하며 가로되, “이는 나의 죄를 너에게 연좌함이니,
    여자의 몸이 구차함을 알리로다.” 말을 마치매, 길이 탄식하여 연적을 주며 전하여 가로되, ” 이
    연적의 물로 먹을 갈아 글을 지어 써 바치면 장원급제하여 입신양명하온 후 부모전에 영화 뵈고
    문호를 빛내오리니, 첩 같은 사람은 군자에게 불과하오니 생각지 말으시고, 고문 귀족에 요조숙녀
    를 택하여 평생을 화락하옵소서 하라.” 계화 다시 나와 연적을 드리고 소저의 말씀을 고하니, 공
    자 듣기를 다하고 연적을 받아 보니, 천하의 기이한 보배라, 자기가 너무 과도하게 하였음을 후회
    하여, 이에 계화를 불러 앞에 세우고 얼굴빛이 화평하여 이르되, “너의 소저께 고하라. 생이 천성
    이 급하여 소저의 말씀을 미안히 여겨 계화를 엄중히 다스리되, 소저는 심지 온순하여 연적을 보
    내 고거 기구를 도우시니 심히 부끄럽사오나, 생의 행사를 분히 여겨 타문에 재취하라는 말씀은
    너무 과도한가 하나이다 고하라.” 계화 명을 받들고 들어와 공자의 말씀을 일일이 고하니, 소저
    잠자코 대답이 없더라. 공자 그 날 고거 제구를 갖추어 장중에 들어가, 글제를 보고, 즉시 용연에
    그 연적물로 먹을 갈아 일필휘지하니, 문부가점이라. 일천에 선장하고 방나기를 기다리더니, 이윽
    고 방을 걸새, 장원은 서울 사람 이시백이니, 부는 이조판서 득춘이라 하였거늘, 공자 일변 놀라
    며 일변 기뻐하더니, 이윽고 대 우흐로서 신래상이 장원을 보시매 만고 영중호걸이라, 용안에 희
    색이 가득하사 이 공이 귀 자를 두어 국가의 보필이 됨을 찬양하시고, 어화와 청삼을 주시니, 장
    원이 천은을 사례하고, 풍악을 거느려 궐문을 날새, 금포옥대에 표연한 풍채 만인총중에 뛰어나더
    라. 장안 대로상으로 나아가 옥면 봉안에 어주를 반취한 거동이, 진짓 진세의 선랑이더라. 행하여
    안국동 동구에 이르러, 서당에 올라 배례하고 부모께 뵈오며 일가친척에 예를 마치매, 외당의 치
    하온 손들이 사래를 부르는 소리 진동하니, 공이 아들을 거느려 외당에 나오매 공의 친구 가득하
    여 신래를 머물러 기꺼하며 치하하더라. 이 때 명나라 남경이 요란하여, 가달 등이 변경을 침노하
    매 분분한 소문이 탑전에 이르니, 상이 깊이 근사하사 이시백으로 상사를 제수하시고 가라사대,
    “경의 가합한 사람으로 군관을 정하여 택일 발정하라.” 하시니, 시백이 임경업으로 정함을 아뢰니,
    원래 임경업은 충주 사람으로 여력이 무리에 뛰어나고 지략이 광원한 지라, 일찍이 무과에 장원
    을 하매, 벼슬이 마침 철마산 중군으로 있더니, 시백이 임경업으로 상사군관을 삼아 한가지로 남
    경에 이르니, 이 때 명 처낮 소선 사신이름을 듣고 황자명으로 접빈사를 삼아 영접하는지라, 상
    사 경업으로 더불어 접빈사를 따라 궐내에 들어가 탑전에 사배하고 표문을 올리니, 천자 보시고
    좌우를 명하야 조선 사신을 다리고 예부에 나아가 연향하라 하더라. 마침 북방 호국 사신이 이르
    러 표문을 올리거늘, 상이 보시니 대강 하였으되, “가달이 강성하야 호국 지경을 침노하매, 군사
    강하야 거의 패망지경을 당한 고로 상국에 급함을 고하오니, 급히 인마를 조발하사 일국의 생명
    을 구하여 주옵소서.” 하였거늘, 천자 깊이 근심하야 호국에 보낼 장사를 택하고자 하시니, 접빈
    사 황자명 아뢰어 가로되, “조선 상사 군관 임경업의 상을 보오니, 비록 외국 인물이오나 용맹과
    지략을 겸비하와 가히 가달을 물리칠 만하오니, 이 사람으로 청병대장을 정함이 마땅할까 하나이
    다.” 천자 들으시고, 이시백을 가까이 인견하고 경업의 위인을 물으시니, 시백이 아뢰되, “경업이
    약간 지략이 있사오니, 이런 중임을 당하지 못할까 하나이다.” 명 천자 시백의 겸양함을 일컬으
    사, 임경업으로 수군병마 대원수를 하시고 상방참마검을 주사, 영을 어기는 자어든 선참후계하라
    하시며 삼만 군을 조달하야 주시니, 원수 사은하고 물러 군중에 나와 장졸을 연습하고 대군을 거
    느려 여러 날 만에 호국에 이르니, 국왕이 경업의 인물이 웅장함을 보고 크게 기꺼하야, 바삐 맞
    아 전상에 올려 상빈례로 대접하고 가달이 강성함을 이르니 경업이 가로되, “대왕은 근심말라. 내
    비록 재조 없으나, 가달을 한 번에 파하리라.” 하고, 대군을 거느려 적군과 싸워 삼십여 합에 이
    르되 승부를 모르더니, 임원수 대갈일성에 원비를 느려 가달을 사로잡아 본진에 돌아오니, 호왕이
    문무제신을 거느려 임원수를 맞아 상좌에 앉히고 대연을 배설하야 즐길새, 임원수 장대에 높이
    앉아 군사를 호령하야 가달을 잡아들여 뜰 아래 끓이고, 수죄하여 가로되, “네 비록 무지한 오랑
    케인들, 군사의 강함만 믿고 남의 지경을 범하는다?” 가달이 땅에 엎디어 사죄하여 가로되, “소방
    이 천의를 모르고 호국을 침범하와, 장군께 죽을 죄를 지었사오니, 잔명을 살리시면 다시는 이심
    을 먹지 아니하고 호국을 상국으로 복종하오리니, 장군은 용서함심을 바라나이다.” 원수 좌우를
    명하여 그 맨 것을 풀고, 장대에 올려 잔을 주어 위로 하여 가로되, “그대의 말을 들으니 전사를
    후회한 듯한 고로 모든 죄를 사하나니, 다시는 망령된 마음을 먹지 말며 천도를 어기지 말고 일
    국의 부귀를 누리라.” 하거늘, 가달이 사례하여 가로되, “죽을 죄를 사하고 이렇듯 관대하시니, 은
    혜는 백골난망이로소이다.” 하고 원수를 향하여 백배 사례하고 호왕과 하직하매 잔군을 이끌어
    본국으로 돌아가리라. 호왕이 원수를 향하여 크게 칭찬하여 가로되, “조선에 이런 명장이 있음을
    과인이 몰랐도다.” 하고 경업의 출중함을 사랑하여 부마 삼을 뜻이 있는 고로 내전에 들어가 왕
    비와 의논하고, 공주를 불러 경업의 영걸한 풍도가 있음을 이르며, “부마로 간택하고자 하나니,
    네 뜻이 어떠하뇨?” 공주 옥인을 숙이고 부끄러움을 머금고 대답하여 가로되, “부왕의 명교 마땅
    하시나, 여자의 백년의탁을 범연히 못하오리니, 소녀 비록 식견이 없사오나 친히 보아 정하리이
    다.” 왕이 가로되, “그러하라.” 하고, 이튿날 외전에 나가 임 원수를 보고 가로되, “과인이 장군을
    사랑하여 청할 일이 있으니, 장군은 용납하라.” 경업이 가로되,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느뇨?”
    호왕이 가로되, “과인이 한낱 공주 있기로 장군으로 과인의 부마를 삼고자 하여 공주에게 물은즉,
    제 대답이 제 눈으로 정하겠다고 하니 의향이 어떠하뇨?” 원수 가로되, “삼가 봉해하오리다.”하니,
    호왕이 크게 기꺼 내정으로 들어가 이 말을 이르고, 높은 누각에 주렴을 드리우고 공주를 그것에
    올려 보내니, 원수 벌써 공주의 상법을 짐작하였던지라, 목화속에 세 치 포를 돋우고 기다렸더니,
    이윽고 들어오라 하거늘 경업이 들어가더니, 공주 이윽고 보다가 가로되, “키 세 치 더하니, 앞으
    로 보면 천일지표요, 뒤로 보면 용봉의 형상이니, 영우은 영웅이로되 와석종신을 못할 것이오니
    가히 아깝도다.” 하거늘, 호왕이 부마 삼지 못함을 애닮아 하나 할 일이 없어 원수다려 밖으로 나
    가라 하고, 호왕이 외당으로 나가 공주의 말을 이르고 놀라나, 부득이 원수를 이별할 새, 금은 보
    화를 드려 상사하니, 경업이 받아 여러 장수에게 나누어 주매, 여러 장수하례하며 가로되, “소장
    등이 한 사람도 상함이 없사와 원수의 덕택이 하해 같삽거늘, 이제 또 그렇듯 관대하시니 은혜
    백골난망이로소이다.” 하고 무수히 사례하니, 원수 호왕을 작별하고 대군을 거느려 여러날 만에
    남경에 득달하여 천자께 복명하되, 천자 칭사하여 가로되, “조선에 이런 명장이 있음을 과연 몰랐
    노라. 이제 경업의 이름이 삼국에 진동하리니, 가히 아름다운 일이라.” 하시고 금은을 많이 상사
    하시니 이시백과 임경업이 사은하고 즉시 떠나 여러 날 만에 서울에 도달하여 궐하에 나아가 탑
    전에 재배하고 경업의 이름을 아뢰었더니, 상이 크게 기꺼 가라사대, “경업이 남경에 갔다가 이런
    대공을 이루어 이름을 삼국에 진동하게 하니, 이는 과인이 고굉지신이로다.”하사, 벼슬을 돋우시
    니, 경업이 머리를 조아 사례하더라. 각설 박 부인이 공을 청하여 가로되, “기룡대 돌아간 후, 호
    국 병세 점점 강성하여 군사를 이끌어 조선에 들어와 임경업을 죽이고, 우흐로 전하를 항복받고
    자 하여 용골대 형제를 좌우 선봉을 삼아 북으로 돌아, 납월 이십팔일에 동대문을 깨치고 물밀
    듯 들어오니, 부대 그 날을 어기오지 마시고 상을 모셔 광주 산성으로 급히 피하사 급한 화를 면
    하옵소서. 그 뒷일을 소첩이 이곳에서 다 방비하리이다.” 공의 부자 본래 박씨의 말을 신명히 아
    는지라, 이에 응낙하고 그 때를 기다리더니, 십이월 이십사일에 이르러 시백이 상께 아뢰어 가로
    되, “신이 처 박씨의 말이, 금월 이십팔일 밤에 호국이 북으로 돌아 동대문을 깨치고 들어오리니,
    대전과 왕대비전과 세자대군 삼형제를 모셔, 공주 산성 중으로 피화하시게 하라 하오매, 신이 처
    의 신명하옴을 아는 고로 전하께 아뢰옵나이다.” 상이 놀라서 산성으로 피난하려 하시니, 영의정
    김자점, 좌의정 박운학이 아뢰어 가로되, “도승지 이시백이 태평성대에 이런 패악한 말을 하여 성
    심으로 요동하게 하오니, 바삐 이시백을 삭직하사 후일을 징계아옵소서.” 상이 유예 미결하시더
    니, 홀연 공중으로서 한낱 선녀 앞에 비수를 끼고 선연히 나려와 뜰 아래 배알하거늘, 상히 놀라
    물어 가라사대, “선녀는 무슨 일로 이런 누지에 왕굴하느뇨?” 그 선녀 다시 재배하여 가로되, “신
    첩은 이시백의 부인 박씨의 시비 계화옵더니, 박 부인이 신첩다려 이르되, 지금 성상이 간신 김자
    점의 참소를 들으시고 유예 미결하시려니, 네 급히 들어가 나의 말을 아뢰어 산성으로 동가하시
    게 하라 하더이다.” 하고, 칼을 집에 꽂고 앞에 망두석을 들어 김자점, 박운학을 겨누며 꾸짖어
    가로되, “김자점, 박운학은 들어보라. 너의 벼슬이 일품에 이르러, 일인지하에 만인지하에 만인지
    상이 되었으되, 국은을 갚음은 생각지 아니하고, 나라에 직간하는 충신을 참소하야 도리어 모해하
    려 하니 너 같은 간신을 어찌 용남하리오마는, 너의 죽을 기한이 아직 멀었기로, 우리 부인 말씀
    이 죽이지는 말고 저이 등의 죄과만 수죄하고, 또 조선의 국운이 장원하니, 불칙한 뜻을 품지 못
    하게 하라 하시더라.” 하고 무수히 질욕하니, 김자점 등이 낯을 싸고 무료히 물러나더라. 계화 다
    시 땅에 엎드려 아뢰어 가로되, “만일 이 밤을 지체하시면 대화 당두하리니, 신첩의 부인의 말을
    어기지 마옵소서.”하고, 표연히 몸을 일어 돌아가거늘, 상이 심히 신기히 여기사 이에 이시백으
    로 이조판서 광주유수를 하시사, 내전과 세자 대군을 거느려, 이시백으로 호위하라 하시고 산성으
    로 가려 하시더라. 원래 망부석은 태조대왕 즉위시에 일등 석수를 불러 만들고 세운 것이니, 그
    무게가 천 근이라, 세상에 드는 사람이 없더니, 조고마한 삼 척 여자 드는 것을 보고 만조 공경이
    다 놀라 헤오되 박씨의 시비 저러하니 그 상전의 도량과 용량을 어이 측량하리오 하니, 김자점
    등 간신이 다 퇴조하여 나가고, 그 남은 백관은 어가를 호위하여 산성으로 나가더니, 과연 백성의
    전언을 들으니, 호병이 도성에 들어와 백성을 살해하며, 궐내에 들어가 수직하는 관원을 베이고
    재산과 부녀를 탈취하니, 만성 인민이 병화를 피하여 도로를 메웠거늘, 상이 들으시고 크게 놀라,
    창화하신 중에 박 부인의 지감과 충성을 기특히 여기사, 시백을 불러 무수히 찬양하시더라. 이
    때 용골대 대병을 거느려 도성에 이르러 보니, 국왕이 광주로 피난하였거늘, 분함을 참지 못하여
    용홀대로 도성을 지키고, 스스로 철기 오천을 거느려 물밀 듯 나가 송파를 건너 평원 광야에 진
    세를 이루고, 이에 산성 남문을 에워싸고 크게 외어 가로되, “죽기를 두리거든 빨리 문을 열어 항
    복하라.” 하거늘, 수문장이 황망히 들어가 문을 열라 하니, 전하는 바삐 군졸을 내어 도적을 방
    비하소서.” 상이 놀라 가라사대, “이는 하늘이 망함이로다. 사백 년 왕업을 과인에게 이르러 망할
    줄 어찌 뜻하였으리오.”하시고, 용루를 흘려 소매를 적시거늘, 이시백이 아뢰어 가로되, “전하는
    과히 근심 말으소서. 이는 다 천수라 인력으로 어이하오리까. 제 아무리 강성하여도 산성 사문이
    견고하니 간대로 범하지 못하오리이다.” 하고, 백관이 호위하야 성심을 위로하더니, 문득 방포 소
    리 천지 진동하여 무수히 철기 사면으로 철통같이 에워싸고 사다리를 놓고 일시에 올라 성중으로
    향하여 총을 놓으니, 철환이 비오듯 하거늘, 만성 인민이 자상 천답하여 달아나고 호곡하는 소리
    성중에 들리는 지라, 상이 경황하사 아모리 할 줄 모르시더니, 홀연 공중으로서 크게 외어 가로
    되, “성상은 과히 근심하지 말으시고 적군과 화친하소서. 용골대 필연 세자대군 삼 형제 분을 볼
    모 잡아가오리니 망극하오나, 사직의 위태함을 면하게 하소서. 국운이 불길하와 호국의 침해를 바
    다사옴은 다 운수라 면할 수 없나이다. 신첩 다른 사람 아니오라,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로소이
    다. 신첩이 한 번 나아가 칼을 들면, 용골대의 머리와 호병 삼만을 풀 베듯 할 것이로되, 천의를
    어기지 못함이오니, 신첩의 죄를 사하옵소서.” 상이 신기한 여기사, 들에 나려 공중을 향하여 무
    수히 칭사하시고 적군과 화친을 청하니 용골대 화친을 하고, 세자대군과 왕대비전을ㄹ 다려 광주
    를 떠나가니라. 이 때 박 부인은 모든 친척과 충신열사의 집에 통기하야, 피화정으로 피신하게 하
    니라. 화설 전 영의정 김자점이 이시백과 임경업을 시기하야 해하고자 할 새, 먼저 경업을 해하리
    라 하고, 어명이라 거짓 일컬어 경업을 형벌을 중히 하야 전옥에 가두고 장차 죽이기를 꾀하니,
    세자, 경업이 자점의 해를 당함을 아시고 참연히 여기사, 전옥으로 가려하사 전지를 나리오니, 전
    옥 문 앞에 홍살문을 증수하야 세우고 거동하기를 대령하였더니, 만조간하야 가로되, “조정 신하
    를 보시려 전옥에 친행하심이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전하는 깊이 살피소서.” 세자 그러히 여기사
    중지하시니, 이 때에 경업은 형벌을 별도로 더하야 기묘삼월 이십육일에 명이 다하니, 나히 삼십
    이세라. 하루는 상이 침석에 의지하야 계시더니, 비몽사몽간에 경업이 일시에 피를 흘리며 걸어오
    며 고하야 가로되, “신이 생전에 지성으로 성상을 섬기고자 하였더니, 시운이 불길하야 김자점의
    해를 만나, 일신이 성한 곳이 없이 중상을 입어 몸을 망하오니, 어찌 통분하지 아니하리이꼬, 바
    라옵건대 선상은 신의 일신을 애휼하사, 역적 김자점을 죽여 원수를 갚아 주옵시면, 신은 죽은 혼
    백이라도 충성을 다할까 하나이다.” 하고 울며 가거늘, 상이 놀라 다시 듣자고 하시다가 번드쳐
    깨치시니 남가일몽이라. 상이 몽사를 의심하사, 이시백을 명초하사 경업의 일을 물으시니, 시백이
    복지하야 눈물을 흘리며, 자점이 음흉하야 경업을 따려 전옥에 가두매, 장독이나 원통히 죽음을
    아뢰니, 상이 크게 노하사 자점을 금부로 나려 엄중히 문초하시매, 전후 죄상이 드러나는지라, 상
    이 더욱 노하사, “자점을 군기신전에 처참하야 머리를 각 읍에 돌리고, 경업의 가속에게 자점의
    일신을 내어 주어 임의로 복수하게 하며, 처자를 교하고 가장집물 적몰하라.” 하시니 가히 원통하
    다. 자점이 일국의 여의정으로 부귀가 족하거늘, 흉모를 꾀하다가 몸을 온전히 못하니, 혼백인들
    어데가 용납하리오. 이 때 이시백이 전교를 받자와 자점의 죄목을 나타내고, 일신을 결박하야 신
    전에 세우고, 먼저 목을 버히고 몸을 찢으니, 경업의 권솔이 따라들어 지점의 살을 씹으며, 간을
    내어다가 영위에 제사하야 설원하니라. 이 때 상이 경업을 애연히 여기사, 예부에 전지하야 충신
    문을 세우라 하시고, 벼슬을 추증하야 대광보국의 정부 영의정 세사자를 하시고, 시호를 충렬공이
    라 하고 국구의 예로 장사하라 하시며, 그 자식에게 벼슬을 주어 기복출사하게 하시고, 제문을 친
    필로 지으사 예관을 보내어 치체하시며, 죽은 후 십년까지 영의정의 녹을 누리게 하시니, 성덕이
    하해 같더라. 이 때 어후 미녕하사 추구월 초순에 승하하시니, 재위 삼십 이년이라. 만조 상사를
    발하고, 세자 즉의 하시니, 시년 이십 구 세라. 세상이 태평하야 길에 빠진 것을 줍지 않고 산에
    도덕이 없고 밤에 문을 닫지 아니하며, 거리거리 격양가를 부르더라. 시백이 이러한 태평 시절에
    일국 재상이 되어 음양을 다스려 사시를 순하게 하며 백성을 인의로 인도하니, 공의 이름이 일국
    에 진동하고, 그 아들 희인 형제 다 급제하야, 하나는 평안감사를 하고 하나는 송도유수를 하매,
    양인의 정사 청백하고, 자손이 각각 십여 인이되, 개개 옥수 기린 같아서 노승상 안전에 있어 재
    롱으로 세상을 보내더니, 노승상이 우연히 병을 얻어 알지못하고 인하여 별세하니, 승상 부부 호
    천망극하야 주야로 애통함을 마지 아니하더니, 대부인이 이어 별세하니, 시년이 팔십삼 세라. 공
    의 부부 일시에 천붕지통을 당하매, 더욱 애통하야 혼도하였다가 겨우 음식을 나와 기운을 진정
    하고 상인이 다다르매 예로써 선산에 장사하니라. 상이 들으시고 비감함을 마지 아니하사, 예관을
    보내어 치제하시고, 인하야 공을 편전으로 부르시어 용모 쇠로함을 보시고 심히 근심하사 위로하
    시니, 승상이 천은을 황공하야 부복 사은하니, 상이 공이 너무 비창하야 함을 보시고 가라사대,
    “경의 괴로운 직책을 갈아 봉조하를 하이나니, 조회에 참례하지 말고 고당에 한가히 있어 자손의
    영효를 받으라.” 하시고, 회인의 벼슬을 도도와 이조판서를 하시고, 희기로 도승지 형조참판을 하
    이사,” 불일 상경하야 과인의 바람을 저바리지 말라.”하시니, 양공이 궐하에 나아가 사은하온대,
    상이 가로되, “경 등은 충성으로 직책을 다하라.” 하시되, 양공이 즉시 퇴좌하야 집에 돌아와 공의
    부부께 뵈옵고, 일가 친척을 청하야 여러 해 그리던 정회를 펴니라. 이 때 , 이 공 부자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자손을 교훈하야 부귀를 누리더니 이러구러 공의 나이 팔십이 지나되, 기운이 강
    건하야 강장한 소년을 당하더니, 추구월 망간에 이르러 월색이 명량하니, 공이 부인으로 더불어
    완월대에 올라 남녀 자손을 좌우에 앉히고, 수작을 열어 즐길 새, 공이 스스로 잔을 잡알 두 아들
    을 주어 가로되, “내 소년 적 일이 어제 같더니 어느 사이 팔십이 지나니, 세상사 일장춘몽이라
    어찌 한심하지 아니리오. 우리 부부 세상 연분이 다하매, 장차 너희들을 영결하고자 하나니, 너희
    두 사람은 조금도 설워 말고 자손을 거느려 길이 영화 부귀를 누리라.” 두 아들이 망극한 말을
    받아오매, 황황망조하야 슬픈 눈물이 앞을 가리오니, 잔을 받아 마시려 하나 가슴이 막혀 잔을 놓
    고 울기를 마지 아니하거늘, 공의 부부 정색하고 꾸짖어 가로되, “사람이 세상에 나매, 일생 일사
    는 면하지 못할 일이요, 네 아비 나이 팔십이 지나고, 관록이 일품에 이르고, 자손이 번성하야 문
    호를 빛내니, 지금 죽은들 무엇이 원통하리오. 너희 등은 무익한 슬픔을 일으켜 자손의 민망한 정
    지를 돌아보지 아니하느뇨?” 말을 마치매 안색이 심히 좋지 않거든, 두 아들이 황공하야 안색을
    고쳐 사죄하고 다시 모시니 공이 모든 손자를 면면이 가차하고, 인하야 상을 물리라 하고, 부부
    양인이 침석을 바로하고 세상을 버리니, 이 판서 형제 발상하야 애통함을 마지 아니하고 슬픈 기
    운이 온 집에 진동하더라. 상이 들으시고 또한 비감하사 예관을 보내어 치제하고, 부의를 두터이
    하시매, 시호를 문충공이라 하시고, 박씨부인으로 충렬비를 봉하야 추증하시더라. 계화도 이에 죽
    으니, 이 판서 형제 더욱 설워하나, 상례를 차려 입관 성복하고 길일을 가려 선산에 안장하고, 판
    서 형제주야로 여막에 거하야 효성으로 삼년을 지낸 후에, 상이 그 충효를 아름다이 여기사 다시
    이조판서의 중임을 맡기시니, 공의 형제 기특한 충성으로 임금을 섬겨 벼슬이 일품에 이르고, 자
    손이 대대로 충효를 다하더라. 이생규장전
    송도에 이씨성을 가징 서생이 낙타교 옆에 살고 있었다. 나이는 열 여덟인데 얼굴은 말쑥하며
    재주가 뛰어났다. 일찍부터 국학에 다녔는데 길을 가면서도 글을 읽었다. 그때 선죽리 귀족집에
    최씨 처녀가 살고 있었다. 나이 열대여섯쯤 외었는데 맵시는 아리땁고 자수에 능하며 시부에도
    뛰어났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했다. 이 서생은 일찍부터 책을 끼고 학교에 갈 때는 언제나
    최 처녀의 집 앞을 지나다녔는데 그 집 북쪽 담 밖에는 수십 그루의 수양버들이 운치 있게 둘러
    처져 있었다. 이 서생은 어떤 날 그 나무 밑에서 쉬다가 문득 담 안을 엿보았더니 이름 있는 온
    갖 꽃들이 활짝 피어 있고 벌과 새들이 그 사이를 요란하게 날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자그마한 누
    각이 꽃 숲 사이에 은은히 보이는데, 구슬로 만든 발은 반쯤 가려 있고 비단 휘장은 나지막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속에 한 아름다운 여인이 수를 놓고 있다가 손을 잠시 멈추고 아래턱을 괴더
    니 시를 읊는다. 이 서생은 그녀가 읊은 시를 듣고는 자기의 재주를 급히 시험하고자 안달이 났
    다. 그러나 그 집의 담장은 높고 가파르며 안채가 깊숙한 곳에 있었으므로 다만 서운한 마음으로
    학교로 갔다. 그는 돌아올 때에 흰종이 한 폭에다 시 3수를 써서 기와 쪽에 배달아 담 안으로 던
    져 보냈다. 최 처녀는 시비 향아를 시켜 주워보니 이 서생이 보낸 시였다. 최 처녀는 그 시를 읽
    고 또 읽은 후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자기도 종이 쪽지에다 짤막한 글귀를 적어서 담장 밖으로
    던져 주었다. “도련님은 의심하지 마십시오. 황혼에 뵙기로 합시다.” 황혼이 되자 이 서생은 최 처
    녀의 집을 찾아갔다. 문득 복숭아 꽃나무 한 가지가 담 밖으로 휘어져 넘어오면서 간들거리기 시
    작했다. 이 서생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넷줄에 매달린 대광주리가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다.
    이 서생은 그 줄을 타고 담을 넘어갔다. 때마침 달이 동산에 돋아오고 그림자가 땅에 깔려 맑은
    향기가 사랑스러웠다. 이 서생은 자기가 신선 세계에 들어오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
    음은 은근히 기뻣으나 몰래 숨어들고 보니 모발이 곤두섰다. 그가 좌우를 살펴보니 최 처녀는 벌
    써 꽃떨기 속에서 시녀 향야와 함께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
    다. 그녀는 이 서생을 보자 방긋 웃으며 시 두 구절을 먼저 읊었다. 최 처녀는 곧 낯빛이 변하면
    서 말했다. “도련님 저는 애당초 도련님을 끝내 남편으로 보셔 오래도록 즐겁게 지내려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련님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오나 조금
    도 걱정함이 없는데 대장부의 의기를 가지고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뒷날에 규중의 비밀
    이 누설되어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게 되더라도 저 혼자 책임을 지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그녀
    는 향아를 시켜 방에 들어가서 술과 과일을 가져오게 했다. 향아가 떠나 버리자 사방이 적막하며
    인적이라고는 없었다. 이 서생이 물었다. “여기는 어떤 것입니까?” “이것은 저의 집 뒷동산에 있
    는 작은 누각 밑입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무남독녀이므로 여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따로이 연못가에 누락을 지으시고 시비와 더불어 화창한 봄을 즐기게 해주셨습니다.. 부모님께서
    는 여기서 떨어진 깊숙한 곳에 계시기 때문에 비록 웃으며 큰소리로 얘기해도 쉽게 들리지 않습
    니다.” 여인은 좋은 술을 따라 이 서생에게 권하면서 시 한 편을 읊었다. 이 서생도 시를 지어 화
    답했다. 이 서생이 읊기를 마치자 최 처녀가 말했다. “오늘 일은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닙니다. 도
    련님은 저를 따라오셔서 두터운 정의를 맺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그녀가 북쪽 창문으
    로 들어가자 이 서생도 취를 따랐다. 누각에 걸쳐진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다락이 나타났다.
    그곳은 서재였다. 책상은 매우 말끔했으며 한 쪽 벽에는 안개 낀 강 위에 첩첩이 싸인 산봉우리
    를 그린 그림 한 폭과 우거진 대와 묵은 나무를 그린 그림 한 폭이 걸려 있는데 모두 유명한 그
    림들이었다. 그림 위에는 시를 써 놓았는데 그것은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첫째 그림에
    시가 씌어 있었다. 둘째 그림에도 시가 씌어 있었다. 한 쪽 벽에는 사시의 경치를 읊은 시를 각각
    네 수씩 붙여 놓았는데, 그것도 역시 어떤 이가 지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글씨는 조맹부의 서체를
    본받아서 자체가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그 다음 폭에도 역시 시가 있었다. 한 쪽에 따로 작은 방
    하나가 있는데, 휘장, 요, 이불, 베개 등이 또한 매우 정결했고, 휘장 밖에는 사향을 태우고 난향
    의 촛불을 켜 놓았는데 환학 밝아서 대낮과 같았다. 이 서생은 여인과 더불어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면서 이곳에서 머물렀다 며칠 후 이 서생은 최 처녀에게 말했다. “옛 성인의 말씀에 어버이
    의 슬하에 있는 몸은 집을 나갈 때는 반드시 가는 것을 알려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집을
    나온 지 벌써 사흘이나 되엇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반드시 마을 입구에 나와서 기다릴 것이니 어
    찌 자식의 도리가 하겠습니까?” 최 처녀는 서운하게 여기면서도 이를 옳게 여겨 승낙하고는 담을
    넘어 보내 주었다. 이 서생은 그 후 저녁이면 최 처녀를 찾지 않는 날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에
    이 서생의 아버지는 그에게 꾸짖으면서 말했다. “네가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
    은 옛 성현의 참된 말씀을 실천하려 함인데 요사이는 황혼에 집을 나가서 새벽에 돌아오니 어찌
    된 까닭이냐? 틀림없이 경박한 놈의 행실을 배워서 남의 집 담장을 넘어가서 처녀를 엿보고 다니
    는 것이겠지? 이런 일이 만일 탄로나면 사람들은 모두 내가 잘못 가르쳤다고 책망할 것이요, 또
    그 처녀도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이라면 반드시 네 행동 때문에 그의 가문이 누를 입게 될 것이니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다. 너는 한시바삐 영남으로 내려가서 노복들의 농사 감독이나 해라. 그리고
    는 다시는 돌아올 생각은 하니 말라.” 아버지는 이튿날 아들을 울주로 내려보내 버렸다. 최 처녀
    는 저녁마다 화원에 나와서 이 서생을 기다렸으나 두 서너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 서생이 병이나 나지 않았나 염려되어 향하를 시켜서 몰래 이웃 사람들이게 물어보게 했더니
    이웃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 도령은 아버지께 죄를 얻어 영남으로 내려간 지가 벌써 두서
    너 달이 되었네.” 여인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나 상심하여 병이 나서 침상에 쓰러졌다. 그녀는 음
    식도 먹기 못하고 말도 두서가 없었으며 피부는 피빛을 잃었다. 그녀의 부모는 이를 이상히 여겨
    병의 증상을 물어보았으나 묵묵히 말이 없었다. 그들은 딸의 상자 속을 들추어보았다 거기에는
    딸이 이 서생과 서로 주고받은 시가 들어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제야 놀라면서 무릎을 쳤다.
    “아이고 까딱 잘못했으면 내 귀한 딸을 잃을 뻔했구나.” 그들은 딸에게 물었다. “이 서생이란 대
    체 누구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니 최 처녀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었으므로 목구멍에서 간
    신히 나오는 목소리로 부모님께 사뢰었다. “저를 고이 길러 주신 아버님과 어머님께 어찌 감히
    사실을 숨기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하옵건데 남녀가 서로 사랑을 느낌은 인간의 정리로서 가장중
    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혼기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시경의 주남편에도 나타나고,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흉하다는 것은 역경에 경계되어 있습니다. 저는 냇버들 같은 연약한 자질
    로서 용색이 시드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서 절개를 지키지 못하여 옆 사람의 비웃음을 받게 되었
    습니다. 새삼 덩굴과 여러 이끼가 다른 나무에 의지해서 살 듯이 벌써 위당의 처녀 행세를 하게
    되었으니, 죄가 이미 가득 차 수치가 가문에 미치고 말았습니다. 저는 장난꾸러기 도련님과 정을
    통한 후에야 도련님께 대한 원망이 첩첩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저의 연약한 몸으로 괴롬을 참고
    살아가려니 사모하는 정은 날로 깊어 가고 아픈 상처는 날로 더해 가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원한 맺힌 귀신으로 화해 버릴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남은 생명이나
    보전되겠습니다만, 만약 저의 이 간곡한 청을 거절하신다면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도련님과 저
    승에서 다시 함께 만날지언정 절대로 다른 가문에는 시집가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이미
    그 딸의 뜻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병의 증세를 묻지 않고 깨우쳐 주고 달래오 주고 하여 그녀의
    마음을 누그럽게 해 주었다. 그들은 매자를 사이에 넣어 예를 갖추어 이 서생의 집으로 보냈다.
    이 서생의 아버지는 최씨 집안에 대해서 묻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저의 집 아이가 비록 나이
    젊어서 바람이 났다고 하더라고 학문에 정통하고 풍채도 현인답게 생겼소. 훗날엔 장원으로 급제
    할 것이며 이름을 세상에 떨칠 것이니, 그의 배필을 서둘러 구할 생각이 없소” 매자가 돌아가서
    사실대로 전하니 처녀의 아버지는 다시 매자를 이씨 집에 보내어 말하게 했다. “송도에 사는 친
    구들이 모두 그 댁의 영식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났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과거하
    지 않고 있습니다만 어찌 끝까지 초야에 묻혀 있을 인물이겠습니까? 제 여식도 과히 남에게 뒤지
    지는 않으오니 그들의 혼인을 이루어 주심이 어떠하겠습니까?” 매자는 다시 이 서생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그대로 전했다. 이 서생의 아버지는 말하였다. “나도 젊어서부터 책을 들고 학문을 닦았
    으나 아직 성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노복들은 뿔뿔이 흩어져 가고 친척들도 도와주지 않
    아서 생활이 치밀하지 못해 살림이 궁색해졌습니다 그런데 어찌 권세 잇는 가문에서 빈한한 선비
    의 자제를 사위로 삼으려 하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호사가들이 내 가문을 지나치게 칭찬해서 규
    수댁을 속이려는 것입니다.” 매자는 한번 더 돌아와서 들은 대로 일러주니 최씨 집에서는 말했다.
    “모든 예물 드리는 절차와 의장은 저희 집에서 다 처리할 것이니 좋은 날만 가려 가약을 맺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고 여쭈어 주시오.” 매자는 또 달려가서 이 말을 전했다. 이씨 집에서는 마침
    내 뜻을 돌려서 곧 사람을 보내어 이 서생을 불러와서 그의 의사를 물었다. 그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서 시를 지어 읊었다. 최 처녀는 이 서생이 이 같은 시를 지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병이 차차
    나아져 그녀도 시를 지어 읊었다. 이에 길일을 택해서 혼례를 이루니 끊어졌던 사랑이 다시 이어
    졌다. 그들은 부부가 된 이후에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공경하여 손님과 같이 대하니, 옛날의 양홍,
    맹광과 포선, 환소군의 부부일지라도 그들의 절개와 의리를 따를 수 없었다. 이 서생이 이듬해에
    대과에 합격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니 그의 명성이 조종에까지 알려졌다. 이윽고 신축년에 홍건적
    이 서울을 점령하매 임금은 복주로 피난 갔다. 적들은 집을 불태우고 사람과 가축을 주기고 잡아
    먹으니, 그의 가족과 친척들은 능히 서로 보호하지 못하고 동서로 달아나 숨어서 제각기 살기를
    꾀했다. 서생은 가족을 데리고 궁벽한 산골에 숨어 있었는데 한 도적이 칼을 빼어들고 쫓아왔다.
    서생은 겨우 달아났는데 여인은 도적에게 사로잡힌 몸이 되었다. 적은 여인의 정조를 겁탈하고자
    했으나 여인은 크게 꾸짖어 욕을 퍼부었다. “이 호랑이 창귀 같은 놈아! 나를 죽여 씹어먹어라.
    내 차라리 이리의 밥이 될지언정 어찌 개돼지의 배필이 되어 내 정조를 더럽히겠느냐?” 도적은
    노하여 여인을 한 칼에 죽이고 살을 도려 흩었다. 한편 서생은 황폐한 들에 숨어서 목숨을 보전
    하다가 도적의 무리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살던 옛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집은 병화
    에 타버리고 없었다. 다시 아내의 집을 가보니 행랑채는 쓸쓸하고 집안에는 쥐들이 우글거리고
    새들만 지저귈 뿐이었다. 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작은 누각에 올라가서 눈물을 거두고 길게 한
    숨을 쉬면 날이 저물도록 앉아서 지난날의 즐겁던 일들을 생각해 보니, 완연히 한바탕 꿈만 같았
    다. 밤중이 거의 되자 희미한 달빛이 들보를 비쳐 주는데 낭하에서 발자국 소기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먼 데서 차차 가까이 다가왔다. 살펴보니 사랑하는 아내가 거기 있었다. 서생은 그녀가 이
    미 이승에 없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으나 너무나 사모하는 마음에 반가움이 앞서 의심도 하지 않
    고 말했다. “부인은 어디로 피난하여 목숨을 보전하였소.” 여인은 서생의 손을 잡고 한바탕 통곡
    하더니 곧 사정을 얘기했다. “저는 본디 양가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가정의 교훈을 받아 자수와
    바느질에 힘썼고, 시서와 예법을 배워 왔습니다. 그러니 다만 규중의 법도만 알았을 뿐이었습니
    다. 어느 날 낭군께서 붉은 살구꽃이 피어 있는 담을 엿보게 되자 저는 스스로 몸을 바쳤으며, 꽃
    앞에서 한번 웃고 난 후 평생의 가약을 맺었었고 휘장 속에서 거듭 만났을 때는 정이 백년을 넘
    쳤습니다. 사세가 이렇게 되자 부끄로움을 차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장차 백년을 함께 하려 했는
    데 어찌 횡액을 만나 구렁에 넘어질 줄 알았겠습니까? 끝내 이리 같은 놈들에게 정조를 잃지는
    않았습니다만, 스스로 몸뚱이를 진흙창에서 찢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진실로 천성이 그렇게 만
    든 것입니다만 인정으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낭군과 궁벽한 산골에서 헤어진
    후론 짝 잃은 새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집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잃었으니 피곤한 혼백의 의지
    할 곳 없음이 한스러웠습니다. 의리는 중하고 목숨은 가벼우므로 쇠잔한 몸뚱이로서 치욕을 면한
    것만은 다행이었습니다만, 누가 산산조각난 제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겠습니까. 다만 애끊는 썩은
    창자에만 맺혀 있을 뿐입니다. 해골은 들판에 던져졌고 몸뚱이는 땅에 버려지고 말았으니, 생각하
    면 그 옛날의 즐거움은 오늘의 이 비운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
    봄바람이 깊은 골짜기에 불어와서 제 환신이 이승에 되돌아 왔습니다. 낭군과 저와는 3세의 깊은
    인연이 맺혀져 있는 몸,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이제 되살려서 결코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낭군께서 지금도 3세의 인연을 알아주신다면 끝내 고이 모실까 합니다. 낭군께서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서생은 기쁘고 또 고마워서, “그것은 본디 나의 소원이오.” 하고는 서로
    즐겁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윽고 이야기가 가산에 미치자 여인은 말했다. “조금도 잃지 않고 어
    떤 산골짜기에 묻어 두었습니다.” “우리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은 어디에 있소?” “하는 수 없이 어
    떤 곳에 버려 두었습니다.” 서로 쌓였던 이야기가 끝나고 잠자리를 같이 하자 지극한 즐거움은
    옛날과 같았다. 이튿날 여인은 서생과 함께 개녕동을 찾아가니 거기에는 금은 몇 덩어리와 재물
    약간이 있었다. 그들은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거두어 금은과 재물을 팔아서 각각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고는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모든 예절을 다 마쳤다. 그 후 서생은 벼슬을 구하지 아
    내와 함께 살게 되니 피난 갔던 노복들도 또한 찾아들었다. 서생은 이로부터 인간의 모든 일을
    전혀 잊어버리고서 친척과 귀한 손의 길흉사 방문에도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으며, 늘 아내와 함
    께 싯구를 지어주고 받으며 즐거이 세월을 보냈다. 어느덧 두서너 해가 지난 어떤 날 저녁에 여
    인은 서생에게 말했다. “세 번째나 가양을 맺었습니다마는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으므로 즐
    거움도 다하기 전에 슬픈 이별이 갑자기 닥쳐왔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목메어 울었다. 서생은 깜
    짝 놀라면서 물었다. “그 무슨 까닭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오?” 여인은 대답했다. “저승길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낭군의 연분이 끊어지지 않았고 또 전생에 아무런 죄악도 없었
    으므로 이 몸을 환신시켜 잠시 낭군을 뵈어 시름을 풀게 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서 산 사람을 유혹할 수는 없습니다.” 하더니 시비에게 명하여 술을 올리게 하고는
    옥루춘곡에 맞추어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서생에게 술을 권했다. 노래 한 가락씩 부를 때마다 눈
    물에 목이 막혀 거의 곡조를 이루지 못했다. 서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했다. “나도 차라리 부
    인과 함께 황천으로 갔으면 하오. 어찌 무료히 홀로 여생을 모내겠소. 지난번에 난리를 겪고 난
    후에 친척과 노복들이 각각 서로 흩어지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해골이 들판에 버려져 있을 때 부
    인이 아니었더라면 누가 능히 장사를 지내 주었겠소. 옛 사람의 말씀에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예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후에도 예절로써 장사 지내야 한다 했는데, 이런 일을 모두 부인이 실
    천했소. 그것은 부인은 천성이 순효하고 인정이 두터운 때문이니 감격해 마지않았으며, 스스로 부
    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였소. 부인은 이승에서 함께 오래 살다가 백년 후에 같이 세상을 떠나는 것
    이 어떻겠소?” 여인은 대답했다. “낭군의 수명은 아직 남아 있으나. 저는 이미 저승의 명부에 이
    름이 실려 있으니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굳이 인간 세상을 그리워해서 미련을
    가진다면 명부의 법에 위반됩니다. 그렇게 되면 죄가 저에게만 미칠 것이 아니라 낭군님께까지
    미칠까 두렵습니다 베풀어주시겠다면 유골을 거두어 비바람 맞지 않게 해주십시오.”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미구에 여인은 말했다. “낭군님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말을 마치
    자 점점 사라져서 마침내 종적을 감추었다 서생은 아내가 말한 대로 그녀의 해골을 거두어 부모
    의 무덤 곁에 장사를 지내 주었다. 그 후 서생은 아내를 지극히 생각한 나머지 병이 나서 두서너
    달만에 그도 또한 세상을 떠났다. 이 사실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슬퍼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절
    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춘향전
    화설, 아조 인조조 때에, 전라도 남원 부사 이등이 한 아들을 두었으니 이름은 령이라. 연광이
    십육에 관옥의 기상과 두목지 풍채와 이 백의 문장을 겸하였으니, 칭찬 않는 이 없더라. 책방에
    있어 신성지여에 학문을 힘쓰더니, 때는 방춘화류 호시절이라. 초목군생지물에 개유이자락하여,
    너구리 넛손자 보고, 두꺼비 순산하고 면산의 불탄 잔디 밤비에 속잎 나고 진처사 옲문은 초록장
    드리운 듯, 뒷동산 녹음중의 꾀꼬리 환우이라. 소년 과부 새벽달 봇짐 봇짐 쌀 때러라. 춘흥을 못
    이기어 화류차로 방자 불러 분부하되, “내 고을 구령처가 어디어디 좋은고.” 방자 여짜오되, “관동
    팔경과 해주 매월당, 진주 촉석루, 평양 봉부벽루, 성천 강건루, 황주 월파쌍성 호이라 하오되 절
    승한 경개는 남원 광한루 경치를 따를 길 없삽기로 팔도에 유명하와 일컫기를 소강남이라 하나이
    다.” 이도령 말이, “만일 네 말 같을진데 제일 강산이로다. 아모커나 광한루 구경차 포진거행하
    라.”하고 방자놈 앞세우고 탄탄대로로 마음심자 갈지자로 세류 춘풍에 명맥의 걸음으로 뒷동뒷동
    걸어 광한루에 다달아 뒤짐지고 배회하며 방자 불러 하는 말이, “악양루 봉황대 풍광과 황학루
    고소대 경치가 이에서 더할소냐.” 방자놈 속여 여짜오되, “경개 이렇기로 일기 청명하면 운무 잦
    아지고 종종 신선이 내려와 노나이다.” 도령 왈, “그럴시 분명하다.” 이 때 마침 본읍 기생 춘향이
    추천자로 위복 단장 치레할 새, 아리따운 고운 양자 팔자 청산을 춘색으로 반분대 다스리고, 호치
    단순은 삼색도화미개종이 하룻밤 찬 이슬에 반만 핀 형상이요, 흑운 같은 허튼 머리반달 같은 화
    룡유 솰솰 흘리빗겨 전판 같이 넓게 땋아 자저 항라 너른 댕기 맵시 있게 들였구나. 맥저포, 깨끼
    적삼, 보라내단, 속저고리, 물명주, 고장바지, 맥방수화주, 너른 바지, 광월사 곁막이 난봉 항라 대
    단치마 잔살 잡아 떨쳐 입고, 대단낭자 삼승 버선 자지 향직 수당혜를 날출자로 제법 신고, 앞에
    는 민적절 뒤에 금봉채 손에 옥지환귀에 일기탄이요, 노리개 더욱 좋다. 이궁전 대방전 인물향 산
    호가지, 밀화 불수, 금사오리, 옥장도를 오색당사 끈을 꿰어 양국대장 병부 차듯 남북병사 동개
    차듯 휘늘어지게 차고 만첩청산으로 기엄 둥실 올라가며 꽃도 주루룩 훑어다가 맑고 맑은 구곡수
    에 풍덩 띠워도 보며 두 손으로 시내에 조약돌도 덥썩 쥐어다가 양유간에 훨훨 던져 꾀꼬리도 날
    려보니 근들아니 경일소냐. 흥에 겨워 점저 올라가서 장장 채긴 그넷줄을 섬섬옥수로 이리저리
    갈라 쥐고 몸을 날려 올라 한 번 굴러 앞줄이 높고 두 번 굴러 뒷줄이 높아 공중에 소굿쳐 백능
    버선 두 발길로 작작 도화 늘어진 가지 툭툭차니, 날리나니 낙화로다. 뒤에 지른 금봉채가 반석상
    에 떨어져 쩡그렁 쩡그렁 하는 소리 근들 아니 경일소냐. 한창 이리 노릴 적에, 도령이 배회 고면
    하여 산천도 구경하며 잊은 글귀를 생각다가 문득 녹음간 어떤 일 미인이 추천하는 양보고 심신
    이 황홀하여 급히 방자 불러 묻는 말이, “저 건너 저것이 무엇인고.” 방자 대답하되, “어디 무엇이
    뵈나이까.” 도령 왈, “아따, 저 건너 뵈는 것이 부엇인고. 선녀 하강하였는가 보다.” 방자놈 대답보
    소. “방장, 봉래, 영주, 삼신산 아니어든 선녀 어이 이 곳에 있으리까.” “그러면 무엇인고. 금이
    냐?” “금성여수라 하오니 여수 아니어든 금이 어이 있으리까.” “그러면 옥이냐?” “옥출곤강이라
    하오니 곤강이 아니어든 옥이 있으리까.” “그러면 해당화냐?” “명사십리 아니어든 해당화 어이 있
    으리까.” “그러면 귀신이냐?” “북방산 아니어든 귀신이 어이 있으리까.” 도령이 역정내어 왈, “그
    러면 무었이냐?” 방자 그제야 여짜오되, “다른 것이 아니오라, 본읍 기생 월매 딸 춘향이로소이
    다.” 도령 말이, “얼싸 좋을 씨고, 제 본이 창녀면 한 번 구경 못할소냐. 방자야 네가 불러오라.”
    방자놈의 거동 보소. 입 쪽쪽 고라진 허리 참나무들 웃동 찍고 아래 잘라 거꾸로 집고 탄탄대로
    로 진 데 마른 데 헤지 않고 우당퉁탕 걸어가서 헐덕이며 눈 위에 손을 들어, “춘향아. 춘향아.”
    방자 대답하되, “큰일 났다.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재촉하니 춘향이 하는 말이, “이 몹쓸 아이야.
    사람을 그다지 놀래느냐. 내 추천을 하든지 그네를 뛰든지 대수랴. 춘향이니 사향이니 침향이니
    강진향이니 너더러 도련님께 일러바치랏더냐.” 방자놈 말이, “추천인지 그넨지 은근한 곳에서 너
    구 나구 할 것이지, 광한루 가까운 요런 똑바라진 등성마루에 매고 뛰라더냐. 사또 자제 도련님이
    산천 경개 구경코자 광한루 올랐다가, 녹음중 추천하는 네 거동 사래 혀 보고, 성화같이 불러오라
    분부 지엄하니 아니가던 못하리라. 네 만일 갔으면, 우리 도련님이 신궁둥이라, 네 향리로운 말로
    초친 무렵을 만든 후에 네 항라 속것가래를 슬쩍궁 빼다가 돌돌 말아 네 왼편 볼기짝에 붙였으면
    남원 것이 다 네 것이 될 것이니 그 아니 좋을쏘나.” 춘향이 하릴없이 삼단같이 허튼 머리 제 색
    으로 집어꽂고 난봉항라 대단치마 섬섬옥수로 거두쳐 맵시 있게 빗어 안고, 방자놈 따라 행심 일
    경 빗긴 길로 백모래 마당 금자라 기듯, 대명전 대들보에 명매기의 걸음으로, 행뚱행뚱 바삐 걸어
    계하에 이르러 문안을 아뢰니, 도령이 눔꼴이 다 틀리고 정신이 표탕하여 두 다리를 잔뜩 꼬고
    서서 하는 말이, “방자야, 네 하정이란 말이 되는 말이냐. 바삐 오르게 하라.” 춘향이 마지 못하여
    당상에 올라 예필좌정후, 도령이 문왈, “네 나이 몇이며 이름이 무엇인다.” 춘형이 아리따운 소리
    로 요짜오되, “소녀의 나이 이팔이요, 이름은 춘향이로소이다.” 도령이 웃으며 왈, “네 이팔이 십
    육이 나의 사사십유과 정 동갑이라, 어찌 반갑지 아니리오, 이름 춘향이라 하니 네 형용이 이름과
    같도다. 절묘하고 어여쁘다. 매화월미에 두루미도 같고, 썩은 나무에 앉은 부엉이도 같고, 줄에 앉
    은 초록 제비로다.” 하고 또 묻되, “네 생일 이 어늬 땐고.” 춘향이 여짜오되, “소녀의 생일은 하
    사월 초파일 자시로소이다.” 도령이 웃고 왈, “사월이라 하니 날과 동년 동월이니 천장배필이어니
    와 다만 일시가 틀리니 그것이 한이로다.” 하고, 앞에 앉히고 어루는 형상은 홍문연 잔치의 번쾌
    가 항우를 미워보아 두발이 상지하고 목자진열하여 큰칼빼어 검무하는 형상이요, 구룡소 늙은 용
    이 벽해르 fRocl고 여의주 어루는 형상이요, 만첩천산 백액호가 큰 개 잡아 앞에 놓고 흥을 겨워
    어루는 형상이라. 좌불안석하여 이른 말이, “너를 부른 뜻은 다름 아니니, 나도 서울서 삼월춘풍
    화류시와 구황국시에 화조월석 빈 날 없이 주사청루에 만준향은을 진취하고 절대가인 결연하여
    청가묘무로 세월을 소견하였거니와, 금일 너를 보매 세간 인물이 아니로다. 정신이 황홀하여 불승
    탕전이라. 탁문군의 거문고에 월로승 맺어 두고 백년가약을 세세생생이 누릴까 부름이라.” 하니,
    춘향이 이 말 듣고 아미 숙이고 여짜오되, “소녀의 몸이 비록 창가여자오나 마음은 북극천문에
    턱을 걸어 남의 별실이 되지 말자 맹세하였사오니 도련님 분부가 이러하시나 이는 봉행치 못하리
    로소이다.” 도령 왈, “육례는 비록 갖추지 못하나 혼인은 착실한 혼인이 될 것이니 잡말 말고 허
    락하여라.” 춘향이 여짜오되, “만일 허락한 후 사또께옵서 필경 갈리시면 도련님은 올라가고 관대
    가에 성취하 금슬지락으로 세월을 보낼 적에 날 같은 천첩이야 생각할까. 속절없는 이내 일신 개
    밥에 도토리 되리니, 아무리 하여도 이 말씀 시행치 못할소이다.” 도령이 만단 개유하여 이르되,
    “만일 불행하여 사또께서 경직으로 올라가실 터이면 너를 설마 버리고 갈소냐. 우리 대부인은 삿
    갓가마에 모실지라도 너는 쌍경자에 달려갈 것이니 염려말라. 양반이 일구 이언은 아니리니 바삐
    허락하여라.” 춘향이 여짜오되, “그러하실진대 먹의 찌는 삭는 일이 없삽고, 관가는 종문권시행이
    라 하오니, 혹 실신지폐 있은즉 후일 상고차로 불망기하여 주소서.” 도령이 희부자승하여 화전을
    펼치고, 요연에 먹을 갈아 황모필에 흠썩 묻혀 일필휘지하였으되, “모년모일 춘향전 불망기라. 우
    불망기단은 우연히 산천 구경코자 광한루에 올랐다가 천생배필을 만나니 불승탕정이라, 백년가약
    을 밎기로 상약하되 일후 만약 배약한는 폐 있거든 이차문기로 고관 변정사라.” 하였더라. 춘향이
    받아 이리접고 저리 접쳐 금낭에 넣은 수에 또 여짜오되, “무족지언이 비천리라 하오니, 만일 이
    말이 누설하여 사또께서 알으시면 소녀는 속절없이 죽을 터이오니 부디 삼가소서.” 도령이 웃고
    왈, “사또 소시에도 시큰둥하사 주사청루에 다녀계신지 모르거니와 각접 통지기 방에 방귓내를
    무수히 맡으러 다녀 계신지라, 이런 일 안다손 관계하랴, 부디 염려말라.” 하고 이렇듯 담소하다
    가, 춘향더러 묻되, “네 집이 어디뇨.” 춘향이 옥수를 번 듯 들어 대답하되, “이 산 너머 저 산 너
    머 한 모퉁이 지나가면 죽림심처 돌아 들어 벽오동 섰는 것이 소녀의 집이로소이다.” 도령이 춘
    향을 홀연 보낸수에 책방으로 돌아와 정신이 산란하여 진정할 길 없는지라, 마지 못하여서 책을
    보려고 펼쳐 놓은즉, 글자마다 춘향이요, 글귀마다 춘향이라. 한 자가 두 자되고 한 줄이 두 줄이
    되어 모두 춘향이라. 이렇듯 성화하여 이 책 저책 대문대문 읽어 보니, “하늘천 따지 감을현 누루
    황.”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유인이 취귀하니.” “천황씨는 이목덕으로 왕하여 세기섭제하여 무위이
    화하니 이십삼대라.” “초명진대부 위사 조직 한건하여 위제후하다.” “원형리정은 천도지상이요, 인
    의예지는 인성지강이니라.”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신민하며 재지어지선이니라.” “자왈라 학
    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맹자 견양혜왕하신대 왕왈 수불원천리이래하시니 역장유이리오국호잇
    가.” “관관저구 재하지주로다.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로다.” “왈약계고제요한대.” “건은 원코 형코 이
    코 정하니라.” 하다가 하는 말이, “이 글을 못 읽겠도다. 글자가 다 뒤보이는 구나. 하늘 천자 큰
    대되고, 사략이 노략이 되고, 시전이 선전되고, 서전이 딴전되고, 통감이 곶감되고, 논어가 붕어되
    고, 맹자가 탱자되고, 주역이 누역이 되어, 뵈는 것이다. 춘향이라 보고지고 칠년대한에 빗발같이
    보고지고 구년지수에 햇빛같이 보고지고, 무월동방에 불현 듯이 보고지고, 통인, 방자, 군노, 사령,
    별감, 좌수, 약정, 풍현, 급창이 거진 다 춘향으로 뵈고, 왼집안이 다 춘향이라, 이를 어찌하잔 말
    고. 보고지고 잠깐 보고지고.” 라며, 전전반측하여 소리나는 줄 깨닫지 못할 즈음에, “네 바삐 책
    방에 가서 도련님더러 글은 아니 읽고 무엇을 보고 지고 하는고 자세히 알아오라.” 하고 연하여
    보고 지고 하다가, 방자 불러 묻는 말이, “해가 얼마나 갔는고.” 방자 하늘을 가리켜 왈, “이제야
    백일이 도천중하였나이다.” 도령이 심중 자탄왈, “어제는 저 날이 뒷덜미를 치던지, 그리 수이 가
    더니, 오늘은 뒤를 결박하였는지 어이 그리 더디 가는고. 날이 용심도 불량하다.” 이윽고 방자 석
    반을 올리거늘 도령이 한는 말이, “밥인지 무엇인지 해가 얼마나 남았느뇨.” 방자 여쭈오되, “일락
    함지하고 월출동령하나이다.” 도령이 동헌 퇴등하기를 기다려 몸을 숨겨 가만히 성을 넘어 방자
    놈 따라 감돌아 풀돌아 훨쩍 돌아들어 춘향의 집을 찾아가니라. 이 때 춘향이 만뢰구석한데 사창
    을 반개하고 벽오동 거문고에 새줄 얹어 무릎 위에 놓고 대엿날 곡조를 자탄자가하여 당지덩 둥
    둥지 덩동당슬 이렇듯 노닐 적에, 방자 문에서 춘향 어미를 부르니, 춘향 어미 나와 본즉, 책방
    도련님이어는 가장 놀라는 체하며 이른 말이, “이 어인 일이오. 사사또께서 알으시면 우리 모녀
    다 죽을 것이니 돌아가라.” 하거늘, 이도령 하는 말이, “관계치 아니하니 바삐 들어가자.” 한 대,
    춘향어미 위뭉주머니라 속으로 딴 마음먹고, “잠깐 다녀가라.” 하고, 이도령 앞세우고 들어갈 제,
    춘향의 집을 살펴보니 사면팔작 입구자로 고주대문 안 사랑에 안팎주문 줄행랑이 즐비하고, 층층
    벽창 처헌 다락이며, 대청 육간, 안방, 삼간, 건너방 이간, 차방 방간, 부겨한간, 내의 분합 물림퇴
    에 구울 도리 선자 추녀 대접받침 분명하다. 완자창 가로닫이 국화새김 제법이다. 부엌 삼간, 과
    사간, 마구 삼간 근검하다. 백릉화 도매에 청릉화 띠를 띄고, 각장 장판 소란 반자 당유지 굽도리
    제격이라. 서화부벽 입춘서는 만고재사 솜씨로다. 동벽에는 진처사 도연맹이 팽택려 마다하고 추
    강에 배를 띄워 청풍명월에 흘리 저어 삼양으로 향하는 경을 그렸고, 서벽에는 삼국풍진 요란시
    에 한 종실 유현덕이 적토마 바삐 몰아 남양초당 풍설중에 와룡 선생보려하고 지성으로 가는 형
    상을 그렸고, 남벽에는 강태공이 선팔십 궁곤하 위수변에 갈 삿갓 숙여 쓰고 줄 없는 낚시를 드
    리우고 주문와 기다리는 경을 그렸고, 북벽에는 육관대사의 제자 성 진이 춘풍 것교상에 팔선녀
    만나 육환장을 백운각에 흩던지고 합장배럐하는 경을 그렸고, 해학반도십장생을 횡축으로 붙여두
    고, 부엌 문에 열오정제팔신이요, 고앙문에 취지묵궁 용지불갈이요, 방문 위에 부모 천년수 자손
    만세영이요, 대문에는 울지경덕 진숙보를 도화서에 마쳤든가. 춘도문전증부귀는 문 위에 가로 붙
    었구나. 뒷동산에 산정 짓고, 앞 연못에 연당을 지어 두고 숙석으로 면을 맞춰 층층쭉을 무였구
    나. 쌍쌍 비오리징경이며, 대접같은 금붕어는 물계위 둥실 떠서 이리로 출렁 저리로 꿈틀 노는구
    나. 삼층화계 살펴보니 동편에 배설백, 서에 백학영, 남에 호학령, 북편에 금사오죽, 가운데 황학
    령이며, 노송반송 월사계 왜철쭉, 진달래, 석류, 들쭉, 종려, 모란, 작약, 치자, 동백, 춘계동매, 분
    도, 포도, 어여쁘다. 연산홍 이름 봏다.백일홍, 이름좋다.백일홍, 인물일새가 붕선화, 키 크다. 파초
    잎 향기롭다. 산국화 늘어졌다. 원추리 당명황의 양귀비를 여기저기 심었구나. 집물 치레볼짝시면
    위금 돌미장 좋은 머리, 장 자개함롱 반다지 왜경대 가께수리 계자 다리 옷걸이며 철책 퇴침 벼
    구, 집피 행담 쌍봉 그린 빗접 고비 용두머리 장목비며 청동 화로 전대야, 유경 촛대 광명두리,
    요강, 타구, 재떨이, 쌍상이 벌여놓고 이층 찬장 삼층탁자, 괴목 뒤주, 반닫이며 당화기, 서산사발,
    동래 기병 실굽달이, 용중항은 분원봉사하든가. 춘향의 거동 보소. 계하 바삐 내려 옥수를 덥썩
    잡고 방으로 들어가 좌정후 대객에 초인사는 당수복, 현수복의 부산죽 서천작 소상반죽 양칠간줒
    각죽 칠죽 서산용죽 백간죽이 수수하다. 이름좋은 금산초며 장광 좋은 직산초며, 수수하다. 영월
    치며, 향기롭다. 성천처요. 불 잘 타는 남의 초요, 빛이 좋은 상관초며, 서초 양초 장절초며 숭숭
    썰은 풋담배를 너울지게 붙였고나. 방치레 살펴보니 호피방장 걷어치고 대병 중병 소병풍에 소상
    팔경 호렵도며, 곽분양의 행락도며, 왕희지 노정연과 모란초충 백자동과 배란송죽 곡병이며, 돌돌
    말아 봉족자며 문갑위에 산호 필통 사방탁자 어항이요, 국기판 시계판과 자명종을 걸었으며, 금농
    과 앵무새며 천하지도 붙여두고, 거뭉고, 양금, 생황, 단소, 개약고를 곁들여 놓고 양금, 비취침에
    자줏빛 천이 더욱 좋다. 춘향이 주찬을 갖추어 은근히 드리니 갖은 음식 풍성하다. 팔모접시 대모
    반에 강화 닭 두메 꿩에 대양푼에 갈비찜, 소 양에 제육초, 두귀 발쑥 송편이며, 먹기 좋은 화전
    이며 송기떡의 웃기로다. 봉산 참베 양주 밤과 남양 연시, 보은 대추봉, 전목 염통산적, 양 볶이
    죽순 나물, 씀바귀를 곁들여 놓고 청포도 혹 포도, 머루, 다래 유자, 감자, 능금, 석류, 참외, 수박,
    개암, 비자, 춘당 매당, 오화당, 초장, 겨자, 생청, 흑청 틈틈이 괴어 놓고, 각색 술병 놓았으되, 꽃
    그린 왜화병, 벽해수상 거북병, 몸거위병, 이적선의 포도주, 진처사의 국화주, 마고 선여의 천일주,
    과하주, 산중처사 송엽주며, 일년주 백화주 감고 감흥로, 죽력고, 계당주, 황소주, 과하주, 청주, 모
    주, 막걸리, 모두 합해 혼돈주를 노자작, 앵무배에 가득 찰찰 가뜩 부어 도련님께 권할 적에, “물
    로초로 술을 밎어 만년잔에 가득 부어 잡수시오. 이 술 한잔 잡수시면 하오리다. 남산수를 제것
    두고 목 먹으면, 왕장군의 고자로다. 인생 한 몸 돌아가면 뉘라 한잔 먹자하리. 살았을 제 이리
    노세.” 도령이 술에 반취하여 춘향더러 갖은 소리를 다하여 흥을 돋우라 하니 연하여 부르되, “군
    불견황하지수천상래한다. 도해명명불부회를 우불견 고당명경비백발하다. 조여청사모성설을 인생득
    의수진환이라.
    막사금준공대월하소.” “노세, 젊어 보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
    니, 인생이 일장춘몽이니 아니놀구.” 도령이 술을 진취토록 먹은 후에 횡설수설, 중언부언하며 왼
    가지로 힐난할 제, 이미 삼횡두전야오경이라. 춘향이 민망히 여겨, “이미 월락야심하였으니, 그만
    저만 자사이다.” 도령이 좋다하고 먼저 벗기를 서로 힐난할제, 도령 왈, “아무리 취중이나 그저 자
    기 무미하니 글자타령 하여 보자.” 하고는 세잔 경작 먹은 후에 글자를 모이되, “우리 둘이 만났
    으니 만날 봉자 비점이요, 우리둘이 마주 섰으니 좋을 호자 비점이요, 백년가약하였으니 즐길 낙
    자 비점이요ㅏ 야반무인 사람 없으니 벗을 탈자 비졈이요, 한 베개 둘이 베니 누울와자 비점이요,
    두 몸이 한몸되니 안을 포자 관주요, 두 입이 마주 닿니 법중여자 관주요, 네 아래 굽어 보고 내
    아래 굽어보니 웃음 소자 관주로다. 남대문이 개구멍이요, 인경이 매방울루이요, 선혜청이 오 푼
    이요. 호조가 푼이요, 하늘이 돈짝 같고 딸이 맴돈다.” 흥을 겨워 노닐 적에 춘향더러 이른 말이,
    “인연이 지중하여 우리 둘이 만났으니 인자 타령 하여 보자.” 하고 모았으되, “임하하증견일인, 월
    명고루유미인, 금일번성송고인, 비입궁중불견인, 양류청청 도수인, 불견 낙교인, 푸설야귀인, 귀인,
    천인, 노인, 소인, 통인으로 인연하여 양인이 혼인하매 너의 대부인이 증인되니 즐겁기도 그지없
    다.” 춘향이 여짜오되, “도련님은 인자를 달았으니 소녀는 연자를 달아 보리이다.” “우락중분비백
    년, 호기장구오륙년, 인노증무갱소년, 상빈명조우일년, 함양유협다소년, 경세우경년, 천년, 만년, 우
    연히 결연하여 백년이 정년이라.” 하니 도령 왈, “양인이 다정하니 천만세를 기약이라. 나는 죽어
    새가 되고 난봉, 공작원양, 비위, 두견, 접동 다 버리고 청조라 하는 새가 되고, 너는 죽어 물이
    되되 황하수, 폭포수, 구곡수 다 버리고 음양수란 물이 되어 주야장천 물에 떠서 둥실둥실 놀자꾸
    나. 너는 죽어 회양 금성 들어 가서 오리목 되고, 나는 삼사월 칡덩굴이 되어 밑에서 끝까지 끝에
    서 밑까지 나무 끝끝들이 휘휘친친 감겨 있어 일생 풀리지 말자꾸나.” 이렇듯 즐기다가 날이 새
    면 몸을 빼어 돌아오고 어두우면 천방지방 날아 가서 자취 없이 다니기를 여러 날이 되었더니,
    이 때 남원부사 선치함을 성상이 들으시고 승품으로 호조판서를 제수하시고 패초하시는 문첨이
    내려오니, 부사 택일발행할새, 도령을 불러 이르되, “너는 내행을 모시고 먼저 올라 가라.” 하니
    도령이 이 말 들으매 낙담상혼하여 목이 메어 겨우 대답하고 내아에 들어가 치행 제구를 차리는
    체하거고, 바로 춘향의 집으로 가니, 춘향이 바삐 나와 도령의 손을 잡고 목이 메어 울며 두 손으
    로 가슴을 치며 하는 말이, “이 일이 어인 일고. 이 설움을 어찌 할고, 이제는 이멸이 절로 될지
    라. 이별이야 평생에 처음이요, 다시 못 볼 임이로다. 이별마다 슬프다 하되, 살아 생이별은 생초
    목에 불이로다.초생 이별이야 이별이 원수로다. 남북에 군신 이별, 역로에 형제 이별, 만리에 처자
    이별, 이별이 다 슬프지만 우리같이 슬픈 이별 또 어디 있을손가. 답답한 이 술픔을 어이 하리.”
    도령이 두 소매로 낯을 씻고 훌쩍 훌쩍 울며 하는 말이, “울지 마라. 네 울음 소리에 구곡간장 다
    놋는다. 울지 마라. 우지 될라. 평생에 원하기를 너는 죽어 꽃이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 삼촌이
    다 진토론 떠나 살지 말겠더니 인간에 일이 많고, 노물이 시기하여 금일 이별을 당하나 설마 장
    이별이 될소냐.” 춘향 울며 왈, “도련님 올라가시면 나이 일신 그 아니 가련하오. 늘 바라고 살잔
    말고 하지일과 동지야에 이 시름을 어이 하잔 말고. 날 죽이고 올라가오.” 도령 왈, “사또께서 호
    조판서를 맡으시고 이 고을 풍헌이나 하시더면 이 이별이 없을 것을, 내게는 이런 원수가 없다마
    는, 울지마라 우리연분은 청송녹죽 같아서 무너지고 끊어질 즐 없을 지니, 설마 후일 상봉하여 그
    리던 회포를 못 펴 볼까.” 애련지심을 서려 담고 마지못하여 이별할새, 눈물을 금치 못하는지라.
    도령이 금낭을 열고 면경을 주며 왈, “장부의 어엿한 마음 이 면경과 같아서 변치 아니리라.” 춘
    향이 답왈, “도련님이 이제 가면 언제나 오려시오. 절로 죽은 고목 꽃 피거든 오려시오. 벽에 그
    린 황계 짧은 목 길게 늘여 두 날개 땅땅 치고 꼬끼요 울거든 오려시오. 금강산 상상봉의 물 밀
    어 배 둥둥 뜨거든 오려시오.” 하며, 옥지환 벗어 내어 도련님 주며 왈, “계집의 높은 절개는 이
    옥지환과 같을 지라. 천만년이 지나간들 옥빛이야 변하리까.” 도령이 노래를 지어주니 하였으되,
    “조이 있거라. 조이 다녀오마. 간들 아주 가며, 아주 간들 잊을소냐. 잠깨어 옆에 없으니 그를 슬
    퍼하노라.” 춘향이 받아 보고 화답하되, “간다고 슬퍼하오. 보내는 내 한도 있소. 산첩첩 수중중한
    데 평한히 가오. 가다가 긴 한숨 나거든 낸 줄 아오.” 하였더라. 십리 밖에 나와 전송할새, 춘향이
    여짜오되, “떠나는 회포는 측량 없거니와 부디 학업이나 힘써 입신양명하여 부모께 영화 뵈고 나
    도 수이 찾으시오. 머리 위에 손 얹고 기다리이다.” 도령이 답 왈, “그런 말이야 어찌 형언하리.
    부디 신을 지키어 오기를 고대하라.” 하고, 마지못하여 말에 올라 서울을 향할새, 돌아보고 돌아
    보니 한 산 넘어 오 리 되고 한 물 건너 십 리 되매, 춘향의 형용이 묘연한지라. 할 수 없이 장우
    단탄을 벗을 삼아 올라가니라. 춘향이 눈물을 씻고 북천을 바라보니 임이 떨어졌는지라. 하필 하
    릴 없이 집에 돌아와 의복단장 전폐하고 분벽사창 귿이 닫고 무정 세월을 시름 속에 보내더라.
    이 때 구관은 올라가고, 신관은 사은 숙배하고 신연관속 현신 받은후에 이방을 불러 분부하되,
    “네 골에 양이가 있느냐.” 이방이 아뢰되, “소인 골에 양은 없사와도 염소는 한 스무 마리 있나이
    다.” 신관이 하는 말이. “아따 이 놈아. 기생의 양이가 있느냐.” 이방이 그제야 알아 듣고 여짜오
    되, “기생 춘향이 있사오되 이름은 기생안에 없나이다.” 신관이 이 말 듣고 놀라 이르되, “이 말이
    어인 말고.” 이방이 아뢰되, “다름 아니오라. 구관 사또 자제 도령님과 상약한 후 대비정속하고 지
    금 수절하나이다.” 신관이 노왈, “어린 자식들이 작첩이란 말이 되는 말가. 아직 물러스라.” 하고,
    치행하여 떠날새, 남대문 나서 칠패 팔패 청파를 모로 동작이 과천읍 신수원 얼른 지나 상유천
    하유천 죽빗외뫼 진위 읍내 갈원 소사 성화 빗트리 천안 삼거리 진게역 바삐 지나, 덕평, 원터 인
    주원 광정 모로원 공주감영 잠깐 지나 널티 경천 노성 은진 닥다리 여산 능개울 삼례를 지나 전
    주성 내달아 노구바위 임실을 얼른 지나 남원 오리정에 다다르니, 일읍관속이 위의차려 영접하되,
    청도 한 쌍 홍문 한 쌍, 주장 한 쌍, 순시 한 쌍, 금고 한 쌍, 호추 한 쌍, 집관이 우영전 앞세우
    고 난후 별대 제집사장 교자 위에 벌였는데 아기 기생 녹의 홍상, 어른 기생착전립하고, 늙은 기
    생 영솔하여 모든 관속이 배행하니, 위의 거룩하되 신관의 속 마음은 춘향만 오매불망이라. 도임
    후에 환상 전결 폐줄 일은 묻지 않거, “우선 기생 점고 하라.” 기생안을 앞에 놓고 차례로 호명하
    여, 채련이, 홍령이, 봉월이, 추월이, 죽삼이 등이 다 나오되 춘향의 이름이 없거늘 이방 불러 묻
    되, “춘향의 이름이 도안에 없으니 어인 일고.” 이방이 대답하되, “춘향이 대비정속 후 지금 수절
    하나이다.” 신관의 말이, “제라 수절이 어이 있으리오. 바삐 잡아 들이라.” 군노 사령 등이 우당퉁
    탕 바삐 가서 대문을 박차며 춘향을 부르니, 춘향이 놀라 곡절을 물은즉 잡으로 관차여날, 울며
    어미를 부러 우선 주찬을 먹은 후, 이른 말이, “제가 수절이 어이 있으리오. 바삐 잡아 들이라.”
    “이 돈이 닷 냥이니 주채나 하오.” 사령 등이 거짓 사양타가 뒤 손 벌리며 하는 말이, “내 난장
    결치를 당하여도 말 없이 할 것이니 염려말라.” 하고, 돌아돠 관가에 아뢰되, “춘향이 명재경각하
    기고 대령치 못하였나이다.” 신관이 개 골내어, “사령을 엄곤하옥하라.” 하고, 장차를 분부하여,
    “잡아 들이되 더디는 폐 있으면 크게 속으리라.” 모든 장차 나가 춘향더러 하는 말이, “널로 하여
    다른 사람 다 죽게 되었다. 바삐 가자.” 재촉하니, 춘향이 울며 이른 말이, “오라버니 들어 보오.
    유죄무죄간에 성화같이 잡아 올라하니 내 무삼 죄 있느뇨.” 차사등 대답하되, “네 형상 가긍하나
    우린들 어찌 하리. 바삐 감만 못하니라.” 춘향이 하릴없어 머리를 싸매고 헌 저고리 몽땅치마 두
    루치고 울며 관문에 이르니 신관이 뇌성같이 소리 질러, “잡아 들이라.” 하거늘, 계하에 섰던 나졸
    춘향의 머리를 동댕이쳐 잡아들이니, 신관이 춘향을 한 번 보매 형산 백옥이 진퇴에 묻힌 형상
    같으니, “더욱 수수하다.” 하며, 침을 질질 흘리는지라, 이낭청 돌아보면서 하는 말이, “듣던 말과
    같은 줄 아는가.” 이낭청 이현령 비현령으로 신관의 마음만 맞추더라. 신관이 분부하되, “네 본읍
    기생으로 도임 초에 현신 아니 하기를 잘했느냐?” 춘향이 아뢰되, “소녀, 구관 사또 자제 도련님
    모시고 대비정속하온 고로 대령치 못하였나이다.” 신관이 증을 내어 분부하되, “너 같은 노류장화
    가 수절이란 말이 고이하다. 요망한 말 말고 오늘부터 수청 거행하라.” 춘향이 여짜오되, “만 번
    죽어도 봉행치 못하겠소이다.” 신관이 대노하여 춘향을 결박하여 형틀에 앉힌 후, 집장 분부하여,
    “대매에 허락하도록 치라.” 하니 군노 등이 주장 곤장 도리깨 다 버리고 형장을 눈 위에 번듯들어
    검장 소리 발 맞추어 한 번 후려치니 청천백일에 벽력 소리 같은지라. 신관이 이르되, “이제도
    분부 거역할소냐.” 춘향이 아뢰되, “사또께서 용천검로 나의 일신을 둘에 내어 아래 토막은 저미
    거나 오리거나 하실지라도 목은 한양성내에 보내어 주심을 바라나이다.” 신관의 말이, “저 년 요
    약한 년, 한 매에 승복하게 하라.” 하니, 집장이 한 번 치고 두 번 치니 백옥 같은 다리에 솟아나
    느니 유혈이라. 보는 이 뉘 아니 가련히 여기리오. 삼사십장에 이르러는 불성인사하여 죽은 듯한
    지라 분부하여 하옥하니라. 이때 남원 활량들이 춘향의 소식 듣고 이 숙이, 군령이, 군빈이, 떠중
    이 풍헌 약정 등물이 모두와 춘향의 경상을 보고 혹 위로도 하며, 혹 청심환도 플어 넣으며 한바
    탕 분분히 지저귀다가, 문숙이는 춘향르 업고 떠중이는 칼머리를 받들고 태령이 군빈이 주빈 드
    은 좌우로 옹위하여 옥문을 천신만고 다다르니, 그 창황만조하는 모양가히 모암 직하더라. 춘향이
    활량을 보낸 수 차면 왈, “일구월심에 이 슬픔을 어이 할꼬. 우리 도련님을 언제 다시 볼고.” 하
    며, 해진 자리에 칼머리를 베고 누워 정신이 혼미하더니, 춘향어미 미음을 가지고 와서 춘향을 불
    러 왈, “어찌 음성이 없으니. 이를 어찌 하잔 말고.” 하며, 방성대곡할 즈음에, 춘향이 놀라 정신을
    차려본즉, 제 어미 미음을 권하거늘 춘향의 말이, “용미봉탕도 먹기 싫은지라. 아무라도 도련님
    다시 보고 죽겠으니 내 병은 편작이라도 할길 없는지라. 만일 죽거든 육진장포로 염습하여 한양
    성내 올려다가 도련님 다니는 길에 묻어 주면 도련님 왕래시에 성음이나 듣게 하오.” 춘향 어미
    하는 말이, “이것이 웬 말인고. 이제 원수의 몸쓸 놈을 철썩같이 믿고 수절인지 하다가 이 형벌
    받으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리오.” 이러구러 여러잘이 되매, 춘향이 장우단탄 벗을 삼아 세월을 허
    송하더니, 일일은 비몽사몽에 주유천하 하다가 집에 돌아 가니 방문 위에 허수아비를 달았고 뜰
    에 앵도화 떨어지고, 보던 몸 거울이 한복판이 깨어졌거늘 깨달으니 남가일몽이라 하오되, “이것
    이 무삼일고. 내가 죽을 꿈이로다. 도련님 다시 못 보고 죽으면 눈을 감지 못하리라.” 하고, 한탄
    할 즈음에, 건넛마을 허봉사란 판수 마침 지나거늘 옥졸더러 판수를 부르되 죄수 춘향이 부른다
    하거늘 봉사옥 길을 찾아 갈새, 길에 풀이 가득하매 옷을 걷어쳐 안고 눈을 희번덕이며 코를 찡
    그리며 막대를 휘저으며 입으로 휘파람 불며 오다가 쇠똥에 미끄러져 개똥에 업더녀 손을 짚으니
    네 혼자 말로,
    “이리 미끄러우니 쇠똥이로구.” 하며, 손을 뿌리치다가 옥담 모퉁이에 부딪치니 아픔을 견디지 못
    해 입에 넣으니 어찌 가소롭지 않으리오. 옥문을 찾아가매 춘향이, “들어 오라” 하니 봉사 들어가
    앉으며 하는 말이, “네 일이야 할 말 없다. 장처나 만져 보자.” 춘향이 두 다리를 끌러 뵈니 판수
    놈이 음흉하여 장처는 만져 보지 않고 두 손으로 종아리부터 치만지며 하는 말이, “아뿔사, 몸시
    쳤구나. 김패두가 이패두가 치더냐 바른대로 일러라. 내게 굿날 받으러 오거든 절명일을 가리어
    줄 것이니 그 설치는 내 하여 주마.” 하고, 이리만지며 저리 만지며 점점 들어가다가 정속을 꼭
    찌르니, 춘향이 분을 못 이기어 바로 빰을 치려다가 점을 아니할까 하여 능쳐 이른 말이, “봉사
    님, 우리 부형과 좋은 벗으로 다니더니, 나의 운수 불행하여 부친이 먼저 기세하시니, 봉사님은
    부형과 좋은 벗이라 상없이 그리 말으시고 점이나 잘하여 주오.” 판수놈이 말 눈치 알아 듣고,
    “네 말이 옳다. 우리 사귀기가 세교 뿐 아니라, 비슷 척분이 되나니 어찌하면 복상칠촌이 되는 법
    하니라.” 춘향의 말이, “봉사님을 부모로 아니 점하나 잘하여 주오.” 하고, 돈 서돈을 주니, 판수
    왼손으로 받으면서, “우리 사이에 복채 없으면 관계할까. 꿈말이나 자세히 이르라.” 하거늘, 춘향
    이 수말을 이르니, 봉사 산토를 높이어늘 축 왈, “천하언재고 고자즉응 신지영의 감이순통하소서,
    모년월일 해동 조선국 전라도 남원부 동면 이화동에 거하는 곤명 임자생 안씨 금년 신수 길흉여
    부와 모일 몽사 여차여차하옵기 근목문하오니 복걸 열위신명은 의시상쾌하여 이결길흉하소서.”
    하고, 점을 해제하여 이르되, “화락하니 능성실이요, 경파하니 기무성가. 문상에 현괴뢰하니 만인
    이 개양시라. 이 글 뜻은 꽃이 떨어지니 능히 열매를 이룰 것이요, 거울이 깨어지니 어찌 소리 없
    으며, 문 위에 허수아비를 달았으니 이 반드시 도령이 급제하여 쉬 만나 볼 점쾌라.” 춘향이 말
    이, “어찌 그렇게 바라리오.” 봉사의 말이, “고름 맺고 내기할 것이니 조금도 염려 말고 잘 있으
    라.” 하고 가거늘, 춘향이 더욱 주야번뇌하더라. 이 때 이 도령이 올라가 주야로 학업을 힘쓰매
    태백을 압두할러라. 차시 성상이 태평과를 보실새, 이생이 과장에 들어가 현제판을 보니, “강구의
    문도요라.” 시지를 펼쳐 놓고 일필 휘지하여 일천에 권장한데 상이 받아 보시니 문필이 무흠이라
    장원을 하이시고 비봉을 떼었으니, 이 등의 아들 령이니 연이 십육이라 하였거늘, 신래를 재촉하
    신대 이생이 천은을 사례하고 나올새, 위의 기특하더라. 삼일 유가후, 선산에 소분하고 돌아와 옥
    계에 숙재하온데 상이 칭찬하고 소원을 물으시니 자원이 여짜오되, “천하태평하어매 궁중이 깊사
    와 백성의 질고를 살피지 못할 지라, 신이 각도에 순행하와 수령의 선악과 백성의 우락을 염탐하
    와 성상의 교화를 펴고자 하나이다.” 상이 가라사되, “네 말이 가장 애군지심이 간절하도다.” 하시
    고, 삼도어사를 하이시니, 어사 사은하고 물러와 치행할새, 마쾌를 고도리뼈에 차고, 칠 푼자리 헌
    파립에 헌 망건 박쪼가리 관자달고, 물레줄로 당줄하고 헌도포에 오픈자리 무령 동다회를 양지
    머리에 잔뜩 눌러 띄고, 세 살 부채 차면하고, 버선목 주머니에 탄담배 골통대가 제격이라. 역졸
    을 데리고 가만히 숭례문 내달아, 칠해 팔패 돌모퉁 승방돌 바빠지나 여러 날 만에 전주성 안에
    가만히 들어, 여기저기 염문하고 노고바위 임실을 다다르니, 이 때는 삼촌 호시절이라. 한 곳을
    바라보니 원산은 중중 근산은 첩첩 기암은 층층 장송은 낙락 비오리 둥둥 두견접동은 좌우에 넘
    노는데 온갖 새 날아들고 각색은 초목 무성하다. 한 모틍이 돌아 가니 상평전 하평전 농부들이
    갈거니 심으거니 격양가 노래하니, “시화세풍 태평시에 평원광야 농부네야. 우리 아니 강구 미복
    으로 동요 듣더 요 임금의 버금인가 얼널널 상사디야.” 흥을 겨워 노닐거늘 어사 부채 차면하고
    이 소리 들은 후에 농부더러 묻는 말이, “저 농부 말 좀 들어 보자니.” 여러 농부 섰다가 한 농부
    내달아 하는 말이, “꼴막산이 어줍지 않게 동떨어진 말 뉘게다가 하나뇨. 말은 무삼 말고. 약계
    모퉁이 핥고 병풍 뒤에 코 골다 왔읍나.” 하고, 욕설이 비령할 제, 그 중 늙은 농부 내달아 말려
    왈, “이 사람 그 괄시 마소. 그도 봐하니 맹물은 아니기로 세 폭 자락에 동떨어진 말하니 과히 괄
    시 마소.” 하거늘, 어사 이 말을 듣고 혼잣말로, “사람은 늙어야 쓴단 말이 옳다.” 하고, 또 묻되,
    “이 골 원님 정사 어떠하며 빈폐나 없으며 또 호색하여 춘향을 수청 들렸단 말이 옳은지.” 농부
    증을 내어 하는 말이, “우리 원님 정사는 잘 하든지 못하든지 모르거니와 참나무 마주 휘어진 듯
    이 하니 어떻다 하리오.” 어사 하는 말이, “그 공사는 쇠코뚜레 공사라 하니이라. 욕심은 있는지
    없는지 민간의 마전 목포를 다 고매패질하여 들이니 어떻다 하리오. 또 음물이라 철석같이 수절
    하는 춘향이 수청 아니 든다고 엄형 엄수 아였으되 그관의 아들인지 개아들인지 한번 떠난 후 종
    무 소식하니 그런 쇠 자식이 어디 있으리오.” 어사 서서 듣다가 하는 말이, “남의 일은 알지 못하
    거니와 욕은 과히 마오.” 하고 돌아서서 혼잣말로, “대저 양반의 욕을 과히 보았도다.” 하고, 한
    모퉁이 돌아가니, 한 주막에 반백노인이 한 가히 앉아 청을치 그를 비비며 노래 부르고 슬슬 비
    비며 줄을 낚거늘 어사 보다가, “이보시오. 상다에 조정에 박여작이요, 향당에 막여치라 하니 그
    만 인사느 S알 듯한데 어이 그리 미거하뇨.” 어사 하는 말이, “내 언제 반말했다고. 그렇거니 저
    렇거니 들은즉 본관이 호색하여 기생 춘향을 작첩하여 호강한단 말이 옳은지.” 노인이 증을 내어
    하는 말이, “송백같은 춘향에게 그런 누명을 씌우지 마소. 원님이 움타마여 춘향이 수청 아니 든
    다고 엄형하여 옥귀신을 만들되 구관의 아들인지 난정의 아들인지 그런 계집은 버려 두고 찾질
    아니 하니 그런 개 아들이 어디 있으리오.” 하거늘, 어사 이 말을 들은 후 춘향의 생각이 더욱 간
    절하여 일각이 여삼추라. 바삐 남원성중에 들어가 수근숙덕 염문할 제 관속들이 어사 내려온단
    말을 듣고 관전목포 환상전결 복수 무철 닦을 적에, 사결에는 한짐 열말, 육별에는 석집 열 닷 뭇
    이요, 동창서창 마전 목포를 무턱으로 내입이라 꾸몄어라. 어사 탐문한 수 급히 춘향의 집 찾아가
    니, 밖 장원은 자빠지고 밧채는 기울어져 석까래 나발 불고 마당은 개똥 밭이 되었으니 어찌 한
    심치 아니리오. 춘향 어미 탕관에 죽을 쑤며 탄실하거늘, 어사 춘향 어미를 부르니 대답하되, “뉘
    라서 이 심란중에 부르는고.” 하며 보다가, “거러지는 눈이 없어 동냥 달라 왔는가.” 어사 웃으며
    또 부르니, 춘향 어미 그리하여도 몰라보고, “그 뉘시오, 김권롱이 환상 재촉하러 왔소.” 하며, 자
    세히 보다사 깜짝 놀라 하는 말이, “얼굴은 도련님이 분명하나 의복은 상거지라. 애고 저 형상 눌
    더러 말할꼬.” 어사 왈, “잔말은 그만 두고 춘향이나 보고 가세.” 춘향 어미 마지못해 옥문밖에 가
    서 춘향을 부르니 춘향이 기운이 피곤하여 칼머리 베고 누웠더니, 놀라 이른 말이, “거 뉘라서 날
    찾는고.” 어사 또 부르니 그제야 음성을 알아듣고 여취여광하여, “이것이 꿈인가 생신가. 서방님
    날 살려 가오. 명일은 사또 생일이라. 필경 일이 있으리니 칼머리나 들어주오.” 어사 대답하되,
    “어찌 하든지 염려 말라.” 하고, 춘향의 어미를 따라가 밤을 지내고, 이튿날 평명에 관문밖에 가서
    탐지 하니 과연 본관의 생일이라. 포진범백이 이루 다 말할 수 없더라. 어사 문 밖에서 기웃기웃
    하다가 문근사 소피하러 간 사이에 돌입하여 청상에 올라 하는 말이, “내 마침 지나가 오늘날 성
    연에 음식이나 얻어먹을까 하노라.” 본관은 미안히 여기고 운봉영장은 웃고 하는 말이, “또한 예
    사라. 좌석에 참례함이 무방하다.” 하더라. 이윽고 배반이 들어올 제 운봉이 통인 분부하여, “술상
    을 저 양반께 드리라.” 하니 통인놈이 붜 드리니 어사 받지 않고, “내 가만히 본즉 어떤 데는 기
    행년으로 술 드리고 어떤 데는 이 모양으로 얼렁뚱하니 어쩐 일이오. 대저, 술이란 것은 권주가
    없으면 무미하니, 기생 중 묘한 년으로 한 보내오.” 본관 듣고 이르되, “고객이로다. 내 운봉의 말
    을 듣고 이런 고약한 꼴을 본다.” 하고, 움봉은 웃고 기생에게 분류하여, “아무 년이나 가보라.”
    하니 한 년이 마지못하여 가며 하는 말이, “아니꼬와라. 권주가 없으면 술이 목 궁에 넘어 들어
    가지 아니하나” 하고, 술을 드릴 적에, “들으세요, 들으세요, 이 술 한잔 들으세요. 이 술 한 잔 움
    키시면 하오리다. 난장결치.” 노래를 파한 후에 큰상을 차례로 드릴 새 어사 받아 보니, 개다리
    헌 소반에 이면이 한 접시오, 경계다리 한 놓고 양지 차돌 곁들였네. 마른 대추 부시럭떼기 대명
    공이 근검하다. 어사 두 다리로 상을 박차 엎질고 일어서 그 엎지른 것을 긁어모아 소매에 묻혔
    다가 좌상을 향하여 뿌리니 본관의 얼굴에 뛰었는지라, 상을 찡기며 하는 말이, “인사불성이로고.”
    움봉을 탓하더라. 어사 하는 말이, “나도 부모 은덕에 글자인지 배웠더니, 이런 잔치에 그저 감이
    무미하니, 운을 부르면 글귀나 짓고 감이 어떠하뇨.” 좌중 논란이 분분하다가 기름고자 높을 고자
    둘 내고 지필을 주니 어사 응구첩대하였으되,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표는 만성고라. 촉
    루낙시에 민루낙이요, 가서고처 원성고라.” 하였거늘, 면면 상고할 제 움봉이 이 글을 보고 변색
    하더라. 그 글 뜻이 금잔에 아름다은 술은 일천 사람의 피요, 옥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 떨어질 제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방 소리 높더라란 말이
    다. 대저원을 시비하고 백성을 위함이니, 가장 수상하다. 운봉이 본관더러 왈, “명일 환상 시작하
    겠기로 종일 동락지 못하고 몬저 가노라.” 하고 가더니, 이윽고 어사 역졸에게 분부하여 마패로
    삼문 두드리며, 암행어사 출두라 하니, 일읍이 진동하여 부서지느니 해금, 저, 피리, 깨어지느니
    장구 거문고 등물이라. 각읍 수령들이 쥐 숨듯 달아날 제, 임실현감 갓을 옆으로 쓰며, “이갓 궁
    글 누가 막았는고.” 하며, 전주판관은 말을 거꾸로 타며, “이 말 목이 근본이 없느냐 아무커나 바
    삐가자.” 여산 부사 상투를 쥐 구명에 박고 하는 말이, “뉘라 날 찾거든 벌써 갔다 하여라.” 하고,
    원님은 강똥 싸고, 이방은 기절하고, 삼반관속은 오줌 싸고, 내동헌에서도 물똥을 싼다 하니, 원님
    이 떨며 왈, “우리 집안은 똥으로 망한다.” 할 제, 어사 남원 부사를 봉고파출반 후, 공사를 처결
    할 새, “관속의 신상은 대분부하라.” 하고, “죄수 춘향을 오리라.” 하니, 옥쇄장이 춘향을 압령하여
    들어올 제, 춘향이 울며 하는 말이, “우리 서방님더러 칼머리나 들어 달라 하였더니, 오늘은 사생
    간 결단이 날거여늘 어디 가서 이 경상을 아니 모는고.” 하고 방성대곡하더라. 형방이 이르되, “어
    사 사또 분부내에 오늘부터 나를 수청 들이라 하시니 그대로 거행하라.” 춘향이 여짜오되, “소녀
    전등 사또 자제 도령님과 백년결약하였기로 분부시행 못하겠삽내다.” 어사 이르되, “노류장화는
    인개가절이라 하니, 너 같은 천기로 수절이란 무엇인고. 바삐 거행하라.” 춘향이 또 여짜오되, “소
    녀를 만단에 내실지라도 마음은 변치 못하리로소이다.” 어사 왈, “너 같은 절개 어찌 아름답지
    아니리오.” 하고 기생들을 분부하여 춘향의 쓴 칼을 이로 물어 뜯어 벗긴 후 춘향더러 왈, “네 나
    를 보라.” 춘향이 마지못하여 살펴 보니, 의심 없는 낭군이라. 뛰어 올라가며 어사의 소매를 잡고
    울며 목이 메어 말을 못하거늘, 어사 옥수를 잡고 만단으로 위로하더라. 이 때 춘향 어미 미음을
    가지고 오거늘 관속들이 분붕히 치하하니 춘향 어미 이른 말이, “그 어인 말고.” 하며 삼문 틈으
    로 드밀어 보다가 뛰어나와 손뼉치며, “얼싸 좋다. 좋을시고,. 지화자 좋을시고. 사람마다 딸을 두
    어 날 같이 효도를 볼작시면, 부중생남중생녀라 하는 말이 허언이 아니로다.” 어사 대연을 배설하
    고 춘향과 즐길 때, 전후사를 서로 이르며 비밀히 교접하여 은근한 정회를 측량치 못할레라. 이튿
    날 공사를 다 결처하고 허판수를 상급하며 옥졸 불러 주찬으로 치사하고 각읍 문서를 각 닦은
    후, 춘향 모여를 데리고 떠날 새, 일읍 관속이며 여러 기생들이 십 리에 나와 춘향을 붙들고 연연
    전별하고, 열읍에 지대를 차려 위의 기특하더라. 졍사에 이르러 수의를 친 후 , 그 연유를 주달하
    온대 사잉 크게 칭찬하사 왈, “천기로 수절함은 천고에 희한하도다.” 하시고, 정렬부인을 봉하시니
    라. 어우야담
    어우야담에 수록된 이야기 중 두 편을 골라 현대의 맞춤법으로 고쳐 소개한다.
    수염 잡고 손 맞는 주인
    한 적은 사나이 수염 긴 자가 있어, 집이 넉넉하며 매양 술과 안주를 갖추어 손님을 먹이더니,
    가만히 아내와 더불어 언약하되, “내 상객을 보거든 웃수염을 잡고, 중객을 보거든 가운데 수염을
    만지고, 하객을 보거든 아랫수염을 만질 것이니, 세 층으로 술과 안주를 장만하라.” 방안에서 가
    만히 한 말을 바깥 사람이 아는 자가 있더라. 하객이 오거늘 주인이 아랫수염을 잡으니, 아내 술
    과 안주를 박하게 하여 대접하더니, 석 잔이 지나매 주인이 말하기를, “집이 가난하여 술과 안주
    맛이 없으니, 손님을 대접할 만하지 못하다.” 하여 명하되 “걷으라.” 하니, 객이 말하기를, “이 술
    과 음식이 맛이 특별하니 이어 마시고 걷지 말라.” 한 대, 주인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것이 나
    를 비웃는 말이다.” 하고 즉시 걷으니, 후에 손이 그 일을 아는 자가 있어 오니, 주인이 아랫 수
    염을 잡는데, 객이 말하기를, “청컨대 손을 조금올려 잡으라.” 한 대, 주인이 크게 부끄러워한 고
    로, 요사이 사람이 술 마시는 것을 ‘수염 잡는다’하더라. 한 상국의 농사
    상국 한응인 이 신천 땅에서 상중에 있더니, 때에 왜군이 온 나라에 가득 차 명문의 집안들도
    생계를 유지하기라 어려운지라, 상국이 가족을 데리고 내려가 시비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였다.
    오뉴월 즈음에 오려를 이미 두 번 매에 이랑에 가득히 벼가 무성하거늘 심히 즐거운지라, 상국이
    박대를 집고 논을 보고 기뻐하며 돌아와 나이 많은 농부들에게 자랑하여 말하기를, “우리 농사지
    어 두 번 매어 벼가 구름같이 무성하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리오.” 하였다. 늙은 농부들이 가서 살
    펴보니 오려가 아니라 다 피 같은 잡초라. 대개 시비는 서울에서 성장하여 일찍이 전원을 보지
    멋하고, 하는 일이 오직 비단과 거문고와 비파와 노래와 춤이라, 하루아침에 몰아 논밭에 넣으니,
    매어 버리는 바는 아름다운 벼이고, 복돋아 심는 것은 다 피와 잡초라. 온 집안이 어리석어 알지
    못하더라. 신천 사람들이 웃어 매양 농사 잘못하는 이를 보면, 반드시 말하기를 ‘한상국의 농사라’
    하니 말세의 사람 쓰는 것이 다 이런 이유이니라. 윤지경전
    해동 조선국 중묘조에 윤 총재라는 재상이 있으니 명은 현이라. 삼자를 두었으되 개개이 준걸
    이나, 필자지경의 자는 자산이니, 문장이 세상에 빼어나고 풍채가 준하니 윤공이 제자 중 편애하
    더라. 지경의 나이 십육 세에 과거를 보아 진사를 고등하니, 성명이 일세에 진동해서 두루 구혼함
    이 구름 모이듯 하되 허혼치 아니터니, 그 해 여름에 여역이 대치하여 낭재가 불안하거늘 윤공이
    지경을 데리고 피접을 나더라. 사촌매부 최 참판의 전취 윤부인이 두 아들을 낳고 일찍죽으니, 또
    후부인 이씨에게 일녀를 두었으니 이름은 연화요, 시년이 심삼이라. 용모의 고움은 장강에 비기
    고, 성정이 유함은 임사에 미칠지라, 부모가 극히 사랑하는 중 가르치 아니한 문앙과 배우지 아니
    한 여공이 세상에 무쌍이러라. 윤공이 최부에 이르니, 공이 소저를 명하여 나와 숙부에게 예로 뵈
    거늘 지경 형제 또한 남매지예로 볼 새, 지경이 추파를 들어 잠깐 보니 기인한 용모는 공산에 밝
    은 것을 새겼고, 자약한 쌍협은 홍백 모란이 아침 이슬을 머금은 듯, 연연하고 정정한 태도는 진
    실로 세상에 없을 듯 하더라. 지경이 한번 보고 마음이 여광 여취하여 스스로 생각하되 효성같은
    면목이 맑고 어질고 어여쁜 태도는 장강의 고운 눈이라도 이에 및지 못할 것이고, 이부인의 횐
    얼이라도 여기 및지 못할 바이요, 비연의 너무 경신함과 태진의 너무 풍랭함으로도 어찌 족히 비
    기리오. 천고의 절색이라. 대장부 이런 옥안 화용이 아니면 일생이 어찌 쾌락하리오. 당당히 부모
    께 고하여 최씨에게 정혼하리라 하고 물러나와 모부인에게 왈, “최씨 여자는 짐짓 지경의 배필이
    라, 모친은 구혼하여 소자의 일생이 부부 쾌락함을 바라나이다.” 부인이 또한 소저의 향명을 들었
    는지라, 윤공께 청하여최부에 통혼하니 최공이 내당에 들어가 부인과 의논하리 부인이가로되, “지
    경이 풍채가 준수하고 문장이 세상에 빼어나고 소년진사함을 아름다이 여겼으나. 기상이 본대 활
    달하여 청루에 왕래한다 하오니 어찌 어린 딸을 경솔히 허혼하오리까.” 공이 본래 부인의 뜻을
    어기지 아니하는지라 다른 말로 칭탁하여 물리치니, 윤공이 가장 무안하여 하더라. 염질이 대단하
    여 지경이 중히 않는지라, 또 수일 안에 최 소저가 앓으니 두 집이 민망하여 구완하더니, 토혈하
    거늘 종들에 맡기고 양가에서 비접나니, 지경은 외헌에 있고 연화소저는 내당에 있더라. 병이 점
    점 나으며 윤생이 심심하여 거닐다가 내당에 들어가 소저를 찾아보고 반갑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
    여 병이 나음을 서로 치하하고 생이 눈을 들어보니, 사병 후 단장함이 없으나 더욱 아름답고 어
    여쁜 태도가 만 가지나 솟아나니, 생이 마음이 연하여 혹 바둑도 두며 혹 쌍육도 쳐 김심한 것을
    위로하더니, 생이 짐짓 친밀히 하여 저의 거지를살피매 인사 처신이 어른이 및지 못하더라. 더욱
    은애지정을 억제치 못할 제, 소저의 옥협에 향한이 흐르거늘 생이 부채를 들어 부치니 소저가 소
    왈, “수고로이 부치시니 감사하여이다.” 생이 낭소 왈, “나는 윤생이오. 소저는 최공 여아시니 어
    찌 남매지의 있으리오. 한림 형제는 외가로 육촌이나 소저는 이부인 소생이니 남매지의 없나이
    다.” 소저가 대왈, “어린 아해 촌수와 곡절을 모르고, 또한 부친이 가르치시기를 그러하나이다.”
    언파에 옥안에 숙여 들었던 사외를 놓거늘 생이 소왈, “거년에 소저께 구혼하니 허혼치 아니함은
    무슨 주의 계시고, 내 비록 용렬하나 풍채와 재화는 소저께 지지 아니하고, 문장이 세상에 빼어나
    니 남에게 부끄럽지 아니커늘, 거절하심은 어쩐 연고니이까. 알고자 하나이다.” 소저가 머리를 숙
    이고 말을 아니하거늘 생이 가로되, “혼인은 인간 대사어들 어찌 속예를 하여 말을 아니하리오.
    소저의 뜻은 어떠하시니이까. 우리 두 사람이 한 집에 있어 이 깊거늘, 어찌 심곡을 기이리이까.”
    소저가 양구에 가로되, “부모의 하시는 일에 내 어찌 알리이까.” 생 이 소왈, “소저가 생을 그러다
    하고 다른 데 구혼하시다가 천생이 나와 같으면 모르거니와, 만일 나와 같지 않으면 뉘우치나 및
    으랴. 실로 진정을 이르소서.” 소저가 수괴하여 대답지 아니하고 일어나니, 생이 나수를 붙들 간
    청하니 소저가 할 일이 없어 나직이 대왈, “모친께오셔 군이 청루에 다닌다 하셔 허치 아니하시
    더이다.” 생 이 소왈, “내 언제 청우에 가던고. 내 진사하였을 제 여러 창기 모이니 그 중하나 친
    한 게 있으나 버린 지 오래거늘 그 무슨 혐의 있으리오. 다만 소저의 뜻을 얻고자 하니, 소저가
    유정하실진대 생이 소저를 위하여 신후경의 직금을 효칙 하리이다.” 소저가 대왈, “왕교량은 음란
    한 계집이요, 신후경은 어리기 심하여 죽으니, 불효가 큰지라 군자의 이를 말 아니로소이다. 다만
    첩이 군을 위하여 포숙의 신을 지키리이다.” 생이 대열하여 소왈, “그럴진대 맹서하여 사생을 정
    하소서.” 소저가 왈, “큰 신은 맹서를 아니한다 하고, 여자는 지아비를 위하여 죽어도, 군자는 여
    자를 위하여 죽으면 불가하니 부질없는 필적을 써 번거할 뿐이로소이다.” 생 왈, “소저의 말씀이
    옳소이다. 다만 소저의 지성을 믿고자 하나이다.” 소저가 대왈, “후일에 혹 어떤 일이 있어 죽어도
    오늘 말을 어찌 아니하리이까. 의심마소서.” 생이 대열하여 차후로 경중함이 비할 데 없어 밤은
    밖에서 자고 낮은 종일토록 모여 소일하더니 다시 앓는 이 없으매, 각각 집에 갈 생은 소저 떠남
    은 애연하더라. 소저가 하루는 윤생의 수말을 부모에 고왈, “저의 정성이 이 같고, 소저의 사병
    후 두어 달 사람이 막역이라 윤가의 사람 되기를 원하나이다.” 최공 부부가 대열왈, “만일 양정이
    이러하면 어찌 물리치리오.” 즉시 윤공을 보아 청혼하니, 윤공이 대회왈, “영애 나이 어리고 두 아
    해 사병을 지내었으니, 명년 춘으로 지내자.” 언약하였더니 춘이월에 생이 정시장원을 하니 일시
    에 재명이 조정에 가득 하더라. 종실 희안군이 즉시 와 구혼하거늘, 최가에 정혼하였으므로 허 치
    아니하다. 차설 귀인 박씨 일자녀 있으니, 왕손은 복성군이요, 장녀 영희 옹주는 홍상에게 하가하
    고 차녀 연성 옹주의 시년이 십사세라. 희안군이 구혼하여 허치 아니함을 노하여 즉시 상께 주왈,
    “신방장원 윤지경이 시년이 십칠 세에 취처 아니 하였사오니 연성 옹주와 결친하옵소서.” 아뢰
    니 상이 신청하시다. 어시에 윤공이 최공을 보고 첨전 계화로 성례함을 청하니 생이 불승 회열하
    여, 백양을 휘동하여 최부에 이르러 전안할 새, 흘연 상명이 급하시니 생이 길석에 이르러서 합주
    를 파하고 즉시 승명하여 귈하에 나아가니, 상이 인견왈, “연성 옹주로써 경에게 허혼하노라.” 지
    경이 복지 주왈, “신이 의외에 이 같은 하교를 듣사오니, 천은이 지중하오나 신이 참판 최흥일의
    여자를 취하여 행례를 파하고 승폐하여 이르렀나이다.” 희안군이 계하에 있다가 상께 눈주어 가
    로되, “비록 납폐 전안을 하였으나 합궁 전이오니 이제 간택하오나, 상명을 승순함이 신자의 직분
    이오니, 제가 거역 하지는 못하오리이다.” 상이 노색활, “너를 사랑하여 부마를 정하거늘, 어찌 사
    양하여 칭탁하느뇨.” 지경이 돈수왈, “어찌 감히 최녀로 성례함이 없사오면 초방은택을 어찌 사양
    하리이까.” 상이 대로하사 가로되, “네 불과 소년장원하여 세상에 화세코자 하여 옹주인 줄을 염
    이 여김이라, 가장 범람하도다.” 지경이 돈수왈, “신이 어찌 또 감히 기망하여 아뢰리이까. 사람마
    다 초방은택을 원하옵거든 어찌 염이 여기 오며, 신의 나이 어리오되 조정 명사의 무리 연석에
    모였사오니 불러 물으소서.” 상이 변색왈, “합쿵 전은 남이라, 옛 증참이 있으니, 성묘조에 경애
    공주를 길례하고 합궁 못하여서 죽으니 파혼하고 부마위를 거두시니, 왕가에도 불행하던 바이라,
    네 위엄이 성묘에 더하냐.” 지경 이 대왈, “신은 그와 다르나이다. 그때 공주 기세하시고, 신은 최
    씨 살아있사오니 신이 부마 되오면 최씨 청춘 과부 되오리디니, 전하의 관인하신 덕택으로 신하
    의 인륜을 차마 어찌 끊으시리이까.” 회안군이 주왈, “빙채를 거두고 최녀를 다른 데로 보내면 어
    찌 홀로 늙으리오.” 지경이 노왈, “자기가 당초에 소관에게 구혼하다가 최가에 정한고로 허치 아
    니하였더니, 일로 혐의를 이어 전하께 천거하여 폐군 아부한 죄를 면니 못하라로다. 신하의 자식
    이 많거늘 고이한 소인의 간사 불계를 깨닫지 못하시니 전하의 불명이로 소이다. 상이 대노왈, 희
    한군은 과인의 동생이니 네게 작은 임금이라, 내 앞에서 욕하고 날을 혼폐한 임금으로 능모하니
    자식 못 가르친 죄로 네 아비를 죄주리라.” 지겨이 소왈, “전하 중흥 십구 년에, 일월 같사온 성덕
    이 심산 궁곡에 미쳤거늘, 유독 소신에게 불명하시고 무거하신 정사가 이러하니 죽어도 항복치
    아니하리이다.” 상이 더욱 노하사 왈, “내 윤지경을 못 제어하리오. 군부를 욕한 죄로 금부에 나수
    하고, 또 윤 현을 가두고 길례날을 받아 놓고, 최 흥일은 빙채를 도로 주라.” 하니 윤 지경 부자
    가 나옥하여 원정하되, “신의 자식이 망녕되이 상의를 불복하와 범죄 이렇듯 하오니 부자를 함께
    죽이셔도 마땅하옵거니와, 최홍일의 딸은 지경의 아내요, 신의 며느리오니, 전하의 성덕으로써 신
    자의 인륜을 잇게 하시면 최녀 비록 미세한 여자이오나 천은을 감축하와 화산의 풀을 맺어 성덕
    을 갚사올 것이오. 신의 부자 진충 육력하리니 북원성상은 익히 헤아리옵소서. 고문 대가에 재랑
    을 간택하오셔 만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답왈, “내 아는 바이어늘, 경의 부자가 한결같이 가망하
    느뇨. 인간 대사육 연고가 있어 퇴혼하는 일이 왕왕 있나니 최녀를 재랑을 택하여 맡기게 하고
    지경의 방자함을 가르치라.” 하니 윤공이 하릴없어 하더라. 양사 합계 왈, “신등이 듣사오니 윤지
    경이 최흥일의 사위로 부르나이다. 혼인이란 것은 왕법의 위엄이나가, 양가가 상의할 것이어늘,
    윤 현의 부자를 가두시며 퇴채하라 하신 하교 옳지 아니 하나이다.” 상이 양사를 파직하시니 옥
    당이 차주 왈, “혼인은 길사이오니 신랑과 사장을 가두심이 크게 옳지 아니하여 이다.” 이에 상이
    놓으라 하시고, 하교하사 길일을 정하라 하시니 수십 일이 격하였는지라. 지경이 불승 분원하나,
    하릴없어 하더라. 상 왈, “지경의 죄 중 하나 길일 전에 관면이 있으리라.” 하시고 응교를 제수하
    시니, 지경이 하릴없어 입공하더라. 하루는 최부에 이르니 최공 부부 서로 볼 새, 부인은 누수 여
    우하고, 공도 역시 슬퍼 탄식왈, “상명이 퇴채하라 하시니 여아는 심규에 늙기를 정하고 또한 내
    어른 재상으로서 군명을 위월하리오.” 생이 애연왈, “그러면 서로 얼굴이나 보사이다.” 공이 왈,
    “불가하나 네 아내이니 잠깐 보고 가라.” 인파에 소저를 부르니 소저가 승명하여 전당에 이르러
    부인 곁에 앉아 수괴함을 띠어 사색이 태연하여 아는 듯 모르는 듯 하고 아리따운 태도가 달같아
    반가운 정이 유동하고, 어진 태도와 약한 기질을 대하매 마음이 깨어지는 듯 하니, 공의 부부가
    더욱 슬퍼하더라.돌아가기를 잊고 앉았으니 공이 여아를 들여보내고 생의 손을 밖으로 나와 십
    분 개유하니 생이 부득이 돌아와 병이 되어 식음을 폐하더니, 길일이 다달아 할례할 새 옹주의
    자색이 전혀 없고 포독 불인함이 외모에 나타나는지라, 생이 더욱 불쾌하며 띠를 끄르지 아니하
    고 밤을 새우고 명조에 궐하여 문안 상이 소왈, “네 죄 크게 통한하더니 이제 자식이 되니 가장
    어예쁘다.” 즉시 부마와 관교를 주시니 웃고 꿇어 받자와 계하 사은하고, 귀인을 보니 극히 교만
    파고 포독하니, 더욱 모골이 송연하더라. 박 귀인이 부마의 미려한 풍채를 사랑하고 더욱 기꺼워
    하더라. 부마가 집에 돌아와 대문에 들며 하인을 명하여 교자를 산산히 깨치고 들어와 소맷속으
    로 부터 부마의 관교를 내어 땅에 던지니, 윤공이 대책왈, “이 어인 일이뇨. 임금이 주신 교지를
    업수이 여김이 어찌 이렇듯 불공한다.” 하고, 또 개유하더라, 부마가 삼년 죽었던 부인을 만나 떠
    날 줄 알리오. 비복을 당부하여 왈, “내 한림 형제와 양가 부모를 다 피하고 왔으니, 종이 오거든
    미리 일러 나를 피하게 하라.” 하더라, 이러구러 여러 날이 되니 윤공은 매양 알기를, 심사나 사
    나와 천계산 나라 원당에 가던 것이란, 또 게 갔는가 찾지 아니코, 옹주는 본대 불화한 사이라 거
    취를 모르니 찾지 아니코, 상이 여러 날 불참함을 괴이 여기사 찾으시니 그제야 찾기를 시작하여,
    친우의 집과 천계산 절에 가 보되 종적이 없으니, 괴이하여 찾아가 돌아와 본즉, 부마의 타던 말
    이 있거늘, 최씨 있는 곳에 갔는가 의심하여 가 보되 숨었으매 보지 못하고 게도 아니간 줄 알아
    두루 찾아도 찾지 못한 지 수십 일이라. 조정이 다 알기를 심회 사나와 미쳐 달아났는가 의심하
    고 상이 진경하사 종야 번뇌하시더니, 윤공이 오히려 의심하여 영리한 사환을 시켜 부지 불각에
    들이닥쳐 보라 하니, 과연 최씨 침실에 있는지라 이대로 상전에 고하고 대죄하니 상이 어여뻐서
    웃으시고, 환관 김송환을 불러 수죄하고 부르라 하시니, 이 때는 유월이라. 지경이 중당에 있어
    죽피 연석을 깔고 수안석을 베고 최씨를 곁에 앉히고 발 벗고 당판 책을 보더니 시비 들어와 중
    사왔음을 고하니, 부마가 최씨를 곁에 앉힌 채 두고 들어오라 하니 송환이 들어와 중계에 서니,
    부마가 안석에 머리를 들어보다가 왈, “네 어찌 온다.” 송환끼 대왈, “부마를 잃은 지 이십 일이
    라, 천심이 지성하자 수라를 폐하고 지내시더니, 오늘이야 이곳에 숨어 계심을 알으시고 천노가
    진발하사, 송환으로 부르라 하시나이다.” 부마가 일어나지 않고 이르되, “주상이 가장 부지런하시
    고 부질없도다. 신하 제 아내 데리고 있는 것을 꺼려 잡으려 보내시니 조정에 애처하는 관원이
    몇이나 잡혀 들어왔느냐.” 송환이 어이없이 소왈, “부마 옹주 박대하고 최 부인에 혹하여 문안 불
    참하신 지 일월이 당근하고, 또 그저께 박 귀인 생신이어늘, 그 사위로서 불참함을 문죄하려 하시
    더이다.” 지경이 벌떡 일어앉아 소리질러 가로되, “혼군이 요첩에게 혹하여 소인과 합세하여 흥계
    깊이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여 현신 충랑을 살해하 천하 박색 괴물의 첩딸을 위하여 나를 괴롭게
    보채느냐. 간특한 첩의 생일이 무슨 대사라 그리 구속히 구시더니, 그저 신하를 부르시면 가려니
    와 박 귀인 생일 불참죄와 옹주 박대한다 부르시면 끌어도 아니 가리라.” 웃고 가로되, “내 아내
    고우냐.” 최씨쁠 안고 단순을 접하고 운으떠 벌떡 누워 책을 맑은 음성으로 읽다갸 왈, “부인아,
    김 영웅 주찬먹이라.” 송환이 어이없어 중계에 앉아 최씨를 보니 절묘하게 고우니, 가로되, “저렇
    거든 어이 옹주와 화락하리오.” 하며 중심에 못내 차탄하더라. 주찬을 먹고 하직 왈, “들어가 무엇
    이라 아뢰오리까.” 부마가 왈, “내 하던 말을 일일지 고하라” 기지개하며 발을 문지방에 얹어 소
    왈. “열황소 끌어도 못 가리로다.”이적에 남 곤 심 정이 조광조이 군빈등 삼십여 인을 모해하랴
    홍상 복성군과 모계하여 박씨가 후원 나뭇잎에 꿀로 글을 쓰되 이 군빈 등이 모반한다 썼으니 꿀
    먹는 버러지 꿀을 다 갈아 먹으니, 글자가 완연한지라 장녀 따서 박씨주어 상께 보이니 상이 놀
    라시고 귀인과 복성군 홍상이 안으로 혼동하고 밖으로 남 곤 심 정이 고변하니 조광조 등 삽인은
    내어 버히니, 원민한 줄을 참담이 여기나 역불체하여 구치 못하고 불승 통한 하더니, 짐짓 흥계를
    이름이라. 송환이 돌아와 일일이 고하고 최씨의 절색을 같이 고하니, 윤공이 이전에 있다가 바삐
    섬에 내려 연관대좌하고, 상은 대노하사 내유사 별파진 다섯과 대전별감 다섯과 김송환이 영거하
    여 잡아오라 하시니, 송환이 엄지를 받자와 즉시 최부에 가니 지경이 약불 동념하여 집에 가서
    관대를 갖다 입을 새, 최씨로 관복을 잡히고 팔을 궤어 송환을 돌아다보며 소왈. “우리 옥인으로
    더불어 이십 사일을 동처하였으니 자식이 생겼을지라, 내 이제 잡혀서 죽어도 후사는 이르리니
    내 신주를 옹주에게 맡기지 말라.” 하고 목혜신고 나오다가 도로 들어가 최씨가 감고 있는 염주
    꾸리를 앗아 소매에 넣고 잡혀 들어가, 상이 노하사 여성질왈 “임금을 욕하고 왕녀를 능모 천대
    함이 태심하여, 군부를 속여 도망한 놈은 쓸데없으니 끌어내어 죽이라.” 하니 지경이 즉시 옷을
    벗을 새 소매에게 꾸리를 내어 대전별감을 주며 왈, “집에 있을 제 아내 염주꾸리를 감아 주더니
    소매에 넣고 들어왔으니, 네 마땅이 내 집에 가 전하라.” 상이 이 거동을 보고 잠깐 웃으시니 세
    자가 또한 대소하더라. 상이 가라사되, “네 나를 수욕하더라 하니 그 어인 일고, 바로 고하라.” 지
    경 이 계고왈, “실로 고하리이다. 수욕은 아니옵고 바른말하였나이다.” 상 왈, “충양을 살해하고
    소인을 사랑한다 하니, 누구는 소인이며, 누는 충양이며, 요첩을 혹하여 혼군이라 하더라 하니 그
    어인 말고, 바로 이르라. 딸을 못 낳았다 하더라 하니 누구는 못 낳고 누는 잘 낳았느뇨.” 지경이
    대 왈, “거년 사화제 죽은 조광조 등은 충양군자요, 남 곤 심정 박빈홍 명화 등은 소인입니다.” 상
    왕, “조광조 역적 한다 하니 죽였거든, 네 어찌 역드는가.” 지경이 대 왈, “전하께서 역적하는 기
    미를 보시이니까, 타일에 뉘우치시리니 그 대신의 영달을 알으시리이다.” 상 왈, “심 정 남 곤 을
    무슨 일로 소인이라 하는가.” 지경이 대 왈, “권을 다하고 재주를 꺼려 군자를 잡아 구하여 사화
    를 짓고, 전하께서 구태여 그리 쫓지 못하시어늘, 심 정 군법상서를 지어 차의 문덕을 기리니 그
    당한 계고라, 어찌 소인이 아니리까. 남 곤, 심 정, 흥명화 등이 있다가 밖으로 달아나더라.” 상이
    묵연 양구에 왈. “나를 어찌 혼군이라 하느뇨.” 지경이 대왈, “군자와 소인을 분간치 못하시니 어
    찌 밝으시다 하리니까.” 상이 우문 왈, “요첩에게 고혹함은 무슨 일고.” 지경이 왈, “박 귀인이 전
    하께 후궁 옆에서 전총함을 들어 동렬을 투기하여 잡고, 중전이 자존하시거늘 항형하여 촉범하여
    교만히 아들을 가르쳐 대신을 체결하여 사통하고, 조정의 정사를 간여하여 사화를 참여하니 어이
    요첩이 아니리이까.” 상 왈, “뉘 이르거늘 이리 자세히 아는가.” 부마가 대왈, “신이 지식 항렬에
    있사오니, 자유로 귈내 출입이 잦아 일동일정은 목도하오니, 어이 모르리이까.” 상이 무연하시더
    니, 우문 왈, “딸을 어찌 하여 나를 못 낳고 누구는 잘 낳았느뇨.” 지경이 소왈, “공주와 다른 옹
    주는 어떠한지 모르오나 신이 자연 사 년을 두고 보오니, 전하의 성은을 입사와 의식이 퐁족하옵
    거늘, 연고 없이 부리는 종과 성내는 매질이 잦사오니 성행이 사납고 어린 처녀 출가하여 구가에
    오매 보는 이 다 애처롭사올 것이로되 신을 만나온 지 수개월이 못하와 동침 아니한다 하고 날마
    다 싸우자하오니 염치 무쌍하옵고, 얼굴이 곱지 아니하오니 더럽더이다. 신의 조강 지처 최씨는
    성정이 부드럽고 인자하고 신이 어려서부터 아는 터라 어른의 안전과 남편의 앞에서 절대로 성내
    고 높은 소리하옵는 상을 보지 못하였사옵고, 신을 만난 지 사 년에 옹주로 하여 신세 참담하거
    늘 어른의 지위대로 웅변하여 슬기로움이 남자에 지나오니 비록 천위지엄하오나 제 얻은 남편을
    옹주가 앗았으니 서러을 듯 하되, 신을 보면 개유하여 옹주 후대하기를 권하고 삼 년을 죽은 체
    하여 신을 거절하오니 그 신세 괴로움과 설움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로되, 늙은 어버이께 수색을
    뵈지 않으니 효성이 높음이요, 제 부마가 천은을 입사와 부자가 관면이 있아오니 조업이 없고 청
    렴하기 과도하며, 여러 자식에 가장 군립하여 어렵사오나 신을 대하여 한 번도 얻고자 하는 빛이
    없사오니 마음이 은공 청렴함이요, 얼굴이 극히 고우키 신이 어찌 사랑하지 아니하리이까. 옹주는
    당초에 주신 부부 전설은 이르지 말고 삼십 소신의 녹이 있삽고 삼전에서 주시는 것이 많사와 적
    곡적보하고, 앉아서 날마다 문안에 또 주소서 하오니 무렴한 욕심이 있삽고, 신이 비록 사정이 중
    치 못하오나 대하여 공경하오니 일신이 안한하여 반석 같거늘 매양 서사운 사설로 전하의 마음을
    혼동하오니 불효를 면치 못하오리라, 일로 탁량하오매 전하는 최일홍만치 딸을 못 낳아 계시니이
    다. 이제야 약 한 말씀 다 아룃사오니 어서 죽여지이다.” 이때 윤공이 곁에 엎드렸더니, 지경의
    대답을 듣고 입을 막지 못하고 마음이 침상에 앉았는 듯 하더라, 상 왈, “저리 미운 놈을 죽이지
    못하니 내 딸 낳은 죄로다.” 박씨 중사로 전어 왈, “윤 부마가 날과 무슬 원수관대 이전부터 죽고
    남지 못할 죄로 진달하더니 또 오늘 이런 말을 들으니 다른 말은 이르도 말고 심정승 남 판서와
    동시하여 조광조를 죽인 듯이 되어 가니, 뜻을 자세히 물어 알고자 하나이다.” 지경이 소왈, “정
    나와 겨루고자 하다가는 속을 것으니 잠자코 계시소서, 왕래하던 편지 두 장이 있고 군사관이 살
    아있으니 가장 어려을 것이니, 여러 말씀말으소서 하여라. 더운 뜰에 오래 앉았으니 목이 마르오
    니 얼음차나 주소서.” 박씨가 가장 밉게 여겨, 또 전어 왈 “왕녀를 박대하고 최녀의 화락하여 군
    부를 경멸하니 부마의 일은 옳을까. 귀양이나 보내어 개과하게 하소서.” 상 왈, “너를 죽일 것이로
    되 옹주를 보아 사하나니, 충청도 대흥 땅에 정배하나니 회과하게 하고, 최녀는 광망한 지아비를
    미혹케 하여 옹주 박대하는 죄로 함흥으로 정배하노라.” 부마가 사죄하고 나오니, 윤공이 나와 지
    경을 대책하고 치죄하려 하니 지경 왈, “부친이 어찌 소자의 뜻을 모르시나이까, 불과 수년이 못
    되어 대환이 날 것이니, 소자가 끝내 박씨를 노엽게 하여 정배를 자원함에 부자가 경종코자 함이
    로소이다.” 공이 부마의 등을 어루만져 왈, “네 팔자라 일찍 가르쳐 바가 없거늘 지혜 이 같이 과
    인하고 강렬함이 이 같으니 내 자식 두었다 하리오다.” 하더라. 염춘에 세자의 침전 밖에 쥐를 죽
    여 방법하거는 상과 궁중이 다 놀라더니 세자의 병환이 계셔 달포 미령하사 백약이 무효하니, 상
    이 의심하사 이인 남사교를 명하사 귈내를 망기하라 하시니, 동궁 편 부엌벽을 보고 운이 사납다
    하거늘, 벽을 헐고 보니 목인과 인골을 많이 묻었으되, 연월 박힌 글씨 박씨 복성군 홍상 등의 글
    씨라. 상이 대노하사 즉시 국문하시니 박씨 일차에 승복하니, 목잘라 죽이고 홍상은 장하여 죽이
    고, 복성과 홍상의 처와 옹주는 다 귀양 보내었더니, 또 소계하여 사사하고 거평위 옹주는 어미
    연좌로 밀양땅에 귀양보내다. 상이 세자를 대하여 차탄 왈 “윤지경은 소년이나 기특함이 장 견의
    범 잡음과 두 목의 위풍과 장 탕의 몸 보전하는 계책을 두었으니, 어찌 기특지 아니하오.” 하시
    고, 즉시 사하여 부르실 새 부마위는 거두시고 승지 제수하사 부르시고, 최씨를 다 놓으시다. 대
    간이 다시 계하여 홍명화 등을 버히고 적몰하다. 지경이 돌아와 복지하여 사은하고 울며 왈, “신
    이 전하의 슬하 되온 지 칠 년에 신이 충성이 업사와 상전에 득죄하여 슬하를 떠났삽더니 천은이
    망극하와 다시 용전에 뫼시오나, 박씨 죽삽고 옹주가 귀양갔다오니 국가 불행과 신의 반자지정의
    단절하오니, 인정에 슬픔을 금치 못하리로소이다.” 하며 묵연에 눈물이 흐르니, 상이 또한 슬퍼
    손을 잡으시고 유체하시더라. 지경이 주왈, “옹주가 홍계에 참여 아니하였사오면 신이 사람을 불
    러 물으리이까.” 상이 탄왈, “네 아내는 실로 참여함이 없던가 싶으니, 물으나 무슨 협의 있으리
    오.” 하시더라. 지경이 집에 와 부모를 반기고 옹주궁을 보니 집이 황량하며 약간 궁인들이 지키
    고 있으니 심히 처량한지라 부마가 불쌍히 여겨 노비를 엄칙하여 지키게 하고 인마를 차려 질자
    를 보내어 최씨를 데려오니 반갑고 기쁘기는 이르도 말고 아자가 이미 컸으니 더 반지고, 구고가
    이제야 신부와 손아를 보고 사랑함이 측량 없고 그 화란 중 일호도 그룻함이 없으니 더욱 기특히
    여기고, 흉변을 지경이 지혜로 벗어나니 부모 형제는 이르도 말고 일가가 무사하니 그 재덕을 칭
    찬 아니하는 이 없더라. 지경이 옹주께 편지하여 묻기를 극진히 하고, 하루는 상께 주왈, “박씨
    비록 죄 중이오나 국은 후는 그렇지 아니하오니 신설 하오시면 마땅하올 듯 하오이다.” 상이 불
    열하시니, 또 다시 주왈, “정굉필은 은사함이 마땅하오이다.” 상이 조광조 신설온 허치 아니하시고
    정굉필은 사하시고, 다시 정승하이시니 받지 아니하다. 지경이 이십 사 세에 동부승지 하였더니,
    상이 유명하사 붕어하시고, 세조가 즉위하시니 시호는 인종이라 초상을 마치시고 지경을 보시며
    유체하사 왈, “옹주는 과인의 골육 동거라 경이 데려다가 전과 같이 말고 중대하여 살면 내 죽어
    도 한이 없노라.” 지경 이 울고 사례왈, “오늘 하교를 간폐에 새겨 잊지 아니하오리다.” 하고 즉시
    인마를 보내여 옹주를 데려오니, 옹주가 돌아와 보매 부왕이 마저 없으시고 의지 없으니 더욱 서
    러워함이 가히 없어 따라 죽고자 하더니, 상이 불러 보시고 붙들어 통곡왈, “이제는 전과 다르니
    위 높음을 가세말고 가부를 공경하고 구고를 효성으로 섬기고 동렬을 사랑하여 조심하여 살라.”
    하시고, 주시는 것이 부항 때보다도 배나 더하더라. 옹주가 집에 오니 부마가 조상하고 은근함이
    극진하니, 옹주가 감격히 여기는 중 최씨 옹주 대접을 극진히 공경하여 친동기 화목함 같이, 옹주
    출입에 일어나 맞으니 부마가 “이는 너무 과하도다.” 최씨 답왈, “옹주는 비록 어미 죄 있사오나
    양선제의 탁고하신 말씀이며, 옹주는 왕녀요, 주상이 상공에 탁고하신 말씀이 간절히 슬프고 우리
    부부 생존함이 선왕 성덕이시니 더욱 공경하나이다.” 하니 그 지현을 탄복하여 더욱 개정하더라.
    지경이 대사간이러니, 상소하여 남 정 등이 직관에 멀둥하여 꿀로 글시 사화 지은 말을 떨고, 사
    이에 의논하던 편지 두 장을 첩부하여 아뢰니, 상이 남 곤, 심 정 등은 국문하여 처결 안치하시고
    조광조 신원은 듣지 아니하시는 선왕이 아니 계시기 허치 아니하시다. 하루는 윤공이 제 자부를
    앞에 거느리고 기뻐하며 이르되. “석일 네 최부의 단순을 접하고 꾸리 감아 주며 좋은 서답하여
    주더니 노부 보는 데는 아니하고 중사 있는데는 어찌하였느뇨. 이 또 하여 웃게 하여라.” 부마가
    소이대왈, “이 다 소자의 변화 계교이나이다. 또 하라시면 어렵지 아나하여이다.” 최 부인이 언파
    에 옥면에 흥광이 취집하여 일어나니 공이 옥수를 잡고 옥빈을 어루만지며 가뢰되, “어렇듯 다름
    답거든 어찌 아자를 책하리오.” 하니 만좌가 다 칭찬하더라. 조정과 벗들이 기롱하여 이르되, “꾸
    리 감는데 시간이 어디 있으리.” 하더라, 차회라. 상이 집상하시기 과도하사 상후 중하시니, 부마
    가 깨어 들어가니, 상이 손을 잡고 울며 왈, “짐짓 충신이로다. 내 아마도 살지 못하겠으니, 경원
    군이 덕이 있으니 입후하고 네 안으로 정사를 도우라. 옹주를 화락하니 내 죽어도 한이 없으리로
    다. 또 조광조 신원을 여러 번 간하되 허치 아니했더니, 신원하게 하라. 친이 쓸 길 없으니 네 쓰
    라.” 우왈. “경원대군을 도와 모후의 선왕 후궁 대접하기를 극진히 가르치라. 네 매양 정굉필의 업
    적을 성묘에 배양할 사람이라 하더니 내 장저에 있을 제 사적을 기록하였더니, 이제 생각하나 부
    족함이 없으니 경이 알아 사후에 성묘에 더하라.” 우왈, “경의 처 최씨 가장 어질어 내 누이를 극
    진히 대접한다 하니, 크게 기특한지라. 상을 주나니 무명과 옷을 주어 그 현덕을 표하노라.”
    써 내관을 맡기시니 지경이 이렇듯 상후가 평복지 못하심을 알고, 훙격이 막혀 눈물이 만연하니
    상이 거들떠보시고 한숨지어 돌아 누우시더라. 삼 일 만에 승하시니 지경의 설움이 부모상에 감
    치하니해 초상을 마치고 상께 품하여 조광조 등 신원 관작하고, 정굉필, 이언적을 사후에 배성묘
    하게 하다. 지경이 청렴하고 어진 덕이 일국을 기울이니, 상이 중대하시고 기리는 소리 진동하더
    라. 지경이 거가체 부모께 효도와 형제 우애 비길 데가 없으니, 운공이 치사하고 들어 매양 이르
    되, “내 아들 두었다 하리로다.” 자랑하며 너무 혹처하여 살할까 두려워하더라. 옹주가 최씨를 감
    격하여 지극히 조심하고 존고의 내림이 없이 받드니 조금하여 옹주의 어짐이 최씨에 지지 아닌지
    라, 부모가 그 정사를 장히 여겨 진중 후대하니 인묘의 간절히 의탁함이요 또 충성이 지극함이더
    라. 하루는 부마가 술 먹고 옹주의 무릎 베고 강개히 노더니 사형이 들어와 소왈, “자산아 옹주를
    저만치 대접할 것을 그대도록 매몰하여 군상께 죄를 얻었는다.” 부마가 소이대왈, “남자가 이렇게
    매몰하리이까. 그때는 박씨의 준 배요 이제 중대함은 양선왕의 부탁함이로소이다.” 차형이 소왈,
    “네 진사하였을 계 성천 여기 녹운선을 대하여 청산 녹수로 언약하였더니, 내 어제 대궐에서 나
    오다가 만나니 경선 공주 시녀로 있노라 하고, 네 말을 묻고 울며 가로되, 그 영감이 옹주로 꾸기
    시기 감히 다시 와 뵈옵지 못하고 수절하여 있삽더니 서울 온 지 해포 되었으되 찾지 아니하시니
    무심한 것은 남하고 서러워 우니, 네 불러 보고 다시 옛정을 이음이 어떠하뇨.” 부마가 왈, “만물
    이 변하여 청산 녹수인들 아니 변하리이까. 가중에 꽃같은 부인을 두고 삼십대 재상이 처녀 첩을
    두리니까. 생각하면 녹운선이 절통하떠이다. 소제 최씨께 순히 입장할 것을 녹운선이 마장이 되어
    칠 년을 꾸겼나이다.” 하니 서로 웃더라. 최 부인에게 삼자 이녀요, 옹주에게 이자 이녀더라, 명
    묘 중년에 지경이 좌의정 하였더니 명묘 후사 없이 승하시니 여의정 이출경이 원인대신 신중업
    등으로 잠저에 선묘 대왕을 맞아와 복귀하고, 부부 삼 인이 종고 화락으로 험 없이 살더라. 용궁 부연록
    송도에 천마산이 있는데 그 산은 높이 공중에 솟아 험준함으로 천마산이라 한다. 그 산 속에
    용추 하나가 있는데, 이름은 박연이라 한다. 이 못은 둘레는 얼마 되지 않으나 깊이가 몇 십 자가
    되는지 알 수 없으며, 못 물이 넘쳐서 폭포를 이루고 있는데, 폭포의 길이는 몇 십 길이나 될 것
    같다. 경치가 맑고 아름다웠으므로 구경 오는 스님이나 손들은 반드시 이 곳을 관람했다. 예부터
    여기에 용신이 살고 있다는 이산한 전설이 전기에 실려 전해오므로, 나라에서는 해마다 명절이면
    큰 소를 잡아서 제사를 지내게 했다. 고려 째 한 씨 성을 가진 서생이 살려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글을 잘 지어 조정에 이름이 알려져서, 문사로 평판이 있었다. 어느 날 서생은 고초하는 방에서
    해가 저물 때까지 편히 쉬고 있었더니, 문들 청삼을 입고 복두를 쓴 관원 두 사람이 공중으로부
    터 내려와서 뜰 밑에 엎드렸다. “박연 못의 용왕께서 모셔오란 분분이십니다”. 서생은 깜짝 놀라
    낯빛을 밖면서 말했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길이 막혀 있는데 어찌 통할 수 있겠소? 더구나 용
    궁은 길이 아득하고 물결이 사나우니 어찌 갈 수 있겠소?” 두 사람은 말했다. “준마를 문 밖에
    준비시켜 두었습니다. 사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그들은 몸을 굽혀 서생의 소매를 잡고
    문 밖으로 모셨다. 거기에는 과연 총마 한 필이 있는데, 금 안장 옥굴레에 누런 비단으로 배띠를
    둘러 놓았는데, 날개가 돋혀 있었다. 수종자는 모두 붉은 수건으로 이마를 싸고 비단바지를 입고
    서 있는데, 여남은 사람이나 되었다. 그들이 서생을 부축하여 말 위에 태우니, 일산을 쓴 사람이
    앞에서 인도하고 기락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구 사람도 홀을 손에 잡고 따랐다. 미구에 말이 공
    중을 향해 날으니 말발굽 아래 구름이 뭉게뭉게 이는 것만 보일 뿐, 땅에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다. 잠깐 후에 일행은 벌써 용궁문 바께 도착했다. 말에서 내려서니 문지기 들이 방게, 새우, 자라
    의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주르르 늘어서 있는데, 그들은 눈자위가 한 치나 되었다. 서생을 보더
    니 모두 머리를 숙여 절하고는 고의를 놓고 앉아 쉬기를 청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듯했다. 두
    사람이 재빨리 안으로 들어서서 보고하니, 곧 푸른 옷을 입은 두 동자가 나와 손을 마주잡고 서
    생을 인도했다. 그는 조용히 걸어 나아가다가 궁문을 쳐다보았다. 현판에 함인지문이라 씌어있었
    다. 그가 문 안에 들어서자 용왕은 절운관을 쓰고 칼을 타고 손에 홀을 쥐고 뜰 아래로 내려와서
    맞이했다. 그를 이끌고 다시 뜰 위로 해서 궁전으로 올라가더니, 앉기를 처하니 그것은 수정궁 안
    에 있는 백옥 걸상이었다. 서생은 엎드려 굳이 사양하며 말했다. “어리석은 백성은 초목과 함께
    썩을 몸이 온데, 어찌 감히 거룩하신 임금님께 외람히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용왕
    은 말했다. “오랫동안 선생의 성화를 들어왔습니다만 오늘에야 모시게 되었습니다.” 의아히 생각
    하지 마십시오. 마침내 손을 내밀어 낮기를 청했다. 서생은 세 번 사양한 후 자리에 올랐다. 용왕
    은 남쪽을 향해 칠보로 만든 교의에 걸터앉았고, 서생은 서쪽을 향해 앉았는데 교의에 앉기 전에
    문지기가 와서 말씀을 올렸다. “손님이 오십니다.” 용왕은 또 문 밖으로 나가서 맞이해 들였다. 세
    사람이 붉은 도포를 입고 채색 수레를 타고 나타났다. 위의와 종자들로 보아 임금임에 틀림없었
    다. 용왕은 또 그들을 궁전 위로 인도했다. 서생은 들창 밑으로 몸을 비꼈으나 그들이 자리에 앉
    은 후에 인사를 청하겠다고 생각했다. 용왕은 그들 세 사람에게 권해서 동쪽을 향해 앉히고는 말
    했다. “마침 인간 세상에 계신 문사 한 분을 모셔왔습니다. 여러분은 서로 의아히 생각하지 마십
    시오.” 측근 사람에게 명하여 서생을 모셔오게 했다. 그가 재빨리 나아가서 인사를 하니 그들도
    모두 머리를 숙이고 답례를 했다. 서생은 윗자리에 앉기를 사양하면서 말했다. “여러 신께서는 귀
    중하신 몸이오나 저는 일개 가난한 선비올시다. 감히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윗자리
    를 굳이 사양하니 그들이 말했다. “서생은 양계에 계시고 우리는 음계에 사니 매여있지는 않습니
    다만, 용왕님은 위엄이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을 보는 안식도 밝으십니다. 선생은 틀림없이 인간 세
    계의 문장 대가이실 것입니다. 용왕님의 영이시니 거절하지 마십시오.” 용와은 말했다. “어서들 앉
    으십시오.” 세 사람은 한꺼번에 자리에 앉고 서생은 몸을 굽혀 올라가서 자릿가에 꿇어앉았다. 용
    왕은 말했다. “편히 앉으십시오.” 자리에 앉자 술잔을 돌린 후에 용왕이 그에게 말했다. “내 슬하
    에는 오직 딸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벌써 결혼할 시기가 되어서 곧 시집을 보내겨 합니다. 그러
    나 거처가 누추해서 사위를 맞이할 집도 화촉을 밝힐 만한 방도 없습니다. 그래서 따로 누각을
    지을까 하며, 집 이름을 가회각이라 하기로 했습니다. 장인도 벌써 모았고 목재,석재도 다 준비했
    습니다만, 다만 없는 것이 상량문입니다. 풍문에 들으니, 선생께서는 문명이 삼한에 나타났고 재
    주가 백가에 으뜸 간다하므로, 특별히 부하들을 먼 곳으로 보내어 모셔오게 한 것입니다. 나를 위
    해 상량문을 하나 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아이가 하나는 푸른
    옥돌 벼루와, 상강의 반죽으로 만든 뭇을 받들고, 다른 하나는 얼음 같이 흰 명주 한 폭을 받들어
    들어오더니, 꿇어앉아서 서생 앞에 놓았다. 서생은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가 일어나더니, 붓에
    먹을 찍어 곧 상량문을 써 내려가는데, 그 글씨는 구름과 연기가 서로 얽히는 듯했다. 문장은 이
    러했다. “생각건대, 천지 안에서는 용왕님이 가장 신령스럽고 인물 사이에서는 배필이 아주 중한
    데, 용왕님께서는 이미 만물을 윤택하게 하신 공을 마련해 두셨으니 어찌 복을 받을 터전이 없으
    랴. ‘시경’관저장에서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라 함도 조화의 시초를 나타낸 것이며, ‘주역’의 건괘에
    서 비룡재천에 이견대인이라 함도 신령스러운 변화와 자취를 나타낸 것이다. 이에 새로 큰 궁궐
    을 지어 아름다운 칭호를 높이 게시했는데, 이무기를 불러 힘을 내게 하고, 보배를 모아 재목을
    삼으며, 수정과 산호로 기둥을 세우고, 용뼈와 낭간으로 들보를 걸어 구슬발을 걷으면 산에는 놀
    이 푸르러 있고 백옥 들창을 열면 골짜기에 구름이 둘러 있다. 가족은 화합하여 복록을 만녀토록
    누릴 것이요, 부부가 화락하여 귀한 자손이 길이 억대에 번성하리라. 풍운의 변화를 돕고 영원히
    조화의 공덕을 나타내어 높은 하늘에 오를 때나 깊은 못에 있을 때타 하민의 갈망을 구제하고 상
    제의 어진 마음을 도와서 기세가 천지에 떨치고 위엄과 덕망이 원근 지방에 흡족하여 검은 거북
    과 붉은 잉어는 기뻐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산괴물과 산도깨비도 차례대로 와서 축하한다. 마땅
    히 단가를 지어 곱게 조각한 위에 높이 걸어야겠다. 원컨대 이 집을 건축한 후에 혼례를 이룬 날
    에는 온갖 부록이 다 이르고, 많은 상서가 모두 모여들어 요궁 옥전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피어어
    르고, 봉화 베개와 원앙 이불에는 즐거운 소리가 들끓게 되며 그 덕이 나타나게 되고 그 신령이
    빛나게 될 것이다.” 서생은 그 글을 쓰기를 마치자 곧 용왕에게 바치었다. 용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에 세 신에게 명하여 이 글을 차례로 보게 하니 세 신이 모두 떠들썩하게 감탄하고 칭찬하여
    싿. 이에 용왕은 서생을 대접하기 위하여 잔치를 열게 하니 서생은 꿇어앉아서 물었다. “높은 신
    들이 이 자리에 다 모였사오나 존함을 미처 묻지 못했습니다.” 용와은 말했다. “선생은 양계에 계
    시므로 모르실 것입니다. 이 세 분 중에는 첫째 분은 조강의 신이요, 둘째 분을 한가의 신이며,
    셋째 분은 벽란의 신입니다. 우리 오늘 다 같이 놀까 해서 이렇게 초대한 것입니다.” 술자리가 다
    하려 하자 풍악이 시작되었다. 미인 십여 명이 푸른 소매를 흔들거리며 머리에 구슬꽃을 꽂고 앞
    으로 나아왔다가 뒤로 물러갔다 춤을 추면서 벽담곡 한 곡조를 불렀다. 춤이 끝나자 다시 총각
    십여 명이 왼손에는 피리를 잡고 오른 손에는 새깃 일산을 들고 서로 돌아버면서 회풍곡을 불렀
    다. 춤이 끝나자 용왕은 기뻐하면 다시 술잔을 씻고 다시 술을 부어 서생 앞에 권하면서 스스로
    옥피를 불고 수룡음 한 곡을 노래하여 즐거운 정을 다하였다. 용왕은 노래를 마치자 측근 사람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장소의 놀음은 인간 세상과 같지 않으니 그대들은 귀한 손님을 위하여
    각기 재주를 보이라.” 이에 한 사람이 자칭 곽개사라 하고는 발을 들고 모로 걸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저는 바위 틈에 숨은 선비요, 모랫구멍에 사는 한가한 사람입니다. 팔월에 바람이 맑으
    면 동해 바닷가에 가서 뱃속으로 벼까끄라기를 쏟아내고, 하늘에 구름이 흩어질 때는 남정성의
    곁에서 광채를 머금기도 합니다. 속은 누르고 겉은 둥글며 갑주로 몸을 싸고 예리한 병기를 가졌
    습니다. 늘 손발을 잘려서 솥에 들어가게 되며, 비록 정수리를 갈더라도 사람을 이럽게 했습니다.
    멋스러운 맛은 장사의 얼굴빛을 기쁘게 하고 조동하는 꼴은 마침내 부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습
    니다. 조나라 왕윤은 물 속에서 만나더라도 저를 미워했으나 송나라 전곤은 지방에 나가 있으면
    서까지 저를 생각했으며, 죽어서는 진나라 필이부의 손에 들어갔으나 초상은 당나라 한진공의 화
    필에 의탁되었습니다. 또한 장소를 만나 놀음을 하게 되니 마땅히 다리를 들어 춤을 추겠습니다.”
    하더니, 곽개사는 그 앞에서 갑옷을 입고 창을 쥐고 침을 내뿜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동자를 돌
    리더니 사지를 흔들고 비틀거리면서 재빨리 앞으로 갔다가 뒤로 불러나면서 팔풍무를 추었다. 그
    의 동류 몇 십 명이 고개를 숙여 엎드려 돌면서 절차에 맞추에 춤을 추었다. 이에 그 춤추는 태
    도가 왼쪽으로 돌다가 오른쪽으로 굽으며 뒤로 물러 갔다가 앞으로 달아나기도 하니 온 좌석에
    있던 이들이 모드 몸을 뒹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이 놀음이 끝나자 또 한 사람이 자친 현
    선생이라 하고는 꼬리를 끌고 목을 빼고 기분을 뽐내고 눈을 뚫어지게 보면서 앞으로 나와 말하
    였다. “저는 시초 떨개에 숨은 자요, 연잎 밑에 노는 사람입니다. 낙수에서 글을 등에 지고 나왔
    으니 이미 하나라 우임금의 공로를 나타내었으며, 맑은 강에서 그물에 잡혔으나 일찍이 송나라
    원군의 계책을 이룩했습니다. 비록 배를 갈라 사람을 이롭게 할지언정, 껍질 벗기는 것은 감내하
    기 어렵겠습니다. 두공에 산을 새기고 동자 기둥에 마름을 그렸으니, 껍질은 노나라 장공이 소중
    이 어겼으며 돌 같은 내장을 가지고 검은 갑옷을 입었으니 내 가슴은 장사의 기상을 뽐내었던 것
    입니다. 진나라 노오는 나를 바다 위에서 걸터앉았으며, 진나라 모보는 나를 강 가운데 놓아주었
    습니다. 살아서는 세상을 기쁘게 하는 보배가 되고 죽어서는 도리를 예언하는 보물이 되었습니다.
    마땅히 입을 벌려 노래를 불러 천 년 동안 속에 쌓였던 회포를 풀어 보겠습니다.” 하고, 곧 그 앞
    에서 기운을 토하매 실오라기처럼 나부끼어 그 길이가 백여 척이나 되더니 이를 들이마시매 흔적
    도 없어졌다.. 그리고 그 목을 움츠려 사지 속에 감추기도 하고 또 목을 길게 빼어 머리를 흔들기
    도ㅓ 하더니 조금 후에는 앞으로 조용히 걸어와서 구공의 춤을 추면서 홀로 앞으로 나왔다가 뒤
    로 물러갔다. 하더니 이어 노래를 지어 불렀다. 곡은 끝났으나 그래도 망설이고 황홀하여 발을 높
    고 낮게 춤을 추니 그 태도는 형용할 수 없어 온 좌석에 있던 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이
    에 숲 속의 도깨비와 산 속의 괴물들이 일어나서 각기 그 기능을 자랑하는데, 어떤 것은 휘파람
    을 불고 어떤 것은 그냥 뛰놀았다. 그들의 노는 꼴은 각기 달랐으나 소리는 똑같았다. 이에 노래
    를 지어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강의 군장이 꿇어앉아 시를 지어 드렸다. 쓰기를 마치자 용왕에
    게 바치니 용왕은 웃으면서 이 시를 보고난 후에 사람을 시켜 서생에게 주어싿. 서생은 이 시를
    받아 꿇어 앉아 읽고 세 번이나 거듭 음미하고 난 후 곧 그 자리에서 장편시 12운을 지어 훌륭한
    일을 서술하였다. 시를 지어 올리니 온 좌석에 있던 이들은 모두 감탄하고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용왕이 감사하면서 말하였다. “마땅히 금석에 새겨 제 집의 보배로 삼겠습니다.” 서생은
    절하고 사례한 후에 나아가 용왕에게 말하였다. “용궁의 좋은 일들은 이미 다 보았습니다만 그
    위에 또한 궁궐의 웅장함과 강토의 광대함도 두루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용왕은 말하였다. “좋
    습니다.” 서생은 허가를 얻어 문 밖에 나와서 눈을 크게 뜨고 보니 다만 오색 구름이 주위에 둘
    러 있으므로 동쪽과 서쪽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용왕은 구름을 불어 없애는 사람에게 병하여 그
    름을 걷게 하매 한 사람이 대궐 뜰에서 입을 줄이면서 한 번 불어 버리니 하늘이 환하게 바락아
    져서 산과 바위 벼랑도 없어지고 다만 넓은 세계가 바둑판처럼 된 것이 수십리나 되었다. 아픔다
    운 꽃과 나무가 그 안에 벌여 심겨 있고, 바닥엔 금모래가 퍼져 있고, 둘레는 금성으로 쌓아졌으
    며, 그 행랑과 뜰에는 모두 푸른 유리 벽들을 펴고 깔아서 광채와 그림자가 서로 비치었다. 용왕
    이 두 사자에게 명하여 서생을 인도하여 관람시켰는데, 한 곳에 이르매 누각 한 채가 있으니 그
    이름은 조원지루라 하였다. 이 누각은 전체가 파려로 만들어졌고 구슬과 옥으로 장식하고 누르고
    푸른빛으로 아로새겼는데, 그 위에 오르매 마치 허공에 오른 것 같았으며 그 층계는 열 층계나
    되었다. 서생이 그 위 층계에까지 다 오르려 하니 사자는 말하였다. “여기는 신왕께서 신력으로
    자기만 오르실 뿐이옵고 저희들도 또한 관람하지 못했습니다.” 대체 이 누각의 위층은 구름 위에
    솟아 있으므로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곳이었다. 서생은 7층까지 올라갔다가 내
    려와서 다시 한 누각에 이르니, 그 누각의 이름은 능허각이라 하였다. 서생은 물었다. “이 누각은
    무엇에 소용됩니까?” 사자는 대답하였다. “이 누각은 신왕께서 하늘에 조회하실 때 그 의장을 정
    돈하고 그 의관을 치장하는 곳이옵니다.” 서생은 다시 청하였다. “그 의장을 보여 주십시오.” 사자
    는 서생을 인도하여 한 곳에 이르니 한 물건이 있는데 마치 둥근 거울과 같은 것이 번쩍번쩍 광
    채가 있어 눈이 아찔아찔하여 똑똑히 볼 수가 없었다. 서생은 물었다. “이것은 무슨 물건입니까?”
    “번개를 맡은 전모의 거울입니다.” 또 북이 있는데 크고 작은 것이 서로 맞았다. 서생이 이를 쳐
    보려고 하니 사자는 말리면서 말하였다. “만양 한 번 친다면 온갖 물건이 모두 진동하게 되니 이
    것은 곧 우레를 맡은 뇌공의 북입니다.” 또 한 물건이 있는데 풀무와 같았다. 서생이 이를 흔들어
    보려고 하니 사자는 다시 말리면서 말하였다. “만약 한 번 흔든다면 산의 바위가 다 무너지고 큰
    나무가 뽑혀지게 되니, 곧 바람을 일게 하는 풀무입니다.” 또 한 물건이 있는데 모양이 청소한는
    비와 같고, 그 옆에는 물독이 있었다. 서생이 비로써 물을 뿌려보려고 하니 사자가 또 말리면서
    말하였다. “만약 한 번 물을 뿌린다면 큰 물이 져서 산과 언덕이 물로 둘러싸이게 될 것입니다.”
    서생은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찌 여기에 구름을 붙어 내는 기구는 비치하지 않았습니까?” “구름
    은 신왕의 신력으로 되는 것이지 기계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생은 또 말하
    였다. “우뇌를 맡은 뇌공, 번개를 맡은 전모, 바람을 맡은 풍백, 비를 맡은 우사는 어디 있으니
    까?” “이들은 천제께서 깊숙한 곳에 가두어 나와 놀지 못하게 했다가 신왕이 나오시면 이에 접합
    시킵니다.” 그 나머지 기구도 많았으나 일일이 다 알 수가 없었다. 또 긴 행랑이 삼사 리나 연해
    뻗어 있었는데 문에는 용의 형상을 새긴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서생은 물었다. “여기는 어떤 것
    입니까?” 사자는 대답하였다. “이곳은 신왕께서 칠보를 간수한 곳입니다.” 서생은 한 시간 동안
    구령하였으나 다 볼 수 없었다. 서생은 말하였다. “그만 돌아가고자 합니다.” 사자는 말하였다.
    “예, 좋습니다.” 서생이 돌아오려고 하니 그 문들이 첩첩이 싸여서 앞이 아득하여 갈 길을 알 수
    없었으므로 사자에게 명하여 앞에서 인도하게 하였다. 서생은 본디 있던 자리에 도착하자 용왕에
    게 감사하다는 뜻을 표하였다. “대왕의 은덕으로 좋은 경치를 두루 구경하였습니다.” 두 번 절하
    고 작별하니 이에 용왕은 산호반위에 야광주 두 개와 빙초 두 필을 담아서 전별의 노자로 주고
    문밖까지 나와서 전송하였다. 세 신도 한꺼번에 하직하고는 수레를 타고 곧 돌아갔다. 용와은 다
    시 두 사자에게 명하여 산을 뚫고 물을 헤치는 서각을 가지고 인도하게 하였다. 사자 한 사람이
    서생에게 말하였다. “선생께선 애 등에 올라타고 반 나절만 눈을 감고 계십시오.” 서생은 그 말
    대로 하여싿. 사자의 한 사람은 서각을 휘두르면서 앞에서 인도하니, 마치 공중으로 올라 날아가
    는 것 같은데 다만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잠깐 동안 끊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윽고 소리가
    그치어 서생이 눈을 떠보니 다만 자기 몸은 거처하는 방 안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서생이 문 밖
    에 나와서 보니 하늘의 별은 드문드문하고 동방은 밝아오며 닭은 세 홰를 쳤는데 밤은 벌써 오경
    이었다. 빨리 그 품속의 물건을 찾아서 보니 야광주와 빙초가 있었다. 서생은 이 물건을 상자 속
    에 깊이 간직하여 소중한 보물로 삼고 남에게는 잘 보이지도 않아싿. 그 후에 서생은 세상의 명
    예와 이익에는 생각을 두지 않고 명산에 들어 갔는데, 그가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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